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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68화 (269/763)

〈 268화 〉 지원 사격(1)

* * *

매트릭스 극단··· 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매트릭스 극단에서 선보인 세계 최초의 영화는 성공으로 마무리를 맺었다.

매트릭스 극단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화려한 연출과 배우의 연기. 마지막으로 리루스 악단의 효과음 및 ost까지.

지난 전시회에서 보여주었던 연극도 위의 모든 것이 어우러져 명작을 탄생시켰지만, 오늘 보여준 영화는 그 정점을 찍었다.

시대를 앞서간 재능이라고, 스칼 감독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어떤 지식이 들어있길래 지구 못지 않은 연출력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준 데쟈뷰 기법은 스칼을 천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전생에서는 흔하디 흔한 클리셰 중 하나지만, 여기는 아무것도 없다.

연극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있더라도 영화 제작은 스칼에게도 첫 시도일 터. 더군다나 연극과 영화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기까지.

헬리움에게 있어서 스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인재이며 예술가다. 그에게 지원을 퍼부어준 걸 보면 역량과 잠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얼추 예상할 수 있다.

어쨌거나 세계 최초의 영화가 성황리에 끝을 맺고, 마지막으로는 지난 전시회에서 그랬듯이 무대에 배우를 비롯한 감독이 등장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을 하나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엘리샤를 연기했던 배우가 실제로 엘프였다는 것. 분장이나 마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카이르를 연기했던 배우와 실제 연인 사이라고. 늙은 모습은 마법을 통해 변신시킨 거라고 설명했다.

'진짜 공들여 제작했구나.'

매트릭스 극단의 규모는 지난 전시회보다 몇 배는 커졌다. 감독이 마족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오히려 매트릭스 극단에 들어가겠다고 배우의 꿈을 품는 이들이 훨씬 늘어났다. 예술의 규모를 크게 늘린 것이다.

무엇보다 스칼 쪽에서도 전시회를 예의주시하는 중이라고. 모두 알고 있겠지만 전시회에서는 매트릭스 극단뿐만 아니라 다른 연극도 진행된다.

비록 매트릭스 극단처럼 미친듯한 연출력을 자랑하지는 않아도 몇몇 연극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연극은 그 특징상 배우의 연기력이 돋보이니 매트릭스 극단에게는 일종의 등용문이다.

"혹시 질문하고 싶은 사람 없습니까? 아직 시간이 남아있으니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기나긴 설명 이후로 스칼 감독의 질문 타임이 이어졌다. 그와 동시에 1층에서 수많은 사람이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귀족들은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손을 드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물론 그 몇 명 중에 내가 포함돼 있지.

내가 손을 번쩍 들어올리자 주위에 다양한 시선들이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저 멀리 앉아있는 제국의 황족들과 더불어 테르스 왕국의 왕족들까지.

귀족의 품위따위는 집어치우라지. 지금은 내 궁금증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음··· 거기 빨간 머리 신사분? 질문하세요. 마법으로 음성을 키울테니 그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여태까지 눈에 띄는 빨간 머리가 싫었는데 오늘만큼은 좋아지려고 한다. 나는 스칼이 손을 내밀자 목을 풀고는 입을 열었다.

"아아. 아."

정말로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마이크가 울리는 것처럼 내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마법의 무궁무진함에 신기해 하다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우선 처음에는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니, 매트릭스 극단다운 연출이었다니 등등. 다양한 칭찬을 통해 스칼을 비롯한 극단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진정으로 원하던 질문을 날렸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다음 편은 언제 나오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물론,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훌륭한 영화여서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다음 편이라··· 그런데 신사분께서 말씀하신 영화가 대체 무슨 뜻인지 알려드릴 수 있나요?"

"어."

그러고 보니 여기는 영화가 아니라 연극의 연장선이라고 불렀지. 나도 모르게 영화라 지칭해버렸다.

말실수라고 넘어가기에도 힘들다. 아까도 자연스럽게 영화라고 불렀으니.

나는 정정하기 전에 설마하며 시선을 옆쪽으로 힐긋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실리와 딱 눈이 마주쳤다. 그 미소를 보자마자 섬뜩함이 들어 곧장 앞을 쳐다봤다.

"아하하··· 제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영화라··· 괜찮은 어감이네요. 일단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겠습니다. 카이르의 죽음 이후에는 메리의 고백을 통해 제논과 이어지고, 더 나아가 본격적인 악마의 침공이 이어지죠. 하지만 이걸 전부 해결하기에는 인력도 인력일 뿐더러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요. 무엇보다 악마의 침공은 전투가 아니라 전쟁입니다."

