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124화 (125/763)

< 124화 >

낮잠을 잔다고 했지만 시리스는 약 1시간 동안 미동도 없이 숙면을 청했다. 혹시 죽은 게 아닐까 싶어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대도 그녀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다행히 일정하게 내쉬는 호흡을 확인한 후에는 안심할 수 있었지만, 엘프의 신체 능력을 고려하자면 그녀가 얼마나 피로했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이틀 이상 잠을 못 자면 몸에 이상이 오는 인간과 달리 엘프는 일주일도 거뜬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신디가 있다.

일반인에 가까운 신디도 며칠동안 밤을 지새워도 흐물거리기만 하지, 일상 생활에는 무리가 없다. 다크 서클은 어쩔 수 없으나 수면의 중요성을 상기하면 이것도 가뿐한 편이다.

'그런데 시리스가 기척조차 못 느끼고 있다라...'

호위 기사는 자그만한 기척조차 감지해야 될만큼 예민한 감각을 갖고있어야 된다. 하물며 그게 엘프, 그것도 어둠과 익숙한 다크 엘프라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헌데 시리스는 내가 접근하여 호흡을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꿀잠을 청하고 있다. 약간 과장을 보태어 내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였다.

아르웬을 호위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걸 보면 휴가이거나 비번인 듯한데 괜히 불렀나 싶어 미안해진다.

'일단 시간은 많으니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자.'

마리, 그리고 세실리와의 데이트도 시험 기간의 특징상 나중으로 미룬 참이라 시간적 여유는 많다. 시험은 이번 주 금요일에 모두 끝나니 그때 지인들과 만나지 않을까.

그리고 마리와는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겠지. 나는 본격적으로 성에 눈을 뜬 마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최근에는 약간 줄어든 것 같았지만 장작을 계속 추가하는 건지 그녀의 성욕은 떨어지지 않고 꾸준한 편이다. 더구나 스트레스를 전부 그런 쪽으로 해소시켜서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항상 나를 여관으로 데려갔다.

아마 지금도 시험 때문에 차곡차곡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벼르고 있지 않을까. 나는 내 정욕을 빨아먹어 한층 더 성숙해진 듯한 마리의 미모를 떠올렸다가 서둘러 떨쳐내고 시리스를 바라봤다.

시리스는 이불을 목까지 덮은 채 새근새근 자는 중이다. 어차피 누가 올 리도 없거니와 억지로 깨우는 것도 미안하니 글이나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에 책상 의자에 앉아 마법필을 잡았다. 마리의 아버지, 드미트리에게 받았던 리무버는 원고지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사각- 사각- 스윽-

내가 머무는 숙소에는 마법필로 문자를 적는 소리와 리무버로 글을 지우는 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나는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하여 제논 일대기를 작성했다.

환경도 환경이지만, 리무버의 존재 덕분에 글쓰기의 효율이 배로 늘어났다. 가끔 가다가 뒤늦게 오탈자를 발견하여 대대적인 수정을 거쳐야 됐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없다.

다만 글이 마음에 안 들어서 싹 다 뜯어고치는 습관은 여전하다. 지금도 쓰레기통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원고지가 담겨있으며 조금 있다가 전부 불태울 생각이다.

'일단 제논 일행을 가로막는 악마를... 사탄(분노)으로 할지 아니면 릴리스(색욕)로 할지 고민되네.'

알븐하임이 침공당함과 동시에 제논 일행이 서둘러 복귀하는 걸 가로막는 악마측 간부가 있다.

제논은 카이르의 죽음과 메리의 고백 이후로 각성했기에 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으며 악마들도 경시하지 못하는 실력자로 성장한다.

게다가 일행에는 엘프 마법사 메리, 1세대 마족 진, 그리고 차기 성녀로 지목되는 릴리까지 있어서 파티 자체의 전력만 따진다면 매우 강한 편이다.

'수인은 전투 방식을 모르니까 애매하니 패스. 결국 남는 건 릴리스밖에 없네.'

