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16권(1)
* * *
케이트의 괴멸적인 성지식을 알고 난 후, 나는 다음 날이 되자마자 곧바로 루미너스의 신전으로 향했다.
애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된 거냐고, 아무리 신이 길만 알려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냐고 하나 하나 세세하게 따졌다.
하마터면 케이트를 향한 인식이 작살날 뻔한 것도 있을 뿐더러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지식 이정도인 건 문제가 있다.
여태까지 그런 적은 없다만 음험한 계획을 지닌 사람이 케이트에게 마수를 뻗친다면 큰 사고가 발생했을테니.
그리고 루미너스의 대답은 할 말을 잃기에 충분했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란다. 교육은 내가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니? 신이라 해도 전지전능하진 않단다.]
'그럼 이건 모두 순전히 우연이라는 건가요? 은총을 내려준 것 치고는 거의 방치 수준인데...'
[방치라니. 너무하는구나. 내가 그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 물론 성교육을 비롯한 다른 교육은 교단에게 맡겼지만...]
본인에게도 약간의 책임이 있는 건 알고 있는지 루미너스는 다소 소심한 태도로 대꾸했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신이다. 비단 루미너스뿐만 아니라 모라도 마찬가지.
하는 수없이 케이트에 관한 일은 천천히 해결하겠다고 답변을 듣고 나서야 해프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 힘들면 네가 직접 가르쳐 주겠니?]
'큰일날 소리하지 마세요.'
끝에 식겁할만한 소리를 듣긴 했다만. 그래도 완전히 거부한 건 아니라 또 씨앗 타령을 할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예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케이트의 막막한 성지식을 알고 나서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려고 했으니.
당장은 친하지 않은데다가 각자 할 일이 있었기에 뒤로 미룬 참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이후로 기숙사로 돌아오고, 나는 집필을 하다가 잠시 멈추며 케이트에 대해 떠올렸다.
원래 변태 또는 치녀 말고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지만 진실을 알게 된 지금은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잘못 배운 건 아예 안 배운 것보다 못 하다고, 교단에서 어떻게 가르쳤는지 몰라도 성지식이 처참한 수준이다.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전생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중국의 한 부부가 아이가 생기지 않아 의사에게 상담했더니 놀랍게도 성관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문명과 교육이 발달한 전생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 세상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물론 이건 루미너스 교단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게 맞다. 은총까지 하사받은 케이트인데 제대로 된 지식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순수함을 유지시키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마땅히 교육자가 없었는지 모르겠다만 여러모로 가관이지 않을 수 없다.
'친구가 없는 것도 한 몫 했겠지.'
신에게 은총까지 받은 케이트와 '감히' 친구가 될 용기있는 자가 있었을까.
만약 친구가 있었다면 케이트의 이상한 점을 알아차려 제대로 된 성지식을 알려줬을텐데.
나는 케이트에 대한 인식이 차차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가 상념을 털어버리고는 집필에 집중했다.
문학생이 3배 가까이 증가하고 체리와의 상담도 해야 하는 탓에 집필 시간이 줄어들었다만 벌써 3분의 2정도는 채운 상태다. 문제는...
'...너무 많이 썼나?'
나는 두툼하게 쌓여버린 원고를 보며 콧등을 긁적거렸다. 말이 3분의 2지, 이미 한 권을 다 쓴 거나 다름없는 분량이다.
원래는 2권씩 나누어서 쓸까 생각했지만 그냥 내키는대로 쓰다보니 어느새 원고가 한가득 쌓여버렸다. 이대로 나누기에도 애매하여 그냥 생각없이 집필했다.
'많으면 좋은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버지에게서 선물받은 마법필로 집필을 재개했다. 16권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15권에서 사탄이 대족장의 목을 따버린 후로, 말 그대로 혼란에 뒤덮힌 수인의 나라 히크톤. 그 속에서 두 부류가 서로 갑론을박을 펼쳤다.
무력이 가장 강한 자가 대족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들과,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 대족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들.
대족장이 되어도 문제인 것이, 사탄을 꺾어야 진정한 대족장을 인정하겠다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홀름강을 펼쳐야 하는 상황.
