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 16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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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레오나의 대답을 듣고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며칠 전에는 케이트가 씨앗을 달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레오나다.
특히 레오나는 지난번 마리가 보는 앞에서 당당히 내 아내가 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상식 차이로 발생한 해프닝이었으나 지금은 약간 다르다.
레오나는 어쩌면 대족장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은혜를 갚기 위해 내 아이를 낳을 거라고 한다.
이것도 수인의 문화인 것일까. 풍토라고 직접 언급했으니 반쯤 확실하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지난번에는 내 부인이 되겠다는 소리를 하더니."
나는 입에서 주르륵 흘러내린 커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아 어안이 벙벙하다.
그리고 레오나는 내 질문에 어색하게 웃으며 뒷통수를 긁적였다.
본인이 직접 말하긴 했으나 영 머쓱하긴 머쓱한 모양이다.
"강조하지만 이건 내가 대족장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야. 우리 수인은 대족장의 후손, 그러니까 사자의 후손을 낳는 걸 최고의 보답이라 여기고 있어. 개인적인 은혜를 입었거나 나라에 큰 도움이 되었다면 사자의 피를 가질 수 있는 영광을 하사하는 거지."
"만약 성별이 같다면?"
"대족장의 가족 또는 친척에게 부탁하거나, 그 반대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먼 훗날 자기 자식을 주는 경우도 있어. 어쨌거나 대족장의 피가 흐르는 후손만 낳으면 되니까."
"와..."
대족장의 후손을 낳는 걸 영광으로 여긴다니. 실로 야만적이면서 수인다운 풍토다.
괜히 마리가 보는 앞에서 내 부인이 되겠다고 당당히 말한 게 아니었다. 저런 문화가 베이스로 깔려있으니 상식 차이가 날 수밖에.
나는 감탄만 나오는 수인의 문화에 헛웃음을 흘렸다가 레오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본인이 말하고도 난감한지 볼을 긁적이고 있다.
"...수인은 보상을 거부하면 모욕으로 여긴다고 했지?"
"응."
"그럼 네가 대족장이 되면 빼도박도 못 하게 결혼해야 된다는 거야?"
레오나는 내 질문에 시선을 위로 두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결혼은 네가 원한다면 하고, 아니라면 안 해도 돼. 후손만 낳으면 그만이거든."
"아이는 누가 키워?"
"네가 키울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키울 수도 있지. 네가 원한다면 아이만 낳고 모른 척 해도 돼. 인간의 문화와 수인의 문화는 다르니 그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
"... ..."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레오나에게서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살짝 민망하다는 느낌은 있어도 부끄럽다는 반응은 거의 없다.
지난번에 내 아내가 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을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그녀는 수인답게 본인을 '상'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상식 차이로 발생하는 괴리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대족장이 되면 그녀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아야 된다. 이건 그렇다 쳐도 만약 레오나가 대족장이 되지 않는다면?
설마 대족장이 '상'으로 또 레오나를 선물하는 게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황급히 질문했다.
"자, 잠깐만. 이건 네가 대족장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고 그 반대라면?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족장의 자리에 올라도 마찬가지야?"
"아마도? 대족장이 딸을 낳는다면 너에게 주겠지? 기다리기 힘들다면 아마 나를 보낼 수도 있고. 어쨌거나 사자의 피가 흐르면 그만이니까."
"오. 세상에."
어찌 불길한 예감은 벗어나지 않는 것인가. 나는 단지 전생의 지식을 빌려 조언을 해주었을 뿐인데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야만적인 풍토가 잔존하기에 저런 문화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제 3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지, 직접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힘들다.
'이걸 마리랑 세실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착잡함에 두 손을 얼굴에 파묻었다. 안 그래도 아델리아와의 관계도 복잡한데 여기에 레오나까지 추가하게 생겼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나에게 애정을 표하는 건 솔직히 남자로서 행복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걸 세실리를 받아들이고 나서 여실히 깨달았다.
