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이 세상에 가장 완벽한 종족을 꼽자면, 그 누구라도 '엘프'를 꼽을 것이다.
아름답다는 표현조차 부족한 외모부터 시작해서 태생적으로 뛰어난 신체. 그리고 신의 축복을 받아 숨 쉬듯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 능력까지.
타종족보다 월등히 긴 수명을 통해 인원 한 명 한 명이 놀라운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통'과 '역사'를 다른 종족보다 중요시 여기다보니 머리에 든 지식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아무리 완벽에 가까운 엘프라할지어도 여러 방면에서 큰 오점을 안고 있다. 전통과 역사를 중요시한다는 건, 바꿔 말해 변화를 싫어한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한 사람 한 사람이 50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살다보니 본인만의 고집이 남들보다 강한 편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여태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다른 종족도 아니고 엘프이다보니 자연스레 고착화된 사고 방식일 수밖에 없다.
['교만'에 가장 어울리는 종족.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교만에 가장 어울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자신을 신의 후손이라며 자화자찬하지만 결국 필멸자에 불과하다.]
[언젠가 그 오만함이 칼이 되어 본인들의 목을 찌를 것.]
이러한 이유들로 엘프는 다른 종족에게 그다지 좋은 평가는 못 받고 있다. 특히 이중에서 엘프에게 가장 박한 평가를 내리는 종족이 인간이고, 그리고 사이가 좋지 않은 종족도 인간이다.
많은 사람이 드워프가 엘프를 가장 싫어할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드워프는 엘프를 말 많은 꼰대로 취급하는 중이며 엘프도 드워프를 시끄러운 종족이라 생각하고 있지, 적어도 '동급'이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다른 종족도 인간을 특출난 장점이 없는 종족이라 보고 있다. 그런데 엘프는 유독 깔보는 경향이 강하다.
수인이 인간을 증오한다면 엘프는 인간을 원숭이 취급하고 있달까. 완벽에 가까운 엘프로서는 잘난 게 거의 없는 인간을 동급으로 여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의 평가대로 오만함이 스스로를 옥죌 것이라고, '종족전쟁'이 터지고나서 엘프는 본인들이 틀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인간은 엘프를 절대 이해할 수 없고, 엘프 또한 인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종족은 완벽하게 반대되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발전을 갈구하는 인간.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졌기에 현실에 안주하는 엘프.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두 종족이 어떻게 같은 세상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위의 평가처럼 종족전쟁 전쟁 당시 엘프는 막상 큰 위기가 터지자 내부적으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고, 인간은 반대로 내부적으로 힘을 합쳐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물론 인간 측에서도 정치적으로 온갖 구설수가 오고 갔지만, 적어도 엘프처럼 자멸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실제로 엘프가 저지른 실책은 하나 하나 피해가 막심했다. 굳이 전력으로 상대할 필요가 없다며 방심하다가 전략적 요충지를 보기 좋게 점령당한 건 기본이다.
더불어 함정임을 눈치채도 본인들의 힘을 믿고 돌격하다가 큰 피해를 입는다던지, 굳이 싸워줄 이유가 없는데 상대가 인간이라고 맞받아친다던지 등등.
심지어 전쟁동안 혁혁한 전공을 쌓던 전사를 단지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를 저질렀다며 감옥에 투옥시키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그 전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맹공을 펼쳤다.
덕분에 인간은 종전 당시에도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지만 엘프는 완전히 반대였다. 본인들이 평소 무시하던 인간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큰 혼란을 주기에 충분했다.
천만다행히도 그들 스스로도 잘못됨을 인지했다. 그리고 잘못을 인지했다면 바뀌는 건 당연히 행해져야 하는 일.
-낡은 법률은 이제 필요없다. 세상이 바뀌었다.
-신이 정해준 법률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법률을 만들어야한다.
종족전쟁 이후, 엘프가 가장 먼저 한 일을 바로 상층부를 모조리 뜯어고치는 일이었다. 세대 교체였다.
알븐하임은 '원로원'이라는 정치기관에서 각 민족마다 선출된 장로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나서는 방식이 변화했다.
