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대족장(1)
* * *
본래 고양이는 도도하고, 까칠하고, 독립심이 강하다. 경계심도 은근 강한데다가 대부분 조용조용한 성격을 띄고 있다.
보통 같으면 타인에게 잘 접근하지 않으나 흔히 '개냥이'라 부르는 개체는 사귐성도 좋고 애교도 잘 부른다. 심지어 산책을 가기까지.
그리고 나에게 애정(?)을 표현했던 레오나도 이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시니컬하고 으르릉거리기 일쑤였는데 내가 도와주고나니 부쩍 친해졌으며 오늘은 머리까지 쓰다듬어줬다.
물론 그녀는 고양이가 아니라 사자지만 같은 고양잇과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스스로가 사자 수인이라는 것에 프라이드가 높은 편이니 언급했다가 불상사를 맞이할 수도 있다.
아무튼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그녀에게 간택된 상황이다. 마리와 세실리에게 말을 할 계획이지만 대족장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문제는 이게 가장 어렵다는 것. 현 애니머즈의 상황을 보았을 때 다음 대 대족장은 빼도박도 못 하게 레오나가 되어야 한다.
왕족과 그 반대 세력의 욕구를 완벽히 충족시킬 수 있는 존재가 그녀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정은 언제 나는 거야?"
"아마 사흘 후에 위쪽에서 올 걸? 가능하면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 결정하면 좋겠지만 어림도 없겠지. 대족장이 없으니 한시라도 빨리 누군가를 앉혀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때 최종 결정이 날 거다?"
"응."
"그러면 아카데미는?"
"일단 권위만 넘겨주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줄거야. 자리만 비우는 거라고 보면 돼."
사흘 후면 일정이 상당히 빠듯하다. 어떻게든 그 사이에 레오나가 대족장이 되지 않는 방법을 물색해야 된다.
물론 마리와 세실리에게도 알려줄 계획이다. 레오나가 대족장이 된다면 그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겠지만 그 반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있다가 덜컥 레오나를 소개하면 존중과 배려따위 집어던지는 셈이니 반드시 알려줄 의무가 있다.
"너 내일 3시 수업 들어?"
"응."
"그럼 그때 만나자. 마리랑 세실리한테도 알려줘야하니까."
"알았어."
"그런데..."
나는 말을 흐리며 레오나를 쳐다봤다. 현재 그녀는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게 아니라 내 곁에 앉아있었다.
본인의 애정을 과시하는 것처럼 내 팔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면서 그릉그릉 소리를 내기까지.
심지어 기분 좋은지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새겨져 있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심경 변화가 있었길래 이러는 걸까.
"...레오나?"
"응?"
"왜 이렇게 붙는 건지 알려줄 수 있어? 애정 표현은 다 했잖아."
"그냥 네 체향이 좋아서. 실은 전에 만났을 때부터 이러고 싶었거든."
레오나는 그리 말하며 내 팔에 자기 뺨을 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몸에서 진동하는 라일락 향기에 취한 모양이다.
나는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그녀의 머리를 슬며시 밀어냈다. 내가 밀어내자 그녀도 별 대응없이 내 손길에 따라 밀려났다.
대신 얼굴에는 왜 밀어내냐는 의문이 자리잡았다.
"이제 그만하고, 너도 어떻게 하면 대족장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생각해봐. 정말 적성자가 한 명도 없어?"
"음..."
"그 전에 반대 세력의 대표가 누구인지부터 알려줘. 반대 세력을 이끄는 걸 보면 만만치 않은 인물인 것 같은데. 중심은 없다지만 교묘히 조율하는 사람은 있을 거 아냐."
"...그 년을 말하는 거야?"
반대 세력에 대해 질문하자 레오나가 인상을 구기며 불쾌함을 표했다. 놈이 아니라 년이라 표현한 걸 보니 여자인 듯하며 평판이 그닥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수인은 힘을 중점으로 두는 사상이 널리 퍼져있어서 차별이 널리 퍼져있다. 그러니 레오나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난 그 년이 누구인지 난 몰라. 제대로 설명해줄래?"
"...알았어. 년의 이름은 지나이 크로추커. 하이에나 수인이야."
"하이에나 수인?"
