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135화 (136/763)

〈 135화 〉 알븐하임으로(1)

* * *

잠깐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여차저차 무난하게 넘어갔다. 혹여 아르웬이 자리를 비켜준다고 해도 혹여 몰래 지켜볼까봐 걱정되었으나 그것조차 본방에 들어서면서 모두 없어졌다.

지금은 이 요망한 고양이부터 제대로 혼내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도중에 마리가 미안하다고 애원했으나 이미 흥분할대로 흥분한 나에게는 소용없었다.

결국 저녁까지 거르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마리는 본인의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너무 격렬했던 나머지 다리힘이 풀린 탓에 내가 부축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여학생용 숙소 앞에 도착하자 나는 마리를 보내기 전,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반쯤 놀리는 식으로 말했다.

"앞으로 그런 장난 치지 마. 알겠지?"

"씨잉..."

마리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투덜거릴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기세 좋게 덤벼들었다가 역으로 탈탈 털렸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나 운동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두고 봐."

"어련하시겠어. 내일은 별 일 없지?"

"별 거 없긴 한데 내일 리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대. 그때 겸사겸사 이야기하면 되겠지."

진짜 별 거 없었다. 리나와 식사하는 건 이미 익숙해진 참이어서 그냥 같이 얘기하면 그만이다.

다만 최근 리나가 조금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뭔가 수상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꾸 나만 볼 때마다 미묘하게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이상한 곳을 힐긋거렸으니까.

일단 이성으로서의 호감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기는커녕 장난만 쳤으니 호감이 쌓일 수가 없다.

게다가 리나도 권위를 내려놓은 이후에는 나를 편안한 친구 사이로 생각하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애당초 그녀는 마리나 세실리처럼 자주 만나지 않고 일주일에 두 세 번 만나는 식이다. 그것도 식사 자리에서만.

단 둘이 독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마리와 사귀고 난 이후에는 접점조차 거의 없었다.

"알았어. 가서 푹 쉬어. 내일 못 일어나면 내가 미안해지니까."

"힝. 누구 덕분에 체력이 왕성해져서 이정도는 끄덕없네요."

"그래? 지금 여관에 가서..."

"하지만 내일 강의가 더 중요하니까 난 가볼게. 안녕!"

내가 은근슬쩍 허리를 붙잡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제안하자마자 마리가 서둘러 벗어났다. 다리에 힘이 돌아오지 않아 잠깐 휘청였으나 꿋꿋이 숙소로 향했다.

물론 매정하게 앞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뒤를 돌아보고 방실거리는 웃음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요망하게 키스를 날리기까지.

나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변하는 듯한 마리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마리가 내 여자친구라서 정말로 행복하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

숙소에서 나온 시간이 8시 쯤이었으니 아르웬을 위한 연설문을 작성할 시간은 남아있다. 집필은 잠깐 중단하고 일주일 동안 연설문에 집중해도 문제는 없다.

더군다나 분열되기 직전인 알븐하임의 상황에서 딱 어울리는 내용이 하나 있다. 남북전쟁으로 인해 날로 피폐해지던 미국을 하나로 통합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이다.

노예제 폐지와 더불어 미국을 진정한 의미로 하나로 만든 위대한 대통령. 그의 연설은 당대에 실패한 연설이라는 평가가 오갔으나 후대에는 역사에 기록될 명연설로 존재하게 되었다.

'전부 다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난 세계 2차 대전을 좋아해서 히틀러의 연설을 기억하는 거지,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모르고 있다.

그래도 그 일부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할 것이다. 지금은 그 명언이 자연스레 나오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다.

'뭔가 비선실세 같네.'

전생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최악의 사건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민주주의가 땅으로 떨어질 뻔했지만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사건.

혹여 아르웬의 연설을 내가 대신 작성한 거라는 사실이 탄로나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그녀는 한 번 본 걸 모두 암기할 정도의 천재이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마 내가 연설문을 전달하자마자 한 번 스윽 훑어보고 불태우지 않을까.