바로 최고 통수권자인 '왕'을 그들의 위에 세운 것이다.
다만 왕이 원로원처럼 위기의 순간에 삽질하지 않도록 많은 제한을 두었으며, 법률을 고쳤을 뿐이지 법률 위에 왕이 군림하지 못 하도록 지정했다.
그렇다면 오래 전부터 알븐하임을 통치하던 원로원은 그대로 사라졌을까? 전혀 아니다.
비록 종족전쟁에서 패배 직전까지 갔으나 그들 덕분에 현재의 알븐하임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그들과 같은 기성 세대도 상당수 포진해있던터라 엄청난 반발이 이어졌다.
이로인해 분열이 극심해져서 하마터면 큰 사태로 번질 뻔했지만 다행히 잘 무마시킬 수 있었다. 이후로 왕을 만들되 원로원은 그대로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결과적으로 알븐하임은 원로원과 왕이 서로 견제하면서 통치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알븐하임 위에 군림하게 된 왕이 개방적인 반면 원로원은 아직까지 낡아빠진 법률을 고집한다는 것.
그러므로 현재 알븐하임은 세대 차이의 끝판왕에 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명이 짧아 세대 교차가 자주 일어나는 인간과 비교했을 때 확실한 차이다.
수명이 길다는 건 어찌 보면 좋아보이지만, 엘프처럼 썩은물이 되다 못해 석유로 변할 수 있는 큰 단점을 안고 있다.
다행히 원로원도 본인의 실책을 깨달아 현재까지는 잡음만 발생했을 뿐,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다. 종족전쟁 이후 알븐하임이 다른 국가와 활발할 교류를 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들은 못마땅할지언정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종족전쟁으로부터 약 5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인간은 물론이고 엘프에게도 매우 긴 시간이라 종족전쟁에서 얻은 상처가 점차 나아지는 듯했다.
[등장할 때마다 큰 파장을 일으키던 제논 일대기. 이번에는 엘프 여왕과 인간의 사랑?]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소설이니까 궁금하다. 그러나 휴재 공지를...]
[특보! 제논 일대기 초고를 도난당하다! 조사 결과 엘프와 수인으로 용의자가 잡혀...]
알븐하임 내에서 또다른 균열을 만들기 시작한 어느 한 작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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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드라실.
최초로 '문명'이 세워진 도시이자 이 세상 모든 지식이 존재하는 알븐하임의 수도.
학자라면 죽기 전에 한 번은 방문해야하는 도시이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아주 귀중한 자원이 담겨있었다.
특히 신들이 직접 관리했다는 신목(神木), '세계수'는 가히 역사의 결정체가 담겨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세계수와 위그드라실은 뜻이 같으나 서로 구분하기 위해 말을 다르게 하고 있다.
아무튼 세계수는 최초의 문명이 시작될 수 있던 원동력이었으며 신화에 따르자면 신들이 엘프를 직접 교육했다고 알려져 있다. 엘프도 그 신화에 따라 위그드라실 안에 고등교육 기관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이밖에도 세계수는 사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신화에 기록된 걸 보자면 당연하디 당연하 현상이다.
그렇다면 정치 기관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감히 신들이 직접 기른 세계수 안에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세계수 바로 앞에 위치해있다.
알븐하임을 통치하기 위해 세워진 이 기관의 이름은 '엘로디아'.
세계수가 알븐하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면, 엘로디아는 정치적으로 가장 지저분한 곳이다.
"여왕 폐하.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이런 모욕은 더이상 저희가 인내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한 엘프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누군가에게 간절히 부탁하고 있다. 노화가 다른 종족보다 더딘 엘프이나 자글자글한 주름과 더불어 늙수레한 목소리로 보건데 상당히 고령의 엘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프의 옆에는 비슷한 나잇대의 엘프 남녀 2명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그들은 고령의 엘프와 달리 젊은 축에 속했다. 노인에 가까운 엘프와 달리 중년 정도로 보였으며 본연의 아름다움이 퇴색되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공통점이라면 3명 모두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 그 불만은 모두 한 명에게 쏠려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느니라. 그런데 그대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청아하면서도 자애로움이 깃든 목소리가 공간 내에 울려퍼진다. 그 목소리에 노년의 엘프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높게 설치된 왕좌에 앉은 한 엘프가 고고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깨에 닿을 듯한 은회색 머리카락와 마찬가지로 은회색 눈동자로 하여금 신비로움을 풍겼으며, 상냥해보이면서도 심지가 굳어보이는 외모였다.
