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겨울 방학(2)
* * *
어머니는 첫째 데이브를 21살에 낳으셨고, 그로부터 7년 후인 28살에 나를 낳으셨다. 그리고 여기서 17년이 흘러 현재 나이는 정확히 45세.
평소 관리를 하는데다 태생적으로 동안인 탓에 3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제 곧 50을 바라보는 연세시다. 한 술 더 떠서 아버지는 그녀보다 5살 많은 50살이시다.
전생의 상식으로도, 그리고 이 세상의 상식으로도 아이를 낳기에는 나이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심지어 이 세상은 피임 기술도 잘 발달돼 있어서 늦둥이가 드문 편이다.
단, 이건 귀족들 사이에 한해서지 평민들은 늦둥이가 많은 편이다. 피임 기술은 아직까지 귀족들 사이에서만 잘 퍼져있지, 평민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려 45세의 나이에 늦둥이를 보는 건... 사실상 딸이 아니라 손녀뻘이다. 당장 내가 마리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인데 부모님은 매우 희귀한 케이스다.
당장 앞으로 태어날 내 여동생, 릴리가 나를 아빠라 불러도 다른 사람들은 당연시 여길 거고 오히려 오빠라 부르면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다.
"솔직히 저희도 릴리를 가질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나이도 나이인지라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렇게... 호호. 말하고 나니 살짝 부끄럽네요."
"위험하지 않나요? 인간은 40세 이상만 되도 노산의 위험이 크다고 하던데."
"그건 괜찮아요. 마나를 꾸준히 순환시키면 아이와 산모 모두 안전하거든요. 물론 만약을 대비해서 성직자를 초청하는 게 좋겠죠."
어머니와 세실리, 그리고 나는 현재 응접실에서 다과를 즐기며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 배치도는 살짝 특이했는데, 나와 어머니는 나란히 앉고 세실리 혼자만 맞은편에 앉은 구도였다.
세실리가 손님이니 이런 배치는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어머니도 이미 세실리가 무엇을 허락받으려는지 눈치챈 상태.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나와 세실리를 나란히 앉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 즉, 어머니가 완전히 허락을 내리지 않았다는 뜻. 세실리도 그걸 알고 있는지 겉으로 웃고 있으나 내심 긴장한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안정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효과는 확실하죠."
"그게 물어봐도 될까요?"
"음... 약간 야만적인 방법이라는 것만 알려드릴게요."
"...아하. 뭔지 알 것 같네요. 하긴, 남작께서는 붉은 사자이니 손쉬운 일이었겠네요."
"호호. 우리 그이가 힘이 좀 강하긴 하죠."
"... ..."
전시회가 시작된 날은 6월. 그리고 오늘은 새해가 부쩍 지난 1월 말이다.
전시회가 끝난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대략 계산하면 적어도 6개월인데, 그 시간동안 밤마다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다는 뜻이다.
최근 영지 일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어머니에게도 힘을 쏟았으니 제아무리 붉은 사자여도 기가 쪽 빨리시지 않았을까.
존경합니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만큼 강한 체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주님은 형제가 없으신가요? 지난 번에는 못 들은 것 같아서요."
"외동입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낳으시고 딱히 계획이 없으셨거든요."
"엘프는 듣자하니 밤일을 의식으로 간주한다던데 혹시 마족도 비슷한 이유에서인가요?"
"아뇨. 마족은 그냥 엘프처럼 생리 주기가 매우 길어요. 그리고 대부분 악주기와 겹쳐서 남자 쪽이 좀 힘들죠."
나는 그 대답을 듣고 시선을 스윽 위로 옮겼다. 이제 끄트머리를 제외한다면 세실리의 뿔은 붉은색으로 완전히 채워진 상태다.
조만간 지난 번 전시회처럼 악주기가 찾아온다는 소리. 루미너스도 헬리움으로 갈 때 반드시 피임약을 챙기라 했으니 절묘하게도 시기가 딱 들어맞는다.
만약 내가 약을 챙기지 않고 갔다면, 인간과 마족의 혼혈이 최초로 탄생하지 않았을까. 나로서는 다행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역시 마족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 하나하나가 신기하네요."
