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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102화 (103/763)

< 102화 >

마리가 두 손을 얼굴에 파묻으며 꿍얼거리는 동안 리루스 악단의 준비가 거의 끝나기 직전이었다.

예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단원들이 무대 위로 하나 둘 씩 올라와 준비를 갖추고, 관람석에도 사람들이 점점 몰려오면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잠시 후 귀족들만 특별히 허용되는 VIP석은 물론 그 밑에 임시적으로 제작된 관람석 또한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찾아온 아이들과 나이가 지긋하신 노부부, 그리고 모험가와 더불어 이종족들까지.

남녀노소, 종족불문하고 공연을 시청하기 위해 속속 모이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제논 일대기의 팬인 걸까, 아니면 리루스 악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것일까.

어쩌면 둘 다 포함될 수도 있다. 나로서는 뿌듯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려온 것이, 평야 자체를 무대로 지정한 게 좋은 수로 먹혀들었다.

평야가 아닌 건물이었다면 공연을 보지 못 하는 사람들이 생겼을텐데 지금 보이는 바로는 그런 걱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게 정말 팬아트 개념의 공연이라니...'

리루스 악단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는 막대한 가격을 지불해야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이들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후원 형식으로 받는다고 미리 선언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전시회에서 받은 후원은 모두 문화계의 발전을 위해 기부할 거라는, 실로 대인배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 많은 이들의 호감을 샀다.

'저 사람들은 돈보다는 명예가 더 중요할테니까.'

전생에서 본 적이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 사람은 자연스레 명예를 좀 더 갈구하게 된다고.

어차피 이번 연주도 팬아트 개념으로 작곡했겠다, 후원금을 문화계에 기부하면 그들에게 더 큰 명예를 안겨줄테니 좋은 선택이다.

"그냥 이대로 입고 가야할까?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옷도 챙겨가는건데... 아니. 얘는 바보라서 생각도 못 했을 거야."

뭐라는 거야.

나는 아직까지 꿍얼거리는 마리를 힐끔거렸다.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는 건지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있다.

당연히 그걸 보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 전에 내가 했던 말에서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나 싶어서.

하지만 집에서 배웠던 예법을 아무리 뒤져봐도 오해를 살만한 발언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냥 침실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좀 나누자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말이다.

'축제가 끝나면 알게 되겠지.'

지금은 공연에만 집중하자. 괜히 다른데에 신경이 팔렸다간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후로 잠깐 생각을 하는 동안 공연 준비가 거의 끝난 것인지 연주자들 모두 다 자리에 착석해있다. 나는 곧 있으면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줄 리루스 악단의 모습을 세밀하게 살펴봤다.

역시 세계 최고라는 걸 증명하듯이, 전생에서 봤던 오케스트라와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은 규모다. 신입생 행사 때 왔던 악단과 전혀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입생 행사 당시에서도 느낀 거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고, 악기 또한 전생에서 자주 봤던 것과 매우 유사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라던지, 플루트와 같은 관악기, 마지막으로 타악기까지. 전생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두웅!

악기를 하나 하나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무대 뒤쪽에 배치돼 있던 연주자가 막대를 이용해 북을 강하게 내려쳤다. 무대 특정상 사방이 뚫려있는데도 불구하고 천둥 같은 울림이 무대 전체를 뒤흔들었다.

천둥 소리가 무대 전체를 감돌자 시끌벅적했던 관람석이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덕분에 남아있는 건 여전히 잔존해 있는 북의 울림 뿐.

옆에서 혼자 중얼거리던 마리조차 고개를 퍼뜩 들어올릴 정도였다. 나는 북 하나로 천둥 소리를 낼 수 있구나라며 신기해하면서 앞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지면서 무대 중앙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등을 돌리며 관람객과 마주했다. 방금 전 우렁찬 목소리로 안내를 하던 지휘자, 리루스였다.

그는 한 손에 지휘봉을 쥔 채 좌중을 둘러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크게 외쳤다.

"신사숙녀 여러분! 저는 리루스 악단의 작곡가 겸 지휘자, 리루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리루스는 방금 전에도 그러했듯이 우렁찬 음성으로 또박또박 외쳤다. 마나로 음량을 증폭시켰는지 목소리가 무대 전체에 퍼져나갔다.

