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00화 (201/763)

〈 200화 〉 15권(1)

* * *

제논 일대기 15권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수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알븐하임이 악마들에게 점령당하고, 위기감을 느낀 인류가 연합군을 창설할 계획을 세우게 되는 첫 시작점.

엘프는 이미 고향이 점령당해 뭐가 됐던 간에 악마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중이고, 마족은 악마 때문에 본인들 삶이 기구하게 변했으니 엘프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인간과 드워프도 악마들에게 수많은 피해를 입었을 뿐더러 머지않아 끔찍한 재앙이 도래할 것을 알기에 연합군 창설에 힘을 보태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수인이다.

수인은 호전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그것도 옛 말이고 국가를 세운 이후부터는 많은 나라와 교류했다.

허나 현실처럼 소설 속의 수인도 인간과 앙숙이었던지라 사이가 매우 나쁘다. 그나마 몇몇 인간 나라와는 외교를 맺고 있었지만 불신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인간의 정치적 공작으로 '사탄'이 '분노'가 되어 악마 측으로 넘어가는 단초를 마련했다. 당연히 수인은 인간이 더러운 술수를 부렸다고 더욱 불신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논 일행이 수인의 나라, 히크톤으로 향해 연합군 창설에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수인은 전사 한 명 한 명이 엘프 전사 못지 않은 무력을 지녔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그 결과?

대족장은 별 같잖은 소리하지 말라고, 제논 일행이 연합군의 대표인 이상 자신들은 절대 연합에 소속되지 않는다고 엄포를 내리게 된다.

제논 일행이 어떻게든 설득하기 위해 기를 썼으나 대족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끔히 무시했다. 사탄과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인간을 끝까지 불신했다.

수인은 그 하나 하나가 뛰어난 전사였기에 연합군에 반드시 필요한 상황. 그러나 대족장이 워낙 완강하여 제논 일행이 포기하려던 찰나였다.

대족장의 아들이자 사탄의 배다른 남동생, 카인드가 제논 일행에게 도움을 주기 전까지는.

카인드는 태생적으로 신체 자체가 약했으나 비상한 두뇌를 이용하여 여러 위기를 슬기롭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를 설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육강식의 풍토가 진하게 남아있던 수인들로서는 그런 카인드를 고깝게 볼 수밖에 없다.

왕자라는 신분 때문에 가만히 두고 있는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손을 봤을 거라 대놓고 말할 정도.

그런 멸시 속에서도 카인드는 무력보다 더 강할 수 있는 '지력'을 이용하여 꿋꿋히 살아남았다. 정치를 끔찍히 싫어하는 수인의 특징상 카인드의 존재는 매우 크게 작용했다.

화려한 말빨로 대족장을 구슬리고, 연합군 창설 문제로 방문한 제논 일행에게는 고심하게 만드는 제안을 건넨다. 결국 섣불리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던 제논 일행은 히크톤에서 며칠동안 머물게 된다.

그 며칠 사이에 사탄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대족장에게 홀름강을 신청하게 되지만.

홀름강을 통해 대족장은 굴욕적으로 패배하고, 사탄은 아버지이자 배신자인 대족장의 목을 따버리고 당당하게 본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며 지도자의 부재로 혼란이 펼쳐진 히크톤의 모습을 묘사했다.

[대족장은 정치를 싫어했으나 위협이 되던 본인의 아들은 정치를 이용해 살해했다. 아이러니함의 극치.]

[국가에게 있어서 정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피하기만 하던 자들의 말로.]

[히크톤은 과연 지도자를 누구로 세울 것인가? 풍습대로 무력이 강한 자? 아니면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카인드?]

15권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전반적인 반응은 미적지근한 편이었다.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재미있었으나 평소 인간과 잘 교류하지 않던 수인들과 관련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엘프는 아르웬의 집권 이후로 활발히 교류하여 서로에 대해 아는 것들이 많았으며 마족은 사크란의 스토리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수인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지 알 방도가 전혀 없었기에 단순히 그저 그렇구나~ 라고 받아들이는 식이었다.

