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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71화 (72/763)

< 71화 >

제논 일대기 1권의 초고가 도난당했다. 이 소식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기에는 충분했다.

출판사가 쓴 필사본이나 초판이면 그려러니 하고 넘어가겠다만, 무려 초고다. 아이작이 직접 손으로 써서 출판사로 보낸 원고지.

문화계에 큰 자취를 남기는 걸 넘어 역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문물인데 도난당했다는 건 매우 심각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충격! 제논 일대기 1권의 도난! 누구의 소행인가?]

[금고를 턴 게 아니라 금고 입구 자체를 뜯어버려... 평범한 조직의 소행은 절대 아니야.]

[사장은 현재 충격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 초고를 소홀히 관리한 점에서 책임을 묻겠지만 참작의 여지는 충분하다.]

[누가 금고 채로 털어갈 줄 알았나?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가져간 것인가?]

소식은 불과 사흘도 되지 않아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신문사들도 특보라며 신문을 공장마냥 찍어냈다.

이로인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이 모여 출판사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해산되었다.

심각성을 감지한 높으신 분들, 그것도 황궁에서 파견나온 조사단이 직접 금고를 조사하기 시작했으니까. 사람들은 괜히 불똥이 튈까봐 의심을 품으면서도 각자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공통된 걱정을 안고 있었다. 바로 아이작이 분노해서 혹여 휴재를 무기한으로 하지 않을까라는 걱정.

지금으로서는 부디 윗쪽에서 조사를 잘 해줄 수밖에 없었다.

[검은 마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고로 마족의 소행은 절대 아닐 것.]

[떼어내기 쉽게 일부분은 마나로 커팅을 하고, 그 다음에는 강제로 뜯어낸 흔적이 보인다. 이를보아 범인은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는 강자일 것. 작업 시간이 불과 30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 결과 인간은 아닌 것으로 판단. 마법 처리가 된 금고를 마나로 벨 수 있는 인간은 극소수. 그러므로 태생적으로 신체 능력이 뛰어난 수인이거나 엘프일 가능성이 높다.]

[드워프 또한 아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금고를 통째로 뜯어내지 않고 금고 비밀번호를 알아냈을 것.]

조사 결과, 범인은 수인과 엘프로 점점 좁혀졌다.

인간이 저지른 일이라기에는 작업 시간이 너무 짧은데다가 효율적이었고, 드워프는 월등한 손재주로 금고를 털어버리지 이처럼 문짝을 떼어내지는 않는다.

마족도 특유의 검은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정보가 나와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므로 남은 건 수인과 엘프였다. 이들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더군다나 엘프는 마법으로는 따라올 종족이 없으니 더욱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범인은 무슨 목적으로 제논 일대기 초고본을 가져간 것일까? 초고를 가져간다고 해서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는걸까?

전문가들이 이 부분에서 막힌 탓에 진척이 되지 않았다. 당장은 초고의 행방을 찾을 수밖에 없다.

자그마치 국보로 지정될만큼 가치가 어마어마한 초고이니 암시장에 팔리거나 어두운 루트를 통해 경매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황궁도 이 점을 알고 있기에 샅샅이 파악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제논의 마음. 초고가 사라졌으면 분명 심기가 불편할 터.]

[이러다 휴재가 아닌 절필을 선언해버리면? 모두가 슬퍼하다 못해 다시 한 번 분노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이작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가 직접 손으로 쓴 초고가 사라졌으니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이러한 이유로 조사에 더욱 박차를 가했지만 안타깝게도 증거를 거의 남기지 않아서 실마리조차 잡기 어려웠다.

[알븐하임의 거센 반발. 우리는 그런 저급한 짓은 하지 않는다.]

[애니머스도 마찬가지로 반발해... 우리가 왜 인간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겠느냐? 당치도 않는 짓.]

이뿐만이 아니라 엘프의 나라, 알븐하임과 수인의 나라, 애니머스에서 반발했다. 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말이다.

