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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97화 (98/763)

< 97화 >

이후로 나는 다양한 서적을 구입한 후에 서점 밖으로 나왔다. 새로 출간된 책이 많아서 고르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으나 아르웬이 곁에서 설명을 해준 덕분에 약간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대신 줄거리는 말하지 않고 이 책이 깊이가 있는지, 그리고 나처럼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적합한지에 대해서만 알려줬으며 본인의 주관적 평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같이 역사와 관련된 서적이로구나. 역사를 좋아하는 것이냐?"

서점 밖으로 나오고나서 길을 걷던 도중에 아르웬이 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역사책만 고르자 의문을 품은 모양이다.

그에 나는 오른손에 쥔 봉투를 들어올리며 그녀에게 답했다. 봉투에는 내가 구매한 책들이 담겨있다.

"재밌잖아. 옛날에 이런 사건들이 존재했다는  신기하거든."

"하긴, 그대의 말처럼 과거라는 건 흥미를 유발하지. 나 또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니. 그리고 그 과거가 현재와 미래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부분도 큰 관심을 이끌지."

"아르웬은 역사를 좋아해? 엘프의 역사가 아니라 다른 종족의 역사를 포함해서."

엘프는 약간 과할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들에게 국한된 이야기다. 종족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엘프는 다른 종족에게 관심이 거의 전무했다.

다만 예외가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마족이다. 천사의 후예인 엘프는 악마의 후예인 마족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으며 암암리에 충돌이 있었다고 책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둘의 힘이 비슷하다보니 직접적인 무력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둘 중 한 종족은 최소한 멸족당할테니 엘프로서는 방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물론이다. 특히 그대와 같은 인간에게 깊은 호기심을 갖고 있노라. 인간은 실로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지. 심지어 마법은 종족 전쟁 당시에 선택받은 자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상류층에 한해서 널리 퍼져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난다면 마법은 평민들조차 쉽게 사용하는 힘이 될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

"음..."

아르웬은 무뚝뚝한 내 대답을 듣더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뒤이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리면서 본인의 생각을 꺼냈다.

"그대의 말마따나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허나 인간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춘데다가 우리 엘프조차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종족.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마법이 대중들에게 퍼질 수도 있다. 당장 제논 일대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마족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대도 알고 있잖느냐."

"하긴, 이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

나는 아르웬의 설명을 듣고 피식 웃었다. 제논 일대기를 직접 집필한 나조차도 이리 될 줄 몰랐는데 세상은 오죽할까.

마법은 상류층에게나 허용된 특권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자연스레 고착화된 현상이다.

어릴 때부터 고등 교육을 받는 귀족과 달리 평민은 자력으로 힘을 터득할 수밖에 없으며, 마법에 접근하는 것조차 차이가 난다.

가끔씩 평민에게 마법사의 소질이 나타나지만 그건 정말로 희박한 확률이다. 또한 범상치 않은 재능을 보유한 것이기에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케어한다.

다시 말해 마법은 접근성만 어떻게 해결한다면 평민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엘프나 마족이 마법에 조예가 있는 건 태생적인 부분이 가장 크겠지만 접근성 이 하나가 압도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엘프는 인간을 한 수 아래로 본다는 게 맞아? 너도 그렇고 이때까지 만난 엘프는 그런 경향이 없는 것 같은데?"

마법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아르웬에게 질문했다.

신디도 그렇고, 엘레나도 그렇고 내가 만난 엘프가 독특한 건지 몰라도 결코 인간을 자기 아래로 두지 않았다.

오히려 엘레나는 나를 추천 학생으로 등록할만큼 고평가하는 중이며 그건 신디도 마찬가지다.

"그건 편견에 불과하노라. 인간마다 엘프를 다르게 보는 것처럼 우리도 인간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고 있지. 다만 종족 전쟁을 겪은 엘프들 대부분은 여전히 인간을 경시하는 중이다."

"어째서? 그정도 굴욕을 겪었다면 생각이 달라질 법한데."

"이유는 간단하다. 종족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이유가 본인들이 잘못했기 때문이지 결코 인간이 뛰어난 거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 실로 우스운 일이로다."

"... ..."

엘프다운 발상에 말문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다. 엘프는 유독 세대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얼핏 들었는데 그 이유를 대충 알 것 같다.

그래도 젊은 축에 속하는 엘프가 인간을 좋게 보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러니까 삽질로 우물을 파다 못해 호수를 만들었지...'

어딜가나 꼰대가 문제다. 아르웬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린 걸 보면 그들을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나는 불쾌해하는 아르웬을 달래줄 겸 심심한 입을 해결하기 위해 길거리를 두리번거렸다. 축제 답게 다양한 노점이 배치되어있거 먹거리 또한 존재했다.

영주의 아들로서 우연히 만난 인연에게 음식도 못 사주면 체면이 서질 않는다.

"아르웬. 혹시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내가 사줄게."

"그, 그럴 필요는 없다. 오기 전에 이미 식사를 해결하고 왔으니."

"식사를 하는 거랑 심심한 입을 달래는 건 달라. 너는 사탕으로 배를 채우지는 않잖아?"

"정말 괜찮은데..."

나에게 실례를 끼치는 게 불편한지 아르웬이 나를 힐긋거리며 작게 답했다. 가끔씩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긴 했으나 그리 신경 쓸 건 아니았다.

"이렇게 만나는 것도 인연인데 먹거리 정도는 사줘야지. 그리고 영주의 아들로서 이정도는 기본이야."

"큼. 큼. 그렇다면야 거절하지는 않겠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데..."

"무슨 조건?"

"그것이..."

