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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24화 (225/763)

〈 224화 〉 반가운 얼굴(2)

* * *

이런 말이 있다. 군대에서 다치는 것만큼 서러운 것도 없다고.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 할 수 있다.

군인에게 있어서 몸은 전재산이나 다름없다. 특히 팔이나 다리처럼 일상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부위에 부상을 당한다면 전투력이 급감한다.

그러니 인력 중 누군가 다쳤다면 그 인원을 보호해주면서 최대한 회복에 전념해야 된다. 만약 그 상태에서 일을 하려고 한다? 욕을 퍼부어서라도 멈추게 만들어야 된다.

괜히 부상을 입은 채로 나섰다간 더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할 뿐더러 그렇게 되면 전력에 큰 손실이 오기 마련이니까.

왜 무리했냐고 갈굴지언정 회복에 최대한 집중하여 원상태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는 게 정상이고, 그 상태에서 끌고 가는 게 비정상이다.

상황이 최악 중의 최악이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부상자까지 전선에 끌고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간단한 것조차 못 해서 다양한 구설수를 만드는 걸 전생에서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런 면에서 미네르바 제국의 군대, 특히 네이비 기사단 같은 특수부대는 합격점이라 할 수 있다. 니콜에게 듣자하니 입단 테스트 막바지에 부상을 입었는데, 교관이 그냥 통과시켜줄테니 열외시켰다고.

사실 부상을 입은 이유도 교관 입장에서는 흡족할만한 사항이었다. 니콜은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체력을 보존한 반면 다른 기수들은 빌빌거렸으며 그런 동기들을 도와주다가 삐끗해서 부상을 입었다.

"어디까지나 사고였어. 행군 도중에 갑자기 오크 무리가 습격했거든. 다행히 원래부터 몬스터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교관들도 대비했지만 그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지. 그래서 이렇게 된 거고."

니콜은 부목을 댄 오른팔을 왼손으로 툭­ 툭­ 건드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로 설명해줬다. 본인은 정말로 괜찮을지 몰라도 친동생으로서 걱정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팔이다. 기사에게 있어서 부상을 입을시 가장 치명적인 신체 중 한 곳이다.

심지어 응급처치를 해서 망정이지, 처음에는 뼈가 아예 반으로 뚝­ 하고 부러졌다고 했으니 자칫했다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런 내 표정을 보았을까. 니콜은 피식 웃더니 손을 천천히 뻗어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견습이어도 이제 나도 기사잖아. 기사는 언제 어디서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야 돼. 고작 이런 부상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애당초 부상을 입었다는 것 자체부터가 멀었다는 의미고."

"누나. 인간의 몸은 다른 종족보다 훨씬 약해."

"나도 알아.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거야."

니콜은 내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쾌활한 미소를 띄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나 또한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나 저래나 그녀는 강하다. 아카데미에서도 아델리아와 함께 조교직을 무난히 수행했을 뿐더러 아버지에게서 훌륭한 재능까지 물려받았다.

비록 부상을 입긴 했지만 네이비 기사단 입단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할 정도이니 주의만 기울이면 더이상의 큰 피해는 입지 않을 것이다.

"누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오기 전에 저택에는 미리 방문했지?"

"응. 그동안 꽤 재미있는 일이 있었더라? 마족 공주부터 시작해서 엘프 사건까지. 분명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사건들이 많이 터졌더라고."

"전부 들었구나."

아무래도 그녀가 입단 테스트를 받는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 전부 들은 모양이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근데 너는 그 사이에 엄청 많이 변한 것 같다? 머리도 길어지고 키도 커진 것 같고. 향수라도 뿌린 거야?"

"향수는 아니야. 신전에 가서 신성력을 받아더니 그때부터 향기가 나기 시작했거든."

"그래? 그럼 라일락 향기겠네. 루미너스 님이 아끼는 신자는 라일락 향기가 난다고 했으니까."

한 달이라는 기간은 생각보다 길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의 근황을 묻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다.

