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전통(3)
* * *
레오나가 당당히 내 부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탓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만약 나 혼자 있다면 모를까, 옆에 마리도 있어서 꽤나 난감한 상황이다.
레오나도 뭐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는지 귀가 아래로 추욱 쳐지며 눈치를 살금살금 보기 시작했다. 나는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황당 반 당황 반의 표정을 짓고 있던 마리가 조용히 레오나를 불렀다.
"...레오나."
"응? 왜?"
"내가 살짝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나랑 아이작이 서로 사귀고 있는 거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런데 내 앞에서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아?"
조곤조곤하게 말했으나 어처구니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기야 마리 입장에서는 나를 빼앗아가겠다는 거나 다름없을테니.
레오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금안을 몇 번 깜빡였다가 전과 다르게 소심하디 소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간한테는 이상한 거야? 인간도 상으로 자기 딸을 주는 경우가 있고 여러 부인을 거느리기도 하잖아. 그래서 말한 건데..."
"콜록! 종족 사이에... 콜록! 상식 차이가 있으니까. 콜록. 내가 제대로 설명해줄게."
아무래도 여태까지 배운 걸 이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나는 사레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하나 하나 제대로 가르쳐줬다.
레오나가 언급한 것처럼 자기 자식을 상으로 주는 건 아주 먼 과거에나 자행되던 문화다. 전쟁에 큰 공을 세운 전사에게 상으로 자기 자식을 주는 상황은 흔하다.
그리고 이건 현재도 비슷하다. 대신 '정략 결혼'이라는 그늘에 가려졌을 뿐. 상으로 준다는 개념은 비슷하나 확실하게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 꼭 상으로 자기 자식을 줄 필요가 없는 거구나. 상으로 다른 걸 줘도 된다고?"
"응. 그리고 네가 말한 것처럼 상도 상이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편이야. 수인은 독립심이 강하다고 했지? 인간은 유대 관계를 중요시 여겨서 결혼해도 가족으로 여기거든. 정략 결혼이 생긴 것도 이것 때문이야."
"그렇구나. 이제야 알았어."
최약체인 인간은 예로부터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었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와 문명을 세웠다. 그 독특한 유대 관계로 인해 정략 결혼이라는 독특한 풍습까지 낳았다.
반대로 수인은 독립심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다면 거의 남처럼 대하게 된다.
물론 수인에게 가족 간의 정이 없다는 게 아니고, 누군가 자기 가족을 건드리면 불 같이 화를 낸다. 이건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
남처럼 대한다는 것도 간섭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지,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이 들어준다.
레오나가 말한 '상'의 개념도 정치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이 말 그대로 자기 자식을 일종의 상처럼 준다는 개념이다.
"그럼 일부다처제는? 인간도 수인처럼 수컷이 여러 암컷들을 거느리는 경우가 있잖아. 이것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야?"
"...응. 이때문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꽤 골치 아파져. 치정 싸움은 기본이고 자기 자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흔하지. 너희 수인은 어때?"
"우리는 당연히 수컷에게 복종하지. 수컷이 여러 암컷을 거느리고 있다는 건 수컷이 그만큼 강인하고 훌륭한 씨앗을 가졌다는 이야기니까. 당장 우리 아버지도 부인이 5명이나 있는 걸?"
레오나는 남은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수인의 생태에 대해 알려줬다. 역시 동물을 베이스로 한 수인답게 풍습조차 동물과 유사하다.
나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그녀에게 질문을 걸었다.
"그럼 암컷이 여러 수컷을 거느리는 경우도 있어?"
"거의 없어. 강한 암컷이 나오면 그보다 더 강한 수컷이 암컷을 꺾고 부인으로 받아들이니까. 지극히 드문 확률로 강한 암컷이 여러 수컷을 데려오긴 하지만."
"... ..."
진정한 의미로 동물의 왕국이구나. 새삼 수인을 야만인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럼 다른 상을 줘도 상관없겠네?"
"응. 상관없지. 뭐 생각해둔 거라도 있어?"
"으음..."
오도독 오독
이제는 티본 스테이크의 뼈까지 잘근잘근 씹어먹는 레오나. 그녀는 시선을 위로 올리며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방긋 웃으며 활기차게 답했다.
"없어!"
"... ..."
"... ..."
심각할 정도의 당당함에 적막감이 내려앉는다. 너무 밝게 대답한 탓에 순간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
뒤이어 레오나는 과자처럼 씹어먹던 뼈를 꿀꺽 삼키더니 우리 둘을 둘러보더니 쓰게 웃었다.
"...정말로 없어. 대족장의 딸이라고 해도 셋째 부인의 딸이라 가진 건 몸밖에 없거든."
"... ..."
"그, 그래도 네가 알려준 지혜를 이용해서 애니머즈를 변화시키면 꼭 내가 아니더라도 보상을 주긴 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말하면 말할수록 레오나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간다. 귀까지 처진 걸 보아하니 본인도 확신이 서지 않는 모습이다.
나는 그 반응을 보고 웃어야 할지 한숨을 쉬어야 할지 고민했다. 언제나 시니컬하던 레오나와 비교했을 때 그 차이가 심했으니.
"...보상은 천천히 생각해도 돼. 일단 애니머즈로 돌아갈 생각이긴 하지?"
"으, 응! 일단 정리부터 하고 돌아가야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내 목소리를 들어주긴 할 거야."
"알았어. 더 궁금한 건 없어?"