칠죄종의 전력은 대악마, 디아볼스에게 힘을 부여받은만큼 개개인의 무력이 막강하다. 전략적으로 활용 가치가 높은 '나태'를 제외한 나머지 죄악들은 개개인이 군대와 맞붙을 정도다.

그리고 색욕을 관장하는 악마, 릴리스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매료시킬 정도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며 태생이 마족인만큼 마법도 병행한다.

허나 첫 조우 당시에는 시간을 버는 게 목적이었기에 대충 상대하고 떠난다. 하지만 그 잠깐의 전투마저 제논 일행을 농락하여 칠죄종의 강함을 뼛속까지 각인시킨다.

'릴리스의 전투 방식은 역시...'

세실리를 참고해야겠지. 그녀는 다음 대 차기 마왕이 되는만큼 일신의 무력이 매우 강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농담삼아 한 말이겠지만 본인이 손가락으로 산 중턱을 슥- 훑으면 그대로 갈라진다고. 검술까지 배워 근접전에서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근데 직접 본 적이 없네. 나중에 한 번 부탁해야겠다.'

시험이 끝난 주말에 부탁해볼 생각이다. 그때 만나서 이야기도 나눌 겸 겸사겸사 물어보면 되겠지.

나는 전개를 정리한 노트를 잠깐 덮고는 원고지에 마법필을 갖다 대었다. 11권이 출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반정도 되는 분량을 적었다.

시간적 여유도 많아지고, 리무버의 존재와 지인의 자문이 있으니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빠르게 나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달에만 2권을 연속으로 출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

"...응?"

집필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을까. 나는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펴다가 문득 뒷쪽에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언제 깨어났는지도 모를 시리스가 이불을 반쯤 덮은 채 이쪽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중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시리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방금 막 일어나서 그럴까, 날카로웠던 눈매가 약간 순해졌으며 살짝 드러난 어깨와 가슴으로 하여금 매혹적인 분위기를 내뿜었다. 이불을 완전히 덮거나 벗은 것도 아닌, 반쯤 걸친 식이라 은밀함이 느껴진다.

"...언제 일어나셨어요?"

"정확히 5분 전에 일어났습니다."

대답을 듣고 시계를 확인한다. 현재 시간은 약 5시. 시리스가 소환된 시간이 1시 쯤이었으니 약 4시간동안 숙면을 취했다는 의미다.

나는 머리를 매만지다가 시리스를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몽롱한 건지 귀엽게 하품을 하는 중이었다. 아르웬의 호위 기사로 있을 때는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 같았는데 지금은 상당히 풀어진 모습이다.

뭐, 대부분의 호위 기사가 그렇긴 하다. 언제 어디서든 주인을 지켜야 하기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고, 휴식 때만큼은 풀어놓아야 다음이 편해진다.

그러니 시리스가 저렇게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는 건 별로 이상한 게 아니다. 특히 그녀는 엘프 여왕, 아르웬을 비밀리에 호위하고 있으니 업무 난이도가 극악일 것이다.

"피곤하시면 더 자도 돼요."

"아닙니다. 잠은 모두 깼습니다."

초롱초롱한 황금색 눈동자와 점점 예기가 실리는 눈매를 보아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이에 자문을 구해도 되겠다 싶어 말을 하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시리스는 내가 가까이 접근해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하긴 내가 이상한 짓을 하게 되는 순간 손목부터 붙잡히겠지.

이윽고 그녀의 앞에 도착한 나는 흘러내린 이불 자락을 끌어올려 약간이나마 노출된 구릿빛 살결을 감추었다. 덕분에 얼굴 빼고 그 밑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펄럭-

시리스는 내가 목까지 이불을 끌어올리자마자 팔을 휘둘러 무위로 만들었다. 심지어 아까보다 이불이 더 내려가서 속옷이 다 보였다.

이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도 잠시, 당황한 나는 당황과 황당이 뒤섞인 목소리로 시리스에게 물었다.

