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숨겨왔던 진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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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에게 있어서 아델리아는 신입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친구다. 친구는 본디 새로운 가족이라 칭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아델리아도 그랬다.
맨 처음 만났을 때가 신입생 환영회, 몇 달 전 아이작도 겪었던 행사에서였다. 그때는 브리스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갔으며 이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온갖 시선을 받게 되었다.
깜깜한 밤이 아닌 저녁 하늘을 연상시키는 듯한 남색 머리카락과 이 세상에 몇 없는 황금색 눈동자. 여자치고는 상당히 큰 키를 지녔으며 옛날부터 가문에서 고된 훈련을 받아 자연스레 관리된 몸매까지.
신비로움을 풍기면서 강인한 여전사의 이미지를 띄는 니콜은 신입생 행사 때부터 수많은 시선을 이끌었다. 니콜 본인조차 예기지 못한 상황이어서 크게 당황했으며 심지어는 몇몇 남자가 추파를 던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니콜에게 가장 눈에 띈 사람은 다름아닌 구석진 곳에서 혼자 서성이던 아델리아. 그녀는 평민이었던 탓에 드레스도 못 사서 홀로 교복을 입고 있었다.
꼭 참석하라는 공지는 없었으나 교복을 입고 올 거면 아예 안 오는 게 훨씬 낫다. 더군다나 아델리아는 평민이라기에는 눈에 띄는 미모를 지녀 니콜의 관심을 이끌었다.
그때부터 니콜과 아델리아의 인연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다른 동기들이 전부 졸업을 할 때 아델리아와 니콜은 무학 조교로 남아 후배들을 가르치고 더 나아가 기사단의 스카우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만큼 아델리아의 성격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 면밀히 파악할 수 있던 니콜이다. 간혹 짖궂은 장난을 치는 이유도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는 것도 알고 있어서 참고 넘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다. 자그마치 자신의 동생과 깊게 연관돼 있을 뿐더러 더 나아가 가문에게까지 영향이 갈 수도 있었으니.
여태까지 아델리아가 무슨 기행을 펼치던 물 흐르는대로 넘기던 니콜이지만, 이번 사안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후우..."
"... ..."
아이작을 남겨두고 저 멀리 대련장 구석진 곳으로 이동한 니콜과 아델리아.
니콜은 팔짱을 끼며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반면, 아델리아는 죄를 지은 듯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불안 증세를 보이듯 꼼지락거리기 바빴다.
얼굴 또한 앞머리가 커튼처럼 내려온 탓에 자세히 알아볼 수 없었다. 이에 니콜은 하염없이 땅바닥만 쳐다보는 아델리아의 모습에 시름이 깊어졌다.
정말로 아델리아가 아이작을 친한 동생이 아닌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거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그것도 많이.
아이작은 미네르바 제국의 유일한 공작가의 딸, 마리와 정식으로 교제하는 중이다. 게다가 첫날밤까지 치러서 이미 약혼까지 끝난 상황.
'최근에는 마족 공주도 심상치 않던데...'
뿐만 아니라 헬리움의 공주, 세실리와의 관계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전시회 당시 저택에 방문한 것도 그렇고 유독 아이작과 가까이 붙어있는 것도 그렇고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이작이 세실리를 애인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니콜이었으나 눈치가 빠른만큼 추측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실리가 아이작의 정체를 꿰뚫고 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라 여기까지는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델리아는 아니다. 비록 미모가 출중하다지만 앞의 둘에 비해서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으며 무엇보다 신분 차이가 명확하다.
이 세상에서 평민과 귀족 간의 차이는 좁힐래야 좁힐 수가 없다. 막말로 귀족이 평민을 장난감처럼 다뤄도 증거가 없다면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대다수다.
니콜은 호크가 정식으로 귀족이 되기 전부터 생활하여 아델리아도 허물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다른 귀족은 아니다. 평민이 귀족을 사랑하고, 귀족 또한 평민을 사랑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소설 속에서나 존재한다.
계급 차이가 분명한만큼 귀족은 평민을 '첩'으로 둘 수밖에 없으며 대우가 어떨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정실 부인과 사이가 좋다면 이야기가 약간 달라지겠지만 극도로 희박한 확률이다.
'마리 그 애는 권위의식이 없어보이지만...'