나는 그저 아르웬이 연설을 잘 하도록 마음 속으로 기도하면 끝이다. 사실 내가 연설을 도우는 것도 어마어마한 정치적 개입이다.

이렇게 무덤덤한 것도 나에게 아르웬이 여왕이라기 보다는 친구에 가까워서 그렇지 않을까. 잘못을 저질러도 머리까지 조아렸던 그녀의 책임감이 마음에 든 것도 있다.

'시리스한테 부탁하면 연설하는 거 볼 수 있으려나?'

알븐하임은 입국하기 위한 절차가 더럽게 복잡할 뿐이지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는 검사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 탓에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텔레포트조차 몇몇 소수를 제외하면 국외로밖에 범위를 지정하지 못 한다. 가르츠에게 들으니 일종의 차단막 같은 마법을 발동시키고 있다고 하던데, 왕에게 직접 허락받은 자들이 아니면 방법조차 모른다고 설명해줬다.

'어차피 연설문 받으러 다시 오겠지.'

나는 일주일 후를 고대하면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다음 날이 되었다. 어제 마리가 언급했던대로 리나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으며 정말로 별 거 없는 이야기들밖에 없었다. 당연하지만 세실리는 리나의 곁에 앉아있었다.

이렇게 4명끼리 앉는 건 이제 익숙해져서 나는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었지만, 다른 3명은 아니었는지 수다를 떨기 바빴다. 여자 3명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속설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식사가 모두 끝나고 후식을 즐기고 있을 때 리나는 우리에게 대뜸 흥미로운 제안을 말했다.

"너희 혹시 알븐하임으로 가볼 생각은 없어?"

"응?"

그건 바로 엘프들의 나라, 알븐하임으로 갈 생각이 없냐는 제안. 너무 뜬금없는 제안이어서 나는 물론이고 내 옆에 앉은 마리조차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리나는 이처럼 시덥잖은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저 특유의 무표정을 본다면 정말로 우리에게 제안한 것이다.

"갑자기 알븐하임은 왜?"

내가 아니라 마리가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도 그럴게 리나의 권유는 앞뒤를 잘라먹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강의가 아직 진행되고 있을 뿐더러 알븐하임까지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마차를 탄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며칠은 걸린다.

물론 리나와 황족과 공작가 영애이니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사이, 리나는 우리를 바라보더니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탁­ 하는 소리가 미약하게 퍼졌다.

"소식을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알븐하임의 여왕이 앞으로 6일 후에 대국민 연설을 할 예정이거든. 다른 곳도 아닌 알븐하임이라 시선이 많이 몰리고 있어. 더군다나 이번 대 여왕의 첫 연설이라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있지."

"그건 나도 알아.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곳에 황제나 왕이 직접 행차하기에는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너나 나 같은 자식들이 가는거지. 아마 다른 나라의 장관이나 대신들도 올 거야."

"그런 거라면 레오르트 님이랑 네가 가면 되잖아."

나도 마리의 의문에 찬성한다. 보통 그런 곳에는 리나가 마리가 아닌, 레오르트와 리나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리나는 우리 둘의 표정을 읽고는 머쓱하다는 미소를 짓더니 현재 상황을 하나 둘 씩 설명해줬다.

"오라버지는 현재 약혼 문제 때문에 바쁘셔. 테르스 왕국 쪽에서 결혼을 추진하는 중이거든."

"테르스 왕국 쪽에서? 갑자기 왜?"

"갑자기도 아니야. 전시회 이후부터 쭈욱 그래왔지. 제논, 그러니까 아이작이 자신의 고향을 알린 덕에 우리 제국이 기회를 잡았거든. 너희들도 알고 있잖아? 세계적인 거장의 출생지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현재 나의 고향, 마이샬 영지는 서서히 문화의 도시로 발전하는 중이다. 전시회가 끝났음에도 전시된 작품들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수시로 늘고 있으며 상단도 방문하고 있다.