"아니. 왜 벗어요?"

"덥습니다."

"이것도 못 참아요?"

"네."

"... ..."

딱딱한 말투로 대답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심부름꾼이지 완전한 노예가 아니었기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나는 이불을 완전히 벗어던져 속옷 차림으로 있게 된 시리스와 마주하게 되었다. 본인은 다크 엘프라 정조에 관대하지만 남자인 나에게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자문을 구하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 일인 걸까. 그래도 겨우 이불만 덮었는데 답답하다고 내팽개치는 건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크 엘프는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인가요, 아니면 시리스 씨가 유별난 건가요? 평소 복장도 노출이 심하던데."

"의상은 다크 엘프 특유의 전투 방식과 깊게 연관이 있습니다. 저희 다크 엘프는 일반 엘프보다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마나에 민감하고, 더 나아가 주변과 동화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로 노출되는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동화율이 상승하죠. 간혹 은신한 다크 엘프가 있던 자리에 일렁임이 발생하는 건 모두 의상 때문입니다."

"그럼 덥다는 거는요?"

"다크 엘프는 언제 어디서든 어둠에 몸을 숨길 수 있도록 평상시에 마나를 순환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체온이 높은 겁니다."

"그럼 마나 소모가 심하지 않아요? 아무리 다크 엘프여도 연소가 장난 아닐텐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크 엘프는 피부로도 공기 중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일종의 전승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죠."

"오..."

그래. 이런 게 바로 자문이지.

나는 얼떨결에 중요한 정보를 듣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노트에 필기했다. 비록 첫 시작은 이상했으나 아주 좋은 정보들이 속속 나오니 흥미로웠다.

덕분에 시리스의 야시시한 몸매에 눈길이 가지 않고 오로지 조언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리스 본인도 딱히 신경 쓰고 있지 않아 큰 무리는 없었다.

"다크 엘프가 머무는 마을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나요? 그러니까 알븐하임에는 여왕과 원로원, 그리고 전사장이 있듯이 다크 엘프는 어떤 구조인지 궁금해요."

"우선 다크 엘프마다 각각의 부족이 있습니다. 총 3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라트나, 쿠미르, 드론으로 칭해지고 있죠. 각각의 장로들이 마을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시리스 씨는 어디 부족 출신이에요?"

"저는 라트나입니다. 주로 전사들을 배출하는 곳으로, 쿠미르는 마법사, 드론은 기술자를 배출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단순한 마을 정도가 아니라 도시 수준인 것 같은데?"

"맞습니다. 숲에서만 지내고 있을 뿐, 생활 수준을 본다면 여느 도시나 다름없습니다. 단지 인적이 드문 숲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이죠."

신기하다. 다크 엘프에 대한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신비로움을 풍겼다.

나는 시리스가 알려준대로 노트에 열심히 적으면서 앞으로의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구상했다. 적어도 고증만큼은 철저히 지키고 싶었기에 오늘 제대로 뽕을 뽑을 작정이다.

"시리스의 계급은 뭐예요? 엘프에게 전사장이 있고 인간에게 기사단장이 있는 것처럼, 다크 엘프의 계급 체계는 잘 몰라서요."

"일단 저희는 장로를 제외하면 딱히 계급이란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막중한 사건이 터지면 명성이 높은 전사를 불러 직급을 부여하는 식이죠."

"직급이라 함은?"

"정찰대장, 아니면 돌격대장 이런 식입니다. 아무래도 저희는 정면 승부와 어울리지 않은 전투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에 표면적으로는 군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명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텐데 방식이 이렇게나 다를 줄이야. 정면승부를 고집하는 엘프와 달리 다크 엘프는 암살이나 잠입처럼 뒷공작에 특화되어 있다.

아마 이런 이념 차이로 인해 머나먼 과거에 서로 싸웠던 거겠지. 다크 엘프는 다른 엘프와 달리 유달리 튀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배척받기에도 알맞았다.

