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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60화 (61/763)

< 60화 >

나는 평소에 무뚝뚝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그 부분에는 반쯤 동의한다. 최근 다양한 사건사고가 터져서 그렇지, 전생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꽤 무던한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행복이 가득 채워져서 그런지 싱글벙글 웃는 날이 부쩍 늘어났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간혹 미친 사람마냥 실실 웃었다.

특히 마리와 함께 있으면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굴만 보면 실룩거리는 입을 감출 수 없었다.

"헤헤헤."

"왜 웃어?"

"그럼 아이작은 왜 웃어?"

"그냥 웃음이 나오는데?"

"나도. 나도."

마리도 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방실거리기 바빴다. 나 또한 마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활짝 웃는 걸로 대답해줬다. 연애 첫 날에는 눈치를 보느라 애정 표현은 삼가했으나 시간이 지나니 그런 마음은 모두 사라졌다.

주변에서 수근거리던 말던. 세실리와 리나가 수상한 눈초리로 보던 말던. 남들이 복잡미묘하거나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말던.

우리 둘은 첫 연애의 달콤함을 만끽하느라 다른데에 신경 팔릴 틈이 없었다. 그때문에 간혹 강의에도 집중하지 못 해 교수님에게 질책을 받긴 했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갔다.

아무튼 나와 마리가 서로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 시점이다. 모든 시험과 과제가 종료되고, 상대적으로 여유 시간이 많아져 우리 둘끼리 돌아다니는 빈도가 많아졌다.

이때문인지 사람들이 우리 둘을 보는 시선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다른 사람의 눈에 '아, 쟤들이 연애를 하는구나'라는 예측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른 곳도 아닌, 주말에 방문한 연무장에서 나타났다. 주말은 각자 개인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마리와 협의를 본 참이다.

"야. 너 요즘 연애라도 하냐?"

"네?"

대련을 하고 잠깐 쉬기 위해 관람객으로 돌아온 아델리아가 대뜸 나에게 그리 물었다. 나는 썩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동안 아델리아는 영 답답했는지 상의를 훌렁 벗어던졌다. 안에 민소매를 입어서 괜찮긴 해도 방심했다가 시선이 엄한 곳으로 갈 뻔했다.

"후아. 덥다 더워. 그래서 대답은 언제 해줄 거야?"

아델리아가 민소매를 펄럭거리며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땀으로 푹 젖은 그녀의 미모가 눈에 들어왔다.

이에 나는 다급히 정신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머릿속으로는 최대한 마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상한 생각이 날 뻔한 걸 최대한 억눌렀다.

"...어떻게 아셨어요?"

"우연히 네가 어떤 백발의 여자애랑 서로 껴안는 걸 봤거든. 아주 대놓고 우리 연애해요, 라고 광고하더라?"

그녀는 장난꾸러기처럼 킬킬거리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내 뺨을 쿡- 쿡- 찔렀다. 그리고 나는 아델리아의 손가락을 손바닥으로 살포시 내밀었다.

"그래서요? 그것 뿐이에요?"

"그것 뿐이라니? 친한 친구 동생이 연애를 한다는데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냐? 누가 먼저 고백했어? 아니지. 그 녀석 이름이 뭐야? 머리카락 색이 흰색인 걸 보면 대충 누구인지 알 것 같은데."

거 참 궁금한 것도 많으시네. 나는 하늘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연이어 질문한 아델리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대꾸했겠지만 아델리아는 괜찮다. 그녀는 세실리와 다른 의미로 장난기가 많고 호기심이 많을 뿐이지, 본성은 좋은 편이다.

만약 본성이 좋지 않았다면 니콜이 챙겨주지도 않았겠지. 게다가 아델리아의 장난은 왠지 관심을 갈구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음... 아마 저희 누나는 누구인지 알고 있을 거예요. 마리라고, 레킬리스 공작가 출신이에요."

"이야~ 우리 귀염둥이 능력도 좋네? 다른 곳도 아니고 레킬리스 공작가라니. 누가 먼저 고백했어?"

"마리가 먼저 고백 비슷한 걸 했긴 했는데, 그냥 서로 마음이 있어서 사귄거나 마찬가지에요."