니콜이 본 마리는 귀족답지 않게 권위의식이 없으나 가끔씩 단호한 면이 있다. 아무리 성격이 좋은 그녀여도 아이작을 향한 아델리아의 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어찌 될지 모른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이유는 이처럼 많고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걸 다 제치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딱 하나 있다.
니콜은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다가 아델리아를 힐끔 쳐다봤다.
'그 많던 고백을 다 쳐냈는데 왜 이제야? 그것도 아이작을?'
아델리아는 여지껏 수많은 남학생들에게 수많은 고백을 받아왔다. 괄괄하고 당찬 성격에 푹 빠져들어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심지어 그중에는 높은 계급의 귀족 뿐만 아니라 여학생까지 끼어있었으니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절감했다. 하지만 아델리아는 이 모든 고백들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아델리아와 몇 년 간 함께 있던 니콜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결정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게 무엇인지는 절친인 니콜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개인사와 깊게 연관돼 있는 것 같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아델."
"...응."
니콜이 부르자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작게 대답한 아델리아. 이에 니콜은 어떻게 할지 갈피를 잡지 못 하다가 본론부터 꺼내기로 정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설마 우리 아이작 좋아하니? 사람 자체가 아니라 이성으로."
"... ..."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아니라면 고개라도 끄덕여줘."
배려심 가득한 니콜에 아델리아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윽고 복잡한 감정들이 실린 황금색 눈동자와 마주치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려 긍정의 표시를 드러냈다.
그 덕택에 니콜의 심정은 더욱 복잡해졌다. 만약 아델리아가 귀족이고, 아이작이 약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곁에서 열심히 응원을 해줬을 것이다. 허나 상황은 완벽하게 반대였다.
아이작에게는 정식으로 약혼을 맺은 연인이 있고, 더 나아가 아델리아는 평민이다. 소설 속에서 볼 법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버젓이 존재하는 격이다.
니콜도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녀는 이마를 어루만지다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전시회 때."
"그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번에는 아델리아가 고민할 차례였다. 니콜은 아델리아에게 있어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친구이자 소중한 인연이다.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따스한 정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줬으며 혈육보다 더 가족 같은 관계.
자기가 모진 장난을 쳐도 짜증만 낼 뿐 전부 다 받아줬고 선을 넘지 않도록 도와줬다.
더구나 실습에서도 그녀와 팀을 이룰 때면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을 정도로 합이 잘 맞았다. 니콜과 함께 무학 조교가 된 이유도 실습에서는 둘을 이길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친구'가 아닌 '아이작의 누나'로서 대해야 된다. 아이작을 향한 연심이 니콜에게 들켰으니 이제는 도망칠 곳도 없다.
'말... 해야 되나?'
아델리아는 꽁꽁 숨기고 싶은 본인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아야 되나 고심했다. 그와 동시에 아이작이 자신을 위해 건넸던 말이 떠오른다.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그의 말.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옆에 있어준다는 그의 배려.
마지막으로 더러워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던 그의 세심한 손길.
가장 슬플 때 받는 위로만큼 인상적인 것도 없으며, 그게 진심이라면 가슴 속 깊이 와닿는 법이다.
아델리아에게 있어서 아이작은 한 줄기 빛 같은 사람이다. 아이작이 보는 앞에서 가족에게 대놓고 버림받은데다 천한 출신임이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대해주는 남자.
여느 귀족과 달리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는 그의 배려심은 가뭄이 인 땅에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달콤하기 그지 없었다.
'니콜도... 과연 그럴까?'
아델리아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니콜을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귀족이지만 평민과 함께 어울리고 권위의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성격.
하지만 자신은 평범한 사생아도 아니고 버려진 사생아다. 귀족은 물론이고 평민에게조차 안 좋은 소문이 떠돌기 충분한 출신이라는 의미다.
이 세상에서 사생아는 가족에게서조차 버림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다양한 사건사고를 일으킨다. 그래서 사생아와 가까이 지낸다면 사고가 발생할 거라는, 일종의 선입견이 있다.
이로 인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을 향한 연심은 확실하지만, 그 이유를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해도 될지 의문이다.
'...어쩔 수 없어.'
결국 언젠가 밝혀야 할 진실이다. 자신이 아이작의 곁에 있어도 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니콜에게만큼은 숨김없이 진실을 알려줘야 상황이 그나마 나아질 것이다.