그의 정중한 인사에 나는 물론, 모든 관람객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로 리루스를 환영해줬다.

이윽고 박수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 때 쯤, 리루스는 세상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께 제 연주를 들려줄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앞으로 제가 보여줄 공연은 제논 일대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죠. 그저 제 공연을 보기 위해 와주신 분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이 제논 일대기를 사랑하기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장황하게 이어지는 그의 설명. 나는 원래 공연 전에 항상 이러는 건가 싶어 잠자코 듣다가 양옆을 힐긋거렸다.

어느새 진정이 되었는지 마리는 공연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중이고, 세실리도 마찬가지였다. 헬리움에서만 지내던 세실리보다는 마리가 좀 더 리루스 악단에 대해 알고 있을테니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마리."

"으, 응?"

내가 부르자 마리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며 궁금했던 점에 대해 물었다.

"원래 공연하기 전에 저런 식으로 설명해줘? 나는 지금까지 공연을 본 적이 없어서."

"아, 아니. 원래는 그냥 바로 공연을 시작하는 편이지."

"그래?"

"그... 아이작?"

"응?"

"손 좀... 잡아도 돼?"

소심한 목소리로 나에게 부탁하는 그녀.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 마리를 바라보다가 손을 붙잡아줬다.

이게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손만 잡는 건데 큰 문제는 없다. 마리는 내가 손을 잡아주자 베시시 웃더니 손에 힘을 주었다.

아무래도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손을 붙잡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야, 좋으니 상관없지만.

"제가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곡의 이름은 '인생(人生)'. 제가 어떤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하고, 또 이런 명칭을 지었는지 잘 아실거라 믿습니다."

"인생..."

오른편에 앉은 세실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리루스의 설명에 흠뻑 빠져든 듯했다.

이전에 리루스는 사크란의 최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니 그가 앞으로 보여줄 곡은 사크란의, 그리고 마족의 인생을 드러내줄 터.

예상이지만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특징이지 않을까 싶다. 마족에게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마족은 어둠이 잘 어울리는 종족이니까.

"마지막으로 공연을 시작하기 전,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 리루스 악단의 공연은 어디까지나 맛보기에 불과할 겁니다. 진짜 공연은 이다음에 있을 매트릭스 극단과 함께 보여드릴 예정이죠."

"응?"

"저게 무슨 소리야?"

공연의 분위기가 어떤지 예상하고 있을 쯤, 리루스가 관람객들로 하여금 혼란을 주기에 충분한 발언을 꺼냈다. 이로인해 관람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당황한 건 마찬가지다. 지금 보이는 악단의 규모만 해도 놀라운 수준인데 이게 맛보기에 불과하다니. 그럼 매트릭스 극단과의 콜라보는 얼마나 뛰어다는 걸까.

리루스는 관람석이 술렁이자 충분히 예상했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물론 맛보기라 해서 공연 시간이 짧거나 그러진 않을 겁니다. 보여드릴 건 전부 보여드릴테니까요. 하하하."

"... ..."

"그럼 이제부터 공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기나긴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려는 조짐이 보였다. 나는 마리의 손을 꼭 붙잡은 채 눈에 힘을 주고 귀를 열었다.

이 세상에는 마법이 아닌 이상 녹음 같은 기능이 없으니 듣는 건 이번 한 번이 끝일...

딱!

그러다 갑자기 세실리 쪽에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세실리를 바라봤다.

세실리도 내가 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미소지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뒤이어 그녀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나에게 알려줬다.

"녹음 마법이야. 내가 원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지. 다만 내가 들은 걸 기준으로 녹음하는거라 나만 들을 수 있어."

"... ..."

역시 엘프와 더불어 개사기 종족답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무대 쪽을 바라봤다.

리루스는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있었다. 무대가 떠나갈 듯한 박수 소리가 이어지고, 리루스는 빙글 몸을 돌려 본인의 악단을 바라봤다.

내가 관람 모드에 들어가자마자 박수 소리도 점점 멎어들더니 머지않아 고요한 침묵이 가라앉았다. 특수 장치를 통해 관람석을 비추던 조명도 꺼져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빛은 오직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악단만 비추고 있을 뿐. 나는 기대감이 한층 부풀어올라 붙잡았던 마리의 손에 힘을 더 강하게 주었다.