게다가 본래 마이샬 영지는 원래 황실에서도 눈 여겨 보던 영지였다. 다른 쪽도 바빠 개발을 미루었던 것 뿐이지, 전시회가 개최하고 난 이후에는 불도저처럼 개발을 추진 중이다.

무엇보다 내가 고향을 마이샬 영지라고 고백함으로써 문화적으로 큰 이득을 보게 되었으니 테르스 왕국은 똥줄이 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2왕녀를 우리 아카데미로 전학 보낸다는 말이 있어. 너희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2왕녀는 오라버니랑 나이가 같은데다가 무학이거든."

"이름이 뭐야?"

"히리야 듀커드 폰 커쳐스. 하늘색 머리카락에 하늘빛 눈동자를 지닌 여자야."

"... ..."

그때 전시회에서 과묵해 보이던 여자였나. 제복을 입고 있어서 유달리 눈에 띄었던 걸로 안다.

다만 그리 호감이 가는 사람은 결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아델리아의 눈에서 눈물을 흐르게 한 주범 중 하나였으니까.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동생에게마저 다가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아델 누나가 힘들어하겠는데...'

차라리 레오르트가 테르스 왕국의 아카데미로 전학갔으면 하지만, 주도권은 엄연히 미네르바 제국이 꽉 쥐어잡고 있다. 테르스 왕국도 그걸 알고 있으니 히리야를 보내는 것일테고.

나는 입맛이 씁쓸해짐을 느꼈다. 과연 리나는 알고 있을까. 아델리아가 테르스 국왕의 사생아라는 것을. 그리고 가족에게 버림받아 트라우마가 극심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거나 오라버니는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바빠서 못 가는 거야. 그런데 나 혼자 가기에는 좀 그렇잖아? 그래서 너희들과 함께 가는거지."

"나는 그렇다 쳐도 아이작은 왜? 아이작의 정체는 우리만 알고 있잖아."

마리의 말이 맞다. 만약 제논 일대기의 작가라면 모를까, 표면적으로 남작가의 자식이다. 황녀와 공작 영애에 비해서는 빛이 바래다 못해 한참 뒤떨어지는 위치다.

최소한 백작 이상이 가거나 아니면 아예 리나와 마리 둘만 가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런 의도가 담긴 질문에 리나는 빙긋 웃더니 마리의 마음을 살살 간지럽히는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지만 약혼을 한 사이면 문제가 없어. 비록 정식으로 약혼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할 예정이잖아?"

"나중에 뭐 부탁할 거라도 있니?"

역시 황녀답다. 마리의 의문을 '따위'로 만들어버리는 대답에 감탄과 황당이 섞인 반응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장난이 아니라 이 세상은 약혼을 했다면 사실상 결혼한 거나 마찬가지다. 나와 마리는 정식적으로 약혼을 맺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각자의 가문에서 추진하고 있는터라 반쯤 확정된 사항이다.

그러니 마리는 공작 영애로서, 나는 그녀의 약혼자로서 알븐하음으로 가는 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그럼 텔레포트를 사용할 거야? 마차로 가면 너무 오래 걸리잖아."

"당연히 텔레포트를 사용해야지. 그리고 연설 이틀 전에 출발할 거야. 알반하임은 이종족에 한해서 입국 절차가 까다롭거든. 잘못하면 하루종일 걸릴 수도 있어서 미리미리 가는 편이 좋아."

인간 사회에서 텔레포트는 백작 이상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다. 보통 저택마다 텔레포트 시설이 설치돼 있으며 황제나 왕 같은 경우에는 국가를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어 있다.

물론 이것도 지금의 이야기지, 텔레포트 시설은 교통수단으로 발전될 기미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 아르웬의 지도 아래에 개방 정책을 펼치는 중인 알븐하임은 물론이고 마족도 점점 세상을 향해 손을 뻗는 중이다.

드워프는 정당한 값만 지불한다면 무엇이든지 하는 종족이니 상관없다. 남은 건 대중들에게도 마법이 전수되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마탑 같은 것도 없는 걸 보면 아직 멀었지.'