하지만 사탄의 무력은 전대 대족장마저 농락할 정도의 강자. 말만 그럴 듯하지 선듯 자기가 대족장이 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카인드가 정당성을 지니고 대족장이 되기 위해서는...'
예정대로 사탄을 꺾어야 된다. 그러나 홀름강을 치룬 사람에게 다시 신청하기 위해서는 1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 1년동안 카인드는 어떻게든 사탄을 무너뜨리기 위해 훈련을 하지만, 태생적으로 유약한 신체를 타고난지라 어림도 없는 수준.
오죽하면 곁에서 지켜보던 제논이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제안할 정도다. 어차피 사탄은 자신이 쓰러뜨릴테니 그냥 편히 쉬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인드는 그럴 수 없다며, 반드시 홀름강으로 꺾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지게 된다.
'여기서 사탄의 상세한 과거도 알려주는 거지.'
15권에서는 사탄이 단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히크톤으로부터 추방당했다는 말만 나왔다. 16권에서는 카인드의 입을 통해 좀 더 면밀하게 밝혀진다.
원래는 자신의 가족과 부족을 끔찍히 아끼는 이상적인 가장이자 지도자였으나 외부의 공격으로 인해 모든 걸 잃은 남자. 처참하다 못해 비극적인 과거를 지닌 사람.
사탄은 스스로 악마가 된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과 인물들이 그를 악마로 만든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대족장을 향한 복수고.
'근데 차마 동생은 못 죽이지.'
사탄과 카인드는 이복형제이긴 해도 서로를 각별하게 아꼈다. 어릴 때부터 약했던 카인드가 괴롭힘을 당하면 사탄이 나서서 해결하고, 사탄이 모르는 게 있다면 카인드가 전부 알려줬으니.
만약 전대 대족장이 욕심에 눈이 멀지 않았더라면 무력은 사탄이 담당하고 지략은 카인드가 맡았을 것이다. 그만큼 둘의 우애는 두텁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형제가 서로에게 주먹을 겨누는 상황이 되었지만, 사탄은 본인이 악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카인드와의 홀름강에서 항복 선언을 하게 된다.
항복 선언을 하게 된 이후, 곧바로 악마를 배신하고 곧바로 돌격하여 장렬하게 전사한다. 비록 과정은 비참하더라도 그 끝은 수인의 전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원래의 목적이랑 달라지네...'
나는 집필을 하면서 과연 이게 맞나 싶어 고민에 빠졌다. 원래의 목적은 수인도 무력이 아니라 지력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계속 쓰다보니 형제 간의 눈물 나는 우애, 그리고 다소 철학적인 면모가 추가되었다.
물론 스토리 자체는 나쁘지 않고 흡입력은 충분하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가 함축돼 있지 않아서 그렇지.
'그냥 의의만 두자. 지금은 현실이 더 빨리 변하는 중이니까.'
애니머즈로 돌아간 레오나의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았다. 애니머즈의 소식도 마찬가지고.
무엇보다 나는 철학자가 아닐 뿐더러 내가 책을 냈다 하면 알아서 해석해주는 고마운 비평가들이 있다. 그들을 한 번 믿어봐야지.
'그나저나...'
나는 잠깐 마법필을 내려놓은 뒤, 서랍을 열어 하나의 종이 뭉치를 꺼냈다. 지난번 체리가 수정 작업을 거쳐 나에게 전달한 원고지다.
새롭게 작성한 원고였기에 어디 하나 손상된 곳 없이 깔끔했으나 수정 작업만 거쳤을 뿐, 안에 담긴 내용은 전과 똑같다.
그녀의 꿈을 응원해주기 위해 16권과 동시에 출판사로 발송할 예정이지만 정말로 괜찮은지 의문이 든다.
'일단 확실히 재미있어.'
체리가 쓴 로맨스 판타지, '붉은 노을을 다시 한 번'은 정말 재미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미래에 다사다난한 여주인공이 과거로 돌아와 역경을 헤쳐나간다는,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줄거리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에게 '회귀'라는 개념이 희박하니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문제는 문맥과 문법이 나와 정말 비슷하다는 것.
