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보통 축제는 낮에 시작되어 해가 떨어진 저녁 때 끝이 나지만, 간혹 특별한 경우에는 밤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주로 건국제처럼 특별한 의미가 붙어있는 축제가 그러는 편이고 규모가 다른 축제에 비해서 월등히 큰 편이다.
그리고 밤까지 이어지는 축제는 다른 축제와 큰 차이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활기가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낮에는 주위가 밝아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렵지만 밤은 정반대다. 주위가 어두컴컴한만큼 등불이 비추는 곳에 집중하기 쉽다.
활기가 강해지는 이유도 일종의 착각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은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밤에 숙면을 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락한 보금자리는 물론, 안식에 빠져들 고요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밤은 조용하다'라는 인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기본적으로 박혀있다.
하지만 이러한 밤 중에도 축제가 계속된다면? 고요하기는커녕 시끄럽다면? 오히려 낮보다 더 강렬하고 재미있는 공연이 펼쳐진다면?
사람들은 잠도 안 자고 축제를 즐기기에 바쁘니 더욱 시끌벅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두운 건 빛으로 밝히면 그만이니 축제에 집중하는데에 문제가 하나도 없다.
이렇듯 큰 규모의 축제의 진면목은 저녁이 되어서야 드러나고,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공연들도 밤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봐도 낮보다 더 북적거리는 거 같은데? 자칫하다간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그러게. 낮에도 놀랐지만 우리 영지가 이렇게 활발한 건 처음 봐."
"... ..."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 마을의 입구. 브리스와 니콜이 북적거리다 못해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는 마을의 풍경에 하나 둘 씩 말을 주고 받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기분이 어떠세요?"
"으음... 그냥 일감이 늘어난 것 같다만..."
"이이도 참. 좋으면 좋다고 하세요."
여태까지 일을 하셨다가 이제 막 밖으로 나오신 부모님도 영지의 활발함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셨다. 아버지는 약간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어머니는 정말로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으셨다.
나도 관광객들로 가득 채워진 마을을 보며 놀란 건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저녁 식사를 하기 전, 내 침실에 잠깐 들어왔다가 충격적인 발언을 하고 나간 세실리 때문이다.
세실리는 인간과 엘프 사이의 사랑이 진정 이루어질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선택에 따라 후회가 될 수도 있고 그리움이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눈치채지 못 했다. 그녀는 엘프와 인간의 사이가 아닌, 장수종과 단명종의 사랑에 대해 질문한 것이었으니.
이후로 그녀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침대가 넓다니 뭐니 하는 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설마 진짜로?'
나는 실타래가 이리저리 얽힌 듯한 머릿속을 하나 하나 정리했다. 평소 짓궂은 장난을 곧 잘 치는 세실리이지만, 왠지 이번에는 장난이 아닌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악주기가 점점 다가오면서 욕망에 충실해지고, 그에 따라 본인의 욕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중이다.
그러니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은 진실에 가깝다는 의미인데, 나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다.
그녀도 나와 마리가 어떤 관계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텐데 어째서 그런 말을 남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로 마리는 무시하고 일을 저지르는 건 아닐지 약간 두려워졌다.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단호하게 거절할 생각이다. 아직 마리와의 진도도 거기까지 가지 않았는데 세실리와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세실리가 나를 덮치거나, 내가 스스로 성욕을 억제하지 못해 세실리를 탐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 단언할 수 있다.
"아이작."
"... ..."
"아이작?"
"...네?"
"무슨 생각을 하길래 표정이 굳어있니?"
내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상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중이다. 보라색 눈동자 속에는 자식을 향한 걱정이 뚝- 뚝- 묻어나왔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윽고 쓴웃음을 흘렸다. 가족이 다 있는데도 딴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못난 자식이다.
"죄송해요. 아침에 봤던 것보다 더 많아진 것 같아서 조금 놀랐거든요."
"그러니? 하긴, 이 엄마도 깜짝 놀랐는데 너라고 오죽하겠니? 그래서 기분이 어떠니?"
"기분이요?"
"그래. 이 모든 게 다 네 덕분이잖니."
어머니의 상냥한 말씀에 고개를 돌려 마을의 풍경을 둘러봤다. 낮에도 비슷한 질문을 들어본 것 같은데 저녁이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냥 뭐... 묘하네요. 앞으로 열심히 책을 써야겠어요."
"호호. 그래서 연중을 번복할 생각은 있니?"
"으음..."
나는 축제로 정신없는 마을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고민했다. 엘레나 교수에게 추천 학생으로 등록된 이상, 사실상 2학년부터는 역사학에만 집중하면 끝이다.
그러니 2학기가 끝나고 난 이후부터 시간이 널널하다는 의미인데, 그때부터 연재해도 큰 문제가 없다. 내가 연재를 중단한 이유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으니까.