마리와 세실리는 다행히 서로 사이가 좋아 양보를 하고 있지만, 여기서 더 늘어나면 어떻게 될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심지어 지금도 밤일 때문에 서로 기싸움을 벌이는 중인데 여기서 상대할 여자가 더 늘어난다?
내가 만화나 소설에서 나올 법한 정력왕도 아니고 상당히 고된 시간을 보낼 게 뻔하다.
"...내가 부인이 되는 게 그렇게 싫은거야?"
캄캄한 미래에 절망하고 있을 쯤, 그런 내 반응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레오나가 투덜거렸다.
그에 나는 얼굴에 파묻은 두 손을 떼어 그녀를 쳐다봤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입술을 위로 삐죽이고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용맹한 사자가 아니라 앙칼진 고양이 같이 귀여운 모습. 나는 삐뚫어진 레오나를 한동안 응시했다.
우선 본론부터 말하자면, 레오나는 예쁘다. 고동색 머리카락과 맹수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를 지닌 미녀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야성미가 돋보이는 미모와 머리 위로 쫑긋 솟아난 두 귀는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평소에는 사납기 그지 없으나 지금처럼 토라진 모습은 반전 매력을 선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가 부인이 되겠다고 자처하는데 거부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현재 내 상황을 엄중히 고려해야 된다.
'세실리도 내 애인이라는 걸 알려줘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내가 제논이라는 걸 무조건 밝혀야 된다. 수인의 문화가 여러모로 내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
일단 삐진 레오나부터 달래주자. 내가 침묵하면 침묵할수록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그런 게 아니라 내 입장 때문에 그래. 그... 사실 내가 애인이 한 명만 있는 게 아니거든."
"아. 그 마족 공주님?"
"엇. 어어, 어떻게?"
진심으로 당황했다. 마리는 몰라도 세실리와 사귀는 건 내 주변 지인을 제외하고 비밀로 하고 있다.
때문에 데이트를 할 때도 조심하고 있으며 최대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밤일 같은 경우는 아카데미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 일일이 헬리움에서 해결하고.
그런데 레오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심지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하기까지.
레오나는 내가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검지 손가락으로 나를 척 가리키며 대답했다.
"냄새."
"냄새?"
"응. 너도 알고 있겠지만 사람마다 고유의 체향이 있어. 너 같은 경우는 라일락 향기고, 마리 그 애는 레몬처럼 상큼한 향기가, 마족 공주님은 복숭아처럼 달달한 향기지. 그리고 가끔 가다가 너한테 레몬 향기가 나기도 하지만 복숭아 향기도 나더라. 몸을 섞지 않는 이상 사람의 체향이 섞이는 건 불가능해."
"... ..."
"그래서 아, 마족 공주도 네 부인이 되고 있구나라고 어림 짐작하고 있었어. 그런데 굳이 내가 주변에게 알릴 필요가 없잖아? 그래서 입 꾹 다물고 있었지. 수인의 후각을 얕보지 말라고?"
레오나가 요놈 요놈 하듯이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동물의 오감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니 수인의 오감도 마찬가지일 터.
기껏 숨긴 게 전부 무의미로 돌아간 것 같아 허망했지만, 그와 동시에 후련한 기분까지 들었다.
나는 벙찐 표정으로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세실리 누나가 어째서 내 애인이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아?"
"하나도 안 궁금한데? 그냥 마음이 맞으면 부인이 되는거지, 뭐. 아니면 너에게 숨겨놓은 힘이 있던가."
그 말에 살짝 흠칫했다. 다만 수인의 사고 방식으로 그쪽에 생각이 쏠린 거지, 짐작조차 못 하고 있다.
"너 은근히 속 편한 성격이구나?"
"수인답다고 해줘."
레오나가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쭉 내밀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종족간의 차이가 여기서 이렇게 나는구나. 나는 그걸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서, 애인이 두 명이라 나까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야? 애인들이 거절할 수도 있으니까?"
