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알븐하임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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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븐하임으로 향하는 것이 확정되고 다음 날. 아르웬이 내 숙소로 직접 찾아왔다.
마법을 사용하여 몸을 숨기고 있던 지라 숙소로 몰래 들어와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린 바람에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아르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안심할 수 있었다.
이후로 아르웬이 숙소로 찾아오고, 나는 대화를 하기 전 그녀에게 소식부터 알려줬다. 바로 내가 알븐하임으로 간다는 소식을.
그리고 아르웬의 반응은 사뭇 볼만했다.
"뭐, 뭐? 방금 뭐라고 했느냐?"
"조금 있으면 알븐하임으로 갈 거야. 내 친구가 같이 가자고 제안했거든. 나도 때마침 괜찮겠다 싶어서 승낙했지."
"그러면..."
"네가 연설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예정이라는 말씀."
"으으..."
내가 알븐하임으로 찾아오는 건 전혀 예상치 못 했는지 아르웬이 두 귀를 손으로 만지며 끙끙 앓았다. 길쭉한 귀를 손잡이처럼 붙잡는 모습이 꽤 신기하다. 아무래도 당황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인 듯했다.
그사이 아르웬은 내가 연설을 본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것인지 약간 초조한 목소리로 넌지시 말했다. 손은 여전히 두 귀를 꽉 붙잡고 있었다.
"아, 안 오면 안 되겠느냐?"
"왜?"
"왠지 부, 부끄럽단 말이다."
"이미 볼 거 다 봤으면서 부끄럽기는 무슨."
이상한 부분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지 아르웬의 뺨이 노을처럼 붉어졌다. 그녀가 선동하는 것까지 두 눈으로 지켜봤던 나로서는 피식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예 공감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능력을 전수받고 그 능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펼칠 때 지도했던 사람이 지켜본다면 부담감이 배로 늘어날테니까.
가뜩이나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쌓여있을텐데 나까지 지켜본다고 하면 그 부담감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어쨌거나 네 연설을 보는 건 결정된 사항이야. 이미 텔레포트 예약까지 한데다 거절할 명분도 없거든."
"채, 책을 쓴다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
"글쎄.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할 걸? 이처럼 좋은 소재가 있는데 어째서 거부하냐고 말이야."
"끄응..."
내가 연설을 지켜보는 걸로 확정지은 것일까. 아르웬은 귀를 붙잡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뒤이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손잡이처럼 붙잡은 귀를 스르르 풀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구나... 허나 기대하지는 말거라. 그대가 전달한 연설문이 아무리 좋아도 그 연설을 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테니."
"자신감을 가져 지난 번에 했던 것처럼 하면 문제는 없을거야."
"그러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아르웬이 느끼는 부담감이 꽤 큰 모양이다. 하기야 이번이 첫번째 대국민 연설이라 했으니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조차 살 떨릴만큼 긴장되는 일인데 연설, 그것도 대국민 연설이다. 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아르웬의 마음은 시시각각 조여들 것이며 잠도 제대로 못 잘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시했겠지만 아르웬이다 보니 왠지 도와주고 싶었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들 책임을 졌으며 어찌 보면 그녀는 나에게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협소하디 협소한 인간 관계를 가진 나였기에 친구는 가급적 도와주고 싶다. 어찌 보면 국정에 깊게 개입하는 셈이인데 그저 친구를 돕는 일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뭣하면 내가 응원이라도 해줄까? 아니면 머리라도 쓰다듬어줘?"
"...나를 어린애 취급하지 말거라. 이래 보여도 그대보다 몇 배는 오래 살았다."
"할머니치고는 단 걸 많이 좋아하시네요."
"너 이... 후우."
아르웬은 할머니라는 호칭에 발끈하다 말고 스스로를 다독이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여태까지 하도 할머니라 놀려대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진 것 같다.