"오올~"

그 뒤로 아델리아는 신난다는 기색으로 이것저것 질문했다. 어째서 남의 연애사에 이토록 관심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걸 보고 차마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청춘이구만 청춘. 역시 10대의 풋풋함만큼 따라잡을 수 있는 건 없겠지. 혹시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냐?"

"...너무 나가는 것 같은데요."

이 세상은 17살이 되면 성인으로 간주하는만큼은 결혼도 그때부터 할 수 있다. 하지만 말만 17살이지 아카데미로 인해 대부분 22살 전후로 결혼하는 편이다.

그러나 전생의 영향 탓에 나에게 그 시기조차 엄청 빠른 편이었다. 다만 전생의 상식을 대입시킬 수는 없으니 애매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델리아도 본인이 말했놓고 약간 무안했는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긴 좀 그랬지? 미안해. 가끔씩 연애를 하다가 사고치는 애들을 많이 봤거든."

"사고를 친다는 게 아이를 가진다는 거죠? 단순히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잘 알고 있네."

"사고를 치면 어떻게 돼요?"

남녀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말이다. 그건 나와 마리에게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도 그렇고 마리도 몸조심을 하겠지만 앞날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한 방에 둘만 남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다가온다면 과연 내가 참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세실리의 유혹도 못 이긴 내가 그런 상황을 견뎌낼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아니면 마리 쪽에서 먼저 도발할 수도 있고.

"으음~ 글쎄?"

아델리아는 질문을 듣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입꼬리를 씨익 말아올렸다. 능청스러움이 잔뜩 묻어나오는 미소다.

"과연 어떻게 될까? 난 미네르바 제국 출신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걸?"

"그럼 누나한테 물어볼게요."

"재미없기는. 귀족끼리라면 문제는 없어. 계급 차이가 나도 마지못해 결혼시키거든. 문제는 귀족과 평민이야. 만약 남자 쪽이 귀족이라면 여자를 첩으로 들이거나 내쫒을 수 있는데 그 반대라면 이야기가 달라. 가문에서 추방당하는 건 물론이고 그 후가 더 문제지."

"그 후가 더 문제라고요?"

"응. 너 같으면 여태까지 귀족으로 잘 살다가 평민으로 격하된 채 살 수 있겠어? 온실 촉 화초로 자란 영애들이?"

설명을 듣고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늘 말했지만 귀족과 평민 사이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한다. 그것이 권력이던 재력이던 간에.

조금 야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게 현실이다.

"물론 예외가 없는 건 아니야.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긴한데 남자 쪽에서 피 말리도록 노력한 경우거든. 그럴 때는 여자와 함께 부모님을 찾아가 허락을 맡는 식이야. 뭐, 현실은 녹록치 않겠지만."

"의외로 잘 알고 계시네요."

"알 수밖에 없지. 그런 경우를 직접 본 적이 많거든. 그러니까 너도 네 여자친구를 정말로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면 조심해."

"그건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요?"

만에 하나, 사고를 쳤다고해도 마리를 책임질 자신이 있다. 물론 그녀의 부모님이 곱지 못한 시선으로 보겠지만 내 정체를 밝히는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단순한 문화 폭탄을 한참 넘어선 위상을 갖고 있다. 마리는 그런 부분에 연연하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다를 것이다.

"그런데 아델 누나는 남자친구 있어요?"

연애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쪽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아델리아는 주구장창 내 연애사에 집중했지 본인과 관련된 건 일체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델리아는 내 질문을 듣자마자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로서는 의외의 반응이다.

"어... 너는 내가 연애를 해본 것처럼 보여?"

"네. 아델 누나는 객관적으로도 예쁜 편이잖아요. 무학 내에서도 실력이 출중한 편이고."

아델리아는 성격이 조금 독특하긴해도 매력은 뛰어나다. 여자친구가 있는 입장에서 말하기 좀 그랬지만 진짜인 걸 어떡하겠나.

오똑한 콧날, 쾌창한 하늘을 연상시키는 하늘색 눈동자과 긴 속눈썹. 마지막으로 갈색 단발머리까지.

