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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29화 (230/763)

〈 229화 〉 17권(3)

* * *

어둠과 안식의 여신, 모라는 쌍둥이 오빠 루미너스와 달리 철부지에다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가 강하다.

신도들에게 생떼를 부리거나 신탁으로 가끔 장난을 치기도 하고, 신도 중 누군가 엄하게 다그치기라도 한다면 삐지는 일도 있다.

이 탓에 정말로 그녀가 여신인지 의문이 들거니와 필멸자들은 상상하지 못할 세월을 보낸 초월자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루미너스야 말로 진짜 신에 가까운 언행을 선보이고 있으니 더더욱.

하지만 말 그대로 의심이지 그렇다고 모라를 모욕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신답게 체통을 지키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게다가 모라는 언행만 철부지 같을 뿐, 루미너스와 다른 방식의 자애로움과 인자함을 신도들에게 보여주는 선한 신이다.

[늦었잖아!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아니?]

'죄송합니다.'

[이럴 바에 차라리 1시간만 더 늦지! 그러면 확 여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는데!]

장난기가 좀 심하다는 게 문제지만. 나는 모라의 투정 아닌 투정을 듣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이 길게 유지되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다. 불편하긴 해도 일상 생활에 무리가 가는 건 아니었으니.

허나 성별이 교체되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필사적으로 막아야 된다. 아래가 없어지고 위가 생긴다니 상상만 해도 어색해 죽을 것 같다.

'그런 끔찍한 소리 안 했으면 좋겠네요.'

[어허! 끔찍하다니! 물론 어깨가 좀 뻐근하고 아래가 허전하겠지만 나쁘진 않을거야.]

'장난치실거면 저 나갈 겁니다.'

[미안.]

내가 진지하게 거절하자 모라도 머쓱했는지 곧바로 사과했다. 왠지 혀를 빼물며 어색하게 웃는 모라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처럼 그녀를 상대하는 건 여러모로 진이 빠지는 일이지만 그래도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어 동시에 마음이 편해졌다.

어린애 같은 양상을 보이기는 해도 그만큼 귀엽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나저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딱히 없는데? 그냥 말동무나 좀 해달라고.]

'···다른 신도들이 있잖아요.'

[걔는 걔들이고 너는 너지. 너는 다른 차원에서 온 영혼이니 정말 특별하단 말이야.]

처음에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루미너스도 비슷한 행보를 보여줬다. 심지어 지난번에는 머리까지 쓰다듬어주셨고.

모라의 말마따나 다른 차원에서 온 영혼이다보니 나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기분이 묘해졌다.

'세실리 누나가 들으면 섭섭해 할 것 같은데요?'

[그 아이는 너처럼 다른 차원에서 건너 온 영혼이 아니잖니?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모든 아이들은 특별해. 너가 유별난 것뿐이지.]

'음··· 알겠어요.'

장난꾸러기 같아도 신은 신인 모양이다. 촐랑거리는 말투여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이 깃들어 있었으니.

나는 무슨 말을 하면 모라가 좋아할지 고민하다가 아무 이야기나 꺼내기로 결정했다. 심심하다고 했으니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나가면 될 것 같다.

'모라 님은 마족과 다크 엘프에게 가호를 내려주신다고 하셨죠? 그들 말고 다른 종족은 없나요?'

[딱히 없지. 인간이랑 엘프는 대부분 루미너스를 믿고, 드워프와 수인은 우리 어머니를 믿으니까.]

'어머니라 하시면 히르트 여신님이죠?'

[응.]

히르트는 생명과 자연의 여신, 그리고 쌍둥이 남매신의 어머니다. 여태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만 쌍둥이 남매와 달리 직접 얘기를 한 적은 없다.

레오나에게 듣기로는 루미너스나 모라처럼 '신전'을 세우는 게 아니라 일종의 '의식'을 통해 접신한다고. 신전을 세울 필요도 없이 적당한 공물을 바치고 의식을 치룬다면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히르트를 숭배하는 종족은 '마법'이 아니라 '주술'이라는 독특한 힘을 갖고 있다.

주술은 마법과 궤를 달리하는 힘이며, 먼 과거에 수인뿐만 아니라 인간도 사용했던 힘이다. 지금도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외지에서는 주술을 사용하는 야만인이 있다고.

마법이 프로그래밍처럼 코드를 짜서 결과물을 도출시킨다면 주술은 설명조차 힘든 신비로운 능력이다. 가장 큰 예로 '기우제'가 있으며 가뭄이 들이닥친 곳에 아주 가끔 주술사를 초청하는 경우도 있다.

'히르트 여신님은 한 번도 만나뵌 적이 없네요. 마키나 왕국에 히르트 님의 신전이 있다고 했죠?'

[응. 나중에 한 번 만나뵈려고?]

'얼굴은 비춰야되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만 만났으니.'

[알았어. 잠깐 기다려봐. 엄마! 뭐 하나만···]

모라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나는 그걸 들으며 아주 익숙한 전생의 냄새를 느꼈다. 통화하다가 상대방 쪽에서 다른 사람을 바꿔달라고 할 때의 상황.

지난번 루미너스도 그렇고, 신들이 생활하는 곳은 어떤 형식으로 돼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곳에는 엘프의 조상인 '천사'도 있을까.

신화에 따르자면 신에게 잘못을 저질러 날개를 잃고 땅으로 떨어졌으나 그게 한 명인지 아니면 여러명인지 명확히 명시돼 있지 않았다.

하물며 악마 전쟁 당시에 세계수의 씨앗을 전달한 자가 천사라는 문헌도 있다. 이로 보아 천사는 적어도 한 명이 아니라 여러명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잠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쯤, 중간에 통화(?)가 끊겼던 모라와 다시 연결되었다.