사실 할머니라 부르는 것도 아르웬이라 가능한 일이다. 세실리에게 한 번 장난식으로 해봤다가 귀가 뜯겨나갈 뻔한 적이 있어서 절대 하지 않는다.
반면 아르웬은 반응이 너무 재미있다. 평소에 어린애처럼 굴다가도 지금처럼 놀리면 애써 어른인 척하니까.
그러다 삐지게 되면 밥을 빼앗긴 토끼마냥 흥! 하고 토라지니 도통 멈추기가 어려웠다.
"...나와 허물없이 대화하는 인간은 그대밖에 없을거다."
"그거 내가 특별하다는 이야기지?"
"음..."
장난식으로 말한 건데 아르웬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 탓에 도리어 내가 민망해졌다.
그사이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인간 사회에서 살 때는 인간 친구를 사귄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응? 너 알븐하임 출신 아니었어?"
"인간의 피가 반 섞인 혼혈이니라. 내가 깜빡하고 말을 하지 않았구나."
아르웬이 혼혈이었다니, 조금 놀라운 소식이다. 알븐하임의 여왕은 당연하게도 순혈일 거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번에 신디가 언급했듯이 아르웬은 명문가의 후원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여왕의 자리에 앉았다. 평범한 엘프였다면 뭔가 꺼림칙했겠지만 혼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전혀 몰랐어. 그럼 너도 부모님 중 한 분이 자연사 하시기 전까지 인간 세상에서 살았어?"
"어머니께서는 나를 낳으시고 얼마 안 지나 모라의 품으로 떠나셨다."
"어... 미안."
괜히 물은 것 같다. 당연히 천수를 누리고 떠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상처를 건드린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르웬은 그닥 신경쓰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를 안심시켜줬다. 뒤이어 과거의 추억을 상기하는지 아련한 눈빛으로 옛날 일을 하나하나 꺼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께서는 나를 데리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셨지. 인간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두 눈으로 보고, 그들의 강점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알븐하임에 들어오고 나서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여왕이 될 수 있었지."
"명문가를 구워삶기라도 했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원로원을 견제할 수 있도록 힘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지. 때마침 명문가들도 원로원의 힘이 나날이 커지자 견제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나에게 도움을 주었느니라."
"그럼 아카데미는 안 다녔어?"
신디에게 들은 바로 알븐하임의 엘프들은 최초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곳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것도 50살까지.
걸어다니는 도서관이 된다는 이야기도 50살이 될 때까지 주구장창 교육만 받기에 그렇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나라처럼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본인이 즐거워하는 일에 몰두하여 불만은 없다.
그리고 엘프는 아카데미를 졸업해야 어엿한 사회인으로 인정받는다. 다만 혼혈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아카데미는 다닐 수 있다. 다른 혼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간 부모가 천수를 누리고 나서 대부분 알븐하임으로 들어온다더군. 같은 엘프에게 있어서 아카데미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교육을 받는 건 문제가 없다."
"50살까지 교육을 받는다는 건?"
"그건 보편적인 이야기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졸업만 하는 거면 10년만에 할 수 있다."
"같은 엘프에 한해서는 꽤 널널하구나."
"수명이 길어서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겉보기에는 나이가 몇인지 가늠을 할 수 없으니까. 같은 엘프도 대부분 말투나 몸가짐을 통해 나이를 유추하는 편이다."
어쩌 보면 같은 엘프에 한해 자비로운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지금 혼혈 문제로 시끄러운 걸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일 이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혼혈 검사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탄압이 이루어지면 정말로 파시즘 국가가 탄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르웬도 추방당할 수 있겠지.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연설 때 너도 혼혈이라는 걸 밝힐 거야?"
"응? 당연한 이야기이지 않느냐? 그게 아니라면 절박함이 묻어나오지 않을 것이니라."
"언제 봐도 책임감 하나는 강하구나."
"흠흠. 칭찬해도 전혀 기쁘지 않다."
