〈 269화 〉 지원 사격(2)
* * *
아델리아가 밤시중을 들기 한참 전, 그러니까 전시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그··· 저는 왜 부르셨는지···"
아델리아는 평소 늠름하고 자신만만하던 모습이 아닌 다소 위축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하늘색 눈동자는 좌우로 데굴데굴 구르는 중이고, 단련을 통해 살짝 넓은 어깨는 한껏 좁아져 있다.
히리야를 비롯한 친가족과 만났을 때처럼 공포에 질린 건 아니나 누가 보아도 눈치를 보고 있는 행동.
더군다나 허벅지 위에 주먹을 올려놓으면서 뻣뻣하게 앉아있어서 흡사 쭈구리 같은 면모를 드러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언니. 누가 보면 우리가 언니 괴롭히는 줄 알겠다."
"그래요. 그냥 편안하게 있어도 돼요."
아델리아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여인, 마리와 세실리가 각각 말을 꺼냈다.
아직 전시회가 시작되기 전이라 간편한 복장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고유의 매력을 발산하는 중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백은발과 서로 대비되는 흑발로 하여금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보다 외모는 물론 개성마저 뒤떨어진다 생각 중인 아델리아로서는 자연스레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들은 아이작의 연인들인 반면, 앞으로 자신은 첩 혹은 전속 메이드로 들어가게 된다.
비록 사생아지만 테르스 왕국에서 지내면서 귀족의 생태가 어떤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생물학적 아버지, 프리드리히 국왕은 첩을 두지 않아 갈등이 그나마 적었으나 서열이 낮다는 건 명확히 인지하는 중이다.
무엇보다 과거부터 사생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진 핍박을 받고 성장한 아델리아였던지라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녀 님과 공주 님은 아이작의 정식 연인? 부인? 아무튼 그런 쪽이잖습니까. 반면에 저는···"
"글쎄. 과연 아이작이 그런 쪽에 연연할까? 그냥 구실만 그런 거고 전부 공평하게 대할 걸?"
"적어도 차별은 하지 않겠지. 아이작은 은근히 사람 마음에 민감하니까."
아델리아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간파한 두 여인이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안심시켰다.
평소 아이작과 지내면서 심리를 꿰뚫다 못해 속마음까지 내다보고 있는 그녀들이다.
아이작은 신분에 귀천을 가리지 않으며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훨씬 좋아한다.
더 나아가 권력과 서열로 누군가를 누르는 행위를 매우 싫어하며, 한때 리나와 레오르트가 그런 짓을 했다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다행히 지금은 관계가 나아졌으며 언제나 한결 같이 수평적인 관계를 원하는 아이작이다.
"그래도··· 저는···"
"아~ 됐어. 그런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나 하자. 알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델리아가 여전히 쭈굴거리자 마리가 대충 넘어갔다. 아이작과 비슷하게 수평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그녀로서는 이런 대화가 답답했다.
물론 그녀도 본인이 공작가 여식이라고 자각하고 있다. 평민이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는 건 당연시 여기지만, 그 사람이 아이작의 여자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게다가 아델리아의 비참한 과거를 알고 나서 그녀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아델리아는 세상에 보기 드문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
이외에도 여러가지 요인을 통해 아델리아를 아이작의 여자로 받아줄 수 있었다. 메이드 제안을 먼저 한 것이 마리라는 걸 상기하면 그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네. 그러면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를 부르셨는지···"
아델리아는 마리의 속 시원한 말에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본론에 들어섰다. 여전히 자신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한껏 작아진 상태다.
이에 마리는 그런 그녀를 짠한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옆에 앉은 세실리를 바라봤다. 때마침 세실리도 고개를 돌린 참이다.
푸른색과 볽은색 눈동자가 서로 교차하고, 두 여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겉보기에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미소였으나 계략을 꾸미는 듯한 음흉함이 묻어있다.
이윽고 두 여자가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 가장 먼저 마리가 입을 엶으로서 본격적인 주제가 나왔다.
"언니. 언니는 언제 할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이신지···"
"아이작이랑 첫날밤 언제 치룰 거냐고."
"······!"
마리답다면 마리답다고 해야 될까. 직설적인 질문에 아델리아의 하늘색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졌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떨리고 뺨 또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왜 그리 당황하세요? 예상하고 있던 거 아닌가요?"