전체적으로 잘생겼다는 이미지에 가깝지만 붉은 입술로 하여금 여성적인 매력도 함께 뿜내고 있다.

솔직히 이 얼굴이 평민이라는 걸 도저히 믿지 못할 정도로 아델리아의 미모는 상당한 편이다.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 사람이라던가 아니면 사생아가 아닌지 싶을 정도로.

내가 그 생각을 하는 도중에 아델리아는 머쓱했는지 뒷목을 살살 매만졌다. 뒤이어 피식거리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내 주제에 무슨... 나보다는 네 누나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 걸? 넌 모르겠지만 니콜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은글슬쩍 니콜의 연애사로 주제로 돌리려던 찰나에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비집고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땀으로 점칠된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다가오는 니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제 막 대련이 끝난 듯싶었는데, 아델리아는 니콜이 돌아오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중간에 벗어던졌던 상의를 챙기는 건 잊지 않았다.

"그,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열심히 노력해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아델리아는 니콜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후다닥 대련장으로 도망쳤다.

내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니콜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저러니? 쟤가 무슨 말이라도 했어?"

"어... 아니? 그냥 별 말 없었어."

"흠... 그래?"

그리 믿지 못 하는 눈초리다. 아델리아가 지은 죄가 워낙 많았던지라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후우. 덥다."

이어서 니콜은 방금 전 아델리아가 했던 것처럼 상의를 벗어던져 땀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녀도 안쪽에 민소매를 입었지만 친누나인지라 아델리아처럼 눈길은 가지 않았다.

그대신 곳곳에 박혀있는 잔근육들에게 시선이 뺴앗겼다. 여자는 태생적으로 근육을 다듬기 어렵다던데 니콜의 모습을 보자면 그 생각이 틀렸나 싶다.

"아참. 아이작. 그러고보니 너 그 애랑 사귄다고 했지? 지난 번에 봤던 흰색 머리카락 여자애. 마리라고 했나?"

민소매를 펄럭거리며 땀을 식히고 있던 니콜이 나에게 질문했다. 그녀에게는 지난 주에 모든 전후사정을 알려준 참이었다.

그러니 니콜은 마리가 내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굳이 숨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으니까.

하지만 걱정을 받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마리가 좋은 사람이라고한들 니콜의 시선에서는 다 똑같을테니까.

"응. 그건 왜?"

"그냥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별 일은 없지?"

"잘 지내고 있지."

"그럼 다행이고. 읏차."

니콜은 그 말만 남기며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후회는 안 하지? 그 애한테 알려준 거."

"후회는 무슨. 아, 후회는 해.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을까라는 것 정도?"

"너도 참 중증이구나. 그래. 한창 그럴 나이지."

내 대답에 니콜은 피식 웃으며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살짝 기대가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글은 잘 쓰고 있어?"

"응. 아마 보름이면 될 거야."

"빠르네. 하긴 시험도 끝났으니 여유 시간이 많아졌겠지. 10권에 엘프 여왕과 제논의 스승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응."

"오~ 그거 기대되네. 엘프와 인간의 사랑이라, 또 한 번 히트치는 거 아니야? 그건 엘프 쪽에서도 말이 나오겠다."

니콜이 낄낄 웃으며 장난스레 굴었다. 나는 그걸 보며 속으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겉으로는 엘프와 인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이어질 수록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 됐다고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엘프 여왕과 제논의 스승은 이어지지 못 할 것이니까. 둘 중 한 명이 다른 이성에게 시선을 둔다거나 그런 막장은 아니다.

두 명 모두 서로에게 확신을 갖고 있으나 엘프 여왕 쪽에서 수명 문제로 선듯 나서지 못 하고 있다.

'비극으로 끝나야 머리에 각인되겠지.'

훗날 제논의 스승은 죽는다. 그것도 한때 본인의 제자였던 '질투'에게.

그리고 엘프 여왕은 스승이 죽었다는 사실에 통곡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된다. 본디 이 장면은 제논을 각성시키기 위한 장치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아 세세하게 적을 예정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기대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니콜을 힐끔거렸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응. 엄청 재미있을거야."

나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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