흥행과 평가 모두 실패한 건 아니지만, 전과 달리 다소 무난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혹시 애니머즈가 말이 없는 이유가 소설처럼 대족장이 홀름강 신청을 받았기 때문인 건가?]

[정치적으로 혼란기를 겪고 있는 애니머즈. 정말로 그렇기에 말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이왜진이 빠지면 섭섭하다. 사람들은 소설 속에 발생한 사건들처럼 애니머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추측하는 중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지만 여태까지 너~무 조용하던 애니머즈였기에 의심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추측들 속에서 애니머즈는 끝까지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그래서 기분은 어때? 지금까지랑 전혀 다른 반응이잖아."

"너무 좋아서 행복한데?"

나는 이런 반응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신간을 냈다 하면 별의 별 말도 안 되는 소식들이 터져나와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웬일로 평온했으니.

사람은 한 번 자극을 맛본다면 끊을 수없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 오히려 자극을 맛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여갔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다만 나를 예언자 혹은 회귀자라 추측하는 눈길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전보다는 확연히 나아졌다. 덕분에 여유도 찾을 수 있었다.

"신기하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반응이 별로라고 실망했을텐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리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매운맛이 강하면 물이나 우유를 찾고 싶듯이, 나 또한 비슷한 심정이다.

최근들어 자극적인 맛만 보다보니 담백한 맛도 찾고 싶었다. 15권의 반응이 바로 그것이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무난한 휴식기를 가져야 되는 법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11권부터 14권까지 그랬어. 이제 좀 마음을 편히 먹고 싶거든."

"그런 사람이 카이르를 죽였어?"

"... ..."

내 오른편에 앉은 마리가 넌지시 팩트폭력을 가하자 할 말이 없어진다. 솔직히 그건 스토리 전개를 위하여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카이르가 죽어야 엘리샤도 정신적으로 붕괴되고, 그걸 곁에서 지켜본 메리가 제논에게 고백을 할테니.

그덕분에 혼혈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었지만 잘 수습되었으니 문제없다.

"그러게. 사크란 스토리를 꾸민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정말 못 믿겠어."

이번에는 왼편에 앉은 세실리가 특유의 장난기 어린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확실히 생각해보니 5권때부터 매운맛이 나오긴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당시 마족은 거론조차 힘들 정도로 인식이 바닥이었으니 자극적이다 못해 혀가 얼얼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매운맛 전문인 것일까. 내 눈에는 평범해 보여도 이 세상 사람들 시선에는 자극적이었다.

"...뭐. 아무튼 그건 넘어가자.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만끽하고 싶으니까. 그나저나 애니머즈는 왜 말이 없나 싶네."

"이건 내 예상이지만 네 책에 나온 것처럼 정치적으로 혼란기를 겪고 있을 수도 있어. 이때까지 반응이 나오지 않는 건 조금 이상하거든."

리나가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본인의 의견을 입 밖으로 꺼냈다. 신문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애니머즈는 종족전쟁 종전 직후 히크가 직접 나라를 건국했다. 처음에는 작은 마을로 시작되었으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수인들이 모이고 모여 도시를 이루고, 결국에는 국가가 설립되었다.

이후로 300년이 흐른 지금, 반강제적으로 고립되었던 헬리움과 달리 본인들은 철저하게 고립주의로 나서고 있다. 아주 가끔, 가끔 가다가 주변 나라와 무역을 하고 있으나 그것도 소수일 뿐이다.

그렇다고 수인들을 향해 외국으로 나가지 말라는 건 아니다. 당장 아카데미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경비경으로 근무 중인 수인을 보는 게 가능하다.

대신 이들은 대부분 2세대, 그러니까 인간 세상에서 태어난 수인이다. 마족들처럼 애니머즈에서 태어나 자란 수인들은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도 이상함을 느껴서 인력을 급파하고 있어. 정치적으로 혼란이 생긴다는 건 우리에게 기회일 수도 있거든. 알븐하임은 여왕이 잘 수습하는 바람에 기회가 없었지만 애니머즈는 약간 달라."