내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쯤이었다. 리나에게서 주의할 점을 들은 마리는 궁금한 게 더 있는지 하나 하나 세심하게 묻기 시작했다.

"알븐하임에서 주의할 점이라도 있어? 나도 알븐하임은 처음 가보는 거라서."

"일단 말을 걸 대상을 잘 구분해야 돼. 종족 전쟁 때문에 인간을 싫어하는 엘프도 있거든. 게다가 외모만 봐서 나이를 구분하기 어려우니 되도록 말을 거는 건 삼가하는 게 좋아."

"그렇구나. 그럼 연설 때 우리는 어디 앉아? VIP석이라도 따로 있어?"

"아니. VIP석은 당연히 알븐하임의 귀족들, 그러니까 명문가들이야. 우리는 바로 뒤쪽에 앉아서 볼 거야."

그런 거라면 세실리도 오려나. 나는 시선을 옮겨 리나의 옆자리에 앉은 세실리를 바라봤다.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도중에도 그녀는 아무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세실리 누나도 갈 거예요?"

"가고는 싶지만 알븐하임에서 마족을 받아줄지 의문이네. 여왕님이 직접 허락해주신다면 모를까."

나보고 대신 해달라는 소리인가. 나는 세실리가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쓰게 웃었다.

하기야 엘프가 개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한들 결국 엘프는 엘프다. 악마의 후예인 마족을 받아들이려면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 신성한 알븐하임의 땅에 악마의 자손이 왜 왔냐고 소리칠 수도 있겠지. 당장 혼혈 문제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마족은 오죽할까.

"아참. 세실리."

"응?"

"궁금한 게 있는데 마족이랑 인간 사이의 혼혈은 없어?"

마리의 질문이었다. 그녀 뿐만 아니라 나는 물론, 리나도 궁금했던 부분이었는지 우리 세 명은 동시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런 관심들 속에서 세실리는 약간 당황했는지 새빨간 눈을 두어번 깜빡거렸다가 손가락으로 볼을 툭­ 툭­ 건드렸다. 무언가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다.

이윽고 한동안 생각하던 그녀는 약간 애매하다는 목소리로 대답을 꺼냈다.

"글쎄... 엘프와 달리 마족은 여태까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해서 혼혈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어. 만약 있었으면 우리 헬리움에서 보호하기 위해 직접 나섰겠지."

"...미안."

"아냐. 사과할 필요는 없어."

마리가 사과하자 세실리는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하더니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입꼬리를 더욱 진하게 말아올리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금 있으면 혼혈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들릴 것 같거든. 그렇지?"

"... ..."

왜 저를 쳐다보면서 말하는 겁니까. 물론 인기가 나날이 치솟는 마족이었으니 정말로 혼혈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수도 있다.

나는 애써 담담한 척 하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뿔이...'

세실리의 뿔은 지난 번 전시회처럼 점점 붉은빛을 띄기 시작했다.

*****

잠깐 아이작이 화장실로 볼일을 보기 위해 떠난 시간.

리나는 아이작이 자리를 비우자 맞은편에 앉은 마리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마리?"

"응? 왜?"

"그... 알븐하음에서 하루 정도 묵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혹시 방음이 철저한 곳이 필요해?"

리나는 애둘러 질문했지만 마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간파했다. 이에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 볼에 홍조가 일어나더니 쑥쓰러워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 부탁해도 될까? 아니면 좀 시끄러워질 수도 있어서... 알븐하임이니까 그정도는 되겠지?"

"으, 응. 물론이야."

리나는 왠지 모르게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아마도."

뒷말은 마리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조용했다.

"흐음..."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세실리는 그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미묘한 눈빛으로 리나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미 음흉한 상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을 뿐더러 차마 고개를 들지 못 하는 중이다.

심지어 어디가 간지러운지 다리 사이를 베베 꼬기까지. 마치 선정적인 걸 처음 보는 듯한 처녀의 모습이다.

'귀엽네.'

세실리는 리나의 음험함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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