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85화 (86/763)

< 85화 >

'축제'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개념 중 하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대인에게 있어서 '농사'란 특히 더 중요한 수단이었기에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에 민감했다. 설령 농사를 짓지 못 하는 환경이라 해도 계절마다 환경이 바뀌는 법.

이런 절기마다 변하는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은 분명 '신'들이 개입했을 거라 믿으며 그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이 제물을 바치면서 생겨난 관습이 바로 축제다.

세월이 흐르고 문명이 발달할 수록 축제는 다양한 형태로 띄기 시작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행하는 축제는 여전히 했지만 역사가 쌓이고 쌓일수록 사람들은 특별한 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중 유명한 축제의 종류라함은 당연히 '건국제'와 새해 축제다. 건국제는 그 나라에 있어서 갖가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왔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어서 가장 방대한 규모의 축제가 열린다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런 건국제조차 새해 축제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새해는 종족을 불문하고 모든 이들에게 다채로운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니 당연히 제일 클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축제'는 전에 말했듯이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며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최근 축제를 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신에게 바칠 성스러운 제물? 성대한 축제를 열게 해줄 자본? 다양한 볼 거리?

전부 다 아니다. 축제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즐겨야만 진정한 의미로 변하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계획을 체계적으로 설정해도, 볼 거리가 많아도 결국 사람이 없다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상식을 고스란히 체감하는 중이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로.

"우와..."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믿지 못할 광경에 입을 헤- 벌리며 감탄했다. 이전까지는 고요함 속에서 나오는 평화가 우리 영지의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 활기를 띄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 영지는 특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골 영지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마을에 청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다가 수도와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골 깡촌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언제나 한적한 편이었다. 청년들이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네이비 기사단장으로서 명성을 떨친 건 모르고 있겠지만, 귀족이 된 평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청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때문에 매일 같이 저택 마당에는 곡소리가 들린 거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거의 비어있던 길거리에는 건물과 노점이 하나 둘 씩 건설되는 중이었으며,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공연장도 드넓은 평야에 짓고 있다.

또한 가끔씩 안면을 튼 적이 있던 마을 주민들도 축제 준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아무래도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계획한 축제가 아니라 제국에서 지원해주는 축제이다보니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얼굴에 불만이 새겨질 일은 없었다. 오히려 마을이 번창하여  행복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있을 것이라.

"내가 이 영지를 하사 받은지 몇 년은 지났지만 오늘처럼 활기를 띄는 건 처음이구나."

게임처럼 건물이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상황을 보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나는 특유의 묵직함이 담긴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그렇듯 강직한 얼굴로 하여금 남자다움이 물씬 풍겼지만 오늘따라 퀭한 모습이셨다. 며칠동안 잠을 못 자서 피로가 겹겹이 쌓인 안색이라 해야 할까.

실제로 전시회가 마이샬 영지로 결정되고 아버지는 부쩍 바빠지셨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결제 서류를 처리하는 건 기본이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면했다.

호기심을 가지고 영지에 방문한 상단과 계약을 한다던지, 건설 책임자와 상담한다던지, 레오르트와 함께 전시회 계획을 세밀하게 짠다던지.

갑작스럽게 폭등한 업무량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하고 야근을 하시니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피곤해도 밖의 모습을 보면 피로가 다 풀리는 느낌이란다. 그리고 이정도는 현역 시절에서도 한 적이 많아.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렇지."

그러고 보니 단순한 기사가 아니라 기사단장이셨지. 평범한 기사단의 일원도 아니고 자그마치 단장이었으니 사무적인 업무도 하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네이비 기사단은 국경을 담당하여 배분받은 예산을 알뜰하게 쓸 수밖에 없다. 돈이야, 다른 곳보다 많이 받겠지만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부족한 곳이 군대다.

심지어 네이비 기사단은 특수부대와 비슷하니 기사 한 명을 양성하는 것만 해도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된다. 아버지는 책임자로서 그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할테니 자연스레 능력이 상승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힘드시겠지.'