그리고...

우우웅-

첼로의 무겁고도 어둡게 느껴지는 선율을 필두로 '인생'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마족의 인생을 표현했다는 본인의 말처럼, 현악기 중심의 어둡고도 엄숙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중간중간 울리는 북소리가 심금을 울렸으며 애잔함마저 느껴졌다.

이렇게 10분가량 동안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이 이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긴박감이 느껴지는 선율로 바뀌었다. 초반부가 마족의 어두운 태생을 드러냈다면 이 긴박감은 평생을 악마와 싸워야 하는 내면을 표현한 것이지 않을까.

방심하게 되는 순간 욕망에 잡아먹혀 그토록 거부하던 악마가 되어버린다. 절제를 통해 억누르고 있다 한들 내면의 악마와 매일매일 싸워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마족은 삶 그 자체가 투쟁인 수인처럼, 자기자신과 평생을 싸워야 하는, 그런 숙명을 지니며 태어났다.

'노, 녹음이 필요해...'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녹음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무럭무럭 차올랐다. 곡이 내 취향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도 있지만, 제논 일대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부분이 가장 컸다.

전생에서도 마음에 드는 bgm이나 ost를 휴대폰에 저장하고 다녔는데 리루스 악단의 연주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국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하나는 잊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과, 다음에도 리루스 악단을 우리 영지로 부르는 것.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자주 잊어버리는 내 기억력 한계상 전자는 거의 불가능하고, 남아있는 건 사실상 후자밖에 없다.

'이거 말고 다른 곡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연주는 클라이막스에 돌입했다. 긴박했던 음악이 서서히 꺼지는 듯하더니 초반부처럼 현악기 중심의 우울한 분위기로 되돌아왔다.

초반부와 별 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이게 더 알맞다고 생각했다.

마족은 어둠과 가장 가깝지만 역설적이게도 빛을 갈구해 누구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 허나 그들의 인생에는 차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비극이 담겨있다.

그리고 비극적인 운명으로 태어난 것처럼, 대부분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는 게 대부분이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며 전반적으로 곡 전체의 분위기가 음울한 이유도 이때문일 것이다.

만약 마족이 아니라 다른 종족, 특히 인간의 삶이었다면 음악으로 표현하지도 못 했을 터. 그리고 리루스 악단이 아니었다면 마족의 인생을 작곡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실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인간이어서 그저 그렇구나라며 감상하고 있지만 마족인 세실리는 더욱 감명깊게 다가올 곡이다. 이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세실리의 표정을 확인했다.

"...훌쩍."

"... ..."

"훌쩍... 흐윽..."

붉디 붉은 눈동자에 물기가 채워지고, 그 물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려 자국을 만든다. 손으로 계속 닦고 있지만 눈물은 기세를 멈추지 않고 뚝- 뚝- 흘러내렸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세실리가 울고 있다.

평소 장난기 많던 모습과 달라도 너무나 다른, 처음 보는 모습이다.

다행히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아 몰골이 꼴사납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충격을 선사하기에는 충분했다.

'뭐... 뭐지...'

설마하며 마리에게 고개를 돌렸으나 그녀도 세실리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이지, 울먹이면서 연주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이밖에도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니 하나 같이 눈이 촉촉해졌거나 훌쩍이며 코를 먹고 있다.

오직 나 혼자만 태연하게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세 시대의 감성인지 아니면 나만 감수성이 메마른 것인지 지극히 혼란스러웠다.

'곡은 분명히 좋은데... 이게 울만한 일인가?'

아무래도 전생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감상 모드에 들어갔다.

여기서 억지로 눈물을 짜내봤자 그게 더 이상할 것 같다.

끼이이익...

그리하여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이올린의 높게 치솟는 음을 끝으로 공연이 종료되었다.

맛보기라는 말처럼, 그 뒤에 분명히 뭔가가 있는데 일부러 끊은 듯했다. 그 이유는 음도 음이지만 악단의 곁에 있는 '성악대'의 존재다.