"궁금한 게 더 있으시다면 마음껏 물으셔도 돼요."
"그래요? 그러면..."
어머니는 이참에 잘 됐다는 듯이,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아이작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나요?"
"... ..."
속이 꽉 찬 돌직구였다. 분위기는 전과 똑같았지만 질문에 담겨있는 무게는 결코 같지 않았다.
세실리는 어머니의 웃으면서 꺼낸 질문에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가 입매를 일자로 만들었다. 테이블 아래로 가려진 두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 약하게나마 포착되었다.
나 또한 살짝 긴장하며 둘의 대화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끼어들어봤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으니.
물론 세실리가 불리해진다 싶으면 도와줄 생각이다. 세실리를 이미 내 여자로 받아들인 마당에 편까지 들어주지 않으면 서운해할 테니.
"사실 지난 번 전시회 때부터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요.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저택에 방문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것도 일국의 공주님이."
"...알고 계셨군요."
"네. 그뿐만 아니라 세실리 공주님께서 우리 아이작을 바라보던 그 눈빛. 같은 여자인 저는 알 수 있었어요. 사랑에 빠진 여자의 눈이었죠. 따뜻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끈적한 욕망까지."
"... ..."
어머니의 말이 끝나자 세실리의 얼굴이 약간이나마 딱딱해졌다. 그때 당시 악주기로 인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을테니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꺼내도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실리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가만히 앉아 어머니의 말부터 경청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공주님 아실 거예요. 아이작은 이미 마리라는 아이와 약혼했다는 걸."
"네.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와 얘기는 하셨나요?"
"원만하게 해결했습니다."
"흠. 원만하게 해결했다라..."
어머니는 찻잔을 우아하게 내려놓으시고 릴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배를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무언가 골몰하듯, 천장을 올려다 보며 눈을 깜빡거리셨다가 다시 세실리를 쳐다봤다.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조금 궁금하네요."
"네. 사실..."
세실리는 마리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어머니에게도 알려줬다. 전시회 당시 마리와 말다툼을 하다가 꺼냈던 본심과 앞으로의 계획.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세실리는 그때와 달리 매우 긴장하고 있다.
흡사 면접을 보는 듯한 자세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머니에게 심사를 받고 있다 해야 할지.
다행히 어머니는 세실리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점점 밝아지셨다는 것이다.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거 참... 감동스럽네요. 수명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작을 지키겠다니... 그리고 그 후손까지도."
"사랑을 포기해서 후회에 사무친 삶을 살아갈 바에야, 그리워하는 삶을 살 겁니다. 제논 일대기에서도 나온 말이죠."
"네. 저도 알고 있어요. 그 대사 덕분에 이종족 사이의 교제가 더 늘어났고."
"그런데 남작 부인. 그거 아시나요? 그 말, 책이 나오기 전 아이작이 저에게 한 말이라는 걸."
"네?"
세실리의 충격적인 고백에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보셨다. 약간 오해가 있는 듯했지만 그녀에게 한 말은 사실이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한동안 쳐다보시다가 이내 빙긋 웃으며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셨다. 어린 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손길이어서 괜스레 부끄러워진다.
역시 자식이 아무리 성장해도 어머니의 눈에는 사랑스러운 아들로 보이는 것 같다.
"호호. 얘도 참. 공주님이 반한 이유를 이제서야 명확히 알게 되었네요. 그런 말을 하면 그 어떤 여자가 반하지 않겠어요? 그 대사 하나로 교제까지 이어진 이종족들이 대폭 증가했는데."
"저도 처음에 듣고 정말 감동스러웠어요. 그 사람과의 일생이 아픈 후회가 될지, 아니면 그리운 추억이 될지 정할 수 있으니까요."
"크흠..."
어째서 부끄러움은 내 몫이란 말인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헛기침만 토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세실리 공주님의 마음은 잘 알겠어요. 사실 마리 그 애가 허락한 이후부터 제 손에서 떠난 일이에요."
"그럼..."
"하지만 그 전에."
승낙을 받았다고 생각한 세실리가 기뻐하려는 찰나, 어머니가 도중에 말을 끊으셨다.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더니 아래로 스윽 내려 내 볼을 꽉 꼬집으셨다.
