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다양한 의미가 포함된 고백 타임이 끝난 이후에 별 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후식으로 간단한 간식거리를 주문하여 심심한 입을 달래는 건 잊지 않았다.
분위기도 원래부터 가벼운 편이었지만 현재는 그때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더이상 마리에게 숨길 것이 하나도 없었고, 마리 또한 제 마음을 표현했다.
누군가가 말했던가. 서로의 비밀을 터놓은 사이만큼 가까운 관계도 없다고. 하물며 마리는 원래부터 부담스러운 상대가 아니었던지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아참. 궁금한 게 있는데 아이작은 어디서 그런 작문법을 배운거야? 누가 가르쳐 주기라도 한 거야?"
"배운 건 아니고 나 스스로가 터득한 거야. 솔직히 나도 취미로 쓴 제논 일대기가 이렇게 잘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오옹... 신기하네. 정말로 취미가 맞아? 취미인 것 치고는 다양한 이야기가 안에 녹아들어있던데?"
마리는 이 기회에 평소 궁금했던 점을 모두 나에게 물었다. 그녀의 두 눈에 강렬한 호기심이 담겨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책을 좀 많이 읽잖아. 탐험가나 모험가들이 쓴 자서전을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세상을 경험할 수 있거든. 아버지에게 자문을 구할 수도 있고."
"그렇구나. 그럼 마족에 관한 건? 사크란의 최후도 그렇고 꽤나 심도있게 다뤘잖아. 그 결과가 인식이 바뀌었고."
"음... 거기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할 길이 없어. 나는 단지 마족들이 차별받는 게 싫었을 뿐이고, 영향력이 이렇게 무시무시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제논 일대기의 첫 장에는 항상 이런 문구가 있어. 이 모든 이야기는 모두 허구의 이야기라고."
"허구의 이야기인 것 치고는 너무 생생했는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어디까지나 취미로 쓰던 글이라니까?"
"음..."
제논 일대기는 어디까지나 취미로 쓴 글이라 해도 마리는 쉽게 믿지 못 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는 내가 환생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마땅한 변명거리도 떠오르지 않아 살짝 난감했다. 다행히 마리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믿어주는 모양새였다.
"알았어.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으니까. 그 천재 중 한 명이 너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안 그래?"
"조금... 부끄럽네."
"부끄럽기는. 그나저나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못 믿겠어. 내 남자... 친구가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니."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부끄러운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제대로 된 확인시켜주지 않아서인지 마리는 살짝 망설였다. 그러면서 나를 힐긋거리기까지.
아무래도 돌아가는 도중에 확인 도장이라도 찍어줘야할 것 같다. 지금은 분위기 상 도장을 찍어주기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꾹 참을 수밖에.
그때까지는 분위기가 어색하게 돌아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찻잔을 들면서 미약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 그렇긴 해. 처음에는 내 가족도 정말 내가 쓴 거냐고 물었거든."
"역시... 가족 분들이 부럽다. 제논 일대기가 나오기 전에 미리 볼 수 있잖아."
"부모님은 몰라도 형제자매들은 원고를 못 봐. 아무래도 아카데미에 있다보니 원고를 보내기가 힘들거든."
"네 형제자매도 직접 구매해야 돼?"
"그건 아니야. 아버지가 출판사로부터 직접 도서를 받아 우편으로 보내는 식이지."
출판사에서 신기술을 도입하기 전까지는 항상 피 말리는 경쟁을 통해 도서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건 귀족들도 별 반 다르지 않아서 마리조차 구하는데 애를 먹었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약간 다르다. 부모님은 내 원고를 통해 제논 일대기를 미리 읽고, 니콜과 데이브는 출판사에서 보내준 도서를 통해 접한다. 그래서 가족들조차 읽지 못 하는 대참사는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만 데이브는 현재 기사단 일로 바빠서 잘 모르겠다.
마리는 내 대답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딘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다.
"그럼 지금도 쓰고 있다는 거지?"
"응."
"다 쓰면 나 좀 보여줄 수 있어? 조금만 볼게."
"안 돼."
"힝."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내가 단호하게 대처하자 마리는 아쉬운 소리를 내었다.
물론 그녀도 진심이 아니어서 나도 반쯤 장난을 친 거다.
만약 마리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기꺼이 보여줄 생각이다. 내 원고로 허튼 짓을 할 사람도 아닌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으니까.
"한 번만 보여주라~ 나 다음 편이 궁금해~"
"아직 다 쓰지도 않았어."