듣자하니 어떻게든 나와 비슷하게 쓰기 위하여 제논 일대기를 필사했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나도 전생에서 평소 즐겨있던 소설과 비슷하게 쓰다가 시간이 흘러 나만의 글을 갖게 되었으니.
자칫하다가 이 소설도 그런 쪽으로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원래 악플 같은 건 한 두 개만 받아도 마음에 큰 상처가 되는 법이다.
무엇보다 체리는 현재 정신 건강이 심각하다고 할만큼 좋지 않으니 비판 하나 하나에 치명적이다. 신문에 실린 비판을 보고 불안 증세를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욕을 먹어도 내가 먹고 싶다만...'
체리는 싹을 틔기도 전에 발로 무참히 짓밟힌 적이 있다. 이번에는 싹을 틔우다 못해 만개할 때까지 내가 어떻게든 보호해줘야 된다.
그녀의 가문에서 알아차리지 못 하도록 필명을 사용하긴 하겠다만 조심하는 건 물론이고 건덕지조차 남기지 않는 것이 이롭다.
'제자라 하기에도 힘들고...'
만약 체리가 내 제자라고 한다면 당장은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정체를 밝히고 난 이후부터 꼬일 수도 있다.
안 그래도 회귀물을 쓴 사람이 제논의 제자라고 한다? 진짜 회귀자라 낙점 지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녀를 내 제자라 하는 건 묻어두는 편이 낫다.
'우선 본인의 의견부터 물어봐야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주말이어서 수업도 없고 체리와 따로 약속도 잡지 않아 만나는 건 다음 주다.
지금은 16권의 남은 부분을 모두 완성하고 다음 스토리를 구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17권은 수인 파트도 끝났으니 제논보다는 진과 릴리 쪽으로 넘어가야지. 식탐과 만나서 출생의 비밀을 듣는 식으로.'
그리하여 16권의 집필을 모두 끝낸 것도 잠시, 나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에 다른 사람에게도 체리를 소개시켜줄까?'
마냥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지금처럼 몰래 만나는 건 이상하니 차라리 그들에게 체리의 존재를 밝히는 것이 현명하다.
체리도 동성 친구와 만나면서 불안정한 정신 상태가 어느 정도 완화되겠지. 수업에서 볼 때마다 그녀는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혼자 외롭게 앉는 편이었다.
그녀의 외모와 몸매에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워낙 뿜어내는 분위기가 우울한지라 금방 떨어져 나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차차 나아질 거라고 믿고 있다.
*****
주말이 흐르고 다시 돌아온 주중. 나는 주말동안 끝맺은 16권의 원고를 저택으로 발송했다.
다만 체리의 소설은 아직 결정하지 못해 그대로 놔둔 상황. 생각없이 저지르는 것보다는 체리의 의견을 듣는나서 결정할 계획이다.
참고로 내가 엘레나의 연구소에 있으면 언제나 체리가 방문한다. 덕분에 직접 찾아가는 일 없이 체리와 단 둘이 카페에 향하여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체리.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가 정말로 원한다면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줄 수 있어. 하지만 수많은 비판과 마주하게 될 거야. 나는 네가 걱정되는 마음에..."
"괜찮아요."
"내가 방패가 되어줄 수도..."
"괜찮아요."
"...정말로?"
"네."
주말동안 홀로 끙끙 앓으며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체리는 비판을 받아도 괜찮다고, 굳이 방패막이가 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우울한 표정과 어둠이 짙게 깔린 눈빛은 여전했지만, 입꼬리만큼은 올라가 있어 왠지 음침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저걸 기분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여전히 우울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전에 아이작 조교님."
"응?"
"제논 일대기 16권은 언제 발매할 생각이세요?"
"이미 보냈는데?"
"그러시구나."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체리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꼬리를 올였다. 이어서 특유의 음울하면서 힘 빠진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럼 보름 후에 보내줄 수 있나요?"
"나야 상관없지. 그런데 왜 보름이야?"