설령 자신이 사생아라고 꺼림칙한 표정을 지어도 상관없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으니.
이에 아델리아는 결연한 눈빛을 하더니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때 가족을 만났어."
"가족?"
대답을 들은 니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알기로 아델리아의 가족은 흔히 깡촌이라 불리는, 수도에서 매우 멀리 있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 이유도 우연히 그곳을 순찰나갔던 기사가 아델리아의 재능을 알아보고 추천서를 넣었다고. 헌데 전시회를 보기 위해 그 먼 곳까지 찾아왔다니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거야?"
"응..."
"그게 어때서? 넌 옛날부터 가족 얘기만 나오면 좋아했잖아."
아델리아는 가족과 동 떨어져 생활하고 있어서 가족이 소식을 보내면 엄청 좋아했다. 편지 하나만으로도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녀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이상했다. 약간 꺼림칙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거부감이 겉으로 나타난다고 해야할지.
니콜이 그런 의문을 지니고 있을 때, 아델리아는 어떻게 설명할지 속으로 고민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단번에 이해가 가게끔 하는 게 나을 듯했다.
"...나 사실 귀족이야."
"뭐?"
니콜은 처음에 아델리아가 귀족 출신이라는 고백에 한 번 놀랬고.
"...반만 이어졌지만."
"... ..."
반만 이어졌다는, 그러니까 사생아 출신이라는 소리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디의 어떤 귀족 출신인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평소 니콜도 사생아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대충 알고 있다. 덕분에 아델리아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이렇게나 밝은 애인데...'
니콜을 팔짱을 낀 채 코를 긁적이며 아델리아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했다. 내면에 심한 상처를 품은 사람은 그 상처를 어떻게든 숨기기 위해 밝은 성격을 띄고 있다는 학설이 있다.
그게 정말이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아케데미 생활을 하면서 아델리아에게 슬픔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슬픔을 삼켰을 확률이 극도로 높다. 니콜과 지낼 때는 활발하지만 숙소에 가서 혼자 있을 때는 우울감이 닥쳐오겠지.
니콜은 신입생 행사 당시, 혼자 교복을 입고 외로이 떠돌던 아델리아의 모습이 지금과 겹쳐보였다.
"그때 정면으로 내 존재를 부정당했어. 아예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당했거든..."
"... ..."
"그리고 도망쳤어. 도망치고 혼자 울고 있는데... 아이작이 위로해줬어. 손수건까지 주면서."
아델리아는 그때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입 밖으로 꺼냈고, 니콜은 어째서 그녀가 아이작에게 반했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솔직히 그 어느 누구라도 반할만한 상황이기는 하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혼자 슬퍼하고 있을 때, 웬 잘생긴 남자 한 명이 다가와 손수건을 건네주고 위로까지 해줬으니까.
더구나 그 남자가 평소 호감이 있던 친구의 동생이라면?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니콜은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는 반면, 한편으로는 딱하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아이작, 그러니까 자신의 동생인 것일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열렬히 응원해줬을텐데 아이작이라서 문제다.
정식으로 약혼까지 맺었고, 더 나아가 마족 공주까지 큰 관심을 보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동생. 그리고 아델리아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아이작은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제논 일대기의 작가다.
니콜이 더욱 복잡해진 듯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때, 그녀의 무반응을 보고 약간 불안해졌는지 아델리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응? 뭐가?"
"내가... 사생아라는 거. 너도 알잖아. 사생아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아델리아의 질문에 니콜은 눈을 깜빡거렸다. 반면 아델리아는 의기소침한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려는 찰나, 니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피식거렸다. 그에 아델리아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는 듯,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채 같잖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니콜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뭐 어때서? 난 애당초 평민인 너랑 쭈욱 지냈는데 사생아라고 별 거 있겠어?"
"그,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 내가 너랑 지낸지가 몇 년인데. 네 괴상한 성격까지 받아준 나야. 출신 가지고 뭐라 할 시기는 한참 지났다고.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기사는 오로지 실력만으로 위아래를 구분하는 실력주의라고. 그러니 네가 사생아 출신이든, 왕족 출신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알겠지?"
"... ..."
그 말에 아델리아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한 걱정거리가 전부 부질없는 이야기라는 듯, 불안과 걱정을 모두 씻겨주는 말이었다.
