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190화 (191/763)

〈 190화 〉 2학년(3)

* * *

원래 1학년 수업은 하나의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진다. 그 한 곳에서 각 과목의 교수가 왔다 갔다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이건 작년처럼 학생의 수가 50명 내외일 때의 이야기고, 이번 년도의 문학 입학생들은 무려 150명이다. 50명씩 분할하면 3개의 반이 나오는 것이며 강의실 또한 3곳이 필요하다.

물론 강의실이 하나밖에 없는 아카데미는 이 세상에 없다. 미네르바 제국도 언젠가 학생의 수가 늘어날 것을 예측하여 미리미리 설계해 놓았다. 덕분에 학생들을 한 곳에 몰아서 수업을 하는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수업 또한 혼란을 빚게 될 염려가 없다. 3반으로 나누어져 있고 반마다 듣는 수업이 따로 있다.

만약 A반의 학생이 B반의 역사 수업을 들으러 온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가산점 같은 건 없을 뿐더러 자기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니까.

시험 또한 정해진 시간에 치러질 예정이라 부정 행위가 나타날 일도 없다. 대신 1년 사이에 학생들 숫자가 3배로 상승하여 구석구석 헛점이 많을 것이다.

당장 어떻게 조치를 취할 수 없으니 일단 해보자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A반은 월요일 오후 1시, B반은 수요일 오후 1시, 마지막으로 C반은 금요일 오후 1시야. 참고로 이건 1학년이고 2학년은 따로 있지."

첫 수업이자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도달한 강의실 건물. 엘레나는 앞으로 수업이 진행될 강의실로 걸어가며 대략적인 일정에 대해 알려줬다.

2학년은 문학생뿐만 아니라 무학생도 함께 진행되기에 다소 빡빡한 일정이라 할 수있다. 2학년 문학생은 반이 하나밖에 없으나 무학생은 무려 3반이나 있다.

일정 하나는 엄청 빡빡하다. 3,4 학년은 다른 역사학 교수가 맡으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제논 일대기를 집필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리라.

시간이 널널할 것으로 생각하여 일찍이 조교가 된 건데 어찌 더 바빠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도 졸업은 무난하게 할 수 있으니 위안으로 삼자.

"근데 2학년부터 조교가 되면 졸업을 더 빨리 할 수 있는 건가요?"

"일단은 그렇지. 교수가 마음에 들면 1년 내에 졸업할 수 있어. 단, 졸업 논문을 작성한다는 가정 하에야. 네 글솜씨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정말로 졸업을 시켜주실 건가요?"

"내 마음에 든다면. 논문의 주제가 흥미롭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아니면 신디랑 같이 해도 되고."

"음..."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엘레나의 시원시원한 성격상 만족스러운 논문을 작성한다면 졸업시켜주긴 할 것이다.

그러나 논문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난 논문을 작성하는 방법을 아직 숙달하지 못 했다. 이건 엘레나의 곁에서 차근차근 배우면 될 터.

겸사겸사 제논 일대기도 집필할테지만 꽤 바쁜 일정을 보낼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혹시 연구실에 있는 서적은 다 읽었니?"

"아뇨. 아직 덜 읽었어요."

엘레나와 이야기하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인가 강의실 문 앞에 도착했다. 1학년 시절 내가 다니던 강의실이 아니라 다른 강의실이다.

겉보기에는 다른 게 하나도 없지만 아직 제대로 된 보수를 하지 않았는지 목재 특유의 냄새가 풍겼다. 그래도 자연의 냄새라 해야 할지 퀴퀴하지 않고 향기로웠다.

이윽고 엘레나가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 또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다소 시끌벅적했던 강의실 내부가 조용해졌다.

'어? 뭐야? 엘프잖아? 엘프 교수도 있었어?'

'그런데 옆의 빨간머리는 누구야? 조교인가?'

'조교인 것 같은데 머리가 엄청 기네. 나보다 더 긴 것 같아.'

고요함 속에 가끔씩 들려오는 수근거림. 전에 느끼지 못 했던 낯선 감정에 왠지 긴장된다. 조교로 활동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당연한 걸지도.

내 가슴이 미약하게 뛰기 시작하는 동안 엘레나는 단상 중앙에 서더니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학생들도 인간이 아닌 엘프가 교수로 등장하자 흥미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엘레나는 안경을 추켜올리더니 깔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신입생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께 역사를 가르칠 엘레나 헤븐싱어 교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신입생 시절에 보여줬던 것처럼 엘레나는 자기소개를 하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학생들은 그 소개에 힘찬 박수로 응대해줬다.

이어서 그녀는 박수 소리가 살짝 잦아질 때 쯤,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빨간머리는 제 조교입니다. 인사해."

"아이작 듀커르 마이샬이라고 합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하자 학생들이 다시 한 번 열렬한 박수로 맞이해줬다. 나는 긴장감에 숨을 몰아쉬었다가 학생들을 둘러봤다.