듣자하니 어머니도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신다고 들었다. 아마 지금 쯤 어마어마하게 쌓인 서류 더미에 깔려 시름시름 앓고 계시겠지.

그에 미안함이 들어 내가 쓰게 웃자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으셨다. 두터운 손바닥의 감촉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묵직함이 느껴졌다.

"너무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상 이 축제는 오롯이 너를 위한 축제니까 말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나조차도 못 하는 걸 네가 모두 하나 하나 이루고 있잖느냐."

"아버지가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내가 너에게 해준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만이라도 좋구나."

부모님의 심정이 뚝- 뚝- 묻어나오는 말이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과 정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못 하는데 정작 그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찡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아버지는 말없이 내 머리를 헝클어주셨다. 부모님의 앞에만 있으면 철없는 아이처럼 굴고 싶어진다.

나는 베시시 웃었다가 작업 현장을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저것들 전부 전시회가 시작되기 전에 완공되는 건가요?"

"아마 아슬아슬하게 완공되긴 하겠구나. 일단 계획은 복잡하게 전시회를 위한 건물을 따로 설립하는 게 아니라 우리 영지 전체를 이용하는 거거든. 듣자하니 연극의 스케일도 크다고 했으니 아무것도 없는 우리 영지에 적합하지."

아버지의 설명처럼 전시회는 우리 영지 전체를 이용하여 개최된다. 그러니까 박물관처럼 복잡하게 설계된 건물에서 진행되는 행사가 아니라 의미 그대로 축제에 가까운 형식이다.

물론, 악단과 극단이 오는 만큼 계획에 맞게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활발한 낮에는 미술품을 관람하고 고요한 저녁에는 극단과 연극에 집중할 것이다.

나는 저녁에 진행될 극단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악단은 지난 번 아카데미에 신입생 행사에서 본 적이 있다지만 극단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아버지는 연극을 본 적이 있으세요?"

"옛날에 네 엄마랑 몇 번 본 적이 있다. 꽤 재미있을 거란다."

"그 연극도 지금처럼 저기 평야 전체를 사용했어요?"

연극은 원래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게 정상이지만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번 연극은 넓은 평야에서 진행될 계획이다.

이때문에 공연장이 설립되는 곳도 평야였으며 관람석도 만만치 않게 넓었다. 심지어 반투명한 막까지 설치하고 있었는데 아카데미 대련장에서 보던 것과 흡사했다.

"음..."

아버지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턱을 만지적거렸다. 그리고 본인도 신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가 네 엄마랑 본 연극은 무대 위에서 하던 연극이었어. 하지만 이번에 찾아오는 극단이 여러 의미로 유명하다더구나."

"어떤 의미로요? 이름이 매트릭스 극단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가장 현실적인 표현으로 유명한 극단이지. 예를 들어 눈이 내리는 배경이라면 실제로 눈을 내리게 만들고, 비가 오면 비를 내리게 한다더구나. 게다가 폭발까지 일으켜 생동감이 다른 극단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고 들었어."

뭐야. 그정도는 거의 영화 수준 아닌가.

연출 기법만 보자면 전생의 유명했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그건 영화 감독인데다가 지금 이 세상의 과학으로는 그런 연출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버지는 내가 어리둥절한 눈빛을 짓자 피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이 아빠도 자세한 건 모른다. 이런 건 네 엄마에게 묻는 편이 더 좋겠지. 그래도 마법을 쓴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야."

"겨우 연극에 마법을 사용하는 건 좀..."

"그래서 더 유명한 거지. 아마 일원 중에 엘프나 마족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커. 무엇보다 우리는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구경하면 그만이란다."

특수 효과를 사용하는 연극이라... 정말 기대가 된다.

아마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지 않을까.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마저도 충분하다.

나는 점점 기대가 되는 전시회에 창문 밖으로 바라봤다.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건물 몇 채가 금방 세워졌다.

보통 건물을 하나 짓는데만 해도 몇 개월이 소요되는 게 정상인데 대충 지은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나중에 한 번 찾아가야겠다.'