"아이작 님과 같이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어... 그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래서, 필명은 뭘로 하고 싶어? 가급적으면 분홍색과 거리가 먼 걸로 하자.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로즈베리 가문에서 나왔다고 의심할 수도 있거든."
"아. 필명은 미리 준비했어요."
"뭘로?"
내 물음에 체리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메리."
이윽고 그녀가 지은 미소는.
"메리로 해주세요."
음험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미소는 조금 무서웠지만 메리라는 필명을 쓰는 건 납득이 갔으니.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저택에서 보내는 원고이며 제논과 메리는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출판사 쪽에서 연관성을 찾아낼 수도 있으니 잘 관리해주겠지.
"알았어. 그럼 보내는 걸로 할게. 이런 말하기에는 미안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아. 내 눈에는 재미있지만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견해니까."
"상관없어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그래?"
"네."
왠지 신격화하는 듯한 발언인데. 하기야 꿈을 짓밟혔다가 동앗줄을 겨우겨우 붙잡은 셈이니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아, 그리고 이거..."
"응?"
체리가 부끄러워하며 뭔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물통이다.
이에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을 때, 그녀가 쑥쓰러워하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번에... 밥 대신 더 좋은 거 준다고..."
"아. 그거?"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을 도와준 답례로 밥 대신 더 좋은 걸로 주겠다고.
솔직히 말해서 까먹고 있었으나 체리는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다.
'분명히 벛꽃향이 난다고 했던가?'
나는 고개를 아래로 푹 숙이고 있는 체리에게 시선을 두었다. 부끄러움으로 인해 두 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워넣어 풍만한 가슴이 더욱 두드러졌다.
대체 뭘로 만들었으면 저리 창피해하는 것일까. 평소 우울한 기색을 내뿜던 그녀에게 있어서 다소 희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 모습에 의문도 잠시, 나는 물통의 뚜껑을 따며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런데 뚜껑을 따자마자 진한 벛꽃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내 몸에서도 진한 라일락 향기가 나오긴 하지만 이건 뭐랄까... 진득함? 아니면 끈적함?
"이건 뭐야? 향수 같은 거니?"
"...아뇨."
"그럼?"
"마셔도 되는 거예요..."
체리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설명했다. 얼굴이 터질듯이 빨개진 걸 보면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래도 선물은 선물이니 감사히 받아야겠지. 동업자이자 귀여운(?) 후배에게 받았으니 그녀가 원하는대로 사용할 예정이다.
"고마워. 그나저나 마셔도 되는 거라고?"
"네에... 마셔도 되고 조미료처럼 써도 돼요..."
"아아. 소스 같은 거구나."
어쩐지 냄새가 진하다 했어. 귀족들 사이에서 이런 류의 소스가 유행한다고 얼핏 들은 것 같다.
그리고 로즈베리 가문은 벛꽃이 상징이라 할만큼 유명한 가문. 당연히 벛꽃향 소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물통에다가 담다니 조금 특이하네. 통째로 줘도 될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지니며 맛만 보기 위해 손가락을 살짝 담구었다. 내가 손가락을 담구자 체리가 떨구었던 고개를 퍼뜩 들어올렸다.
이윽고 끈적함이 감도는 흰색 소스(?)를 바라보다가 곧바로 입에 넣었다. 입에 넣자 적당한 짠맛과 동시에 진한 벛꽃향이 입 안에 맴돌았다.
"아. 아아..."
내가 소스를 입에 넣자 체리의 입에서 이유 모를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내려갔던 입꼬리가 올라가며 분홍빛 눈동자에 기쁨과 희열이 새겨졌다.
그렇게도 기쁜 걸까. 나는 강한 벛꽃향이 입 안에 맴돌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래도 적당히 희석해야 할 것 같다.
"마, 맛있어요?"
"응. 맛있네. 향이 좀 강한 것 빼고는."
내 솔직담백한 대답에 체리는.
"흐히."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왜 저러는 거지.
나는 의아함도 잠시, 물통의 소스를 한 번 더 찍어먹었다.
'근데 왜 짠맛이 나는 걸까.'
묘하게 단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