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31화 (232/763)

〈 231화 〉 스포일러(2)

* * *

케이트는 세이비어 교국 내에서 다양한 의미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루미너스에게서 은총을 하사받은 성직자임과 동시에 루미너스의 뜻에 반하는 자들은 자비없이 철퇴를 내리는 이단심문관.

신앙심이 투철하다고 말할 수 있으나 반대로 광신도가 되기에 아주 적합한, 그런 인물이다.

은총을 받아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소유하여 20살도 채 지나지 않아 추기경의 자리에 오르고 대심문관마저 겸임하게 된 성기사.

일반 사제가 신성력이 강한 대신 무력이 약하고, 성기사가 무력이 강한 대신 신성력이 약한데 케이트는 이 두 가지 모두 충족하고 있다.

그야말로 신의 선택을 받은, 가히 '성녀'라 칭송해도 모자름이 없는 여인이나 세이비어 내의 성직자들을 그녀를 경외하고 있다.

그래. 존경이 아니라 '경외'다. 존경하면서도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어린 나이에 추기경이 될 정도로 잠재력이 극히 뛰어난데 여기에 무시무시한 무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녀가 작정한다면 세력을 키우고 세이비어의 권력을 한 입에 꿀꺽 집어삼킬 수 있다는 뜻. 그녀를 따르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다.

천만다행히도 오직 루미너스에게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더러 사회성이 바닥이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직 루미너스의 뜻만 따를 뿐.

반대로 말하자면, 그녀가 '뜻'을 지닌 채 무언가 이행할시 그 누구도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그 대상이 교황이라 할지라도.

광신도가 된다면 가장 위험한 인물이나 루미너스라는 '목줄'이 단단히 걸려있는 이상 자비롭고 온화한 성직자.

그게 바로 케이트 루이즈 안젤리카이며, 마족과 다른 의미의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사람이다.

"그 분의 말씀을?"

그리고 다시 돌아와 현재. 단단히 걸어잠구었던 목줄이 서서히 풀릴 것 같은 기미가 보이고 있다.

보통 같으면 루미너스를 언급하자마자 조용해져야 정상이지만, 오늘은 무슨 일인지 몰라도 격분하고 있다.

질식할 것 같은 살기를 풍기는 건 물론이고, 아름다운 초록빛 눈동자에 핏발까지 서 있는 상태.

지금까지 보지 못 했던 케이트의 분노에 장내는 흉폭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 ···"

바크는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간 전신이 갈기갈기 찢길 것 같은 공포에 아무런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위험하다. 단순히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전신이 오들오들 떨릴만큼 본능이 경종을 울리는 중이다.

여기서 한 마디라도 더 했다간은, 그대로 죽은 목숨이다. 현재 눈 앞의 여인은 다른 의미로 미쳐있는 상태다.

광기와 신앙심이 두루 합쳐진, 광신(??).

그러한 광신의 제일 무서운 점은 '진실성'이다. 그것을 믿고 따르는데 한치의 의심을 품지 않고 의지를 이행하려고 든다.

비단 바크뿐만 아니라 다른 추기경도 위험하다고 느꼈는지 서둘러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헤라였다.

"케이트 추기경. 당신이 순례길에 오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몰라도 당신이 품은 마음은 매우 위험해요. 어서 빨리 루미너스 님께 기도를 올리는 게···"

"저도 헤라 추기경과 같은 생각입니다. 현재 케이트 추기경은 매우 위험합니다."

세이비어 교국은 먼 과거, 광신을 가슴 속에 품어 마족을 학살하고 주변 나라를 탄압했던 끔찍한 만행이 존재한다.

그 만행을 반면교사 삼아 지금처럼 굳건한 위세를 자랑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신도는 꾸준히 배출되는 중이다.