부실 공사라도 했다가 어떤 참상이 벌어질지 모른다. 전생에서도 부실 공사 때문에 건물이 무너진 경우가 매우 많았으니 각별히 주의하는 편이 좋다.

물론 황실에서 지원해주니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세상은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아이작. 혹시 전시회에 참석할 거라는 편지는 보냈니?"

창문 바깥을 구경하는 도중에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이에 나는 창문에서 시선을 뗀 뒤에 아버지를 바라보며 의문을 드러냈다.

"편지요?"

"그래. 우리야, 네가 작가라는 걸 알고 있어서 너를 위한 축제라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논 일대기의 저자를 위한 축제잖니. 정작 그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과연 이 축제에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구나."

다시 말하지만 이 전시회는 전세계의 거장들이 제논 일대기를 읽고 감명받아 본인의 작품을 내놓은 축제다.

그러니 홍철 없는 홍철팀이라고, 정작 원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재미도 반감될 뿐더러 축제에 참석한 예술가들도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있었기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러다 문제라도 생긴다면요?"

"그럴 일은 없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애당초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많을테고 참석할 거라는 말만 하면 돼. 축제가 모두 끝나면 몇몇 예술가들을 언급하면서 정말 재미있었다는 편지를 보내고."

"음... 알겠어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니 잠자코 따르는 게 좋다. 아버지도 내가 기꺼이 수락하자 피식 웃으셨다.

"그럼 나는 잠깐 쉬러 가마. 몇 시간 후면 또 서류가 쌓일테니 지금 쉬는 편이 좋겠지."

"천천히 하세요. 그러다가 쓰러지시면 어떡하시려고."

"현역이었을 때랑 비교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제가 도와드릴 거라도..."

"아니. 너는 가만히 앉아서 축제를 즐기기만 하면 된단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축제는 너를 위한 것이니까 말이야."

아버지는 그 말씀을 남기며 본인의 방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나가신 문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창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로지 제논 일대기의 팬들을 위한 축제. 한산했던 영지는 활기와 생동감으로 채워졌으며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다.

나는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감상에 젖었다. 내가 쓴 작품이 또 하나의 문화가 되어 영지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신문으로 소식을 듣는 것도 아니고 직접 눈으로 보니 체감이 전혀 달랐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비슷한 곳이 있었지.'

김광석 거리라고, 김광석의 출생지였던 지역에 문화거리를 조성하여 그 지역만의 특색으로 변화했다.

'우리 영지도 그렇게 된다면...'

순식간에 변화하는 영지의 모습을 보자니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 랜드마크가 되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지금처럼 일정 주기마다 축제를 펼친다.

이 얼마나 뿌듯하단 말인가. 돈과 권력에 욕심이 없다지만 내 소설이 하나의 문화가 된다는 건 참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다.

이런 걸 명예라고 해야 할까. 어째서 수많은 사람들이 명예에 죽고 못 사는지 얼추 알 것 같았다.

'예술가들도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테고...'

욕심이 나서 그런지 몰라도 점점 내면에서부터 합리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걸 인지하지 못 한 건 아니지만 참기가 어려웠다.

나는 점점 영지답게 변하는 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작게 읆조렸다.

"나를 위한 축제라..."

과연 먼 미래에 이 영지는 어떤 형태로 발전해 있을까. 김광석 거리처럼 하나의 문화 도시로 성장할까, 아니면 그저 그런 영지로 남아있을까.

'출생지가 마이샬 영지라는 것만 알려줘도 되려나?'

늘 말했지만 사람들은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경험 많은 현자로 추정하는 중이다.

그러니 출생지만 마이샬 영지라는 것만 알고 있을테니 약간의 조사만 할 뿐, 그 이상은 없을 확률이 높다. 출생지가 마이샬 영지일 뿐이지 현재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까.

'이건 나 혼자 결정하면 안 되겠네. 아버지랑 리나에게도 물어봐야겠다.'

이후로도 한참동안 창문 밖을 구경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