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세 여자의 이야기(1)
* * *
아이작이 약을 가져오기 위하여 잠깐 숙소로 떠났을 때였다. 리나는 아이작이 떠나자마자 맞은편에 앉아있는 마리를 불렀다.
"마리."
"응?"
이에 마리는 스테이크를 천천히 썰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 아이작이 했던 말 때문에 백설기 같은 피부가 은은하게 붉어진 상태였다.
머리카락도 새하얀 백발이라 홍조가 더욱 눈에 띄었으나 리나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아이작이 말했던 '약'의 정체다.
"아이작이 먹는 약이 뭔지 알아?"
"그건 왜?"
"너라면 알 것 같아서. 이때까지 아이작이 약을 먹는 건 본 적이 없거든."
리나는 마리나 세실리에 비해서 아이작과 함께 있던 적이 적은 편이다. 전시회 정리로 인해 바쁜데다가 아카데미의 학업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하여 공부에만 정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험 기간이 끝난 덕분에 여유가 생겼지만 아이작이 약을 먹는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그에게 지원도 해줄 겸 과거의 잘못을 조금이나 씻어내기 위해 도와줄 계획이었다.
"설마 지병 같은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냐. 그냥... 응. 정말로 예방약이야."
"예방약?"
도대체 뭘 예방한다는 걸까. 그리고 마리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붉어지는 걸까.
리나는 마리와 함께 황궁에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지만 말 그대로 받기만 했다. 남녀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분위기나 은어 같은 건 하나도 모르고 있다.
이게 바로 리나가 어리둥절하는 이유이며, 마리가 선뜻 알려주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대놓고 섹스하기 위해 피임약을 가지러 간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비싼 거야? 비싼 거면 내가..."
"아냐. 그렇게 비싼 건 아냐.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는 거라 도와줄 필요는 없어."
"영양제 같은 거니?"
"음..."
마리가 어떻게 하면 리나가 알아들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세실리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앞으로 마리는 아이작한테 몽둥이로 혼나겠네?"
"몽둥이?"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리나는 별 해괴한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세실리를 바라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이다.
그러나 세실리는 특유의 요염한 표정을 지으며 마리에게 시선을 고정시킬 뿐이었다. 그녀의 장난기가 발동된 순간이다.
"몽둥이로 혼난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아이작이 마리를 때리기라도 해?"
"때, 때리는 건 절대 아냐. 그냥... 놀이야, 놀이. 나랑 아이작끼리 하는 놀이."
"놀이인데 약이 필요하고 너는 아이작의 몽둥이로 혼난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
리나는 말을 하다 말고 멈칫거렸다. 붉은 노을처럼 새빨갛게 익은 마리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마리는 상대방이 진심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반면, 리나의 경우는 관찰력이 뛰어나다.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건 그에 따라 추리하는 능력도 준수하는 의미.
마리가 부끄러워하는 것과 아이작의 방망이로 혼난다는 세실리의 장난기 어린 말. '예방'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약.
마지막으로 둘이서,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끼리 하는 놀이.
위의 모든 것이 합쳐지니 리나의 머릿속에 단 하나의 문화가 두둥실 떠올랐다.
"... ..."
그 행위가 연상되자 리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재미있는 점은 굳어있는 채로 얼굴만 서서히 붉어졌다는 점.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서둘러 정신을 차렸지만, 아무래도 남녀의 사생활과 깊게 연관돼 있다보니 리나조차 어버버거릴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황녀라 해도, 그녀도 결국 남자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처녀다. 과거에는 정략혼을 위해 몇몇 남자와 만남을 가졌지만 그것 뿐이었던 여자.
모든 상황이 정리되자 리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마리에게 질문했다. 마리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턱을 괴는 중이었다.
"...마리?"
"...왜."
"너 설마... 아이작이랑..."
"했어. 네가 생각하는 그거."
"언제부터?"
