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나비효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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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 기관 아니, 마력 기관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세계수 뿌리의 오염, 악마 소환의 징조, 리퍼 이 세 개의 비밀들이 터져나왔는데 마력 기관이 정점을 찍어버렸다.
이로 인해 마력 기관의 등장은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해도 무방했다. 마력 기관이 발명되었다는 건 조만간 제논 일대기에 등장했던 증기 기관차가 현실화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제논 일대기에 증기 기관차가 등장했을 때도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며 쉬이 넘겼지만, 다들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상상이지만 발명하기만 한다면 어마어마한 발전을 꾀할 수 있겠다고. 증기 기관차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들 단순히 '상상'이라고 치부하고 있었기에 발명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중이었다. 오직 소설 속에 나올 법한 괴짜 드워프를 제외하면은.
그리고 막상 증기 기관차의 중요 부분인 증기 기관, 아니 마력 기관이 발명되자 세계 각국의 수뇌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벌써부터 마력 기관의 발명가, 에인스와 계약을 맺기 위해 높은 계급의 인사를 파견했다.
증기 기관차 또는 마력 기관차가 발명되기라도 한다면 나라의 경제는 물론 군사적으로 큰 힘을 실어줄 게 당연했으니. 더구나 증기 기관차는 과학뿐만 아니라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
냉장고와 에어컨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여태껏 기계라는 개념이 거의 희박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모두 복잡한 기계의 원리가 아닌 '마법'이 차지하는 비율이 많았으니까.
마력 기관의 발명은 사실상 새로운 문화를 제시한 거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어떤 식이냐면 너무 복잡한데 산업 혁명 전과 후를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그러므로 각국의 귀족들은 마력 기관을 넘어 마력 기관차를 독점하기 위해 에인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지만...
[나보다는 제논을 직접 찾아 허가를 받아라. 창작자는 나지만, 그의 책이 아니었다면 결코 발명하지 못 했을테니.]
[도대체 어떤 미래를 보고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철로'라는 개념도 제논이 먼저 생각했다. 증기 기관차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철로만 있다면 어디든 오갈 수 있다. 이건 미래인이 아니고서야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
[마음 같아서는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으나 제논 일대기가 없었다면 나는 그저 평범한 드워프에 불과했을 것이다. 일단 증기 기관차, 일명 마력 기관차부터 발명하고 나서 이야기하겠다.]
에인스는 생뚱맞게도 자신에게 소유권이 없다는 말을 꺼냈다. 창작자는 본인인 건 확실하지만 소유권은 나에게 있다고.
특허라는 개념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 괴짜 드워프는 정말로 자신에게 마력 기관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 이유도 가관인 것이, 한 번 보도록 하자.
[제논 일대기가 정말로 예언서라면, 책 속에 나오는 괴짜 드워프는 내가 아니라 나의 제자였을 것. 미래에 있을 내 제자의 발명품을 빼앗은 거나 마찬가지.]
[그러니 훗날 마력 기관차를 발명해도 제논의 말에 따르겠다. 앞으로 마력 기관차 발명에 박차를 가해야 하니 당분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하! 에인스님의 유머에 부랄을 탁! 치고 갑니다... 가 아니라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나로서는 어이가 가출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다.
정작 나는 마력 기관은커녕 증기 기관의 구조조차 모르는데 소유권은 나에게 있다니.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 폭탄을 떠넘긴 듯한 기분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나를 찾는 사람들이 급등한 건 당연해질 수밖에 없다. 마력 기관의 창작자조차 소유권을 나에게 양도했겠다, 나의 가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나를 예언자나 회귀자를 취급하는 건 그렇다 쳐도 사람들의 수색 범위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만약 제논이 정말로 미래인이라면, 지금은 젊은 나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제약이 있으니 분명 다른 사람들에게도 본인이 제논이라는 걸 밝히지 않았을 터. 제논은 우리들 사이에 섞여 살아갔을 수도 있다.]
[제논 일대기 속의 시기는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으나 정황상 지금으로부터 몇 십 년이 흐른 세월인 건 확실하다.]
미래에서 왔기에 나이가 지긋한 현자 혹은 학자가 아닌, 의외로 젊은 나이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심장이 덜컹거리는 순간이지 않을 수 없다.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를 밟은 격이지만 범위가 좁혀졌다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의심을 피할 수 있던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었으니.