니콜이 저택에서 그동안 발생했던 사건사고에 대해 들었다고 한들 나는 그녀의 근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덕분에 네이비 기사단이 어떤 입단 테스트를 고수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듣기만 해도 치가 떨릴만큼 강도가 어마어마했다.

덤으로 가장 먼저 네이비 기사단으로 향했던 친형, 데이브와 관련된 이야기도. 도통 소식이 없으니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데이브 오빠는 벌써부터 견습 딱지를 벗어던졌어. 기사단 내에서도 미래가 기대된다며 밀어주는 중이고. 아버지의 후광도 있겠지만 꾸준히 정진하는 중이야"

"그렇구나. 그런데 형은 왜 휴가를 안 나오는 거야? 나중에 돌아가면 셋째가 섭섭해 한다고 전해줘."

"얘는. 일단 그렇게 전하겠지만 휴가를 나오는 건 힘들거야. 네이비 기사단은 소수 정예인만큼 한 명 한 명의 인력이 중요하거든."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니콜을 위아래로 슬쩍 훑어봤다. 미네르바 제국의 최강이라 자부할 수 있는 네이비 기사단인만큼 그 제복조차 깔끔했다.

더군다나 니콜의 머리색과 어울리는 남색 계통의 제복이라 그 멋이 한층 더 강해졌다. 제복 하나만으로도 네이비 기사단에 입단할 이유가 될만큼 멋지다.

"그런데 제복이 진짜 멋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아?"

"조금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운지 니콜이 턱을 젖혀들며 우쭐거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네이비 기사단이었으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높겠지.

그리고 니콜은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애당초 조교 시절부터 기사 못지 않은 실력을 겸비한 인재 중의 인재다.

나는 그런 니콜을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슬쩍 시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화를 하다보니 벌써 30분이 훌쩍 넘어가 4시를 넘어버렸다.

이대로 숙소에서 지내는 건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친누나와 다정하게 지내고 싶으니 저녁은 함께 먹을 계획이다.

"혹시 며칠 동안 머무를 계획이야?"

"사흘 정도 있다가 돌아가야지. 수도에서 국경지대까지는 꽤 오래 걸리거든."

"다행이네. 그럼 오늘은 저녁 같이 먹자.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할게."

"아냐. 오늘은 그냥 지인들이랑 같이 먹어. 내일도 시간이 있으니까. 그전에..."

니콜은 살짝 말을 흐리며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기 시작했다. 이걸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싶은 건지 망설이는 티가 역력하다.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다음에 니콜의 입에서 나온 내용으로 하여금 단번에 이해가 갔다.

"그... 아델은 어때? 호위 기사직은 잘 이행하고 있어?"

"아."

그녀의 절친한 친우이자 내 호위 기사, 아델리아와 관련된 주제였다. 저 반응을 보면 니콜도 아델리아가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심정이 제일 복잡한 사람은 니콜이지 않을까. 지금 내 곁에는 마리뿐만 아니라 세실리까지 있었으니.

심지어 말은 하지 않아도 레오나마저 내 부인이 되겠다고 당당히 선포한 상황이다. 니콜이 듣는다면 탄식을 내뱉다 못해 뒷목을 붙잡을 일.

그래도 레오나는 아델리아 다음으로 받아들일 예정이어서 지금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내 정체를 언제 밝힐지 모르겠다만 이대로만 유지한다면 문제는 없다.

"...잘 이행하고 있지."

"다, 다행이네. 걔가 좀 왈가닥이어도 실력 하나는..."

"고백까지 받았어."

"인정하니... 뭐억?!"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잇던 니콜이 화들짝 놀라며 크게 외쳤다. 떡 벌어진 얼굴과 휘둥그레진 눈동자가 그녀의 감정을 대변해줬다.