무엇이던 간에 지나치게 과하면 제 살을 깎아먹게 되는 법. 세이비어 교국은 어떻게든 과거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광신도를 철저히 배척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추기경들이 보기에 케이트는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광신에 빠져들게 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추방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후우··· 알겠습니다. 제가 잠깐 흥분했군요."

케이트도 그들의 우려에 가슴을 다독였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다는 모습이다.

그에 다른 추기경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으며 특히 케이트의 분노를 한 몸에 받았던 바크 또한 식은땀을 닦아냈다.

여차저차 원만히 해결된 것으로 보였지만, 케이트의 광신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의미모를 미소를 짓더니 특유의 온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여러분의 조언대로 루미너스 님께 기도를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네?"

케이트의 말에 추기경들은 하나 같이 몸을 흠칫 떨며 그녀를 바라봤다. 케이트는 자비로우면서도 화사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 미소가 사뭇 공포스럽게 느껴진다면 순전히 착각이겠지.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가 두렵게 느껴진다니 '죄악'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하다.

딱 한 명. 방금 전 케이트의 분노를 한 몸에 받아냈던 추기경, 바크를 제외한다면.

그는 그 미소가 향하는 대상이 자기자신이라는 걸 깨닫고 몸을 뻣뻣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이곳은 밝은 빛으로 가득한 곳인데, 왜인지 몰라도 자신의 주변이 전부 어둠으로 채워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오직 케이트와 자신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은 압박감. 올가미 덫에 꽉 묶여버린 사냥감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자신은 사냥 당하고 있다. 광신이라는 거대한 아가리를 향해 점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중이다.

"···경."

"··· ···"

"바크 추기경?"

"네, 네?"

지독한 압박과 공포에 짓눌려 있던 바크는 귀에 들어온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목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리니 헤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안 일어나시고 뭐 하시는 거죠? 어서 기도하러 가셔야죠."

"기, 기도 말입니까?"

"네. 바크 추기경께서는 최근 업무 때문에 기도도 올리지 못 했으니 이참에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헤라는 케이트에게 보여주지 않던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바크에게 권유했다. 바크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화사한 미소를 띈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케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미소가 정말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대로 기도를 하러 갔다간 저 광신도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이에 바크는 어색하게 웃으며 정중히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

"아··· 죄송합니다. 사실 저에게 아직 업무가···"

"설마 5분이라는 시간조차 아까우신 건 아니죠? 바크 추기경."

거절하려던 찰나 케이트가 도중에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이 화살처럼 쏘아져 바크의 귀에 꽂혀들어갔다.

이에 케이트를 쳐다보니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을 뿐이었다.

"추기경이라는 성직자가 루미너스 님에게 5분마저 투자할 수 없다니, 실망스럽네요."

"···케이트 추기경."

"아니면···"

케이트는 올라갔던 입꼬리를 내리더니 턱을 서서히 젖혀들었다. 마치 깔보는 듯한, 오연하기 짝이 없는 모습.

빈말로도 호의적이라 할 수 없는 눈빛이었으며 오히려 적대심으로 가득하다.

"추기경이라는 직위를 장막처럼 사용하면서, 뒤로는 악마 숭배자들을 지원해주는 건 아니겠죠? 제논 일대기에 나온 내용처럼."

바크는 서늘하다 못해 가시가 돋혀있는 질문에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무서우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다행히 인내심을 발휘해 뒷걸음질치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케이트 추기경! 계속 그러시다면 성하에게 보고하겠어요! 아무리 케이트 추기경이라도 이 행위는 용납받지 못 할 겁니다!"

"··· ···"

헤라가 엄한 목소리로 케이트에게 따지는 반면, 데이모스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남들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만큼 무언가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선듯 나서지 않고 제 3자의 입장으로 사태를 살펴보고 있다.

케이트는 헤라의 경고를 듣고 고개를 천천히 돌려 그녀와 마주했다. 헤라는 서늘한 초록빛 눈동자와 마주해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대응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일까. 케이트는 내려갔던 입꼬리를 도로 올리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헤라 추기경. 제가 잠시 과했던 모양이군요."