"다 쓰면 보여주는거야?"
"아니."
"뿌우..."
이제는 짱구처럼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하는 마리다. 그래봤자 내 눈에는 귀여운 앙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와 동시에 현재 시간이 몇 시인지 파악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는 말이 이런 걸까. 분명 식사를 시작했을 때가 6시였는데 벌써 8시가 다 되어간다.
'내일부터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늦지 않게 들어가기만 하면 되겠지. 부디 시간이 조금 더 느리게 지나가길 바랬다.
"아이작. 그럼 제논 일대기가 몇 권에 완결되는지 알려줄 수 있어?"
내가 시계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동안 마리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나에게 질문했다. 그에 나는 찻잔을 슬며시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아마... 20권 내외로 끝날거야. 아직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가 많거든."
"아직 많이 남았네. 스토리가 전부 머릿속에 들어있는거야?"
"들어있긴 해도 전개를 기록한 노트는 따로 있어.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번에 실수로 보여준 그림을 알아?"
"아, 그거? 증기 기관차 비슷한 그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짜리몽땅하게 그렸는데도 마리는 눈치챈 모양이다.
"그 노트에 전개가 적혀있어. 그때는 실수로 갖고 온 거지만 앞으로 강의실에 가져올 일은 없을거야."
"흐응. 대단하네. 네 머릿속에 또다른 세상이 있는 거잖아? 정말로 나랑 같은 나이가 맞는지 의심스럽단 말이야."
"그런 낯간지러운 칭찬을 해도 떨어지는 콩고물은 없어."
"쳇. 너무 뻔했나?"
말은 저렇게 해도 내심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마리는 내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듯한 말을 무의식적으로 꺼내는 편이다.
저번에는 장난식으로 나에게 책을 쓰냐고 묻기도 했고, 지금은 내가 환생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데도 저런 말을 꺼냈다. 하나같이 찔리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뭐, 그래도 대단하다는 건 진심이야. 그럼 다음 권이 언제 나오는지는 말해줄 수 있어?"
"아마 한 달 뒤 쯤에 나오긴 할 텐데 10권이 나오면 3학년이 될 때까지 휴재할 생각이야."
"뭐?! 그게 무슨... 아, 아카데미 문제 때문에?"
마리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크게 소리치려다 말고 납득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도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상당히 바쁘다는 걸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으니 이해한 모양이다.
"응. 3학년이 되는 순간부터 시간적 여유가 늘어나니 그때부터 써야지. 조금 시끄럽긴 해도 학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음... 취미라 하더니 진짜였던 모양이구나? 그냥 작가로 쭉- 살아도 되지 않아?"
"그건 아카데미 졸업하고나서 생각해야지. 일단 역사 쪽으로 진로를 잡고 있긴 해."
제논 일대기가 대박나기 전까지 내 꿈은 역사학자였다. 그래서 제논 일대기가 좋지 못한 성적을 내어도 신경쓰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마리는 내 대답을 듣고 묘한 표정으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대견하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작은 다 계획이 있구나? 부럽다. 나는 지금 진로도 못 잡았는데."
"내가 특이한 거야. 다른 사람도 너랑 다 비슷할 걸? 너는 강의 중에 뭐가 제일 좋아?"
"나는 노는 게 제일 좋은데?"
무슨 뽀로로냐. 나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마리를 바라봤다.
마리는 내 표정을 보고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꺄르르 웃었다.
"장난이고, 원래는 연금학이 제일 재미있었지. 교수가 설명을 잘 해주잖아."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잠깐 말을 흐리던 그녀는 나를 힐끔거리더니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역사가 제일 좋은 거 같아."
"... ..."
"가문에서는 강압적으로 배우라해서 싫어했는데 지금은 아니야. 누구 덕분에."
"크흠. 큼..."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헛기침을 하면서 찻잔을 들었다.
*****
이가 썩을 정도로 달콤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가능하면 시간이 조금 더 느리게 흘러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지만 제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라 할지어도 흘러가는 시간은 막지 못 하는 법.
우리 둘도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 시간에 아쉬워하면서 숙소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알콩달콩한 시간이 완전하게 끝을 맺은 건 아니었다.
"... ..."
짙은 어둠이 가라앉고 미약한 등불만이 비추는 거리.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은데다가 지나가는 행인들조차 거의 없어서 한적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우리 둘은 그 거리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조금이라도 이 달콤한 시간이 늦게 가기를 빌면서. 조금이라도 숙소에 도착하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
나와 마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떨군 채 손만 잡고 걷고 있었다.