나는 하이에나 수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하이에나 수인은 수인들 사이에서도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고 들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로 안 좋냐면 상대방에게 너 하이에나 수인이냐? 라고 물으면 곧바로 홀름강이 날아올 정도. 차별적이지만 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나 또한 전생의 기억으로 인해 하이에나는 그닥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비열하고 간악한데다가 여러모로 간신에 어울리는 이미지였으니.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미지일 뿐, 실제로 하이에나는 생태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게다가 콩라인이라 해도 먹이사슬 최강자인 사자와 경쟁을 펼칠만큼 매우 강한 개체에 속한다.
그런데 그런 하이에나가 반대파의 수장이란다. 아무래도 복잡한 사정이 끼어들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이에나 수인은 너희 수인들 사이에서도 안 좋은 이미지라고 했지? 잘못 말했다간 홀름강까지 신청받을 수도 있다며."
"그렇지."
"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
"역사적으로도 말이 많은 년들이었거든. 야비한 술수를 부려 부족에 균열을 내는 건 물론이고 기회가 생긴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내지. 이때문에 하이에나 수인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히크 님의 권유로 애니머즈에 들어오게 되었어. 하지만 그 성정은 얼마 가지 않아서 지금 이 사태까지 만들었지."
"흠..."
듣기만 해서 온갖 부정적인 요소만 나온다. 전생의 이미지와 별 다를 건 없다.
그러나 원래 사람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대상과 직접 만나보아야 된다. 나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다가 레오나에게 한 가지 물었다.
"직접 만난 적은 있어?"
"아니. 나도 듣기만 한 거야. 역사적으로도 하이에나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지."
"역시."
레오나의 대답을 듣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직접 만나봐야 알겠지만 하이에나 수인들은 마족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다.
마족의 예시를 보듯이 선입견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하이에나 수인도 마족처럼 선입견에 의해 압박받고 살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반대 세력의 중심으로 우뚝 일어선 걸 보면 필시 비범한 인물일 터.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
"레오나. 듣기만 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야. 당장 마족들을 봐. 제논 일대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악마이니 뭐니 하면서 핍박했잖아. 하이에나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긴 하지만 걔네들은 애니머즈에 큰 혼란을 가져다 왔어. 사자의 일원으로서 결코 좋은 시선으로 보기는 힘들어."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난 히크가 하이에나 수인을 직접 데리고 왔다는 게 조금 거슬려서. 정말로 하이에나가 비열한 민족이었다면 히크가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 ..."
히크는 애니머즈의 건국왕이자 수인들의 국부다. 종족 전쟁 이후 뿔뿔이 흩어져 있던 부족들을 한데 모아 애니머즈를 세웠으니 영웅이라 칭송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헌데 그런 영웅적인 면모를 지닌 히크가 하이에나 수인을 직접 애니머즈로 편입시켰다. 레오나의 말대로 간악하고 비열하다면 건국에 걸림돌이 되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역사는 많은 사실을 알려주지만, 모든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들이 마법을 사용하게 된 경위가 종족 전쟁 당시 엘프와 싸웠기 때문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마족이 전수한 것이다.
이처럼 하이에나에게도 속사정이 있지 않을까. 제 3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니 참고만 해줘. 하이에나를 대족장으로 추대하라는 것 또한 아니야. 어디까지나 편견을 내려놓으라는 거지."
"...알았어. 새겨들을게."
"좋아. 그러면..."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침울해져 있는 레오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침울해져 있길래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다.
그러자 레오나의 축 처져있던 귀가 쫑긋! 하며 다시 세워지더니 이내 멍한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이에 아차하며 서둘러 떼었으나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미안. 그... 불쾌했으면..."
"야."
"사과를... 응?"
내가 급히 사과하려는 것도 잠시, 레오나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대뜸 이상한 부탁을 건넸다.
"한 번 깨물어도 돼?"
"...안 돼."
저 날카로운 송곳니로 깨물다니. 누구 죽이려고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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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 되어 마리와 세실리, 그리고 레오나의 삼자대면(?)이 진행될 날이 다가왔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만 욕을 무진장 얻어먹을 것 같기에 그냥 알려주지 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레오나는 이미 대족장의 자리를 거의 포기한 상황. 내가 도와준다고 하니 벌써부터 대족장 자리를 걷어찰 생각에 희희낙락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나의 아내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그에 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든 미리미리 말을 해놓아야 된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속담이 괜히 있겠나.
다행히 리나도 무언가 눈치를 챈 것인지 일이 있다고 자리를 비워줬다. 그리하여 나, 마리, 세실리, 마지막으로 레오나가 단란하게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앞으로 아이작의 셋째 부인이 될 레오나 라이언즈라고 해. 잘 부탁할게."