헛기침을 하는 아르웬이었으나 나는 볼 수 있었다. 새하얀 뺨에 미약한 홍조가 이는 것을.
무엇보다 길쭉한 귀가 위아래로 까닥거리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감정을 숨기려 해도 귀만큼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안 기쁘기는 무슨. 귀나 어떻게 하고 말해."
"이,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라!"
"그렇게 감정을 못 숨겨서 원로원이랑 어떻게 대치하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인간은 그대밖에 없다. 사실 친구라 할 인물도 그리 많지는 않고."
왠지 불쌍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쩌면 레인을 그토록 감싸던 이유도 외로웠기 때문이지 않을까.
태어나자마자 떠돌이 생활을 한데다가 알븐하임에 들어오고 나서는 여왕의 자리에 앉았다. 대인 관계를 유지할만한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겉보기에는 담담한 척 얘기했지만, 이토록 말을 터놓고 지낼만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농담식으로 내가 특별하다고 물어도 긍정할 정도다.
"친구라... 뭐, 살다 보면 친구를 사귈 수 있겠지. 너는 아직 나보다 살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원로원 때문에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어서 문제니라. 그들의 눈과 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매사에 주의할 수밖에 없지."
"의심병에 걸리기 최적의 상황이네."
아르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 같은 고위급 정치인들에게 '신뢰'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거다.
본래 정치라는 건 권력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권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도덕성과 거리가 멀어진다. 신뢰 또한 자연히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권력이 약해지는 순간 하이에나들이 우르르 몰려오게 된다. 역사적으로 폭군들은 권력에 심취해 탄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의심병이 도져서 난폭해지는 거다.
'만약 아르웬까지 그리 된다면...'
진짜로 파시즘 엘프가 등장하지는 않을까. 원로원을 힘으로 모두 다 밀어버리고 오직 그녀 하나만 존재하게 되는, 알븐하임 역사상 최악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물론 심성이 착한 아르웬의 성격상 그럴 확률이 희박하나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다. 다양한 사건사고 때문에 악의 길로 빠져든 성군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으니.
나는 아르웬을 딱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르웬도 내 눈빛을 읽었는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눈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니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법. 그대가 걱정하는 것만큼 난 약하지 않다."
"왜 여왕이 되기를 자처한 거야? 평범하게 살 수도 있잖아."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높은 권위에 오르면 된다. 그렇다면 아르웬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녀는 내 질문을 듣고 말해도 되나 싶어 심사숙고하더니 나와 눈을 마주했다.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은회색 눈동자에 내 얼굴이 투영되었다.
이어서 아르웬은 피식 웃더니 새침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건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이야기니라. 그대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니 친히 얘기해주도록 하마."
"그럼 안 들어도 되겠네."
"사, 사람 말은 끝까지 듣거라!"
역시 아르웬은 놀려야 제맛이다. 그녀는 내가 낄낄거리며 웃자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씩씩거렸다.
순수한 아이를 놀리는 듯한 느낌이라 멈출 수가 없다. 그래도 진지한 이야기인 것 같으니 들어주자.
아르웬도 내가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자 헛기침을 하더니 나를 힐끔 쳐다봤다. 뒤이어 조용하면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말했지만 나는 아버지와 함께 인간 세상을 돌아다녔다. 그들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지. 그중 하나가 인간들은 너무나도 많은 실패를 겪는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끊임없이 도전을 한다는 것이지."
"음..."
"반면에 우리 엘프는? 누군가 걸었던 길 위를 걷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길 하나로도 다른 종족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이니라. 지금은 괜찮겠지만 미래에서는 분명 큰 사단이 나겠지."
"인간 때문에?"
"그것보단 우리의 안일함이 더 클 것이니라. 심지어 종족전쟁이라는, 빛에 감춰진 그림자가 모조리 탄로났음에도 불구하고 원로원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심지어 그들의 힘은 옛날에 비하지 못 해도 점점 강력해지고 있다. 여태까지 왕좌의 주인이 수도 없이 교체된 걸 보면 알 수 있지."