가지각색의 색깔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리고 각자 개성적인 외모를 지닌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나처럼 빨간 머리가 있는지 싶어 면밀히 훑어봤으나 역시 없다. 마리처럼 새하얀 머리카락도 마찬가지.

하지만 유독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색상이 하나 있었다.

'...분홍색?'

멀리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들어오는 색이 하나 있었으니, 벛꽃처럼 분홍색을 띄고 있는 머리카락이다. 앞사람에 가려져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으나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이 세상에 가발은 있어도 염색은 없다. 그러므로 저 머리카락 색은 나처럼 자연이라는 뜻.

나는 역시 판타지 세상답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학생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괜히 뚫어져라 바라보다간은 애꿎은 의심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여러분께 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하겠어요. 제 수업에서 가산점을 얻는 방법은 간단해요. 제가 꺼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꺼내거나, 아니면 저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하거나. 제가 여러분께 진행할 수업은 역사의 기초와 그 본질이에요."

엘레나는 특유의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학생들에게 앞으로 진행될 수업 내용에 대해 알려줬다. 작년이랑 비슷하면서 다른 내용에 나 또한 귀를 기울였다.

조교인 나를 병풍마냥 가만히 두고 있지만은 않을테니 분명 어떻게든 이용하지 않을까. 반쯤 대학원생 취급을 받는 조교를 강의실까지 데리고 온 걸 보면 어딘가에 써먹긴 할 것이다.

그렇게 엘레나의 설명이 끝나려던 찰나,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여학생이었다.

"교수님. 그럼 아이작 조교님은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는 건가요?"

참으로 당돌한 질문이다. 하긴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당장 나조차 그런 생각을 하는데 보는 사람은 오죽할까.

이에 학생은 물론 나조차도 엘레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엘레나는 학생의 질문을 듣고 나를 한 번 힐긋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절대 아닙니다. 아이작 조교는 꽤나 흥미로운 주제가 나왔을시 여러분과 토론을 하게 될 겁니다. 만약 아이작 조교가 토론에서 지게 되면 여러분께 큰 가산점이 지급될 예정이죠. 물론 그 토론거리를 꺼내는 건 학생 여러분입니다."

"오!"

"... ..."

이런 거였구나. 질문을 한 여학생은 눈을 반짝거렸지만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수업을 날로 먹는 것도 있겠지만 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토론이라는 명목으로 점수를 매길 계획인 모양이다. 화려한 글솜씨로 엘레나의 환심을 샀으나 내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을테니.

"이밖에도 아이작 조교는 시험 감독이나 다양한 잡무를 처리할 예정입니다. 마침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아이작?"

"네."

"내가 설명하는 동안 종이를 좀 배분해줘."

"알겠습니다."

나는 엘레나의 지시에 따라 미리 준비해 두었던 종이를 한 장 한 장 배분해주기 시작했다. 종이라고 해봤자 앞으로의 수업 계획표를 적은 것과 다를 게 없다.

이걸 적느라 내 손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공교롭게도 신디도 출장을 간 탓에 나 혼자 열심히 마법필을 움직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엘레나가 복사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만약 그녀가 인간이었다면 일일이 수작업을 거쳤을 것이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결과가 있다면 원인이 있는 것처럼, 역사도 다른 건 없습니다. 특정 원인으로 인해 거대한 사건이 발발해..."

종이를 배분하는 동안 엘레나의 강의는 이어졌다. 학생들도 그에 집중하면서 내가 종이를 줄 때면 두 손으로 종이를 받았다.

뒤이어 뒷쪽 자리에 앉은 학생들에게 안내 종이를 배분할 때 쯤, 아까 전에 보았던 그 분홍색과 마주하게 되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전부 분홍색이다.

그러나 머리카락 쪽에 시선을 팔린 것도 잠시,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자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름아닌 유독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한 흉부 때문에.

여학생인 건 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마리보다 훨씬, 어쩌면 세실리와 비견되는 사이즈를 보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어찌 교복을 맞춘 것 같은데 옷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 ..."

그런 내 시선을 느꼈을까. 왠지 몰라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여학생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덕분에 그녀의 얼굴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분홍빛 머리카락에 깔맞춘 듯한 벛꽃색 눈동자. 커다란 눈에 어울리는 수수한 외관으로 하여금 인형 같은 이미지를 띄고 있다.

허나 이 모든 걸 덮는 문제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눈.

빈말이 아니라 눈에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마치 죽은 물고기마냥, 한 점의 빛조차 없어서 음침하면서 염세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정말로 살아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아까 말했듯이 이목구비가 인형처럼 아기자기하게 생겼다면, 지금은 말 그대로 생기가 하나도 없는 '인형' 같았다. 사람이 조종하는대로 행동하는 그런 인형.

이대로라면 언젠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까하는, 그런 불길함마저 든다.

"...?"

여학생은 내가 종이를 주지 않고 보기만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도 눈을 깜빡거리지 않아 기괴함을 선사했다.

이에 나는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종이를 조심히 전달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종이를 받지도 않고 내 얼굴만 뚫어져라 응시하는 중이다.