또한 백옥 같은 피부와 더불어 어려보이는 외모로 인해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여느 엘프보다 더욱 눈에 띄는 미모를 갖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아르웬 엘리디아.
100년 전부터 알븐하임을 통치하게 된 엘프들의 여왕이며 현재 '원로원'과 대립 중에 있다.
"하오나 여왕 폐하. 이건 비단 여왕 폐하 뿐만 아니라 우리 엘프를 향한 모독입니다. 어찌하여 우리 엘프가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수장으로 추정되는 노년의 엘프가 다시 한 번 거세게 항의했다. 그에게 동조라도 하는 것처럼 양옆에 기립해있던 엘프 남녀가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악마의 부하, 그것도 최고간부를 우리 엘프로 지정한 것도 모자라 '교만'이라는 모욕까지 선사했습니다."
"아무리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지만 이 책이 전세계에 퍼지고 있는만큼 우리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여왕님까지 건드리셨지 않습니까? 인간과 여왕님의 사랑이라니, 저는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아르웬에게 항의하고 있는 주제는 전세계를 강타한 소설, 제논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다. 제논 일대기는 전세계에 널리 퍼져있는만큼 엘프도 자연스레 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들도 재미있다며 즐겁게 읽고 있었다. 그러나 '칠죄종'의 등장 이후부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더니 이번에 나온 신권에서 말이 많아졌다.
엄밀히 따지자면 원로원을 포함한 기성 세대에서 격한 반응을 나타냈고, 이밖에는 그닥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를 철저하게 배운 신세대는 다양한 관점으로 흥미롭게 지켜봤다.
엘프가 '교만'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건 씁쓸함으로. 엘프 여왕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는 기대감과 불안으로.
허나 원로원은 아니다. 그들은 엘프라는 종족 자체를 능욕하고 있다며 가히 격노 수준으로 화를 표출했다.
"후우..."
아르웬이 깊은 한숨을 내쉬자 강하게 항의하던 원로원도 입을 꾹 다물었다. 몇 백년간 아르웬을 지켜보던 그들로서는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르웬이 한숨을 내쉬었다는 건, 그만큼 화가 났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실제로 고운 미간이 약간 찌푸려져서 언짢음을 드러내고 있다.
뒤이어 아르웬은 은회색 눈동자로 원로원을 하나 하나 살펴봤다. 여전히 불만에 찬 얼굴들이다.
"...정녕 책 하나 따위로 이렇게 화를 낼 일이더냐?"
아르웬이 스산함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원로원에게 대꾸했다. 자애로움은 온데간데도 없이 사라지고 쌀쌀함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느냐? 그대들의 오만함으로 종족전쟁에서 치욕을 겪었지 않았더냐? 이런데도 역사를 부정하려 들다니 참으로 재미있는 짓이로구나."
그녀가 묵직한 팩트를 날리자 원로원의 인상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족전쟁은 치욕보다 더한 수준이다.
다시 말해 아르웬은 면전 앞에서 욕만 안 했지, 그보다 더 심한 욕을 한 거나 다름없다. 원로원 입장에서는 분노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원로원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여기서 화를 냈다간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건 맞습니다. 하오나 폐하. 현재 제논 일대기가 전세계에 뻗치는 영향력을 고려해주십시오. 마족의 인식을 바꾼 것 하나만으로도 절대 무시못할 일인데 이대로 가다간 우리 엘프를 향한 시선도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동의하는 바입니다. 만약 저자가 우리를 향해 안 좋은 묘사라도 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차분함을 유지하며 조곤조곤 본인의 의사를 피력했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으나 본질은 이거 하나다.
제논 일대기의 저자를 찾는 걸 공식적으로 허락해달라. 그렇다면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
"... ..."
아르웬은 미간을 살작 좁힌 채로 원로원을 바라봤다. 너무 뻔한 속내에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다.