성악대는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입 하나 벙긋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리루스 악단이 그들을 괜히 앉혀놓지 않았을테니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짝짝짝짝짝!!

하지만 그리 생각한 것도 잠시, 공연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조명이 밝아지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순간 화들짝 놀랄만큼 어마어마한 박수였다.

마리는 나와 손을 잡고 있느라 박수를 치진 않았지만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았으며, 세실리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대충 닦아주며 열심히 박수로 맞이했다.

나는 자국이 생기기 시작한 세실리의 옆모습을 응시하다가 주머니를 뒤적거려 손수건을 꺼냈다. 당연하지만 아델리아에게 줬던 손수건이 아닌 새로운 손수건이다.

"누나. 여기요."

"훌쩍... 응?"

내가 부르자 세실리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 더욱 농염하게 변한 붉은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에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손수건을 전달해줬다. 마리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지만 세실리는 아예 줄줄 흐르는 중이었으니 그녀에게 더 필요할 것 같다.

"아... 고, 고마워..."

세실리는 내가 손수건을 보여주자 창피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내 손에서부터 손수건을 가져간 뒤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꽤 많이 흘린 탓에 자국이 남아있었지만 보아하니 금방 없어질 듯했다.

"감명깊게 들었나 보네요."

"아무래도 나는 마족이다보니까... 어두운 분위기도 그렇고 너무 슬픈 연주였어. 훌쩍."

세실리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한 그녀를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역시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델리아도 그렇고 세실리도 그렇고 눈물과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눈물이 더 많았다.

"아이작은? 아이작은 어때?"

"그냥... 좋은 곡이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평생 기억하고 싶을 정도..."

쿠웅!!

내가 미처 대답을 끝내기도 전, 커다란 진동이 앞에서부터 울려퍼졌다. 관람석 뿐만 아니라 평야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거대한 진동이다.

그 진동에 무대를 가득 메웠던 박수 소리가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진동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윽고 리루스 악단의 뒷편, 그러니까 평야의 중앙 쪽에서 새까만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적절하게도 조명이 그쪽을 비추었던 터라 더욱 상세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사람이었다. 바닥에 엎드려서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

무대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난입했다.

"끄... 끄아아악..."

바닥에 엎드려 꿈틀거리던 사람이 괴로워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도통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 눈만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관람객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선뜻 나서지 못 하는 중이었다.

'뭐, 뭔데.'

꾸득! 꽈득!

모든 사람이 당황하여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에게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듣기 거북한 소리와 함께 등 뒤로 날개가 점점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날개는 일반적인 새가 아닌, 박쥐처럼 털 하나 없이 피막만 존재했다. 그러니까 문헌에서만 보던 '악마'의 날개에 가까웠다.

"으아아아악!!!"

"씨발. 뭐야, 저건."

괴인이 등 뒤로 악마의 날개를 드러내면서 괴성을 지르자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제지하는 손길이 있었으니, 바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던 세실리였다. 그녀는 내 손목을 붙잡고는 걱정말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별 거 아니야."

"벼, 별 거 아니라고요?! 저건...!"

"저 사람 마족 아니야."

"악... 네?"

세실리가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악마로 변하던 남자에게서 모종의 변화가 발생했다.

촤악!

"아아아악..! 커윽!"

그를 비추는 조명 뒤의 어둠에서, 커다란 낫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그의 목을 낚아채듯이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자연히 악마로 변하던 남자의 신형은 조명 뒤로 사라졌으며 조명이 비추는 원 안에는 그 누구도 서 있지 않았다. 오직 그 곁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있을 뿐.

내가 눈을 깜빡이며 멍한 정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늙수레한 목소리 하나가 무대 전체를 울렸다.

-모르페시여... 이 불쌍한 자에게 안식을 선사해주소서...

모르페는 제논 일대기 속에 등장하는 신들 중 하나다. 이 세상에서 실존하는 신, 모라를 기반으로 했으며 제논 일대기 속 마족들이 맹신하는 신.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악마로 변하는 남자의 등장도, 그의 목을 낚아챈 거대한 낫의 등장도.

거대한 낫은 제논 일대기 최고의 씬스틸러, '사크란'의 주무기다.

'...저게 다 연출이라고?'

예고편 하나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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