무엇보다 내가 쓴 제논 일대기를 위한 축제를 두 눈으로 직면하자니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엘프 측에서 멋진 인물이 등장할 예정이라서 집필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축제를 보고 감동받았다면서 연재를 재개하면 어떤 반응이 나오려나?'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환호하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전율이 일어나 짜릿해지는 기분이다.
전생에서는 누려본 적이 없던 인기를 몸소 실감하게 되니 내 마음이 살짝씩 흔들렸다.
"...생각해볼게요."
"정말이니?"
"정말로?"
"진짜?"
내가 그리 답하자 어머니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도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하며 가족들의 표정을 하나 하나 훑어봤다.
하나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다. 각기 다른 눈동자 속에는 기대와 열망이 담겨있었다.
심지어 아버지조차 내색하지 않으셨을 뿐,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표정이셨다.
"어, 어디까지나 생각해보는 거예요. 아직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고."
"그럼 공연을 보고 생각을 굳힐 수도 있다는거니?"
왜 생각이 그쪽으로 가는 것입니까, 어머니.
어머니는 정말 기대된다는 듯이 두 손을 모으며 눈을 빛내셨다. 어지간히도 제논 일대기를 보고 싶으신 모양이다.
그에 나는 확실한 대답을 내리지 못 한 채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공연이 얼마나 뛰어난지 지금으로서는 모르겠지만, 전생의 화려한 문화를 접해본 나의 기대에 미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최고의 악단과 극단이라 했으니 약간은 기대해도 되겠지.'
심지어 두 집단 모두 약간의 변태끼가 있다 들었다. 특히 매트릭스 극단은 연출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나는 기대감에 차 있는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을 하나 하나 얼굴을 마주했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한 번 보고 생각해볼게요. 공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1시간 정도 남았단다. 그때까지 전시된 작품을 관람하면 될 것 같구나."
아침에는 세실리와 마리, 이 셋이서 구경을 했다면 저녁에는 가족끼리 전시회를 즐기기로 계획했다.
마리도 가족끼리의 화목을 위해 잠깐 나와 떨어졌고, 세실리는 가르츠와 같이 관람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아델은... 니콜이 괜찮다고 그녀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다. 지금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전시회를 즐기고 있겠지만 걱정이 되는 건 여전했다.
혹여, 그 쓸데없는 미련 때문에 테르스 왕족에게 접근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녀의 눈물을 곁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걱정이 안 될 래야 안 될 수가 없다.
"자자. 이제 얘기는 그만하고 축제나 즐깁시다. 아버지, 공연 예약은 하셨죠?"
"넌 이 아비를 뭐라고 생각하는게냐? 이래보여도 이 영지를 직접 관리하는 영주다. 맨 앞에서 볼 수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
"니콜. 저기로 한 번 가보자. 화장품을 파는 것 같은데?"
"엄마. 전 화장에 관심 없는데..."
"얘는. 여자는 언젠가 꾸며할 때가 오는 법이야. 지난 번 네가 드레스를 입었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는 알고 있니?"
이후로 우리 가족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간혹 흩어질 뻔했지만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아버지가 즉각 찾으셨다.
덕분에 아무런 걱정없이 아침에 보지 못 했던 작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침에 보지 못 했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어 우리 가족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저택은 기사단이 잘 지키고 있을테고...'
현재 우리 저택은 황궁에서 파견나온 기사단이 엄중히 지키는 중이다. 물론 누군가 내 방을 콕- 집어서 털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보호해주니 안심은 된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황궁에서도 꽤나 실력이 뛰어난 기사단이라고. 아버지가 인정할 정도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작. 저기 물풍선 던지기 있는데 한 번 해볼래?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이 맞는 걸로."
"싫어. 나 맨날 지잖아. 형의 동체 시력을 어떻게 따라잡으라는 거야?"
"대신 눈 감고 할게. 니콜 너도 할래?"
"난 됐어. 그리고 오빠도 양심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이제 눈 감고도 상대방이 무슨 행동을 할지 예상할 수 있잖아."
"그걸 왜 말하는 거야? 재미없게."
"난 하나도 재미없거든?"
휴가가 얼마 남지 않은 브리스는 이때까지 억눌렀던 욕망을 모두 해소시키겠다는 듯, 여기저기 싸돌아다녔다. 작품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축제 그 자체에만 집중했다.
다행히 망나니처럼 굴진 않고 스스로 절제하고 있다는 걸까. 군대에서 뼈가 깎이도록 고생했으니 여자에게 시선이 갈만도한데 희한하게도 일체 눈길을 주지 않았다.
'수도에서 따로 해결한 건가?'
아직 도로가 발달되지 않아 우리 영지로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도를 통과해야한다. 그러니 수도에 있는 사창에게서 성욕을 처리했을 수도 있다.