"알면 됐어요.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해서 하는 말이지만, 케이트 추기경은 당분간 루미너스 님에게 꾸준히 기도를 올리도록 하세요. 누가 보아도 정말 위험해 보이는 상태이니."

"조언 감사합니다. 일단 예배실로 가는 게 좋겠군요."

케이트는 그리 말하면서도 바크에게 시선을 주는 건 잊지 않았다. 바크는 그 눈빛에 다시 한 번 몸을 흠칫거렸다.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진 대화라서 모르고 있었는데, 케이트는 현재 백색의 갑주를 착용한 채 메이스까지 허리에 매달고 있다. 이른 바 완전 무장을 걸친 상태.

그녀는 현재 추기경이 아니라 '대심문관'으로써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철퇴'의 대상은...

"···젠장!"

"어, 어? 바크 추기경! 어디로 가는 겁니까!"

바크는 생각이 거기까지 거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뒤에서 헤라가 당황한 목소리로 불러세웠으나 전부 무시했다.

이대로 가다간 얄짤없이 예배실로 향하게 된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루미너스에게 기도를 올리게 되겠지.

루미너스는 신앙심이 투철한 자에게 신성력을, 반대로 부정한 자에게는 물벼락 혹은 그에 비견되는 천벌을 내린다.

그리고 자신은 물벼락 정도가 아니라 진짜 벼락을 내릴 게 확실하다. 그만큼 심각한 죄악을 저질렀으니.

'말도 안 돼. 어떻게 안 거지? 정말로 신탁이라도···'

도망치면서 가슴 속에 품은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콰악!

"끄악!"

"어디 가시는 겁니까."

어느새 뒤따라온 케이트가 바크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우악스럽게 붙잡았으니. 도망친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케이트는 무시무시한 신체 능력으로 금방 따라잡았다.

바크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격통도 잠시, 케이트가 자신을 붙잡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급히 소리쳤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이, 이거 놓으시오! 케이트 추기경! 지금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는 거요?!"

"잘 알고 있습니다. 감히 루미너스 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림자에 숨은 사특한 자를 벌하려는 것이죠."

"으으윽···! 여봐라! 누구 없느냐!"

최후의 발악으로 교황청 내에 기거하고 있는 인원을 부르는 바크.

안 그래도 소란 때문에 몰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크의 외침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점점 몰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십···! 케이트 추기경 님?!"

"케이트 추기경!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케이트는 경악과 놀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표정을 둘러보다가 바크에게 시선을 옮겼다.

바크는 머리카락이 전부 뽑혀져 나갈 것 같은 격통에 인상을 쓰며 자신의 팔을 붙잡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 목격자들을 만드려는 것 같지만, 오히려 케이트에게는 만족스러웠다.

당장 이 자의 죄악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기회였으니. 그녀는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크를 질질 끌고 갔다.

"아아악! 아악! 이, 이거 놓으시오! 놓으라니까!"

"이,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케이트 추기경이 왜 바크 추기경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케이트가 바크를 개처럼 질질 끌고 가던 교황청의 사람들은 감히 말릴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케이트는 세이비어 내에서도 신앙심이 투철한 걸로 유명했으니까. 더군다나 은총까지 하사받았다.

그녀의 의지는 곧 루미너스의 의지라고 단언한 성직자도 있을 정도이니.

결국 모두가 안절부절 못하며 뒤만 졸졸 따라갔을 쯤, 케이트와 바크는 기어코 예배실에 도착하게 되었다.

신전의 예배실과 달리 본진이라 할 수 있는 교황청의 예배실.

장인들이 정성들여 조각한 루미너스의 석상이 중앙에 배치돼 있었으며 그 중앙에는 천장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휘익!

"아악!"

케이트는 루미너스의 석상이 세워진 곳 아래에 바크를 짐짝처럼 집어던졌다.