"푸읍!!"
그리고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전, 레오나는 전후 사정 따위는 모두 생략해버린 발언을 당당하게 꺼내버렸다.
나는 긴장으로 인해 목이 타들어 가고 있던지라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분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런 반응을 짓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마리?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 똑똑히 들은 것 같은데?"
마리와 세실리 모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세실리는 자기가 들은 게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하는 듯한 얼굴이다.
마리는 이미 레오나와 면식이 있는데다가 인간과 수인의 상식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반면, 세실리는 초면이다. 당황하다 못해 황당해질 수밖에 없다.
"아니... 콜록! 콜록! 그... 콜록!"
나는 레오나의 발언으로 이상해진 분위기를 체감하며 서둘러 입을 열려고 했으나 사레가 들린 건지 기침만 나왔다.
결국 마리가 내 등을 두드려주고 나서야 간신히 진정하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씩 기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콜록. 야. 너무... 콜록. 심하게 생략됐잖아. 다짜고짜 그 말을 하면 어떡해?"
"어차피 일만 잘 해결되면 기정사실이 되는데 상관없지 않아?"
"...아이작?"
레오나가 그리 말하자마자 옆에서 마리가 서늘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그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니 마리가 매섭게 노려보는 중이다.
그 표정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있을 때, 마리는 한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이윽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를 향한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기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여전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던 세실리가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려줄 수 있어? 마리 너는 레오나랑 일면식이 있는 것 같은데?"
"아, 맞다. 공주님에게는 말하지 않았구나. 나 한 번 봐봐."
세실리의 질문에 레오나가 대신 답하며 본인의 귀를 보여줬다. 여기에 더해서 까닥거리기까지.
세실리는 레오나의 머리 위에 솟아난 동물귀를 보고 놀란 것도 잠시, 이내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인이 맞구나. 볼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는데."
"어라? 알고 있었어?"
"숨긴다고 해서 '틀'은 바뀌지 않으니까."
역시 다음 대 차기 마왕답게 세실리는 레오나의 정체를 미리 파악하고 있던 것 같다. 세상에는 마나가 있고 마법 또한 있으니 정체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을 일이겠지.
그녀는 잠깐동안 레오나의 귀에 시선을 두었다가 곧바로 나에게 질문했다.
"레오나가 수인이라는 건 둘째치고 셋째 부인이 된다는 소리는 또 뭐야? 자세히 알려줄 수 있어?"
"나도 상세한 설명 부탁할게, 아이작. 저 소리는 저번에 들었는데 왜 비슷한 소리를 또 들어야 돼?"
애인들이 각자 다르게 압박을 가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미 예상했기에 충분히 추스릴 수 있었다.
이에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억누르고 차근차근 설명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번 16권을 발간부터 시작하여 레오나가 대족장이 되기 직전인 이야기까지.
중간에 무슨 오해를 할 수도 있어서 사소한 것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알려줬다. 이미 철저히 준비를 해놓았기에 중간에 멈추지 않고 쭈욱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후로 모든 설명이 끝나자 예상했던대로 길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마리와 세실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대답을 기다리는 나로서는 똥줄이 탈 수밖에 없는 상황. 레오나 또한 눈치가 있는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입 한 번 벙긋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하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고 얼마나 지났을까. 마리가 땅이 꺼져라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뒤이어 턱을 괴더니 어딘가 한탄하는 듯한 투로 조용히 꿍얼거렸다.
"저번에는 웬 추기경이 씨앗을 달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대놓고 부인이 되겠다고..."
"... ..."
"여자가 늘어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런 식으로 늘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 놈의 제논 일대기가 참..."
한탄을 하던 그녀는 턱을 괸 채 레오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레오나는 마리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흠칫하더니 다소곳한 자세를 취했다.
내 부인이 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선포했던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지고 눈치 빠른 고양이만 남아있었다. 마리에게서 나오는 기백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마리는 그런 레오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윽고 턱을 괸 손을 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는 했어. 만약 네가 대족장이 된다면 아이작의 아이를 낳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의 씨앗을 받아 후손을 늘려야 하고, 그 반대라면 아이작의 부인이 된다고?"
"으, 응!"
"그것이 수인이 은혜를 갚는 방식이다. 만약 거부한다면 모욕으로 받아들여질테지. 그렇지?"
"정확해."
아무래도 마리는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녀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수인의 풍습은 인간이 보기에 야만적일 뿐더러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거라 꺼림칙할 수밖에 없다.