"그쪽에 가깝지. 거절하기에도 애매하잖아. 자칫하다가 그쪽에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 말고 다른 보상은 없는거야? 물질적인 보상이라던가."
"그 물질적 보상이 나라고 생각해."
"어우..."
어질어질하다. 수인 특유의 야만적인 풍조가 짙게 남아있어 도저히 일반 상식으로는 상대할 수가 없다.
이대로 마음 놓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레오나가 대족장이 되어도 문제고 그렇지 않아도 문제다.
대충 보아하니 레오나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은... 아니지. 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헤일로 아카데미에서 생활하여 인간의 관습에 대해 배웠다고 한들, 이미 수인의 상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러니 내 부인이 된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은 거겠지.
어떻게 하면 정중히 거절할 수 있을까. 이건 레오나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
내가 미간을 좁히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레오나가 속편한 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부담 가지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야. 그리고 내가 대족장이 되면 아이만 낳고 무시해도 되잖아?"
"수인인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이야. 내 아이는 내가 반드시 책임져야지."
"그럼 내가 대족장이 안 되는 쪽으로 노선을 타야겠네."
"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대족장이 되면 후손을 많이 낳아야 하는 의무가 있어. 그러니 너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도 부마로 받아야 할 거야."
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원래라면 수컷이 여러 암컷을 두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 반대의 상황도 간혹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대족장은 수인들의 왕. 권력 또한 힘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치다.
다시 말해 레오나가 대족장이 된다면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받아들여야 된다는 소리.
솔직히 그건 싫다. 만약 레오나가 완전한 남이었다면 독특한 풍습이라며 넘어갔겠지만 내 아이까지 낳는 상황부터는 아니다.
전생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 욕심인지 모르겠으나 그것만큼은 거부감이 들었다. 애초에 혼외 자식을 만드는 것부터가 꺼림칙했지만.
"...그건 좀 꺼려지는데? 그건 못 바꿔?"
"이건 바꾸기 힘들지. 그래서 내가 대족장이 되기 싫다는 거야. 차라리 네 셋째 부인이 되는 게 훨씬 낫지."
"...레오나."
"응?"
나는 낄낄거리는 레오나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한숨에 무언가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 또한 웃음을 멈추고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미묘한 적막함이 내려앉았을 쯤, 나는 속마음을 천천히 하나 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인간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개인적인 견해 때문일 수도 있어. 난 적어도 서로 간의 애정이 있어야 관계를 맺고, 그 끝이 바로 아이라고 생각해. 적어도 '보상' 내지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아."
"... ..."
"네가 싫은 건 절대 아냐. 그냥 뭐랄까... 스스로를 물건 취급하는 것 같아서 좀 그래. 적어도 나는 내 사람만큼은 아껴주고, 또 소중히 여기고 싶거든. 물건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랑스러운 여자로서."
이미 세실리까지 받아들이고 아델리아에게 고백까지 받은 마당에 무슨 헛소리냐고 코웃음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짓된 애정만큼은 정말 싫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의무가 아니라 진정한 마음이 오고 가야 된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델리아를 은연히 받아들이는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제논임을 모르고 있을 뿐더러 나를 향한 애정만큼은 진심이다.
"그러니 지금은 너를 거부할 수밖에 없을거야. 네가 원하는대로 대족장이 되는 건 막아주겠지만, 내 부인이 되는 건 차차 생각해보는 식으로. 보상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관계를 천천히 다져보자는 거야."
"내가 대족장이 되겠다고 한다면?"
"아이는 없던 걸로 해야지. 그냥 친구 사이로 지내는 게 서로에게 나을 거야."
어찌 보면 이기적이라 할 수 있다. 레오나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는 건 싫어하는데 그녀가 내 부인이 되는 것 또한 밀어내고 있으니.
그냥 딱 한 번 눈 감고 아이만 낳으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임신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수인의 출산률은 인간과 비슷하다고 했으니 가임기 또한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몇 번은 해야 된다.
그동안 정이 안 생길리가 없다.