두 나라 모두 그럴듯한 이유로 반박했던지라 사건은 더더욱 오리무중을 빠져들었다. 자연히 제논 일대기 애독자들의 마음은 시시각각 불안해졌다.

이러다가 아이작이 정말로 절필을 선언해버리기라도 한다면 어떡할까 싶어서. 사람들은 아이작이 공식적인 입장을 취하기 전까지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다.

이렇듯 폭풍이 물러가도 또다른 폭풍이 몰아쳐 세상이 다시 한 번 뒤숭숭해져 있을 때, 현재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인 아이작은 어떨까?

현 사태에 분노하고 있을까, 슬퍼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무던하게 넘기고 있을까?

그의 편지는 사건이 터지고나서 대략 일주일 후, 출판사에 도착했다.

늘 그렇듯이 장문의 편지였지만 대략 요약하자면 이렇다.

[부디 찾기만 해주세요. 제 보물입니다.]

다시 한 번 커다란 폭탄이 떨어졌다.

******

초고를 출판사에게 맡긴지 하루만에 도난당했다는 소식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난리가 날 것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하루만에 도난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문을 보니 금고를 털어간 방식도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금고 비밀번호를 안 것도 아니고 아예 문짝을 뜯어버렸다고 하던가. 분노보다는 황당함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초고를 갖고 갔는지 모르겠으나,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짜증나."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오르기 직전이라는 것을. 평소 무뚝뚝하다는 평가를 받는만큼 나는 감정을 밖으로 잘 표출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짓씹듯이 내 심정을 입 밖으로 꺼낸다는 건 그만큼 내가 화가 났다는 의미다. 솔직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속해있으면 그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다.

제논 일대기는 컴퓨터에 저장되는 웹소설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손으로 쓴 소설이다. 당연하게도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또한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믿고 맡겼는데 도둑맞았다고 하면 누구라도 화가 날 것이다. 그래도 출판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이, 그들도 금고의 문짝을 떼어낼 줄은 상상조차 못 했을거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난다. 어떤 미친 놈이 금고 문짝을 떼어내면서까지 내 초고를 훔쳐갔다 싶어서.

초고의 가치가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높으니 어딘가에 팔아먹을 생각인 걸까.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조사된 것만 따져도 초고를 훔쳐간 범인은 일개 도둑 수준이 아니다. 어쩌면 높으신 분들도 건드리기 힘든 세력에서 꾸민 일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범인은 무슨 목적으로 초고를 가져간 것일까. 들킨다면 국가 차원에서 비난 성명을 날리는 건 물론이고 여러모로 후유증이 심각할텐데.

나는 점점 알 수 없는 범인의 목적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환생하고나서 처음으로 쓴 원고인데 허무하게 사라지니 기분이 우울해졌다.

"저... 아이작? 괜찮아?"

"... ..."

내가 착잡함에 한숨만 내쉬고 있을 때 옆에 앉은 마리가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니 진심어린 눈빛으로 걱정해주는 마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마리."

"응. 아이작."

"잠깐 이리로 와."

비록 강의실이었으나 아직 사람은 많이 없다. 더군다나 나와 마리의 사이를 모르는 사람도 없고.

마리는 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부르자 의아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내 말에 고분고분 따라줬다. 뒤이어 내가 두 팔을 펼치자 마리도 의도를 눈치를 챘는지 베시시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포옥-

포옹은 우울증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확실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이라고 하던가. 그녀와 포옹을 하자마자 꿀꿀했던 마음이 모두 씻겨져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마리와 포옹을 하게 되면 힐링이 된다. 나는 그녀를 껴안자마자 아이처럼 얼굴을 마구 비볐다.

이대로 쭉 있었으면 좋겠지만 주변에 보는 시선이 많으니 아쉬움을 뒤로 하고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좀 괜찮아?"