그들이 저자를 찾는다면 어떻게 될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엘프에 대해 좋지 못한 묘사가 나오지 않도록 협박하거나 그 이상의 부정을 저지를 터.
스스로를 신의 선택한 종족이라 자부하는 엘프지만, 그중 원로원은 정도가 심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우월주의가 팽배해있다.
보통 같으면 화병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견제지만, 아르웬은 아니다. 그녀가 100년 넘게 여왕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있다.
"호오. 그대들은 고작 책 하나 따위를 무서워하는 것이냐? 정말 흥미롭구나. 신에게 선택받은 종족이라 자부하면서 한낱 인간따위가 쓴 책을 무서워하다니. 우스운 일이로다."
"... ..."
"정 무서우면 그대들도 책을 쓰면 되지 않겠느냐? 제논 일대기보다 재미있는 책을 쓰면 되는 것을 왜 나에게 항의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이처럼 상대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알븐하임의 왕들이 원로원의 견제에 버티지 못 했으나 아르웬은 이야기가 달랐다.
정치적으로 잔뼈가 굵은 원로원의 공격을 가볍게 흘려버리다 못해 반격까지 가할 수 있는 정치적 재능. 숱한 압박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을 갖고 있다.
당연하게도 원로원 입장에서는 그런 아르웬이 껄그럽다 못해 눈엣가시로 보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빈틈을 만드려 시도하고 있으나 도무지 뚫어낼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우선 그대들은 생각은 잘 알겠다. 다만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하는구나. 현재 저자가 휴식 중에 있으니 괜히 찾았다간 우리를 향한 시선이 더 안 좋아질 것이다."
"우리가 언제 그런 시선을 신경써야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신의 선택을 받은 엘프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종족전쟁 당시 큰 실책을 저질렀지만, 그건 우리의 실책이지 인간이 뛰어났던 건 결코 아닙니다."
도통 물러갈 생각이 없는 원로원. 아르웬은 그들의 호소를 듣고 눈쌀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종족전쟁에서도 본인들이 실수했다고 여겼지, 결코 인간이 자신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엘프가 자멸했기에 인간이 유리해질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평가절하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아르웬은 꼰대의 정석을 보여주는 원로원의 행태에 다시 한 번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막았다. 지금처럼 소모전을 하는 건 자신에게 좋지 않았다.
"그만! 언제까지 그딴 책으로 귀중한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더냐? 그대들도 할 일이 많을텐데?"
"하오나..."
"되었다. 그만 물러가도록 하여라. 나도 그대들처럼 생각할 거리가 많으니."
여왕의 노호성이 터지자 원로원도 결국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밀어붙였다간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대표격이었던 노년의 엘프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알겠습니다. 부디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시길."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 또한 신경끄고 있던 건 아니었으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길고 길었던 싸움이 끝나고, 원로원은 알현실 밖으로 움직였다. 밖으로 나가기 직전까지 아르웬에게 매서운 눈빛을 쏘아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
"후우..."
아르웬은 원로원이 모두 나가자 참았던 한숨을 토해냈다. 이어서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마법으로 확인한 후, 작게 투덜거렸다.
"좆 같은 꼰대 새끼들."
여왕의 입에서 나올만한 단어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양아치에게나 어울릴 법한, 실로 걸쭉한 욕설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어려보이는 외관으로 인해 무시못할 괴리감마저 선사했다. 만약 원로원이 이 모습을 본다면 경악하지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웬은 턱을 괴며 어린아이처럼 투덜거렸다.
"왜 저렇게 지랄을 하는 거야? 이해할 수 없네."
따악!
아르웬이 무심하게 손가락을 튕기자 어느 한 책이 허공에서 생성되었다. 인간 대마법사의 경지에 이르러야 시행할 수 있다는 공간 이동 마법이었다.
그녀는 마법을 숨 쉬듯이 사용할 수 있는 엘프였기에 영창도 없이 시행할 수 있었다.
이어서 아르웬은 허공에 생성된 책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붙잡았다. 표지에는 '제논 일대기'라는 제목이 떡하니 박혀있다.
"재미있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