"아, 아니. 그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세실리의 질문에 아델리아는 허둥지둥거리면서 차마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아이작의 연인이 되었으니 첫날밤 또한 가질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애당초 그전에 농밀하고 진득한 키스까지 했는데 안 하면 이상한거지.
하지만 말 그대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앞의 두 여인들이 있는 마당에 자신이 끼어들 곳은 없다고 단정짓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남자와 이어졌지만, 그의 옆이 아닌 뒤에서 지켜주겠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러분이 있는데 제가 어떻게 끼어들 생각을 하겠습니까?"
이에 가슴을 간신히 추스리고 진실된 마음을 꺼냈다. 풀이 죽은 목소리하며 떨어진 고개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마리와 세실리가 있는데 자기가 어떻게 끼어들겠냐. 아이작의 여자가 된 것도 여러분의 자비로운 마음씨 때문이지 않느냐.
위의 모든 의미가 포함돼 있는 고백에 마리와 세실리는 역시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또한 예상했던 바다.
"그럼 우리가 양보해준다면?"
"네?"
"우리가 양보한다면 언니는 어떻게 할 거야?"
마리의 제안 다음에는 세실리의 말이 이어졌다.
"설마 저희가 양보까지 하는데 거절할 생각은 없으시겠죠?"
"··· ···"
할 말이 없어졌는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건지 아델리아가 눈을 끔뻑거리며 두 여자를 번갈아 보았다.
웃는 얼굴을 보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어째서 첩에 불과한 자신에게 이리 잘해주는 것일까. 무엇 하나 꿇릴 게 없고 오히려 월등한 여자들이.
그 생각이 표정에 전부 드러났던 것일까. 마리는 특유의 방실거리는 웃음을 흘리더니 입을 열었다.
"언니 정말 귀엽다. 어떻게 얼굴에 생각이 다 드러나지? 아이작이랑 똑같아."
"네, 네? 아니, 그러니까··· 저···"
"됐어. 언니는 잔말말고 우리가 하라는대로 해. 알겠지?"
"이제 솔직하게 해도 되잖아요?"
"··· ···"
결국 아델리아는 순순히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흘러간 상황이었으나 내심 그녀도 기대하고 있던 차다.
사람의 욕심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욕심을 내자.
이에 그녀는 우물쭈물하던 기색을 약간이나마 덜어내며 그들과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그럼···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
"음··· 일단은···"
아델리아의 용기 있는 질문에 마리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
"우선 복장부터 생각할까?"
******
나는 밤시중을 들기 위해 등장한 아델리아를 멍하니 쳐다봤다. 침대에 앉아있어서 자연스레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구도다.
현재 그녀는 메이드복, 그것도 어깨와 쇄골을 훤히 드러내는 메이드복이다. 게다가 치마는 얼마나 짧은지 허벅지의 반을 겨우 가리는 길이다.
화룡점정으로 세실리의 조언인지 아니면 자기가 원한 건지 흰색 가터 벨트까지 끼고 있다. 그야말로 섹시 메이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중이다.
평소 보이시한 아델리아가 이런 섹시한 옷을 입으니 뭐랄까··· 파격적이다. 세실리와는 다른 의미의 파격적인 모습.
아침에 보여줬던 늠름한 호위 기사가 아닌, 오로지 '밤시중'을 들기 위한 메이드. 두 상황을 서로 비교하여 나오는 반전 매력이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 ···"
"··· ···"
나와 아델리아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아델리아는 부끄러워하면서 내 시선을 피했지만, 얼굴에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있다.
마리와 세실리가 어째서 그녀를 데리고 갔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양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아델리아도 나름의 결심을 세운 것 같으니.
그럼 그 결심에 화답해야겠지. 고자도 아니고 밤일을 여러번 치룬···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네.'
여태까지 활발했던 마리와 세실리와 달리 아델리아는 처음이다. 내가 진짜 여자를 밝히는 쓰레기도 아니고 긴장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아델리아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다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칫하다간 내가 그 날개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조심해서 다뤄야겠지만 그녀는 이미 충분한 각오를 하고 내 침실에 들어섰다.
평범한 옷도 아니고 내가 디자인한 메이드복을 입고 온 걸 보면 확실하다.
···세실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원래 디자인한 것보다 노출이 심했지만. 내가 디자인한 건 이정도로 심하진 않았다.