나는 군대에서 받은 월급으로 흥청망청 놀기 시작한 브리스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
그러다 문득 몇몇 사람들이 내 시야에 잡혔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어두운 밤중에 더욱 눈에 띄는 황금색 머리카락과 화려한 외모. 마지막으로 각자 개성에 맞게 차려입은 깔끔한 복장까지.
레오르트, 리나 남매였다. 아침에는 보이지 않더니 저녁이 되어서야 축제에 참가한 모양이다.
외모와 더불어 고귀한 분위기가 은은하게 흘러나오다보니 그들의 공간만 따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들의 곁에 호위 기사가 붙어있으니 마냥 비유적인 표현은 아니었다.
'그런데 얼굴이 많이 피곤해보이네.'
지난 번 만났던 리나도 피곤에 쩔은 듯한 얼굴이었는데 오늘은 더 심해보인다. 심지어 멀리서 보고 있는데도 다 보일 정도다.
화장으로 어찌 어찌 가리고 있었으나 울적한 느낌이 드는 표정만큼은 감추지 못 한 모양이다.
'공연 때 만나겠네.'
지금은 그들끼리 작품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으니 괜히 끼어들지 말자. 미쳤다고 내가 먼저 끼어들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놀다보니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이자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공연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망나니처럼 노느라 정신없었던 브리스도 아버지에게 잡혀왔다.
이윽고 우리 가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마을 중앙 광장에 배치된 작은 공연장이 아니었다. 드넓은 평야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삼아 임시로 제작한, 실로 친환경적인 무대다.
건물을 세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어쩔 수 없었으나 그래도 공연을 치루는 사람들은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무대가 넓어서 마음에 했던가.
나는 리루스 악단의 지휘자, 리루스가 나에게 넌지시 언질했던 것이 기억났다. 매트릭스 극단과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어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과연 그들의 전생의 문화로 한껏 높아진 내 눈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
"아이작!"
"마리?"
VIP석이라 할 수 있는 관람석 중앙에 앉아 대기하고 있을 때 마리가 불쑥 찾아왔다. 가족도 없이 혼자인 걸 보면 다른 좌석에 앉아있다가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마리가 찾아오면서 내 양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가족들의 시선도 마리에게 향했다. 그녀는 가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름답게 웃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그래. 축제는 충분히 즐겼니?'
"건국제만큼 정말 재미있는 축제였어요. 볼 거리도 엄청 많았고요."
"다행이구나. 가족들은?"
"저쪽에 앉아있어요."
마리는 바로 밑 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정말로 그녀의 가족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VIP, 다른 말로 귀족 전용 관람석은 무대를 좀 더 명확히 지켜볼 수 있도록 2층 높이로 설계되었다. 건물을 못 만든다면 차라리 관람석이라도 만들겠다는 판단이었다.
드넓은 평야 주위에 관람석들로 둘러쌓여있는, 진귀한 무대라는 뜻이다. 모든 축제가 끝나고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신경 껐다.
"정말 죄송하지만 아이작을 데리고 가도 될까요? 둘이 같이 관람하고 싶어서..."
"물론이지. 아이작?"
"네."
마리의 간절하게도 들릴법한 부탁에 나 대신 어머니가 수락을 내렸다. 나 또한 마리와 같이 앉고 싶은 건 마찬가지여서 군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마리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푸른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는 마리를 바라봤다.
음... 역시 어두운 밤이어도 마리는 귀엽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 여자친구라서 그런 게 아니고 마리는 언제봐도 예쁘다.
"부럽다. 나도 여자친구랑 같이 앉고 싶은데."
"여자친구도 없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도 남자친구 없잖아."
"나는 안 만드는 거지, 못 만드는 게 아니야."
"난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
현실남매의 투닥거림은 뒤로 하자. 나는 마리의 손길에 이끌려 그녀가 미리 봐두었던 객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아까 앉았던 곳보다 더 높은 위치여서 무대가 훨씬 잘 보였다. 용케도 이런 자리를 알았구나.
"히힛."
"... ..."
마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내 팔을 감싸더니 얼굴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고양이가 그루밍을 하는 듯한 행동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줬다.
그녀도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이렇게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를 두고 다른 여자를 생각한 내가 다 미안해진다.
"둘이 좋아보이네."
"?!"
서로 애정행각을 펼치고 있을 때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농염하지만 언듯 불만이 들어있는 듯한 목소리다.
그에 우리 둘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일부러 아무도 없는 관람석에 앉아있는데 누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도 모를 세실리가 방긋방긋 웃는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왠지 어디서 한 번 겪어본 듯한 상황인데.
"읏차."
세실리는 우리가 당황스러워하는 도중에 내 옆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나와 마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실리는 은근슬쩍 내 팔을 감싸더니 야릇한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
"공연이 끝나면... 알지?"
"... ..."
"기대해도 돼."
공연에 집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