살짝 꼬집은 거라면 모를까, 힘을 주면서 꼬집는 탓에 아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악! 어, 어머니?"
"우리 아이작은 좀 혼나야겠네. 배려심이 깊고 친절한 성격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공작가 영애뿐만 아니라 헬리움의 공주라니..."
"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그래서 이 엄마는 더 걱정된단다. 마리 그 애랑은 정식으로 결혼하겠지만 세실리 공주님은? 세실리 공주님 입장도 생각해야지. 설마 첩으로 둘 생각이니?"
"저... 남작 부인. 전 정말 괜찮..."
세실리가 드물게 쩔쩔매며 어머니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아요. 비록 세실리 님은 마리 그 애와 달리 아이작이 제논이라는 걸 눈치채고 반했다지만, 제가 공주님이었어도 그랬을 거예요. 제논은 마족에게 있어서 신께서 내린 구원이나 다름없으니까. 어쩌면 몸과 마음을 바치겠다는 의지까지 있었겠죠. 아닌가요?"
"네, 네... 그... 정확해요."
"그게 더 문제예요. 그런 의지까지 있는데 마리에게만 신경 쓴다? 아이작. 넌 정말 모라 님에게 천벌을 받을 거야. 그러니 세실리 공주님이 외롭지 않도록 신경 써야 된다.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후우..."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길쭉하게 늘어난 내 볼을 툭 놓아주셨다. 얼얼하다 못해 화끈한 느낌에 정신을 쉬이 차리기가 어려웠다.
"그럼... 공주님께서는 제 아들과 정식적으로 약혼을 하시지 않을 건가요?"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헬리움으로 돌아간다면 저희 부모님께도 말씀드릴테니까. 아이작이 제논이라는 걸 알게 되면 수월하게 끝날 거예요."
"다행이네요. 만약 중간에 이 결정을 후회하신다면 언제나 말씀하세요. 저는 겸허히 받아들일테니."
"제 마음은 언제나 변치 않을 거예요. 설령 아이작이 모라 님의 곁으로 돌아가셔도 전 그를 추억하며 살아갈테니."
"마음에 드네요."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세실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셨다. 아무리 동안이어도 미소를 지으면 잔주름이 생기기 마련인데 어머니는 그런 티도 나지 않았다.
이어서 어머니는 한 손으로는 배를 쓰다듬으며 우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좀 더 편해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공주님이 아니라 세실리라고 불러야겠구나. 마리는 아가라고 부르지만 너는 그러긴 힘들겠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시어머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물론이지."
"감사합니다. 시어머님. 아까 제가 말했던 대로 평생 이 영지와 마이샬 가문의 후손들을 지키겠습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단다. 네 행복도 찾아야 하잖니."
"이게 제 행복입니다. 마족을 구원한 은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아이작이 없었다면 전 이곳에 앉지도 못 했을테고, 더 나아가 평생을 헬리움에서만 지냈어야 했겠죠."
열렬한 신봉자 같은 반응에 어머니께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셨는데 세실리가 저럴 때는 말릴 수 없어서 어깨만 으쓱였다.
뭐, 덕분에 어머니도 세실리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명확히 아셨을테니 큰 문제는 없다.
"모든 마족이 너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니?"
"네. 예전 같았으면 마족을 악마로 취급했겠지만, 어머님도 아시다시피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죠. 게다가 진과 릴리의 로맨스가 재발굴되면서 이런 말 또한 생겼거든요."
"무슨 말?"
"마족에게 사랑은 힘든 것이나, 사랑을 결정했다는 건 그 사람을 향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용기를 얻었을 때다. 설령 악마로 변해도 그 사람을 향한 진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리라."
"... ..."
나 저거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어느 한 평론가가 적은 거였는데 제논 일대기 12권이 나온 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혼혈 문제로 인해 묻혔던 걸로 아는데 세실리는 용케 찾았던 모양이다. 아마 릴리스의 과거가 나온다면 저 말이 다시 집중되지 않을까.
좋게 말하면 철학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글거리는 내용이지만,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사람들에게는 인상 깊게 다가올 것이다.