"사실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어. 너에게 다른 남자가 생기는 건 싫고, 내 부인이 되는 것도 애정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으니까. 지금 내 마음이 이래."
"... ..."
"너는 어떻게 생각해?"
레오나는 어찌어찌 털어놓은 내 속마음을 듣고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입에 떨어지기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만약 그녀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시원하게 욕을 먹는 수준이 아니라 따귀를 맞아도 할 말이 없다. 그만큼 내가 꺼낸 발언은 욕을 한바가지 먹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녀는 현재 스스로를 일종의 물품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가장 꺼리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적어도 스스로를 물품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렇구나."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레오나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나는 속으로 바짝 긴장했다.
과연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게 될까. 막상 말은 했지만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무겁게 닫혀있던 레오나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어."
"...뭐?"
"마음에 든다고."
그리고 상당히 의외의 발언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기에 더해서 특유의 시니컬한 미소를 짓기까지.
내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동안 레오나는 팔짱을 끼더니 혼자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냈다.
"그래. 수컷이라면 응당 욕심이 있어야지. 암컷을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고 독차지하겠다는 그 포부. 정말 마음에 들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나도 알아. 그러니까 네 말은 나에게서 애정을 느끼고 싶다는 거잖아?"
살랑
레오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내더니 바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꼬리를 밖으로 꺼냈다. 사자처럼 끝이 붓처럼 생긴 꼬리를.
내가 살랑거리는 꼬리에 신경이 팔려있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후 내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뒤이어 나와 똑바로 마주하다가 씨익 웃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더니 나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쫑긋 솟아난 귀가 내 시야를 강탈한다.
"만져."
"뭐, 뭐?"
"귀 만지라고. 나한테 애정을 느끼고 싶다며?"
그 말에 쫑긋거리고 있는 두 귀에 시선을 옮겼다. 꼬리는 만지는 건 부부끼리나 가능한 행위고, 귀를 만져주는 건 애정을 허락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애정의 표시로 귀를 만져주게 하는 것이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수인답게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 하다가 레오나가 부추기듯이 귀를 더욱 가깝게 들이밀었다. 결국 얼떨결에 귀가 솟아난 머리를 만질 수밖에 없었다.
스윽
"그르릉."
머리를 만지니 고양이마냥 골골거리기 시작한 레오나. 나는 멍한 얼굴로 내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집중했다.
마리와 세실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는 부드러움만 느껴졌는데, 레오나는 수인이라 그런지 그 감촉이 사뭇 다르다. 부드러움보다는 거칠기 짝이 없다.
하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서 계속 쓰다듬게 된다. 그와 반대로 귀는 말랑말랑하다.
"그릉. 그르릉."
레오나는 골골거리다가 내 손길을 더욱 재촉하는 것처럼 머리를 마구 비벼댔다. 나 또한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덩치 큰 고양이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것만 해도 심경은 복잡했지만 레오나는 아예 내 손길에 취했는지 이보다 더한 행위까지 펼쳤다.
할짝
"읏!"
고양이과 동물이 흔히 하는 행위, 그루밍. 레오나는 쓰다듬던 내 손을 붙잡더니 손바닥을 혀로 핥았다.
갑작스러운 행위에 내가 다급히 손을 빼자 레오나 또한 마찬가지로 당황했는지 급히 사과했다.
"앗. 미, 미안. 나도 모르게..."
"아, 아냐. 괜찮아. 조금 놀랐을 뿐이야."
"그거 다행이네. 어쨌거나 내 애정은 확인했어?"
레오나는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였다. 이때문에 나를 올려다보는 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뒤에서는 꼬리가 살랑살랑거리고, 앞에는 기대감을 품은 듯 쫑긋 솟은 귀가 내 시야를 어지럽힌다. 마지막으로 사납기보다는 귀엽기 짝이 없는 얼굴까지.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에 한 손으로 얼굴을 뒤덮었다. 헌데 그 손이 방금 전 레오나가 혀로 핥은 손이다.
찝찝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상의해볼게."
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