괜스레 무안해지기도 하고 섬뜩한 기분이 들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안 받니?"

"... ..."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제서야 여학생이 종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손을 천천히 뻗어 종이를 받아냈다.

나는 그녀가 종이를 받자 속으로 안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빨간색."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애써 무시하자. 왠지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로즈베리 가문의 특징이...'

개학을 하기 전 마리에게 들었다. 나에게 항상 팬레터를 전달해주는 체리 블라썸 로즈베리, 그녀의 가문은 분홍색이 특징이라고.

마이샬 가문이 빨간색 머리카락, 그리고 마리의 가문 레킬리스가 하얀색 머리카락으로 유명하다면 로즈베리는 분홍색 머리카락이다.

또한 지난번 보았던 팬레터에서 체리는 조만간 아카데미에 입학한다고 밝혔다. 덕분에 조만간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고.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분위기와 한참 떨어져 있다. 팬레터 속의 체리는 활발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생기가 돋보였으니까.

하지만 방금 만났던 그 여학생은 아니다. 음울한 분위기와 더불어 새까맣게 죽어버린 눈동자. 사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형 같다.

'...아니겠지.'

나는 모든 종이를 배분하고 다시 엘레나의 곁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그 여학생에게 시선을 주는 건 잊지 않았다.

그 여학생은 죽어버린 눈으로 나를 정확히 직시하는 중이었다. 진짜로 인형인 것인지 눈을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사뭇 공포감까지 느껴져서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얼굴은 예쁜데 생기가 하나도 없다보니 바라보는 것조차 어렵다.

"...해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역사는 무엇인가요? 대답의 여하에 따라 가산점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이 엘레나의 길고 긴 설명이 끝나고 질문 타임이 이어졌다. 첫 수업이 으레 그렇듯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하나 둘 씩 손을 들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엘레나를 만족시키는 대답도 나왔고, 다소 황당한 대답도 나왔으나 그래도 대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눈치를 보던 평민들도 용기를 내어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허나 그 와중에도 분홍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은 한치의 흔들림없이 나만 보고 있었다. 엘레나도 얼핏 눈치채고 있는 듯했지만 망신을 주지 않기 위해 지적하지는 않았다.

물론, 첫 수업부터 집중하지 않고 멍 때리는 건 참기 힘든 일. 학생들의 대답이 모두 끝나자 엘레나는 헛기침을 하며 다른 주제를 꺼냈다.

"좋은 대답을 해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그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과에 대해 설명... 하기 전, 여러분이 흥미를 가질만한 질문을 하겠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문학생의 숫자는 50명이었고, 현재는 무려 150명이죠. 불과 1년 사이에 문학생들의 숫자가 3배로 증가했어요. 혹시 이유를 아시는 분?"

"... ..."

꽤나 어려운 질문이었는지 선듯 나서는 학생은 없었다. 하기야 나도 듣기 전에는 왜 이렇지? 싶었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엘레나도 이 반응을 예상하고 질문했는지 좌중을 둘러보다가 한 가지 힌트를 제시했다.

"힌트를 드리자면 현재 문화적으로 가장 큰 족적을 남기는 중인 책이 하나 있죠. 그것과 연관 지으면 아주 쉬울 거예요."

"...제논 일대기를 말하는 거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제논 일대기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야?"

힌트를 줘도 웅성거리기만 할 뿐, 용기 있게 손을 드는 학생은 없었다. 나는 학생들이 서로 토론을 하는 동안 아까 그 여학생을 힐긋거렸다.

나를 쳐다보는 건 똑같았지만, 제논 일대기가 언급되어서 그런지 눈동자에 미약하게나마 생기가 돌아온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아주 약한 빛이어서 큰 차이는 없다.

정말로 저 여학생이 체리인 것일까. 괴리감이 너무 심해서 단정짓기가 매우 어려웠다.

"대답이 나오지 않으니 제가 한 명을 지목하겠어요. 우선..."

엘레나는 잠깐 말을 흐리고는 시선을 뒤쪽으로 옮겼다. 아까부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분홍 머리의 여학생에게로.

뒤이어 엘레나는 그 여학생을 똑바로 쳐다보며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거기 분홍 머리 학생?"

"...?"

"한 번 대답해보시겠나요?"

자신이 지목되자 분홍 머리 여학생도 그제야 엘레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분홍 머리 여학생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요?"

분홍 머리의 여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용히 답한다. 나를 빤히 쳐다보느라 본인이 지목된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엘레나도 본능적으로 그녀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다소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 ..."

질문이 이어져도 분홍 머리의 여학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끝까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아 점점 무서워진다.

뒤이어 분홍 머리 여학생은 고개를 약간 돌려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조용히, 활기라고는 하나도 묻어있지 않은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 꺼냈다.

"체리..."

"... ..."

신디가 피곤함에 쩔어 흐물거리는 말투였다면.

"체리 블라썸 로즈베리..."

그녀는 이제 곧 죽을 사람처럼 힘이 하나도 없었다.

* *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