손의 악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녀의 손에는 바크의 머리카락이 한 움쿰 쥐어져 있었다.

그런 머리카락들을 대충 털어낸 케이트는 머리를 감싼 채 끙끙 앓는 바크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바크 추기경. 이제 기도를 올리세요."

"으으윽···!"

"정말로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다면, 루미너스 님에게 기도를 올리세요."

머리를 감싸는 와중에도 케이트의 싸늘한 목소리는 귀에 착착 박혔다. 바크는 침음을 흘리면서 눈을 천천히 떴다.

눈을 뜨니 자신을 내려다 보는 케이트와, 그 뒤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다. 바크는 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끔찍한 직감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소리쳤다.

"이, 이러면 뭐라도 될 줄 아시오?! 케이트 추기경! 신성한 교황청 내에서 폭력을 저지르다니! 루미너스 님이 이걸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소!"

"···뭐?"

바크가 루미너스를 입에 담자마자 눈 밑을 꿈틀거리는 케이트. 그와 동시에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케이트의 마음도 모르는지 바크는 더러워진 옷을 손으로 탁­ 탁­ 털더니 자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이어서 뻔뻔한 낯짝으로 케이트에게 버럭 버럭 소리쳤다.

"아무리 루미너스 님에게 은총을 하사받은 케이트 추기경이라지만 이건 선을 넘었소! 기도를 올리라고? 본래 기도는 누군가 강제해서 올리면 안 되는 것. 케이트 추기경이 행하는 짓은 먼 과거, 우리 세이비어 교국이 광신에 빠져있을 때와 다를 바가 없소!"

"··· ···"

최후의 발악인 것일까. 바크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상황을 이용하여 케이트를 몰아붙였다.

실제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케이트의 행동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수준이다. 세이비어 교국 내에서 광신도의 입지는 최악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으니.

바크는 이걸 잘 이용한 것이다. 제아무리 케이트라고 한들 소문이 퍼진다면 신변마저 위험하다.

"설사 내가 기도를 올려 물벼락을 맞는다고 한들 케이트 추기경이 할 수 있는 건 그것이 끝이오. 신성한 교황청 내에 피를 흘리면 안 된다는 법칙이 있으니. 천벌을 받기 싫다면 그래야 할 것이오."

"···천벌?"

천벌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마자 케이트에게서 또다시 흉폭한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고개 또한 옆으로 살짝 꺾였을 뿐더러 두 눈에 서렸던 광채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바크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곧바로 그녀를 쌩하고 지나쳤다. 스위치를 잘못 누른 것 같다는 직감이 머리를 지배했다.

만약 이대로 진행되었다간은 저 메이스에게 머리가 터졌을 터. 정치질도 완수했겠다, 남은 건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런 뻔뻔하고 토 나올 것 같은 행위에 루미너스마저도 질렸던 것일까.

바크가 이제 막 샹들리에가 위치한 중앙 부분을 걸어갔을 때.

뚝­

물벼락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아닌.

콰앙!!

굳건히 매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추락하며 '천벌'이 떨어졌다.

"꺄아아악!!"

"바, 바크 추기경 님!!"

사람들은 샹들리에 아래에 깔려 즉사한 바크를 보며 저마다의 반응을 드러냈다.

그러나 샹들리에에 완전히 깔린 바크는 살짝 삐져나온 손만 꿈틀거릴 뿐,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 하며 그대로 절명했다.

몸이 완전히 짓눌렸는지 뜨거운 피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성기사들이 서둘러 달려와 샹들리에를 치웠으나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한편 케이트는 '천벌'이 실시간으로 행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서서히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린 곳에는 루미너스의 석상이 세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을 루미너스가 지켜본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천벌이 떨어질리가 없다.

이에 그녀는 석상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조신하게 무릎을 꿇었다. 뒤에서는 혼란이 한창인데도 불구하고 케이트는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마지막으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뒤, 경건한 마음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 *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