자꾸만 내가 아닌 그 옆을 향해 힐끔거리는 아르웬. 나는 그녀의 은회색 눈동자가 향한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텅 비어있는 허공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에 살짝 의문을 품었을 쯤이었다.

"...두 개를 사다오."

"뭐?"

"살 거면 두 개씩 사줬으면 하는구나. 하나는 바로 먹고 다른 하나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싶으니."

"두 개 다 바로 먹지는 않고?"

"나, 나중에 생각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니라."

실로 독특한 발상에 내가 묻자 아르웬은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지만 그걸 고려해도 희한했다.

나는 우물쭈물거리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르웬이 약간이나마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일행이라도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굳이 2개를 살 필요가 없다. 보아하니 일행과 나중에 만나려는 게 아닐까 싶다.

뒤이어 나는 근처의 노점에서 딸기 사탕 3개를 샀다. 원래의 이름은 탕후루라고, 과일을 꼬치에 꿰어 설탕과 물엿, 시럽 등으로 바른 뒤 바짝 얼리는 음식이다.

메우 달달한 맛이 일품이며 과일 본연의 맛도 섞여있다. 거기다 의외로 역사가 길며 축제하면 떠오르는 먹거리 중 하나다.

"여기 있습니다, 손님. 맛있게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맛있어 보이는구나."

내가 딸기 사탕을 3개를 받자 아르웬이 어린아이처럼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나는 노점상에게 돈을 지불하고는 딸기 사탕 2개를 아르웬에게 전달했다.

아르웬은 한 손에 하나 씩 딸기 사탕을 쥐며 먹음직스럽다는 눈빛으로 번갈아봤다. 이런 걸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 같았다.

"과일 사탕을 처음 먹어보는 건 아니지?"

"그, 그렇지 않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니라."

"그럼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먹어. 아, 그리고 너무 꽉 깨물지는 말고. 그러다 이 상하니까."

"...그대는 자꾸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는구나.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그대보다 10배 가까이 살았다."

어린애 취급당하는 게 싫은지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투덜거리는 아르웬. 이러니까 더 어린애 취급받는 거지.

마음 같아서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으나 간신히 인내했다. 단지 귀엽다는 듯이 웃어줄 뿐.

아르웬도 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왼손에 쥐었던 딸기 사탕 하나를 허공에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 행동을 보며 화들짝 놀랐을 때 쯤, 내 눈을 의심케 할 만한 현상이 펼쳐졌다.

팟!

아르웬이 허공으로 던졌던 딸기 사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그 어떤 징조조차 없었다.

그 현상에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자 아르웬은 별 일 아니라는 투로 설명해줬다.

"보관 마법이니라. 공간이동을 통해 내가 직접 만든 공간에 넣은 것이지."

"보관 마법?"

"인간들은 이걸 아공간(亞空間)이라 칭하더구나."

아르웬은 판타지 마법하면 항상 등장하는 보관 마법의 결정체, 아공간을 언급했다.

그리 어렵지 않다는 투로 이야기한 아르웬이지만 그녀가 엘프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인간에게는 고난이도 마법 중 하나다.

아공간이 엘프에게 미리 준비된 도구로 바느질을 하여 주머니를 만드는 형식이라면 인간은 아예 0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그만큼 아공간은 효용성이 크지만 매우 어렵다.

나는 실제로 마법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호기심을 담아 그녀를 쳐다봤다. 역시 어려보여도 엘프는 엘프인 모양이다.

"그럼 다시 꺼낼 수 있어?"

"으, 응?"

"보관했으니까 다시 꺼낼 수 있잖아."

"그, 그것이..."

아르웬이 내 질문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아니,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워하는 중이다.

그에 내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우물쭈물거리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답했다.

"자, 잠깐 시간이 필요하니라!"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래. 엘프가 마법에 조예가 있다고 한들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간 마법은 특히 그렇지."

쿨타임 같은 건가. 마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그냥 그렇구나하며 넘어갔다.

거기다 사정이 있는 듯하니 모르는 척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알았어. 그래도 신기하네. 마법을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거든."

"그대가 원한다면 간단한 마법은 보여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슈욱-

아르웬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녀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위에 새파란 물방울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희고 고운 손에서 물방울이 둥실둥실 떠오르자 감탄을 자아냈다. 마법은 들은 적만 있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더욱 신기했다.

아르웬도 내가 입을 헤- 벌리며 집중하자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검지 손가락을 유려하게 움직였다. 물방울도 그녀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부드럽게 이동했다.

"아까부터 나를 어린애 취급하더니, 지금은 그대가 더 어린 아이 같구나."

물방울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그녀의 실력에 매료되었을 쯤, 아르웬이 물방울을 터뜨리며 놀리듯이 말했다. 여태까지 어린애 취급을 당했던 것에 대한 복수인 듯싶다.

그러나 나는 딱히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생의 어린 시절에 커다란 비눗방울을 처음 본 기분이 이랬을까.

마법이란 건 남자에게 동심을 품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비록 재주 수준에 불과하겠지만 마법은 마법이다.

"이거 말고도 더 보여줄 수 있어?"

"물론이니라. 그러면..."

"아이작?"

아르웬이 다음 마법을 준비하던 와중에 고혹스러운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목소리다.

이에 고개를 뒤로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개인적인 대화를 막 끝냈는지 세실리가 서 있었다. 마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 세실리 누나 왔어요? 마리는?"

"마리는 곧 있으면 올 거야. 그런데..."

처음에 나와 시선을 마주쳤던 세실리는 내 옆에 있던 아르웬을 바라봤다. 잠깐이지만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뒤이어 세실리는 방긋 미소를 짓더니 상냥함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이 분들은 누구야?"

"... ..."

그 질문과 동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오한이 내 몸을 잠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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