꿀이 뚝뚝 떨어질 듯한 데이트를 하는 건 수도 없이 목격했다. 하지만 설마 갈 데까지 간 건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이에 마리는 목이 타는지 턱을 괸 채로 차를 한 입 마셨다가 리나가 아닌 세실리를 힐끔거렸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실리는 현재 상황을 흥미롭게 관망하는 중이다.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은 덤이고.
마리는 저 요망한 얼굴에 스크래치를 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시회가 끝나고."
"그럼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맨날 했어. 시험 기간 때는 바빠서 못 했고. 이제 하러 갈 거야."
"어머..."
이제는 입까지 틀어막으며 어쩔 줄 몰라하는 리나였다. '가면'이 홀라당 벗겨진 채 당황하는 리나의 반응은 새롭기 그지 없었다.
마리도 의외라는 눈빛을 지었으나 지금은 이 분위기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이작이 오고 나서도 이 분위기일 것 같았으니. 대신 세실리를 질책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세실리. 굳이 그 말을 했어야 됐어? 그리고 몽둥이가 뭐야, 몽둥이가."
"몽둥이 맞잖아? 이만한 게 몽둥이겠지, 아니면 뭐겠어?"
세실리는 두 손을 일정한 간격으로 벌리며 반문했다. 너무나 직설적인 표현이었으며 그녀다운 방식이었다.
그리고 리나는 세실리가 표현한 몽둥이의 길이를 보며 놀람을 넘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황궁에서 배운 것보다 한참을 웃돈 길이였으니.
하지만 마리는 거기서 한 술 더 떴다.
"이제 그것보다 더 커."
"뭐? 그게 정말이야?"
"응. 키가 크면서 같이 커졌나 봐."
성장하면서 길이가 더 길어졌다는 증언(?)에 이번에는 세실리가 놀랄 차례였다. 그녀는 아이작의 여인이 되고 난 이후, 틈틈이 마리에게 '조언'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아이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행위를 좋아하는지 모두 습득했으나 정작 본방은 들어가지 못 하는 중이다.
그 이유는 마리가 아직까지 아이작을 독점하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악주기'가 슬슬 다가오는 중이다.
악주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에 설명했다시피 명상을 통해 욕망을 절제하거나 모두 해소시켜야 된다.
최근에는 약이 발명된 덕분에 악주기로 고생하는 마족이 줄어들었지만, 세실리는 악주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악주기가 된다면 고통보다 쾌락이 먼저 앞설테니까. 마리는 아이작 덕분에 첫날밤부터 즐거웠다지만 본래 사람마다 궁합이 다른 법이다.
"저... 세실리?"
"응?"
"설마 세실리 너도..."
리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세실리에게 물었다. 그녀는 현재 빨갛게 익어버린 얼굴을 조금이라도 식히려는 건지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강아지처럼 귀여운 외모가 합쳐지니 야한 이야기에 창피해 하는 처녀의 매력을 풀풀 풍겼으며 황녀로서 근엄함과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평소와 달리 숙맥 같은 반응을 보이는 리나가 새로웠을까. 세실리는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빙긋 웃더니 요망한 말투로 대답했다.
"글쎄~ 했을까? 안 했을까? 우리 리나는 어떻게 생각해?"
"너, 너도 할 거야? 아, 아이작이랑?"
"응. 곧 있으면 할 것 같은데?"
"마, 마리가 있잖아. 그런데 그런 말을 막 해도 돼?"
리나는 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그녀답지 않게 말을 버벅거렸다.
반대로 세실리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깜빡한 게 있다는 듯, 아 하더니 리나에게 깜짝 놀랄 사실을 하나 전달했다.
"내가 깜빡하고 말을 안 했구나. 나도 아이작이랑 사귀고 있어."
"뭐, 뭐? 그, 그럼..."
"네가 생각하는 거 맞아. 일부다처제. 보다시피 나는 마족이고, 아이작은 제논이지. 이것만으로도 설명이 될 거라고 생각해."
"... ..."
납득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게다가 세실리는 헬리움의 공주이니 정치적으로도 아이작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터.