실제로 알븐하임의 왕은 수명에 비해서 자주 바뀐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아르웬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로 원로원의 심한 견제 때문인 듯했다.
"나는 그걸 막고 싶었다. 더 나아가 끊임없이 도전하는 중이지. 도중에 갈등이 발생해도 그 갈등을 해소한다면 약간이나마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가 자주 일어난다면 분명 우리 엘프도 발전을 겪겠지."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도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도전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 나는 우리 국민들에게 도전을 장려해주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 쓸데없는 정책이라 해도 상관없느니라. 현재는 몰라도 먼 미래에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아르웬의 말마따나 당대에 각박한 평가를 받았던 정책들이 먼 미래에 업적으로 칭송받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럼 너는? 너는 괜찮은 거야? 잘못하면 추방당할 수도 있는데?"
"원로원이 아니라 국민들이 쫒아내는 거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니라. 그것 또한 변화일테니."
"이렇게만 보면 진짜 엘프가 아닌 것 같네."
"엘프가 아닌 것 같다라..."
아르웬은 내 말을 듣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스레 대답했다.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인간의 사고 방식이 깃들어있는 혼혈이니까. 그래도 엘프로서의 자긍심은 갖고 있다."
"이건 또 엘프다운 대답인 것 같고."
"그럼 그대가 생각하는 엘프는 무엇이냐? 다른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오만하고 고집스러운 종족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그냥 뭐..."
나는 시선을 다른 데로 옮기며 골똘히 고민했다. 인간도 그렇지만 엘프도 마찬가지로 무어라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종족이다.
아르웬이 말한 것처럼 엘프는 오만하고 고지식한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긍지가 높고 용맹한 종족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빛과 그림자가 명확하다면 엘프는 빛이 너무 강하여 숨어있는 그림자 또한 크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나는 아르웬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한 대 얻어맞아야 정신차리는 종족."
"...뭐?"
내 대답에 아르웬은 눈을 깜빡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 했다는 반응이다.
이에 나는 약간의 농을 담으면서 말을 이었다.
"엘프는 한 대 맞아야 정신차리는 종족이라고. 종족전쟁도 그렇고 네가 알려준 엘프와 다크 엘프 간의 불화도 그렇고 전부 비슷하잖아? 누군가 때리기 전까지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아."
"... ..."
"그러니까 누군가 때려줘야 발전한다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 ..."
어처구니가 없는 건지 아니면 어안이 벙벙한 건지 아르웬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어줄 뻔했다.
이윽고 생각을 모두 정리한 것인지 아르웬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대답이로구나. 그래도 맞는 말이라 반박할 여지가 없다."
"알았으면 연설 때도 시원하게 때리기나 해. 연설문은 내가 줄테니까."
"고맙다. 그리고... 아이작."
"응?"
아르웬은 나를 부르더니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그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순간, 그녀는 나에게 한 가지 작은 부탁을 건냈다.
"만약 내가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나를 한 대 때려줄 수 있겠느냐?"
"뭐?"
"나에게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은 그대밖에 없고, 때려줄 사람도 그대밖에 없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탈선할 때마다 정신 차리라고 일갈해달라는 건가? 단어 선택이 이상해서 그렇지, 아르웬은 나에게 브레이크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셈이다.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긴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었던 모양. 약간 당황했으나 이윽고 수락했다.
"알았어. 그정도야 가뿐하겠지."
"고맙다."
아르웬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작게 입을 열었다.
"그대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로구나."
그 후로 며칠 후.
"세실리 누나도 가요?"
"응. 발락 경이랑 함께 갈 예정이야."
"가르츠 씨는 또 왜?"
"그냥 데리고 가는 건데? 너랑 만나고 싶어할테고 겸사겸사."
나는 알븐하임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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