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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106화 (107/763)

< 106화 >

비록 달빛 하나만이 비추는 침실 안이었지만, 가르츠는 전조도 없이 등장한 다크 엘프의 외모를 재빠르게 훑어봤다.

마족들은 기본적으로 어둠을 파훼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 이런 암흑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리디 어린 레인과 달리 성숙한 몸매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으며, 구릿빛 피부와 대비되는 흰색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반쯤 잘려나간 듯한 그녀의 귀에는 귀걸이가 걸려있었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자면 다크 엘프는 특정 나이를 먹을 때마다 귀걸이를 차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레인의 귀에는 아무것도 없는 반면 눈 앞의 여인은 정확히 3개의 귀걸이를 차고 있다.

적어도 레인과 달리 단련된 전사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 마법과 감각을 모두 속이고 남몰래 접근한 걸 보면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 손 놓는 것이 좋을거다."

한동안 피가 말리는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을 때 여자가 단검을 더욱 가까이 대며 싸늘하게 말했다. 허스키하면서도 낮은 톤의 목소리로 하여금 성인으로서의 완숙미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와 더불어 형형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에는 짙은 적의가 담겨있다. 아이작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라면, 시리스의 눈은 맹수처럼 위협적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가르츠는 목에 단검이 더 가까이 다가와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피식거리며 도리어 어이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너희 다크 엘프라는 족속은 하나 같이 이상한 취미가 있군. 한 놈은 물건을 훔치고, 또 한 놈은 가만히 지켜보기나 하고."

"... ..."

"이, 이 목소리는... 시리스? 시리스 언니?"

여전히 가르츠에게 목이 짓눌리고 있던 레인이 꿈틀거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새로 나타난 다크 엘프의 이름이 시리스인 모양이다.

또한 레인이 아는체를 하는 걸 보면 분명 안면을 튼 사이일 터. 가르츠는 둘의 사이를 예측하다가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갔다.

지금 중요한 건 레인에 대한 처우, 그리고 만일에 대비하는 것이다. 우선 시리스라는 다크 엘프가 등장한 이상 가급적 전투를 피할 생각이다.

'초고가 손상되면 안 된다.'

이미 제논 일대기의 초고라는 걸 확신한 이상 자그마한 손상조차 가해지면 절대 안 된다. 마족에게 있어서 국보로 지정되다 못해 세대와 세대를 거쳐 보호해야하는 물건이었으니.

그러기 위해서는 시리스의 목적을 파악하고, 레인에 대한 처우를 결정지어야 한다. 이에 가르츠는 레인의 목을 더욱 강하게 짓눌렀다.

"악...!"

"...당장 그 손을 놓지 않으면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보아하니 시리스라는 다크 엘프는 레인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르츠가 더 강하게 압박하자마자 시리스가 살기가 스멀스멀 풍겨나왔으니.

가르츠는 적의를 넘어선 무시무시한 살기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움을 유지했다. 겉으로 보면 자신이 불리해 보여도, 주도권은 엄연히 자신에게 있다.

무엇보다 목이 베어지는 순간 레인의 가녀린 목은 힘없이 부러질 것이다. 목숨을 교환하는 것이나 이미 세실리가 모든 정황을 속속 파악하고 있으니 뒷일을 맡기면 그만이다.

비록 다크 엘프와 마족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지겠지만 자신은 헬리움을 수호하는 리퍼. 목숨 따위는 기꺼이 내어줄 용의가 있다.

"지금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군. 네가 내 목에 겨눈 검부터 떼면 놓아줄 생각은 있다."

"... ..."

"그리고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이건 순전히 이 애새끼가 잘못을 저질렀고, 나는 그걸 막기 위해 제압한거다. 정당방위라고 보는데?"

가르츠가 조목조목 팩트를 집어내자 시리스가 미간을 좁혔다. 하나 같이 죄다 맞는 말이라 무어라 반박할 수가 없다.

이건 엄연히 레인이 무단으로 남의 저택에 침범하여 벌어진 일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만 이건 시리스조차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 애새끼가 훔치려던 게 뭔지는 알고 있나?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 ..."

"침묵은 긍정으로 받아들이겠다. 너도 알다시피 이건 우리 마족에게 있어서 신이 내려주신 은총이나 다름없는 물건. 그걸 훔치려고 한 죄는 목숨으로 받아야 마땅하다."

"후, 훔칠 생각은 없었어요! 전 정말로 확인만 하려고...! 악!"

레인이 억울함을 담아 항소했으나 가르츠는 그녀의 목을 누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서늘한 눈빛으로 레인을 내려다 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 헛소리로 받아들이는 법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네가 한 행위는 절대 용납받지 못 해. 네가 저지르던 행위는 우리 헬리움에게 선전 포고나 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게다가 전에는 1권의 초고도 훔쳐서 좋은 명분도 있지."

"그, 그건... 여왕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새끼 아니랄까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다크 엘프의 교육이 어떤지 안 봐도 뻔해."

"... ..."

연이은 팩트 폭격에도 시리스는 아무런 반박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 했다.