하지만 리나는 외설스러운 말들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녀는 물고기처럼 입을 뻐끔거렸다가 고개를 마리 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이윽고 마리의 퉁명스러운 시선과 마주치고, 리나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게 사실이야?"
"응. 참고로 내가 정실이야. 이건 세실리도 인정한 거고. 그렇지?"
"사실 결혼을 안 했으면 정실의 자리는 공석이라 생각해."
"야이씨... 안 되겠어. 너 나가. 아이작한테 떨어져."
"싫은데~"
마리와 세실리가 서로 장난 아닌 장난을 쳐도 리나는 여전히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다. 아무리 진정하려고 해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이 맴돌았다.
'마리랑 세실리가 아이작이랑 그렇고 그런 짓을... 아냐. 세실리는 아직 안 한 거 같은데... 으으...'
머리가 과열되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방금 전 세실리가 두 손으로 펼치면서 보여줬던 간격의 너비가 생각났다.
리나는 마리와 세실리가 서로 자기가 정실이니 뭐니 하면서 투닥거리는 동안 슬며시 자기 아래를 바라봤다. 아이작이랑 사귀는 건 절대 아니나 그녀도 한참 성에 관심이 많을 나이.
뒤이어 둘의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비교했다. 무엇을 비교하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으니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배, 배꼽을 넘기는데? 정말로 가능한 거야?'
또다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 다 받아들인 마리가 대단하기도 하고, 새삼 인체의 신비를 느끼게 되었다.
이에 리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가 고개를 들어 마리를 쳐다봤다. 세실리와의 정실 싸움에서 승리라도 했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저... 마리?"
"응?"
"정말 그게... 다 들어가? 아프진 않아?"
마리는 눈을 깜빡이며 질문을 한 리나와 마주했다. 얼굴은 타들어가듯이 붉어졌으며 푸른색 눈에는 호기심이 담겨있다.
자기가 알던 리나의 모습은 전부 사라졌으며 성에 관심이 보이는 소녀만이 존재했다. 황녀가 아닌, 제 나이대에 어울리는 귀엽고 깜찍한 소녀.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을까. 마리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왠지 리나의 약점을 잡은 듯해서 기분이 좋아졌으며 앞으로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을 듯했다.
"리나."
"으, 응?"
"첫날밤에 있었던 일을 전부 설명해줄까, 아니면 네가 질문한 것만 대답해줄까? 네가 골라봐."
"으으..."
마리가 야릇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묻자 이제는 아예 증기가 날 정도로 얼굴이 뜨거워진 리나. 그러면서도 대답은 듣고 싶은 것인지 시선은 마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개 다 인 것 같아 마리는 전시회가 끝나고 아이작과 치렀던 첫날밤을 기억했다. 그때만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었지만 다 지나간 추억이다.
현재는 서큐버스 못지 않게 성에 눈을 떠버린 한 명의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주도권을 넘겨주면서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탐닉할 뿐.
"그럼 어떻게 해서 나랑 아이작이 밤일을 치렀는지부터 설명해줄게. 처음에는 아이작의 말실수였어."
"말실수?"
"응. 아이작이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고 자기 침실에 나를 초대했거든. 그것도 커피까지 시키면서."
"그, 그건..."
"맞아. 아이작 딴에는 정말로 나랑 얘기하고 싶어서 부른 거겠지만 나는 아니었거든. 그리고 세실리가 나에게 쓸데없는 말까지 하는 바람에 급한 것도 있었고."
"쓸데없는 말?"
세실리가 언급되자 리나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세실리는 이목이 자기에게로 쏠리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청스레 대답했다.
"난 먼저 안 하면 내가 먼저 가로챈다고 말했을 뿐이야. 설마 당일에 바로 일을 치를 줄은 누가 알았겠니?"
"으으..."
역시 이런 이야기에 약한 것일까. 리나는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성은 그만해야 된다고 소리치고 있지만, 마음은 더 들어도 된다며 유혹하는 중이었다.
황궁에서 배운 성교육과 달라도 너무 다른 친구의 실제 경험담은 리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사했다.