보통 배려심 많은 귀족은 의외로 드물다. 기본적으로 선민사상에 깔려있을 뿐더러 기본적으로 오만한 성격을 갖기 마련이다. 평민을 대할 때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니콜과 아이작은 다르다. 정말이지 귀족이라 생각할 수 없을만큼 배려심이 깊었으며 평민이든 사생이든 공평하게 대해준다.
'이런 사람들의 가족이 된다면...'
진짜 첩이 되어도 행복하지 않을까? 설령 첩이 아니라 호위 기사가 되어도 행복할 것 같다.
테르스 왕국에서 정신적 학대를 심하게 받았던 아델리아로서는, 행복한 가정에 속해있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소원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이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는 것이라 해도.
그에 아델리아는 슬픈 표정이 아닌, 특유의 밝은 미소를 띄면서 니콜을 쳐다봤다. 니콜은 그녀가 해맑은 미소를 보이자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나 결정했어."
"뭐, 뭐를?"
"난 귀염둥이 옆에 있을거야."
"아, 아니. 아델? 내 말 좀 들어봐. 이게 생각보다 쉬운 이야기가 아니라니까? 너도 알다시피 아이작은 이미..."
"나도 알아."
아델리아는 니콜의 말을 잘랐다. 뒤이어 뒷짐을 지더니 슬금슬금 니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꼭 첩이 될 필요는 없겠지. 호위 기사가 되면 괜찮지 않을까? 겸사겸사 너희 아버지에게 가르침도 받고."
"그... 우리 가문에는 호위 기사가 따로 없는데..."
"내가 너희 아버지에게 머리 박고 부탁할게. 너랑 너희 오빠는 기사이니 호위 기사가 필요없을테고, 남는 건 아이작이잖아?"
"... ..."
안 되겠다. 이미 마음을 굳힌 듯하다. 아델리아는 평소 니콜의 말을 잘 듣는 편이나 이번만큼은 꺾을 수 없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윽고 아델리아가 니콜의 바로 섰을 때, 그녀는 뒷짐을 풀었다. 그리고 두 팔을 니콜에게 뻗어 서서히 감싸안았다.
꼬옥
소중한 친구에게 해주는 진심어린 포옹. 니콜은 아델리아가 갑작스레 껴안자 당황했지만 저도 모르게 그녀의 등을 안아줬다.
"고마워."
"...아델?"
"정말로... 고마워..."
우는 얼굴을 숨기기 위함인지 아델리아는 니콜을 껴안자마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몸 또한 약간씩 떨리는 걸 보아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너희랑 가족이 되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아."
"... ..."
"그러니까 부탁할게. 한 번만...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차마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일까. 니콜은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쓰게 웃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아델리아의 머리를, 다른 한 손으로는 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면서 위로해줬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친구가 이리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건 옳지가 않다.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 되지 않겠나.
"알았어. 이번 한 번만이다?"
"훌쩍. 으응... 고마워..."
"으휴. 너 나이가 몇인데 질질 짜는거니? 혹시 나이까지 속였어?"
"아, 아냐... 나 22 맞아..."
"그럼 뚝 그쳐. 뚝. 예쁜 얼굴 다 망가진다."
니콜은 아까보다 더 흐느끼는 아델리아를 위로해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작 얘는 대체 여자를 몇 명이나 홀리는 거야?'
이러다가 여자 문제로 큰 사건이 터지지나 않을지 누나로서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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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 일대기 12권은 아이작이 예상한대로 생각보다 빨리 출시되었다. 12권의 내용은 메리가 제논에게 고백을 하는 것과 더불어 단련, 마지막으로 알븐하임의 침공이다.
메리가 제논에게 고백하면서 꺼낸 말은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켰지만, 아이작에게 가장 큰 눈길을 끄는 건 뉴스에 나온 소식이었다.
[알븐하임이 침공되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 즉시 판매 중단할 것.]
알븐하임이 '공식적으로' 낸 성명문이었다. 이처럼 성명문을 내기 위해서는 꼭 여왕의 동의가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의견은 구하는 게 정석이라고 아르웬에게 들었다.
그러니 원로원이 독자적으로 벌인 행위라는 뜻인데, 아이작은 이 성명문을 보고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공산당이야, 뭐야?"
틀니 100년치 압수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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