포옹을 다 하고나서 마리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예약에도 없던 애정 행각에 조금 창피했던 건지 새하얀 뺨이 살짝 붉어져있었다.

이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키스까지 하고 싶었지만 강의실이라 가까스로 억눌렀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황궁에서 직접 발벗고 조사하고 있으니까 머지않아 범인을 밝혀낼 수 있을거야. 나도 도와주고 싶은데 황궁에서 직접 나선 이상 도와주기는 힘들거야."

"그냥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돼."

"우와... 빨리 안아줘."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마리가 팔을 활짝 벌리며 안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하며 그녀와 다시 한 번 포옹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강의실에서만 두 번째로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다. 주위에서 수근거림이 느껴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약간 부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연인이라 광고하고 있네?"

이윽고 서로 몸이 떨어졌을 때 쯤, 뒷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시선을 옮기니 세실리가 턱을 괸 채 요염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듯 보기에는 잘 놀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는 내 입장에서는 기묘함이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부럽지? 부럽지? 부러워도 우리 아이작은 절대 안 넘겨줄 거야."

마리가 나를 강하게 잡아당긴 뒤 와락 껴안으며 세실리를 놀려댔다. 아마 그녀는 세실리가 부러움에 저런 질문을 한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에 세실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아무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뒤로 물러가면서도 붉은빛이 감도는 눈동자는 여전히 나에게 고정된 상태였다.

'그나저나 리나가 안 보이네.'

슬슬 강의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리나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초고 도난 사건 때문에 자체 공강을 했을 수도 있다.

하기야 시위가 진정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대사건이 벌어졌으니 그녀로서는 여러모로 바쁠 것이다. 학업에 집중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거고.

'어련히 잘 하겠지.'

아니. 잘해야지.

황궁에서도 무능함을 입증하기 싫다면 반드시 범인을 찾아야할 것이다. 거기다 리나의 입장에서는 파탄나기 직전이었던 나와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해야할테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며칠마다 리나에게 상황을 묻는 것밖에 없다. 이 사건은 아버지도 해결할 수 없을테니 잠자코 기다려야지.

'그런데 진짜 어떤 미친놈이 초고를 가져간 거지?'

만약 찾는다면 범인의 얼굴을 한 번 쯤 보고 싶었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린 대가로 한 대 후려치게.

*****

"너 그 소식 들었어? 제논 일대기 초고가 도난당했다는 소식 말이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초고가 발표됐지 않았어?"

"그렇지. 그런데 하루만에 도난당했다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금고 입구를 아예 뜯어버렸다더라."

"허. 미친놈일세. 난리도 아니겠구만."

"황궁에서 조사단을 직접 파견했다고 들었어.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지."

주점은 저녁이 된다면 항상 활기를 띄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 떠들거나, 그게 아니라면 술을 진탕 마셔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리고 이러한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홀로 조용히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 써서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호리호리한 체형과 더불어 약간 드러난 얼굴은 선이 매우 고왔다.

이로서 여자라는 것을 얼추 예상할 수 있었으며 피부 또한 독특하게도 구릿빛이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는 그녀는 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다행히 추적자는 없군.'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걸까. 그녀는 속으로 안심하면서 오른쪽 가슴 부분을 더듬거렸다.

오늘 다소 무리를 하면서까지 얻었던 '귀중품'이 고이 잠들어있다. 드워프가 직접 제작했는지 몰라도 마법 처리가 돼 있는데다 재질도 단단해서 작업하기 힘들었으나 그래봤자 자신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 했다.

비록 마지막에는 마나로 작업하기 힘들어서 무식하게 문짝을 뜯어냈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괜찮지 않은가.

'여왕님이 좋아하시겠지?'

그녀는 자신이 모시는 여왕의 미소를 볼 생각에 버릇적으로 길쭉한 귀를 만지작거렸다.

특이하게도 평범한 엘프와 달리 그녀의 귀는 반 정도 잘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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