"아이작이 내 몸 전체를 쓰다듬는거야. 마치 깨지기 쉬운 공예품을 다루는 것처럼. 너도 아이작의 손이 얼마나 크고 예쁜지 알고 있잖아? 그런 손으로 내 맨살을 어루만진다고 생각해봐."
"그, 그리고?"
"그리고..."
마리의 첫날밤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리나는 더욱 흥분했다. 이따금씩 달뜬 숨소리를 내쉬는 걸 보아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윽고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부분에 돌입했을 때는...
"...꿀꺽."
침까지 삼키면서 결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마리는 공작가 출신답지 않게 적나라한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이어나갔다.
그런 리나와 다르게 세실리는 이미 여러번 들었던지라 아무렇지 않았지만, 아이작과 깊게 관련된 이야기라 가만히 경청했다.
"새, 새벽까지? 힘들지 않아?"
"다음날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떠있긴 했지. 나도 그땐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 지금은 30분만 해도 녹초가 되는데."
"아, 아이작이 의외로 체력이 강하구나..."
"듣자하니 어릴 때는 기사 훈련까지 받았대. 강할 수밖에 없지."
"꿀꺽. 그, 그 다음에는? 아침에는 별 일 없었어?"
"있긴 있었지. 어떤 상황이었냐면..."
놀람의 연속이었다. 리나의 머릿속에서 연약하기 그지 없었던 아이작의 이미지가 한 명의 '남자'로 바뀌는 순간이다.
최근 마리의 얼굴이 밝아지고 묘하게 예뻐진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전부 아이작과의 동침 때문인 것일까. 리나는 마지막까지 화려했던 그들의 첫날밤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의 첫날밤은 여기가 끝이야. 그 이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해버려서 뭐라 말해줄 게 없네."
"그럼 감상평을 말해볼래?"
"... ..."
감상평이고 나발이고 리나는 용량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상상할 수록 아래가 점점 찌릿해지는 느낌이다.
단순히 듣기만 해도 이정도인데 실제로 한다면 어떨지 가늠이 잡히질 않는다. 아이작과 사귀는 건 아니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는 기준으로 잡혀버렸다.
최근 만나고 있는 남자가 아이작밖에 없을 뿐더러, 과거에는 잭슨이 달라붙었으나 조별 과제 이후 알아서 떨어져나갔다. 레오르트가 있으나 그는 친오빠이니 별개로 치부했다.
똑 똑 똑
"나 왔어. 들어갈게."
리나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아이작이 약을 챙기고 돌아왔다. 그에 리나는 살짝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어올렸다.
이윽고 아이작이 문을 엶과 동시에 그녀의 시선이 엄한 곳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마리가 유달리 강조했던 부분으로.
그러나 아이작은 그런 사실도 전혀 모른 채 태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식사 끝났어? 계산할까?"
"응. 그러자. 바로 갈 거지?"
"그렇게 하고 싶어?"
"며칠동안 쌓였단 말이야. 혼자서는 해소가 안 돼."
만약 마리에게 이야기를 듣지 못 했다면 저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리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자마자 앞으로 그들이 무엇을 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에는 손님을 위한 여관이 마련되어 있지만, 꼭 손님만 머무는 건 아니다. 귀족들을 위해 방음이 철저한 방 또한 존재했다.
그러니 아이작과 마리는 그곳에서...
"...꿀꺽."
리나는 다시 한 번 입에 고였던 침을 꿀꺽 삼켰다. 상상만 했는데도 가슴이 떨리고 긴장되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건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으나 막상 이야기를 듣고나니 남몰래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어쩌면 먼 훗날에 있을 자신의 첫날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자신은 미네르바 제국의 황녀이니 남자와 결혼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물론 이건 이성이 말하는 거고 본능은 그저 성적 호기심이 당겼을 뿐이다. 17세라는, 이제 막 성에 눈을 뜰 나이.
황녀로서의 체면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욕심에 따라 움직일 것인지.
리나가 공적인 일이 아닌 사적으로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져든 순간이었다.
"흐응?"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세실리가 묘한 비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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