마족은 본래 인간이었다가 변화한 거라 문화의 차이가 있을 뿐 상식 면에는 크게 다를 게 없다. 반면 수인은 동물처럼 본능적인 면모가 강하다.
"레오나. 너는 그게 정상적인 문화라고 생각하니? 사람을 일종의 전리품으로 취급한다는 풍습이?"
"적어도 우리 수인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문화야. 남의 문화를 함부로 폄훼하지 말았으면 해."
수인이라는 것에 자존심이 높았던 레오나가 곧바로 반박했다. 언짢다는 표정은 물론이고 말 속에 가시가 돋혀있다.
마리도 본인의 실언을 자각했는지 곧바로 사과했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실수를 한 모양이다.
"미안해. 그렇지만 어이가 없어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당당하게 셋째 부인이 되겠다는 소리는 조금... 그렇지 않아?"
"뭐가 이상해? 난 하나도 안 이상한데."
"아니. 그러니까... 어우..."
마리가 머리를 감싸며 끙끙 앓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설득할 자신이 없다. 현재 그녀의 심정이 딱 이럴 것이다.
세실리는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레오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특유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오나. 수인의 문화가 그런 건 존중할 수 있어. 하지만 인간의 문화 또한 존중했으면 해. 다짜고짜 셋째 부인이 되겠다는 건 인간이 보기에 다소 꺼려지는 일이거든."
"그러는 공주님은 아이작의 둘째 부인이 되었잖아? 비슷한 거 아냐?"
"나는 아이작을 사랑하고, 아이작 또한 나를 사랑하니까 가능한 일이지. 너는 아이작을 사랑하니?"
"수컷으로서 마음에 들어. 암컷을 그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고 독차지하겠다는 포부가 정말 마음에 들거든."
"... ..."
이번에는 세실리가 할 말이 없어질 차례였다. 수인답다면 수인다운 발언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이대로 진행되다간은 결국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나는 어색한 기류가 내려앉자 조심스러운 투로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 레오나의 대족장 처우에 대한 것도 해결해야 되니까. 일단 너희들에게 이런 상황이 있다는 것만 알려주고 싶을 뿐이거든."
"그래. 알려주길 잘했네. 만약 알려주지 않았다면 다른 여자랑 어울리지 못 하게 널 쥐어짜버렸을테니까."
"나도 동감."
사나운 개마냥 으르렁거리는 마리와 고양이처럼 도도하게 구는 세실리. 그 속에 담겨있는 무시무시한 발언은 내 허벅지를 오므리기 충분했다.
다행히 헤어지겠다는 말은 없는 걸 보아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다. 물론 후폭풍은 전부 감당해야겠지만.
내가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에 부르르 떠는 동안, 낑낑 앓던 마리가 고개를 퍼뜩 들며 해결책을 내놓았다.
"좋아. 레오나의 이야기는 잘 알겠어. 대족장이 되는 건 싫다고 했지?"
"응. 싫어."
"나도 동감이야. 나 같아도 씨앗 주머니가 되는 건 한사코 사양이거든. 그건 같은 여자로서 동감해줄 수 있어. 하지만 아이작의 부인이 되는 건 차차 고려해보자. 수인의 문화를 존중하되, 너 또한 인간의 문화를 자세히 알아야 할테니까. 알겠지?"
"음... 알았어. 시간은 많으니까."
"대충 해결된 것 같네. 그리고 아이작."
"으, 응?"
마리는 나를 부르더니 이글이글 불타는 푸른색 눈동자로 쳐다봤다. 내가 그 눈빛에 압도되어 가만히 있을 때였다.
"아이작?"
옆에서 세실리가 고혹적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그에 고개를 돌리니 색기가 가득한 붉은색 눈동자가 시야에 잡혔다.
각기 다른 두 쌍의 눈동자들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고 있다. 과연 누가 이 시선을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하는 동안, 마리와 세실리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오늘 딴 여자 생각 못 하게 해줄게."
"한 눈 파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잘 알았어."
그와 동시에 마리는 내 허벅지에 손을 넌지시 올리고, 세실리는 내 팔을 살포시 감싸안았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상황은 좋게 좋게 해결되었다만, 아무래도 내 허리를 희생해야 할 것 같다.
'...신성력을 받아놓아서 다행이다.'
안 그러면 내일 일어나지 못 했겠지. 내가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암사자가 둘이네."
앞에서 레오나가 감탄 아닌 감탄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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