"···누나."
"···네. 도련님."
"일단 옆에 앉을래?"
나는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상황 속에서 내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아델리아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스레 움직였다.
아침에 보았던 절도있는 동작이 아닌, 녹이 슨 기계처럼 삐그덕거린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의미일 터.
너무 심한 긴장은 첫날에 좋지 않다. 이제부터 그 긴장을 풀어줄 생각이다. 첫날밤 치루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다름아닌 분위기였으니.
분위기가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건 여태까지의 경험을 통해 깨닫은 사실이다.
"마리랑 세실리 누나가 양보해준 거지?"
"···네."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아델리아. 작은 등불의 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허벅지는 가지런히 모았으며 그 위에 두 손을 얹고 있는 아델리아. 고개도 차마 들지 못한 채 쑥쓰러워하는 중이다.
귀엽다. 낮과 밤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니 귀여움이 배로 증폭되는 느낌이다.
이에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손을 맞잡자 아델리아가 크게 흠칫거리며 몸을 떨었다.
이어서 그녀는 내가 맞잡은 손을 떨치지 않고 힘을 강하게 주었다. 절대 떨어지기 싫다는 것처럼.
스윽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찬가지로 몸을 움찔 떨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내가 머리를 어루만져주자 아델리아의 얼굴이 전보다 붉어진 것 같다. 이러한 반응 하나 하나가 매력을 뿜내는 중이다.
이제부터 내 여자가 될테니 깨지기 쉬운 공예품을 다루었다.
"흐응. 흐으응."
한동안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아델리아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 내 어깨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몸이 이따끔씩 움찔움찔 떨리는 걸 보면 긴장이 풀리고 있다는 신호.
나는 그녀의 머리에 뺨을 갖다 대면서 서로의 온기를 조금씩 나누었다. 두근거리는 그녀의 심장 소리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누나."
"네···"
"이제 미련은 없는거지?"
미련이야, 완전히 떨어뜨렸겠지. 이런 과감한 복장으로 늦은 밤, 내 침실에 찾아온 걸 보면.
하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에게 답하는 것이다. 자신은 과연 혈육에게 완전히 정을 떼었는가.
그토록 원하던 가족이었으나 보기 좋게 버림받고, 더 나아가 히리야는 사랑하는 남자마저 빼앗으려고 한다.
있던 미련마저 나가 떨어질 정도인데 아델리아라고 오죽할까.
"네. 없어요."
"그래?"
"제 가족이 있는 곳은··· 여기니까."
아델리아가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로 아련함을 담아 대답했다. 나는 그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델리아의 마음에는 커다란 대못이 박혀있는 상황이었다. 설사 대못은 제거할 수 있어도 구멍만큼은 어찌할 수 없는 법이지.
나는 그 구멍을 메워주고, 더 나아가 흉터조차 찾을 수 없도록 새로운 색으로 칠할 것이다.
"누나."
"네. 말씀하세요."
"누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아니면···"
나는 잠깐 말을 흐렸다가 기대었던 얼굴을 슬며시 떼어내 아델리아와 마주했다.
아델리아도 어느새 몽롱해진 하늘색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직시하는 중이었다.
"엄청 유명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책상 속에 고이 숨겨놓았던 원고가 떠오른다. 내가 제논이라는 걸 알려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
"제논이라던가?"
만약 그녀가 원한다면 기꺼이 보여줄 것이다. 몸까지 섞을텐데 못 보여줄 건 없지.
어쩌면 아델리아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제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실리가 어째서 내 연인이 되었는지 단번에 깨달을테니.
또한 전시회를 통해 몇몇 정황을 흘렸다. 다시 되돌아보면 여러모로 수상한 상황이 몇몇 존재했다.
그러한 내 질문에 아델리아는···
"상관없어요."
"상관없다고?"
"네."
정말 의외의 대답을 꺼냈다. 깜짝 놀라거나 그에 준하는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다.
이에 도리어 내가 놀랐다는 표정을 짓자 아델리아는 내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
뒤이어 내 심장 박동을 음악 삼아 편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평소 괄괄하고 당당했던 목소리가 아닌, 사랑과 애정이 한가득 담겨있는 목소리다.
"아이작 도련님이 제논이든, 아니면 숨겨진 황제의 자식이든 상관없어요. 저는 이때까지 도련님께서 저를 대했던 모습만 생각하니까."