스칼의 설명대로 카이르의 죽음 다음에는 악마 침공이 이어진다. 전투가 아닌 전쟁에 해당하는 스케일이니 단기간에 찍는 건 불가능하다.

배우, 연출, 노하우 등등. 성공적인 첫 도약이라지만 무엇 하나 경험이 쌓여있지 않은 상태.

이도 저도 아닌 망작이 등장하여 제논 일대기에 흠집을 낼 바에야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낫다는, 스칼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민망하지만 이번 연극은 사실상 테스트입니다. 일종의 프로토타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만약 제논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1권부터 천천히 제작할 예정입니다."

닥치고 내 허락 담긴 편지나 받아가시지. 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세실리를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을 왜 쳐다보냐는 듯, 능청스럽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입가에는 여전히 의미모를 미소를 띈 채로.

나는 그 반응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가 은근슬쩍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잘 부탁한다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매트릭스 극단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헬리움의 무한한 지원 덕분이다. 아무리 매트릭스 극단이라고 한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세실리는 내 애절한(?) 부탁에 피식 웃더니 내 귀에 입을 갖다 대었다. 이어서 색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단어 하나를 언급했다.

"씨앗."

"··· ···"

그 한 마디를 통해 그녀가 무얼 원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때문에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다 장난이라고 해도 씨앗만큼은 세실리에게 있어서 진심이었으니까. 그러나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마리의 마음을 상처입힐 생각은 없다.

조금만 참을 수밖에 없지. 내가 안 된다는 의미로 쓴웃음을 짓자 세실리는 예상했는지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씨앗을 원한다는 유혹도 장난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웬만해서는 내 부탁을 다 들어주는 편이니까.

어쨌거나 내 질문 이후로 스칼을 향한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전투씬은 어떻게 제작했는지부터 시작하여 제논과 직접 만난 적이 있는지, 배우는 어떻게 섭외할 건지 등등.

특히 가장 궁금했던 건 바로 배우의 섭외. 인간이나 마족은 그렇다 쳐도 다른 종족의 섭외는 어떻게 할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스칼도 이 부분에 대해서 난관을 겪고 있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소 애매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사실 엘리샤의 배우 분도 제가 사정사정해서 섭외한 겁니다. 게다가 현재 알븐하임은 아르웬 여왕님의 정책을 통해 주변과 활발히 교류를 하는 중이고요. 가능하면 섭외하고 싶지만··· 알븐하임 쪽에서도 따로 연극을 제작하지 않을까 싶네요."

신빙성이 매우 높은 이야기다. 현재 매트릭스 극단의 감독이 누구인가. 헬리움의 지원을 듬뿍 받은 마족이다.

알븐하임 입장에서는 마족도 제작했는데 우리라고 안 되겠냐! 라는 입장을 취할테지. 아마 스칼도 그걸 알기에 난감을 표하는 거고.

허나 명심해야 될 것이, 이건 종족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로지 감독의 역량 그 자체.

마족이건 엘프건 스칼만한 감독을 자리에 앉혀놓는다면 이런 명작이 탄생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졸작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르웬이 잘 처신해주려나···'

나는 아르웬이 앉아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살짝 떨어진 곳에 앉아있다. 안내인 역할 때는 그렇다 쳐도 사적으로 가깝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다.

만약 나와 아르웬이 사적으로 가깝다는 게 들통난다면 자연스레 제논이라는 의심도 품게 될테니까. 그러니 현재 그녀는 자신의 호위기사, 케이르와 나란히 앉아있다.

또한 서로 숙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간략한 의견을 주고 받는 모양새다. 아르웬은 매우 현명한 여왕이니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거라고 믿는다.

"이상으로 저는 매트릭스 극단의 감독, 스칼이었습니다. 저희의 무대를 지켜봐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남은 전시회도 즐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무수한 질문 세례가 끝나고 매트릭스 극단의 인사가 이어졌다. 나는 물론이고 공연장의 사람들이 열렬한 박수로 응대해줬다.

오늘 당장 저녁에 편지를 써서 허가해야겠다. 어서 빨리 책 속의 알븐하임 즉, 엘븐하임의 악마 침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만 그건 오래 걸리겠지.

일단은 1권부터 차근차근 영화화하여 경험을 쌓는 것이 우선이다.

"정말 멋진 무대였어. 그렇지 않아?"

"응. 내일 또 다시 볼 수 있으려나?"

"너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걸? 그래도 며칠동안 있을 거라고 했으니 한 번 쯤은 다시 볼 수 있겠지."