하지만 범위조차 점점 좁혀지는 지금, 똥줄이 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만 해도 골이 울리는 상황이지만...
"아이작 님."
"응?"
"아이작 님은 정말로 미래에서 온 사람입니까?"
"... ..."
지인들 중 몇 명도 나를 예언자 혹은 미래인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소환한 시리스처럼.
나는 시리스의 물음에 말문이 턱 막혔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어제 마리와 세실리, 그리고 리나까지 진지하게 물어본 탓에 머리가 아픈데 시리스까지 이런다.
참고로 위의 3명도 원래 장난식으로 취급했지만 정작 마력 기관까지 등장하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절대 아니라고 항변을 해도 마리를 제외하면 썩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히 일상 자체는 변하지 않았으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리스까지 물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절대 아니에요. 전 미래인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라니까요? 시리스 씨에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미래인이었다면 투자나 주식을 했을 겁니다. 아니면 상단을 꾸려서 돈을 왕창 벌었겠죠."
"음... 알겠습니다."
대답은 그리 했지만 역시나 썩 믿는 눈치가 아니다. 나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꾹 눌렀다가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시리스를 부른 이유는 수인 관련 서적을 받을 겸, 겸사겸사 자문을 받기 위해서다. 제논 일대기 속 대악마 디아볼스의 양분이 된 세계수를 폭파시키기 위해 엘프측 영웅과 다크 엘프측 영웅이 합심한다는 내용.
엘프가 다루는 빛의 힘과 다크 엘프가 다루는 어둠의 힘을 융합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는, 생각보다 실용성이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되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 했으니 시리스에게 질문을 하려는 것이다.
"...일단 책부터 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요즘 아르웬은 어때요?"
"많이 바쁘십니다. 원로원이 날마다 아이작님을 찾아야 된다고 닦달하는 바람에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시죠."
"듣기만 해도 아찔한데."
이미 원로원이 나를 찾는 이유가 선전용을 위해서라는 건 대강 눈치챘다. 이미 연설 덕분에 여왕을 향한 지지율이 상승한 지금, 원로원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들의 입지가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는 걸.
하지만 내가 우연찮게 세계수를 구하는 탓에 알븐하임의 구원자로 신봉받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이후에는 악마 소환 징조까지 나타났으니 어떨지는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그리고 원로원은 그걸 이용하기 위해 나를 찾고 있다. 사실상 가불기인 것이 알븐하임 내에서 나를 향한 호감도가 극에 달한 이상 무조건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중이다.
만약 아르웬이 허가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고, 불허한다면 기껏 올라갔던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간악한 원로원은 그 점을 잘 이용하고 있다.
"아르웬이 계속 막는 건 무리겠죠?"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알븐하임 내의 여론이 아이작님을 찾아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으니까요."
"우연이라 해도 왜 믿질 않는 걸까요?"
"아무리 우연이라도 4번까지 우연이 나타나진 않습니다."
내가 툴툴거리자 곧바로 태클을 걸어버린 시리스. 나는 서적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돌려 시리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시리스는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 것인지 무표정이 아니라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지친다.
더이상 내가 미래인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것보다 신이 직접 인증해주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세계가 흔들리는 중요한 시점에 신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만간 신전이나 찾아가야지.'
평일은 몰라도 주말은 담당 교수에게서 허가증을 받고 아카데미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추천 학생으로 임명받았으니 엘레나에게 허가증을 받으면 끝이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조금 부담스럽긴 했으나 그래도 신전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다고 들었으니 잘 찾아가기만 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알겠습니다. 우선 제가 당신을 부른 이유는, 대충 감이 잡혔겠지만 물어볼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는지..."
"또 미래인이니 뭐니 하면 책에 안 넣어버릴 거예요?"
"... ..."
내가 으름장을 넣자 입을 꾹 다무는 시리스. 저런 표정을 지으니까 은근히 귀엽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콧숨을 살짝 내쉬었다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냈다.
"다른 게 아니라, 다크 엘프는 모라에게서 받은 힘을 사용하잖아요? 어둠의 힘이라고 하던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엘프는 루미너스에게서 받은 빛의 힘을 사용하고."
"네."