"다크 엘프 내에서 알븐하임의 엘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 참고로 시리스의 의견이 아니라 다크 엘프 전체의 의견이요. 아르웬이 융화 정책을 펼쳤다지만 그간의 앙금이 해소되진 않았을텐데."

"음... 종족전쟁을 겪었던 세대는 호의적으로 보고 있지만 그 이후의 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세대는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도움조차 거절한 알븐하임에 왜 들어가야 되냐고 항의 중이고, 반대로 구세대는 종족 전쟁을 통해 쓴맛을 겪었으니 이제 유해졌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와..."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까지 정확히 반대일 줄이야.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한 가지. 신세대로 추정되는 시리스는 과연 몇 살일까?

겉보기에는 20대 초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엘프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는데도 형벌이라며 불평불만 가지지 않았다.

그에 나는 노트에 펜을 눌리는 걸 잠시 멈췄다가 시리스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속옷 차림으로 황금색 눈동자를 깜빡이는 중이다.

"저... 실례하지만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그게 무엇입니까?"

"시리스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음... 이거 보이십니까?"

시리스는 내 질문을 듣고 반 정도 잘린 귀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금색 귀걸이가 걸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왼쪽 귀는 아무것도 없는 반면 오른쪽 귀에만 2개 정도 걸려있다. 이에 의문이 들자마자 시리스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100년을 넘길 때마다 귀걸이를 하나씩 차는 관습이 있습니다. 제 나이가 정확히 241살이니 2개가 걸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인간이 느끼기에는 까마득한 나이네요."

"100년조차 힘든 인간이 보기에는 그렇겠죠."

시리스는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세실리도 그렇고, 아르웬도 그렇고 100년 이상 살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는 이후로도 여러 질문을 하면서 내가 필요한 정보를 하나 하나 터득했다. 시리스도 군말없이 내가 하는 질문마다 충실히 답해줬다.

그리하여 약 1시간 정도의 질문 타임이 끝난 후, 나는 이제는 되었다 싶어 노트를 덮었다. 슬슬 밥도 먹어야 할 시간이라 나중에 또 부르면 되겠지.

"고마워요.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네요."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저희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쓰실 겁니까?"

시리스가 호기심을 담은 눈빛으로 노트를 바라본다. 나는 노트를 책상 위에 던지면서 입을 열었다.

"네. 안 좋은 이야기는 안 넣을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럼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세요."

"혹시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삼은 건지 궁금합니다."

나는 시리스의 질문을 듣고 책상 위에 올려진 원고지에 고개를 돌렸다. 현실을 바탕으로 둔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인물이 내 상상 속에서 나왔다.

다만 앞으로 등장할 인물 몇몇은 실제 인물을 참고할 예정이다. 릴리스는 세실리를, 엘프 측 영웅은 비운의 전사장 아이케르로.

아무튼 모티브로 삼은 건 맞기에 긍정적인 대답을 꺼냈다.

"아마 몇몇 사람은 그럴 것 같네요. 지금 제가 시리스에게 질문을 한 것처럼, 전 이종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왜요? 시리스도 넣어줄까요?"

전생에서 내가 웹소설 작가로 활동하던 당시, 가끔씩 친구들이 장난으로 하던 말이 있다.

소설 속에 나도 넣어달라.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으나 나는 알게 모르게 등장시켰다. 어차피 그 놈들은 내 소설을 보지도 않았으니.

솔직히 현실의 친구만큼 개성적인 인물도 없다. 친구의 성격을 약간만 수정해서 책에 등장시키면 놀라울만큼의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이 나타난다.

그래서 장난식으로 시리스에게 물은 거고, 당연히 농담으로 치부할 줄 알았다.

"정말입니까?"

"네?"

헌데 시리스는 드물게 눈을 빛내더니.

"그래주신다면 영광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짧게 잘린 귀까지 토끼처럼 쫑긋- 세우면서 기대감을 표현했다.

훗날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크 엘프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더라.

"... ..."

나는 기대감을 드러내는 그녀에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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