영화가 끝난 이후로는 일행과 함께 저택으로 복귀했다. 떠나는 와중에도 여운에 젖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마지막에 보여준 데쟈뷰 기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겠지. 당장 지구인인 나조차도 이따금씩 떠오르는데 이곳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렇게 우리는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감평을 내놓으면서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 저택에 가서 부모님에게 꼭 시청하라고 당부해놓을 예정이다.

"아델 누나도 재밌게 봤어?"

"응··· 아, 아니. 네. 정말 재밌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평소대로 반말을 했다가 급히 존댓말로 바꾸는 아델리아. 당황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으나 딱딱하게 느껴진다.

"편하게 말 놓아도 돼. 지금은 우리밖에 없잖아."

"그래. 네가 그러니까 조금 어색하다, 야."

같이 걷고 있던 니콜이 아델리아의 어깨에 손을 척 얹으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니콜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아델리아가 꽤 어색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일단··· 아직까지는 근무 중이니까요."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근무가 끝나면 다시 반말하는 거지?"

"네."

아델리아는 내 전속 메이드로, 원래라면 퇴근 시간은 저녁 식사 이후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행사에는 무기한 연장이다.

참고로 전속 메이드에게도 추가 근무 수당이 있더라. 야근인지 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시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돈도 늘어난다.

아마 한 달 월급이 어림잡아도 80골드 정도 되지 않을까. 한화로 약 800만원이며 연봉이 무려 1억에 가깝다는 소리다.

엄청 비싸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아델리아는 아카데미에서 무술 조교까지 겸한 인재 중의 인재. 오히려 이정도 연봉은 싼 편이다.

"데이브 형. 데이브 형은 지금 월급을 얼마나 받아?"

"나? 일단 기본이 대충 100골드이긴 한데, 위험 수당을 포함해서 이것 저것 다 받으면 150은 훌쩍 넘지."

"니콜 누나는?"

"난 아직 견습이라 70골드. 그래도 실질적으로는 100골드가 넘긴 해."

네이비 기사단에 입단한 형과 누나의 월급과 비교하자면 얼마나 싼 편인지 알 수 있다. 애당초 아델리아는 니콜과 비등한 실력을 갖고 있는 실력자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특훈을 통해 실력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으니 그녀의 몸값 또한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다.

오직 내 곁을 지켜주기 위해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는 중이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아델리아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델리아는 나와 얼굴을 마주치자 뺨을 붉히더니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늠름함과 귀여움이 공존하고 있어서 그녀만의 매력을 발산하는 중이다.

그렇게 오순도순 화목하게 담소를 나누며 저택에 막 도착했다. 데이브와 니콜은 답답한 제복을 벗어던지기 위해 가장 먼저 본인 침실로 돌아갔다.

이에 나 또한 여운을 풀기 위해 침실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아델리아 언니. 약속 잊지 않으셨죠?"

"응?"

마리가 아델리아를 부르며 '약속'에 대해 언급했다. 이에 아델리아를 쳐다보니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빨갛게 익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내가 도와줘야겠지. 아이작이랑 마리는 먼저 가 있어."

비단 마리뿐만 아니라 세실리도 마찬가지. 그녀는 눈웃음을 짓더니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비볐다.

누가 보아도 꿍꿍이가 다분히 들어있는 모습들. 그러고 보니 아침에 그녀들끼리 무슨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걸로 알고 있다.

"··· ···"

반면 아델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매만 흐물거릴 뿐. 내 눈치를 보면서 억지로 부끄러움을 참는 반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실리는 아델리아의 팔을 질질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굴에는 재미있겠다는 미소를 한가득 지은 채로.

그리하여 아델리아와 세실리가 사라지고, 나와 마리 단 둘만 남게 되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마리를 쳐다봤다.

마리는 내 얼굴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더니 투덜거렸다.

"에휴. 정말이지··· 나처럼 착하고 마음씨 고운 부인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무슨 말이야?"

"됐고, 너도 빨리 씻고 침실에서 기다리기나 해. 난 잠깐 따로 할 일이 있으니까."

"음··· 알았어."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정황이 존재했으나 지금 당장은 넘어갔다. 어차피 밤은 길었으니.

그리고 그 밤은.

"안녕하세요, 도련님. 오늘도 편안한 하루가 되셨습니까?"

"···누나?"

전혀 예상치 못한.

"오늘도 힘들고 고단한 하루를 보내셨을 겁니다. 그 피로를 대신 푸는 것이 전속 메이드의 업무."

정말 색다른 형태로.

"오, 오늘 밤은 제가 직접··· 바, 밤 시중을···"

"··· ···"

"들, 들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게 다가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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