나는 그 반응에 움찔거렸다가 이내 머쓱하게 웃으며 뺨을 긁적거렸다. 히리야와의 대련 이후, 나에게 안기면서 위로를 받던 아델리아는 본인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비록 상황이 상황인지라 선듯 받아주지는 못 했지만, 그녀가 고백을 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일반적인 관계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주말에 둘이서 운동을 할 때도 스킨십의 빈도도 늘어나고, 평소 보여주지 못 했던 여성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는 등.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마지막 선만큼은 넘지 않고 있다.

"걔, 걔가 고백까지 했다고?"

"응."

"아이고. 이걸 어째..."

상당히 충격적이었는지 니콜이 한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어쩌면 아델리아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저런 반응을 짓는 걸 보면 그녀도 아델리아의 사정에 대해 얼추 알고 있는 듯했다. 이야기가 쉽게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니콜이 고민에 빠져있는 시간동안 잠자코 기다려줬다. 그녀도 그녀대로 마음이 복잡할테니 정리할 시간을 줘야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동안 입술을 달싹거리던 니콜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반짝이는 황금색 눈동자에 온갖 번민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할 거야?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누나 생각은 어때?"

"넌 모르겠지만 그 애는 첩이 되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네 성격상 첩을 첩으로 대할지는 모르겠다만... 아니, 그전에 그 두 명은 알고 있어?"

"대충은."

마리는 원체 직감이 뛰어난지라 나와 아델리아에게서 풍기는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지 오래다. 가끔 가다가 아델리아의 근황에 대해 물을 정도니 말 다했지.

세실리는... 그냥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나에게서 여자가 늘어나건 말건 이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지난번에는 케이트에게 씨앗을 주고 연결고리를 맺으라는 제안까지 먼저 건넸다. 정치적인 이유가 섞여있지만 그녀는 내 곁에 다른 여자가 늘어나도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누나도 알잖아. 아델 누나랑 이어지면 자연스레 내 정체도 밝혀야 한다는 거. 누나는 아델 누나가 테르스 왕족의 사생아인 건 알고 있어?"

"...테르스 왕국? 그냥 평범한 귀족 아니었어?"

니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여기까지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반만 알고 있었구나."

"아니. 그전에 진짜 테르스 왕족의 사생아야? 첩조차 들이지 않고 왕비만 바라보는 그 로맨티스트가?"

니콜이 살짝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했다. 테르스 왕국의 왕, 프리드리히는 로맨티스트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정책도 잘 펼치고 있어 테르스 왕국민들 입장에서는 좋은 왕으로 이미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진짜로 로맨티스트일지는 몰라도 아버지로서의 자격은 실격이라 말할 수 있다. 아델리아에게 깊디 깊은 트라우마가 새겨진 걸 보면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방관만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니콜은 내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거리자 허, 하며 탄식을 내뱉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뒤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운이 쫙 빠져버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더 곤란하겠네. 네가 정체를 밝히면 분명 그 애에게도 영향이 갈테니까. 어쩌면 이용하려 들지도 모르겠지. 아니, 분명히 이용할 거야."

"맞아. 그것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어우... 답답하다, 답답해."

현재 상황이 많이 답답했는지 쿵!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가슴을 두드리는 니콜. 나 또한 아델리와의 관계가 답답한 건지 마찬가지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우선적으로 마리에게 말도 해놓아야 하고 더 나아가 정체까지 알려야 된다. 첫번째부터가 난관인데 산 넘어 산이라고, 아델리아와의 진척도가 거북이마냥 느릿느릿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자는 입장이야. 어차피 나중에..."

"고백까지 받은 마당에 기다리라고? 너 미쳤니?"

괜히 수습하려다가 되려 욕만 얻어먹었다. 나는 니콜이 도끼눈을 뜨며 노려보자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어서 그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를 한동안 째려보다가 콧숨을 길게 내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뭐 하냐는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아이작. 너의 친누나이자 아델의 친구로서 하나 질문할게. 진지한 질문이니 제대로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어? 어어. 무슨 질문이길래..."

"부인 허락없이 첩을 둔 망나니로 남을래, 아니면 여자 마음을 갖고 논 쓰레기로 남을래?"