[엄마가 마음대로 하래. 대신 네가 요즘 바쁜 것 같으니 꼭 올 필요는 없다는데? 아니면 레오나라는 아이에게 부탁해도 되고.]

'레오나한테 부탁하라고요?'

[응. 그 애에게 빙의해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면 된다네. 물론 어디까지나 네가 원하는 상황에서만. 시간은 많으니 급할 필요가 없다고 당부하셨어.]

'알겠습니다.'

레오나도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그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하긴 셋째 부인의 딸이어도 명색의 사자 수인이니 어느 정도 배우긴 배웠을 것이다.

'혹시 모라님은 저에게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으세요?'

[굳이 있다면 너를 여자로···]

'그거 빼고.'

[아~ 왜에~ 한 번만. 딱 한 번만 눈 감고 하면 안 될까? 이렇게나 예쁜데?]

이렇게나 예쁜데? 라는 말이 왠지 거슬린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여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내 몸이 변화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아랫도리는 여전히 건장하고 가슴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는 의문을 지닌 채 눈을 지그시 감으며 모라에게 질문했다.

'뭐가 예쁘다는 거예요?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다시 눈을 뜨고 거울을 한 번 봐봐.]

거울? 그러고 보니 헬리움 신전 개인 예배실에는 전신 거울이 하나씩 배치돼 있다.

모라님에게 기도하기 전 몸을 단정히 가꾸라는 의미로 배치해 놓았다고. 이건 비단 모라뿐만 아니라 루미너스의 신전도 마찬가지다.

이에 나는 눈을 뜨며 바로 옆에 배치돼 있던 전신 거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뒤이어 한동안 눈을 껌뻑거렸다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속에 비추어진 내 모습을 확인했다.

'···아, 제발.'

거울에 비추어진 내 모습은 그야말로 천상 여자였다. 본래 하나로 묶었던 머리카락은 왜 풀려있는지 몰라도 폭포수처럼 허리까지 내려온 상태다.

얼굴은 원래부터 어머니를 닮아 화사한 미모를 자랑했으나 전보다 선이 고와졌으며 체격 또한 완벽하게 달라졌다.

어깨와 허리는 좁아지고, 반대로 골반은 유려한 곡선을 자랑할만큼 넓어졌다. 이것만 해도 충격인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코 가슴이다.

크다. 단순히 말조차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덩어리가 내 가슴에 달려있다.

현재 나는 교복을 입고 온 상태인데 단추가 튕! 하고 날라가기 직전이다. 심지어 남자용 교복인데도!

이 무슨 반칙적인 몸매란 말인가. 니콜은 물론이거와 세실리와 체리조차 이정도는 아닐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걸어다니는 음란물이다.

씨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네. 나는 얼굴에 손을 덮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거울 속의 미녀 또한 나와 똑같은 행동을 취한다.

절대, 절대로 안 된다. 저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혀 깨물고 자살하고 말지.

저정도 몸매라면 그냥 일상 생활 자체가 불편해질 것이다. 이에 이를 빠득빠득 갈며 다시 무릎을 꿇었다.

[어때? 예쁘지? 한 번 쯤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모라님.'

[나쁘지 않··· 응?]

'계속 그러시다면 제 책에 악신으로 묘사해버릴 겁니다.'

[히잉···]

내 말에 진심이 담겨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모라가 시무룩한 반응을 보였다. 머릿속에서 소나기에 쫄딱 젖은 강아지가 연상되었으나 안 되는 건 안 되는거다.

그러나 명색의 신인데 저리 우울해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가 살짝 미안함을 담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개인 취향을 너무 넣으신 거 아니에요?'

[응? 무슨 소리야? 네가 여자가 되면 딱 저렇게 되는데?]

'이런 미친.'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구나. 니콜은 운동을 해서 몸매가 좋으니 그렇다 쳐도 나는 왜 저 모양이지. 어머니조차 저 정도까지는 아닌데.

그런 의문들을 엿듣기라도 한 것인지 모라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거야 네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잠재력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지. 릴리라고 했던가? 아마 그 애가 성장하면 딱 저렇게 될 걸? 외모는 조금 다르겠지만.]

'···제 동생이 저렇게 성장한다고요?'

[응.]

그 확답을 듣자마자 한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벌레들이 엄청나게 꼬이겠구나. 내 여동생은 무조건 지켜줘야 될 것 같다.

그나저나 아버지는 정말로 육체적인 재능이 독보적으로 뛰어나시네. 덕분에 가족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하아··· 모라님.'

[왜 그러니?]

'일단 욕한 건 죄송해요. 너무 충격적이라 그만···'

[아냐. 괜찮아. 내 장난이 심한 것도 있으니까. 대신 오늘 신성력 듬뿍 넣어줄게. 다른 질문은 없니?]

상황이 조금 어색하게 흘러갈 뻔했지만 다행히 어찌어찌 무마되었다. 나는 모라의 질문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제가 조심해야 할 것만 조금 알려주세요. 루미너스 님에게 여쭈어 보려다가 깜빡했거든요.'

[조심할 거라··· 오빠가 이미 말했지만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암운이 드리우진 않을거야. 조금 귀찮은 일이 생기긴 하겠지.]

'귀찮은 일이요?'

[응.]

의아한 내 물음에 모라가 의미모를 대답을 꺼냈다.

[앞으로 네가 집필할 18권의 내용. 그 내용을 세상이 알려줄 거야.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

그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

비슷한 시간, 세이비어 교국.

"오오! 돌아왔군요, 케이트 추기경!"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데이모스 님."

가슴 속에 깨끗한 광기를 장착한 케이트가 교국으로 복귀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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