"궁금한 거라... 네 몸에 나던 냄새가 달라진 것 정도? 향수는 아니고 자연적인 꽃향기 같은데?"
"신성력을 좀 많이 받아서 그래."
이후로 별 시덥잖은 대화를 나눴다. 중간중간 마리가 수인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고, 레오나도 뼈를 오독오독 씹으면서 충실히 대답해줬다.
"레오나. 혹시 괜찮다면 귀 좀 보여줄 수 있어?"
"응? 이미 보여주고 있잖아."
"아. 그 귀 말고. 인간들의 귀가 있는 부분. 머리로 가려져 있어서 잘 안 보이거든."
"아무것도 없는데 굳이 원한다면야..."
마리의 물음에 레오나는 대수롭지 않게 머리를 들어 보여줬다. 확실히 수인이라 그런지 귀가 있어야 할 부분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마리는 그걸 보며 신기하다는 눈빛을 지었다가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꼬리는? 꼬리도 보여줄 수 있어?"
"부부 아니랄까봐 호기심이 강한 것도 똑같구나. 자, 여기."
살랑
마지막으로 치마가 아닌 교복 바지로 감추고 있던 꼬리까지 보여줬다. 사자 수인이라 그런지 꼬리도 사자처럼 끝 부분이 붓처럼 생겼다.
나 또한 레오나의 꼬리를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살랑살랑거리는 모습이 잡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꼬리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짜잔."
"우와."
레오나가 꼬리로 하트 모양을 만들자 옆에서 마리가 탄성을 질렀다.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아이의 표정이다.
이에 레오나가 왠지 모를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쯤, 마리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호, 혹시 만져봐도 될까?"
"절~대 안 돼. 꼬리는 수인에게 있어서 예민한 부분이거든. 꼬리를 만지는 건 부부끼리나 가능한 일이야."
"어, 뭐야? 그런 게 있었어?"
덕분에 수인의 문화에 대해 한 가지 더 알게 됐다. 그렇게 한참동안 놀다가 레오나가 꼬리를 바지 안에 넣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마리가 조금 아쉬워하긴 했으나 계속 요구하는 건 실례였기에 말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이제 슬슬 일어나자. 레오나 너도 다 먹었... 구나."
"...따로 설거지 할 필요는 없겠네."
마리의 말마따나 레오나가 처리한 스테이크 그릇은 소스 하나 묻어있지 않고 깨끗했다. 종업원이 저걸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레오나는 우리의 반응을 보고 머쓱했는지 베시시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매번 이리 받아먹기만 해서 미안하네. 누누이 말하고 있지만 보상은 꼭 할게."
"그래. 아까처럼 부인이 되겠다니 그런 소리는 가급적이면 하지 마."
내 당부에 그녀는 약간 조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전에 하나 알려줄 게 있어."
"뭔데?"
"우리 수인은 무언가를 받으면 무조건 상대방에게 베풀어야 하는 문화가 있거든. 설령 네가 거부해도 애니머즈 쪽에서 어떻게든 포상을 줄 거야. 만약 거부하면 심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거든."
"그냥 네가 말한 거라고 하면 되잖아.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얻은 지혜라고 해."
"절대 안 돼. 가족 사이에 거짓말은 수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죄악 중 하나야. 네가 알려준 지혜라는 건 무조건 밝혀야 돼."
"음..."
그런 문화가 있다면 어쩔 수 없겠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말했다.
"이상한 거라도 괜찮아. 그러니까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편한대로 해."
"...고마워. 이 은혜는 꼭 잊지 않을게."
"은혜는 무슨. 아무튼 일이 잘 해결되길 바랄게."
이건 진심이다. 평소 친하지 않았던 나에게 부탁을 한 걸 보면 그녀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인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식당 밖으로 나와 헤어지기 직전, 레오나가 나를 불렀다.
"아이작."
평소 야, 너, 라고 부를 때와 달리 내 이름으로.
나는 약간 당황스러운 심정으로 레오나를 바라봤다.
"응?"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지? 호부견자라고. 그 말에 대해서 정중히 사과할게."
레오나가 그리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나는 그걸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고 보니 내 아버지에 대해 듣고 레오나가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어서 화를 내진 않았다만 그녀에게는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뒤이어 숙였던 고개를 든 그녀는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사자 밑에서는 사자가 태어나는 법이지. 무력이 강하다고 해서 힘까지 강한 건 아니니까. 그렇지?"
"뭐... 그런 셈이지."
"왕은 지혜로워야 된다는 거, 꼭 새겨들을게. 비록 왕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 왕을 지혜롭게 만들면 그만이니까."
본인 나름대로 깨달은 게 있던 모양이다.
레오나는 다시 한 번 정중하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 뒤, 밝게 웃으며 외쳤다.
"그럼 즐겁게 지내라! 나 먼저 가볼게!"
그리고 도망치듯이 후다닥 달려간다.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레오나를 멀거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공교롭게도 마리와 딱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다.
우리 둘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다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갈까?"
"응. 그러자."
마리와의 데이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레오나가 애니머즈로 돌아가고 바로 다음 날.
"...그래서 누구라고요?"
"루미너스를 모시는 신자, 케이트 루이스 안젤리카라고 합니다."
추기경이 나에게 찾아왔다. 그녀는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대뜸 물었다.
"루미너스 님을 위해 당신의 아이를 가져도 되겠습니까?"
"이런미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