레인은 순전히 좋은 의도로 초고를 훔치고, 그 후로 상황이 꼬여버리자 초고를 되돌리기 위한 작업에 나섰다.

그때까지는 시리스도 제지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봤다. 방식이 잘못되었지만 어쨌거나 '책임'을 지려는 모습은 나름대로 괜찮았으니.

그리고 만약 레인이 초고를 훔치려 했다면 곧바로 제지할 생각이었다. 지난 번에는 가벼운 징계로 끝났으나 이번에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엄벌'에 처해졌을 것이리라.

다행히 초고를 훔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지만 상황이 꼬일대로 꼬인 바람에 이 사단까지 와버렸다. 유독 이 방에만 고도로 설정된 방범 마법이 설치돼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의심스러웠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그렇다면 현재 시리스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다. 그녀는 바닥에 꽂혀있는 레인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단검을 서서히 물렸다.

"...원하는 게 뭐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

이제 주도권은 완벽히 넘어왔다. 가르츠는 복면 속에 감추어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뒤이어 그는 레인의 목을 압박하던 손에 힘을 슬며시 풀고는 시리스를 향해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덜 떨어진 애새끼의 목숨을 가져가고 싶지만..."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지."

이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가르츠는 무던하게 넘겼다. 그럴수록 불안해지는 건 시리스였다.

레인은 엘프 여왕, 아르웬과의 연결 고리다. 아르웬은 여태까지 배척받던 다크 엘프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첫 번째 단계가 레인의 후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면 벌써부터 그 단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그것도 아르웬이 아닌 레인의 잘못 때문에.

비록 고향은 자신들을 버렸지만 다크 엘프는 여전히 고향을 향한 마음이 남아있다. 만일 아르웬의 집권 동안 알븐하임으로 돌아가지 못 한다면 다음 세대까지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공주님.]

[흠...]

시리스가 속으로 불안해하는 동안, 가르츠는 세실리에게 텔레파시로 현재 상황을 모두 전달했다. 시리스와 대화하는 동안 세실리에게 속속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세실리도 공연에 집중한 것도 잠시,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자 진지한 마음으로 임했다. 곧 있으면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지만 다크 엘프의 처우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잘못은 잘못이지. 애한테 책임을 묻기 싫으면 어른에게 돌려주면 되잖아?]

[하지만 이 년들은 다크 엘프입니다. 마음 속으로 칼을 갈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칼이 누구를 겨누느냐에 따라 우리의 반응도 달라지겠지. 은인에게 겨누어지면 숨기는 거고 뭐고 다 퍼뜨릴 거야. 그러면 뭐... 알지?]

세실리는 뒤를 말하지 않았지만 가르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현재 제논 일대기는 완결조차 나지 않았는데 전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휴재를 한 것만으로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할 정도인데 여기서 초고의 범인이 들통난다면?

알븐하임에게 외교적으로 무시무시한 압박이 가해지는 건 물론, 오늘 있었던 일까지 밝혀지는 순간 전쟁까지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아이작이 전쟁을 멈춰달라고 하면 곧바로 멈추겠지만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가르츠는 세실리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시리스를 노려봤다. 시리스도 여전히 싸늘한 표정이었으나 황금빛 눈동자 속에 일말의 불안감이 심어져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간단하다. 너희가 이 년의 목숨을 바치기 싫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보여주면 된다. 설마 잘못을 저질러놓고 뻔뻔하게 굴지는 않겠지?

"... ..."

"여왕에게 전달해라. 모든 공연이 끝나고 우리가 헬리움으로 복귀했을 때, 이 꼬마랑 함께 헬리움에 찾아오라고. 여왕이 하는 사과는 받지 않겠다. 사과는 우리가 아닌 은인에게 해야하는 것이니. 너희는 책임을 지면 그만이다."

실제로 아르웬이 세실리에게 무릎을 꿇으며 사과해도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초고를 보호하는 것이지, 실제로 피해를 볼 뻔한 건 아이작이다.

그러므로 이건 일종의 협박성 거래나 똑같다. 아르웬과 다크 엘프 쪽에서 레인에게 엄벌을 내린다면 아무 일없이 넘어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작에게 모두 말할 거라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결과가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전쟁 직전까지 가버리다가 알븐하임이 외교적으로 큰 피해를 보고, 더 나아가 다크 엘프와의 관계 또한 파탄날 터.

시리스로서는 그것만큼 막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면 레인을...'

알븐하임에서도 법률이 존재하는 것처럼, 다크 엘프 내에서도 '규율'이 존재한다. 사소한 문제라면 며칠동안 금식을 시키거나 벌을 받겠지만, 이건 무려 종족의 명운이 걸린 사태다.

그리고 레인 뿐만 아니라 아르웬에게도 큰 피해가 갈 것이다. 평소 아르웬은 다크 엘프와 규합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레인에게 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최악의 상황이 터져버렸다.

다크 엘프 내에서는 최소 몇 백년간 감옥에 썩어야 하고, 아르웬으로서는 레인을 추방시켜야 죄를 씻을 수 있다.