무얼 선택하던 간에 두 개 다 최악이라는 거잖아. 내가 황당하다는 눈길로 니콜을 올려다 보자 그녀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해. 네 대답 여하에 따라 내 행동이 달라질 거야."

"아니. 두 개 다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는 거 아니야?"

"넌 쓸데없이 착해서 오는 사람을 밀어내지 못 할테니까. 이럴 때는 우유부단하게 고민하지 말고 확실하게 밀어붙여. 너를 좋아하는 여자를 전부 받아들이는 망나니가 되거나, 아니면 마음대로 갖고 노는 쓰레기가 되거나. 뭘 선택할래?"

"마, 망나니가 낫지 않을까?"

니콜의 압박이 워낙 심해서 무어라 따질 수도 없는 분위기다. 가만히 들어보니 쓰레기보다 망나니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내 떨떠름한 대답에 니콜은 싸늘한 금빛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지시를 내렸다.

"안내해."

"으, 응? 어, 어딜?"

"아델한테 안내해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해야지."

도대체 그녀의 계획이 무엇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나는 얼떨떨한 마음도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지시대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숙소 밖으로 나오게 되었으나 여전히 니콜의 속내는 모르겠다. 단지 내 뒤를 따라오면서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레오나까지 있다고 하면...'

그것까지는 차마 말 못 하겠다. 빈말이 아니라 니콜에게 얻어터질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사랑하는 남동생이라고 한들 바로잡을 건 바로잡는 그녀다. 무엇을 바로잡는 건지 모르겠다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한참을 걸었을까. 마침내 아델리아가 거주하는 숙소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한층 강렬해진다.

문을 열라는 무언의 압박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가볍게 노크를 했다. 아델리아는 내가 호출하기 전까지 기숙사에서 대기하고 있을테니 안에 있을 터.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안에서 나가요~ 소리가 들리더니 아델리아가 문쪽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왠지 긴장되는 기분에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끼익­

"누구세... 엇! 귀염둥이?"

문을 열자 와이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아델리아가 환한 미소를 띄며 반겨줬다. 곧바로 나온 걸 보면 운동을 모두 끝내고 쉬고 있던 모양이다.

"갑자기 무슨 일... 어?"

아델리아는 나에게 안부를 묻다 말고 내 뒤에 서 있는 니콜을 발견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하늘색 눈동자에 놀람과 반가움이 담겨졌다.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서일까. 아델리아는 전보다 환한 웃음을 띄더니 숙소에서부터 천천히 걸어나와 니콜과 마주했다.

"니콜! 이게 얼마만이야? 그런데 너 팔..."

"아이작."

"으, 응?"

니콜은 아델리아의 인사도 받지 않고 내 이름을 불렀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보아하니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꽤 화난 듯하다.

아델리아도 그런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니콜의 부상을 걱정하다가 눈을 데록데록 굴리기 시작했다. 상황 파악을 하는 표정이다.

투욱­

그러다가 니콜이 내 등을 강제로 떠밀었다. 꽤 강하게 밀친 탓에 아델리아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델리아가 나를 받아줬지만 갑작스러운 밀착 접촉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와 아델리아가 서로 어리둥절해 있을 때 쯤, 니콜이 스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둘이 안으로 들어가."

"누, 누나? 무슨 일인지 설명을..."

"그래. 니콜.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너무 급작스러운 상황에 아델리아도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꽉 껴안고 있다.

"하아..."

그러거나 말거나 니콜은 우리 둘을 서로 번걸아 보더니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제복 모자를 깊게 눌러쓰더니 조용히 말했다.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한데 두루 섞인,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말투며 목소리였다.

"답답해서 못 봐주겠네. 진짜..."

그리 말한 니콜은 등을 빙글 돌리며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너희들은 키스를 하든 섹스를 하든 무얼 하든 빨리 결정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꺼낸다.

"난 올케들한테 머리 박으러 갈테니까."

나와 아델리아는 떠나가는 니콜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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