"만약 틈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당연히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지. 앞으로 인간의 적은 엘프나 마족이 아니라 수인일 가능성이 크니까. 미리미리 힘을 깎아야 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 리나였으나 나는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인간에게 적이 생긴다면 수인이라 판단하고 있었으니.

수인은 300년 전 인간들에게 종족 단위로 학살당한 전적이 있을 뿐더러 한 사람 한 사람의 식사량이 미친듯이 높다. 날렵한 스타일의 레오나조차 티본 스테이크 3개를 가뿐하게 먹어치울 정도다.

그러니 식량 때문이라도 머지 않은 미래에 수인은 인간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때마침 수인도 인간과 비슷한 출산률을 갖고 있어서 인구가 포화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다.

'레오나 그 녀석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나는 리나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레오나를 떠올렸다. 그녀도 제논 일대기를 읽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번 편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조만간 스테이크를 빌미로 따로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겸사겸사 쌓여있던 질문도 하고.

"뭐, 재미없는 정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할게. 그나저나 아이작.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케이트 추기경이 미네르바 제국으로 온다는 소식."

"앗. 그거라면 나도 알아. 아카데미에도 방문한다 하지 않았어?"

처음 듣는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옆의 마리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그녀도 소문을 접한 모양이다.

케이트 추기경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 추기경의 자리에 올랐으며 대심문관이 된 성직자.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 직접 순례길에 올랐다.

나를 찾아서 뭘 하려는지 모르겠다만 일단 성직자이니 쓸데없는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어차피 찾지도 못할테고.

"응.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루미너스 교단에서 너를 발견하면 상황이 정말 골치아파지니까."

"괜찮아. 어차피 나인 걸 모를텐데."

대신 이번 주말에 신전을 방문할 생각이다. 그 이유는 양옆에 앉아있는 두 여자 덕분에.

마리야 뭐, 최근에 자제하고 있다지만 말만 자제하고 있지 여전히 왕성했고 세실리는 한 번 할 때마다 기가 쪽 빨리는 느낌이다.

아델리아와 운동하면서 체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지만 역시 두 명을 상대하는 건 아무리 나라도 힘들다. 루미너스 님의 신성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도 조심해. 루미너스 님이 신탁을 내려줬을지도 모르거든. 특히 너는 머리색이 눈에 띄는 편이니까 위험할 수도 있어."

"새겨들을게."

"그런데 아이작."

"응?"

나는 세실리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그녀와 마주했다. 뒤이어 무언가 마음에 걸린다는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최근에 누가 따라오거나 쳐다보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건 왜?"

"아까 전에도 그렇고 계속 누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거든. 누구인지 예상이 가?"

"음..."

그 질문에 곰곰이 생각한다. 최근들어 누군가 내 뒤를 졸졸졸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착각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세실리가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누가 스토킹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아마 그 시선은 분명...

'...체리. 그 애겠지.'

분홍 머리에 가슴 큰 후배, 체리밖에 없다. 그때 내가 한 번 위로해주고 나서 틈만 나면 엘레나의 연구실로 찾아오는 그녀다.

심지어 수업까지 안 받길래 따끔하게 혼을 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애는 착하니까 뭐...'

아델리아 못지 않은 가정 환경 때문에 망가졌을 뿐, 심성 자체는 착하다. 표현조차 제대로 못할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것이 보여서 지금은 살살 달래주는 중이다.

물론 스토킹은 잘못된 행위다. 조만간 따로 불러내서 이러면 안 된다고 혼낼 계획이다.

"아니. 모르겠는데?"

지금은 모른 척만 하자.

******

그로부터 이틀 후.

[애니머즈. 드디어 입장을 밝히다! 현재 애니머즈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여태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애니머즈에서 본인들의 입장을 밝혔다. 언듯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얘들 진짜 문제 있는 거 맞구나.'

실제로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확실했다. 안 그랬으면 부랴부랴 입장문을 낼리가 없을테니까.

'설마 또?'

제발 이러지 마. 나 좀 쉬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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