그럼 나머지 자연의 신, 하르트는 어떤 엘프가 사용하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다. 하르트 같은 경우는 자연 그 자체이기에 알븐하임 내에는 신도가 따로 없으며 오직 세계수만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신 하르트를 숭배하는 종족이 있는데, 바로 수인이다. 그들은 '주술'이라는 독특한 힘을 사용하여 마법을 대신한다.
주술은 맑은 하늘에 비를 내리게 만들거나 천둥 벼락을 내려치는 등. 말 그대로 자연에서 힘을 빌리는 형식이라 하르트를 숭배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두 개의 힘을 억지로 합쳐서 큰 폭발을 일으킨다는 건 가능한 일이에요? 굳이 이것뿐만이 아니라 서로 상극인 기운을 강제로 합쳐 그 반발력을 이용해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는 식으로."
"음..."
"당신들은 전사임과 동시에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엘프를 설명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종족.
신의 선택을 받은만큼 신의 힘, 그러니까 신성력 또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엘프 전사 한 명 한 명이 강력한 전사임과 동시에 성직자라고 보면 된다.
물론 한 우물을 파야 대성한다는 말이 있듯이, 각자마다 특화된 힘이 있기 마련이다. 육탄전에 특화된 전사가 있고, 마법에 능통한 마법사나 신성력이 유별나게 강한 성직자도 있다.
흔히 칭하는 '올라운더' 같은 경우는 오직 전사장밖에 없다. 게다가 엘프여서 다재다능한 것이지, 인간이었다면 다재무능으로 취급될 수도 있는 능력이다.
시리스는 내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흥미롭다는 표정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발상이군요. 빛과 어둠의 힘이 서로 융합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상극의 기운이 합쳐질 때 나오는 반발력을 이용한다라..."
"이때까지 그런 발상을 한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애당초 빛과 어둠은 결코 결합될 수 없는 기운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이러면 곤란한데.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적어도 이 세상의 고증만큼은 철저하게 지키고 싶었다.
어지간한 고층 빌딩보다 훨씬 높고 두터운 세계수를 터뜨리려면 막강한 폭발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사장급 두 명이 힘을 합쳐 자폭을 한다면 괜찮을까 생각했...
'...잠깐만. 힘을 합쳐?'
머릿속에 번개가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전생에 민속놀이로 유명했던 게임 속에서 유명한 캐릭터가 존재한다. '압도적인 힘으로!'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터뜨리면서 무쌍을 찍는 유닛이.
두 명의 유닛이 스스로를 희생해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된다는 설정인데 과연 여기서도 통용이 될까?
더군다나 3000년이 넘는 역사 중에 엘프 두 명이 힘을 합쳐 에너지 덩어리가 되었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
'세계수로 돌파하기까지 악마들이 막아설테고 칠죄종 또한 그럴테니까...'
개연성도 나름 충분하다. 솔직히 전사장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칠죄종 전부를 뚫고 돌파하는 건 약간 무리가 있다.
겸사겸사 엘프들에게 국뽕을 넣어주는 설정까지 차용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조국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전사는 종족을 막론하고 숭고하게 여겨지니.
나는 전보다 개연성이 훌륭한 스토리가 떠오르자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엘프에게 있어서 이런 최후는 명예롭게 여겨질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가장 먼저 시리스와 아르웬에게 물어봐야겠지. 나는 가만히 대기하고 있는 시리스에게 질문했다.
"시리스 씨."
"네."
"혹시 두 명의 엘프가 희생하여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가 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셨어요? 참고로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결코 미래의 지식 같은 건 절대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시리스는 아르웬보다 나이가 많다. 그런 시리스도 모른다는 건 아르웬도 모를 확률이 크다는 것.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이건 넣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솔직히 마력 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이왜진들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들였지만 '합일'은 완전히 허구의 설정이다.
여태까지 읽은 책들도 마찬가지. 모 우주전쟁에 나오는 유닛마냥 두 개의 유닛이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는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르웬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네요."
"한 번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네."
그 후로 시리스는 아르웬에게 묻기 위해 떠났고.
"여왕님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요."
천만다행히도 '합일'에 관한 건 아르웬조차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숙히 생각했다면, 아르웬과 시리스는 엘프 중에서도 '신세대'에 속하는 '어린 엘프'라는 걸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우선 주말에 신전부터 방문해야겠다.'
3000년이라는 기간은 기록이 유실되는데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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