"실제로 마족이 악마로 변하는 경우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을 때나, 이와 비견되는 절망을 겪었을 때죠."
"...그럼 세실리 너도?"
"아이작이 자연사를 한다면 상관없어요.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저 또한 악마가 될 각오가 되어있어요, 어머니."
"네 선택이 그렇다니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걱정되는구나. 만약을 대비해서 아이작에게 호위라도 붙여야 되나?"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지금 당장 호위는 필요없겠지만 내가 제논임을 밝힌 이후부터는 한두 명 쯤은 붙여주지 않을까.
시리스는 심부름꾼에다 아르웬의 호위기사이니 힘들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헬리움에서 가르츠를 붙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가 트집을 잡을 수도 있다.
일단 나는 미네르바 제국민이니 미네르바 제국에서 호위를 붙여줄 가능성이 높다. 테르스 왕국에서도 호위를 붙이겠다며 시시각각 견제를 하겠지만 제국이 잘 막아줄테고.
'아, 맞다. 세이비어.'
그러고 보니 세이비어에서도 나를 찾기 위해 추기경을 순례길에 올렸다고 했었지. 나를 성자로 우대하겠다며 난리를 치고 있는데 그들도 간섭할 게 뻔하다.
내가 정체를 밝히는 순간, 이 세상은 그야말로 난리가 나지 않을까. 루미너스 님이 트롤링을 하시는 바람에 정체를 꽁꽁 숨길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호위라... 우선 아이작이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는 헬리움에서 호위를 붙여줄 거예요. 가르츠 발락 경이라고, 어머님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그 양뿔을 갖고 있던 기사 말이로구나. 그 사람도 아이작이 제논이라는 걸 알고 있니?"
"네. 알고 있어요. 말수도 적고 절제력도 강한 마족이라 믿을만한 인물이에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럼 헬리움으로 언제 갈 생각이니?"
그 질문에 세실리가 아닌 내가 대신 답했다.
"오늘로부터 사흘 후로 잡고 있어요. 14권을 마저 정리해야 되거든요. 세실리도 그때 다시 돌아오기로 했고."
"그렇구나. 그럼 헬리움에서는 며칠 정도 지낼 계획이니?"
"아마..."
"아마 이번 방학 내내 헬리움에서만 지낼 거예요. 마리에게도 허락받았어요."
내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세실리가 잽싸게 가로챘다. 여기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게, 계획에 전혀 없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마리가 허락한 건 사실이지만 방학 내내 헬리움에서 지낸다는 건 예정에 없던 사항이다.
"어머. 그러면... 설마?"
"네.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작도 마찬가지고."
"호호. 아이작?"
"네, 네?"
어머니의 부름에 바짝 긴장되는 건 왜일까. 내가 흠칫하며 대답하자 어머니는 자기 배를 조심히 쓰다듬으시며 입을 열었다.
"호칭이 꼬이지 않게 약은 꼭 챙기고 가렴. 알겠지?"
"...네."
"우리 아들이 참 인기가 좋아. 이러다 또 여자가 꼬이는 건 아닐까 걱정되네."
어머니가 그 말씀을 하시고 정확히 이틀 후.
"인사해라. 오늘부터 나에게 훈련을 받을 아델리아다."
"아, 안녕? 간만이네."
"...아델 누나?"
아델리아가 우리 저택으로 방문했다. 그것도 평상복이 아니라 니콜처럼 말끔한 검은색 예복을 차려입은 채.
내가 멍하니 아델리아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특유의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니콜이 이 아이를 가르쳐 달라고 나에게 부탁하더구나. 훗날 네가 가주직을 승계받을 때 호위로 사용해도 괜찮겠지."
"그... 잘 부탁해?"
"어... 응."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아델리아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약간이나마 붉어진 게 눈에 들어왔다.
더군다 맞잡은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간 정도가 아니라 은근슬쩍 주무르고 있다. 마치 여기서 손을 떼기 싫다는 듯이.
"우리 아들이 인기가 참 많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릴리?"
"... ..."
어머니께서는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시며 릴리가 잠든 배를 쓰다듬으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