[제안을 받아들이거라.]

"?!"

시리스가 복면 아래로 숨겨진 입술을 꽉 깨물고 고뇌하고 있을 때, 뒤늦게나마 마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르웬이 그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시리스는 갑작스러운 아르웬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것도 잠시, 피곤에 찌들어 있는 듯한 그녀의 허락에 두 번 놀랐다.

[여, 여왕님? 언제부터...]

[너와 레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마법으로 파악했거늘... 설마 정말로 이 영지에 초고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구나. 내 불찰이다.]

아르웬으로서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아이작이라는 부분에 충격을 받고, 두 번째로 레인이 그 초고를 확인하기 위해 잠입했다는 사실에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끼어들긴 했으나 후에 있을 폭풍이 무시무시하게 닥쳐올 터. 재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자리를 뜨는 편이 이로웠다.

[하, 하지만...]

[아니. 이건 나와 레인이 잘못한 일이다. 곧바로 알븐하임으로 복귀할 준비를 할테니 한시라도 빨리 레인을 데리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아르웬이 결정을 내린 듯했다. 시리스는 단검을 완전히 거두고는 가르츠를 바라봤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현명한 결정이군."

꾹-

시리스가 결정을 내리자 가르츠는 레인의 목을 압박하던 손에 힘을 완전히 풀었다. 물론 풀면서 그녀의 뒷목을 엄지 손가락으로 누르는 건 잊지 않았다.

도청 마법이 아닌, 훗날 있을 접선을 위한 헬리움의 좌표였다. 그러므로 아르웬이 헬리움이 오기 위해서는 레인까지 대동해야한다.

"어, 언니..."

레인은 몸이 자유로워지자 울먹이면서 시리스에게 오도도 달려가 그녀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시리스는 두려움에 먹혀 올망졸망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을 착잡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과연 그녀는 앞으로 얻게 될 고통을 알고는 있을까. 어린 아이라 해도 대량살상마법을 발동시키는 아이템을 발동시킨거나 다름없었으니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한 규율이 레인을 기다리고 있다.

시리스는 레인의 밀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다가 가르츠를 바라보며 특유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약속은 지키겠다. 시기는?"

"공주님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그 애새끼에게 처벌을 내려주고, 우리에게 알려줬으면 하는군."

"...알겠다."

"그럼 어서 썩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은 게 좋을 것이다. 그때는 곧바로 목숨을 끊을테니."

저벅- 저벅- 저벅-

가르츠의 축객령에 시리스는 레인을 데리고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이윽고 달빛조차 비추지 않은 어둠 속에 완벽히 스며들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레인과 달리 탐지 마법에서조차 감지 되지 않은 완벽한 은신술. 가르츠는 실로 무시무시한 다크 엘프의 능력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후우...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했어. 이제 정리하고 돌아와.]

마지막으로 세실리에게 보고를 한 가르츠. 그는 세실리의 격려를 듣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그녀에게 물었다.

[그... 외람된 말씀이지만 현재 공연은 어떻게 됐습니까?]

[응? 이미 다 끝났는데?]

[... ...]

[네가 봤어야 했는데 너무 아쉬웠어. 마지막에 성악대가 합창을 불렀는데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니까?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야.]

그 검은 귀쟁이 새끼들 죽일 걸 그랬나. 가르츠는 이를 악 깨물며 분노를 삼켰다.

하지만 갈고 닦은 절제를 통해 분노를 다스렸다. 뒤이어 그는 바닥에 어지러진 초고를 정리하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다행히 구겨지지는 않았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복원 마법을 사용해야겠...'

가르츠는 초고를 정리하려다 말고 멈칫거렸다. 정말로 이곳이 제논 일대기가 집필되는 곳이라면, 아직 발간되지 않은 원고도 있지 않을까?

비록 아이작이 휴재를 결정했다고 했지만 외전이 따로 나온 것처럼 다른 책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안 돼. 참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새를 못 참고 원고를 찾았겠지만 가르츠는 마족, 그것도 인내심 하나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리퍼의 단원이다. 그는 원고를 찾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억누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은 엉망이 될 뻔한 초고를 소중히 책상 서랍에 넣는 것부터 우선이다. 어차피 신간은 몇 년 내로 나올테니 그때까지 진득히 기다리면 끝이다.

'아무리 그래도 자물쇠로만 보관하는 건 좀 아닌데... 공주님께 건의해야겠어.'

오늘 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아이작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그 일을 정면으로 맞이한 가르츠로서는 살짝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초고의 위치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자물쇠까지 단단히 봉인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쾅!

"악!"

급하게 일어나려던 탓일까. 가르츠는 책상 모서리에 머리가 찍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마족이라 해도 책상 모서리에 찍힌 것만큼은 어쩌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히 방음 마법을 진작에 펼치고 있던터라 바깥의 기사들에게 들키진 않았지만, 얼얼한 고통에 한동안 침음성을 흘렸다.

"끄으으... 짜증나는군..."

오늘따라 재수가 없는 가르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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