"···테르스 왕국이 귀찮게 할지도 모르는데?"
"괜찮아요. 정말로 도련님이 제논이라면 테르스 왕국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할테고, 설령 아니면 아닌대로 좋으니까. 전 그냥 도련님이 좋아요."
"··· ···"
"그래도 제논이라면 싸인 정도는 받아도 되겠죠? 저 제논 일대기 엄청 좋아하는데."
역할에 심취하고 있는 걸까. 반말을 해도 되는데 계속해서 존댓말로 대하는 아델리아.
그래도 진심만큼은 제대로 전달되었다. 마리가 그랬듯이, 아델리아는 내가 제논이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그냥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고, 또 애정을 갈구하고 있을 뿐. 덕분에 그녀를 향한 마음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주자. 나는 굳게 다짐하며 내 가슴에 얼굴을 갖다 대었던 아델리아를 살며시 떼었다.
아델리아는 내가 밀어내자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하늘색 눈동자가 옅은 빛에서도 밝게 빛나고 있다.
"누나."
"네."
"누나는 정말 사랑스러워."
"네··· 에? 읍!"
아델리아의 의문은 이어지지 못 했다. 내가 기습적으로 키스를 날림으로서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으니까.
순간 깜짝 놀랐는지 그녀가 내 가슴을 한 번 두드렸으나 이내 완전히 몸을 맡겼다. 몸에 힘이 빠지는 게 선명히 느껴진다.
"으음. 츕. 츄읍."
달콤하고 끈적한 키스가 이어지고, 어색하던 기류는 완전히 증발해 열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매우 능숙한 나와 달리 아델리아는 약간 서툴렀다. 어떻게든 나에게 맞추려고 노력했으나 그래도 부족하다.
그래서 더 만족스럽다. 반전 매력을 꾸준히 드러내는 그녀의 태도에 걸맞았고, 앞으로 능숙해질테니까.
"쯔읍. 후아···"
길고 긴 농밀한 키스가 끝나고, 나와 아델리아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입을 떨어뜨렸다.
입과 입 사이에 가느다란 은색 실선이 이어지며 야릇함이 배로 늘어난다.
"하아··· 하아···"
나는 키스가 끝난 이후의 아델리아의 반응을 살펴봤다. 예상대로 눈은 풀리기 직전이었으며 달뜬 숨을 내뱉는 중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침대에 눕혀 본방으로 들어서고 싶지만, 아직이다.
'밤시중'을 들기 위해 왔다는데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이에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밤시중을 받고 싶은데··· 되지?"
"네, 네에···"
아델리아는 내 물음에 홀린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스를 할 때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인지 후들거린다.
나는 그동안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에 손을 갖다 대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약간이지만, 물기로 젖어있었다. 그녀도 흥분할대로 흥분한 모양이다.
스르륵
침대보를 손으로 훑는 동안 앞에서 소리가 들린다. 옷을 벗을 때 발생하는, 옷이 서로 스치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앞으로 시선을 옮기자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메이드복에 맞추기 위해 입은 끈없는 속옷과 흰색 가터벨트. 이것만 해도 세실리 못지 않은 섹시함을 뿜어내고 있다.
하지만 배에 선명히 자리잡고 있는 복근이 특유의 건강미까지 첨가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허벅지와 튼실한 골반, 마지막으로 둔부까지.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은, 건강미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그럼···"
아델리아는 부끄러워하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자연스레 내 시선 또한 아래로 향했다.
뒤이어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가 두 손을 뻗었다. 그녀의 두 손이 나아가는 곳은 정확히 내 허리쪽.
현재 나는 가운만 입고 있는 상태로, 그마저도 여미지 않고 풀어헤쳐 단련된 상체가 완전히 드러나 있다.
허나 속옷만큼은 입고 있었기에 그녀의 손이 어디로 향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꿀꺽."
마침내 속옷을 붙잡은 아델리아가 재차 침을 꿀꺽 삼킨다. 그러면서 내 눈치를 보는 게 정말로 사랑스럽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엉덩이를 슬쩍 올린 건 덤.
"이, 이제부터···"
아델리아는 내 배려(?)에 흐물거리는 입술로 말하며.
"밤시중을··· 들도록 하겠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두 손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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