"... ..."
나는 고개를 아래로 내린 채로 마리를 힐긋 바라봤다. 그녀도 나처럼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하염없이 걷고 있다.
식당에 나오고나서 내가 먼저 손을 잡았을 때 화들짝 놀라던 그녀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과감하게 키스를 했을 때와 달리 너무나도 귀여운 반응이었다.
'이 시간만큼은 영원했으면 좋겠네.'
과연 좋아하는 이성과 함께 있는 순간만큼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나는 아래로 내렸던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어둠 속에 촘촘히 박혀있어 하나의 은하수를 이루고 있었다. 정말로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광경에 넋이 나갈 뻔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때가 언제였더라. 집에 있을 때는 할 일이 없어서 자주 보았으나 아카데미에 오고 나서는 하루하루 바쁜 나머지 밤하늘을 쳐다볼 여유도 없었다.
우뚝-
내가 멍하니 은하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쯤, 문득 마리가 자신의 두 다리를 우뚝 멈추었다. 자연스레 나 또한 그 자리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멈추었는지 확인하니 어느새 갈림길 앞에 도착한 상황이다. 각 숙소로 향하는 갈림길이다.
마음 같아서는 여학생용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카데미 규정상 그랬다간은 엄중한 경고를 받게 된다. 왜 이런 규정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따라야겠지.
아무튼 간에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는 의미이기도하다. 나는 갈림길에서 마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마리도 나에게 이제 막 고개를 돌린 참이었다.
"... ..."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떨어지기 싫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잘 가라고 배웅해줘야할까.
내가 입술만 달싹이며 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마리는 촉촉하게 젖은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작."
"...응."
"그... 있잖아. 우리..."
"사귀는 거 맞냐고?"
마리가 우물쭈물거리며 망설이자 내가 먼저 선수쳤다. 그러자 마리는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가 이내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내가 대신 말해줬다지만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인지 시선을 옆으로 돌려버리는 그녀다. 이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줬다.
"솔직담백하게 말할게. 원래 오늘 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논 일대기밖에 없었어. 네가 나에게 보여준 행동은 예상 밖이었지"
"... ..."
"물론, 그렇다고 너에게 호감이 없던 건 아니야.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처음 사귄 친구도 너고, 너처럼 대하기 편한 상대는 없었거든. 너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던 건 맞아."
내 말에 마리가 얼굴을 천천히 들어 나와 똑바로 마주했다. 긴장하고 있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뒤이어 나는 맞잡은 손이 아닌 다른 손을 그녀의 얼굴에 갖다대었다. 약간 뜨거우면서도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마리는 내가 손을 얼굴에 대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하는 반응이었다. 얼굴 또한 아까보다 훨씬 붉어진 것이 눈에 띄였다.
스윽-
나는 지진처럼 떨리기 시작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서서히 갖다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쪽-
식당에서 마리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내 입술과 마리의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 버드 키스라면 여기서 바로 떼어야겠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읍...!"
간단한 입맞춤이 아닌, 연인끼리나 할 법한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마리의 입술이 앙 다물려 있던 탓에 혀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건 전적으로 내 마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으니.
더구나 입술이 꾹하고 다물린 건 아마 극도로 긴장했기 때문에 마리조차 자각하지 못 했을 확률이 크다. 마음 같아서 혀를 이용해 노크 하듯이 입술을 톡- 톡- 두드리고 싶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진도는 천천히 빼면 그만이다.
지금은 그저 입술만 진하게 부딪힌 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되겠지. 마리도 이걸 원했을 것이다.
"후아!"
"... ..."
길고도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내가 입술을 떼내자 마리가 참았던 호흡을 터뜨렸다. 그녀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펑! 하고 터질 것처럼 빨개진 상태였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 또한 얼굴이 화끈거려서 손부채질을 하고 싶었다. 내 딴에는 용기있게 행동한 거지만 역시 창피한 건 변함이 없다.
이어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마리를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리는 건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마음이 바뀌었어."
"우으... 으..."
마리가 부끄러움에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 해도 상관없었다. 나는 마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껴안았다.
그러자 마리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나는 마리의 어깨에 턱은 얹으며 결정타를 날려줬다.
"너를 좋아해. 마리."
"... ..."
"이거면 됐지?"
그러자 마리의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스르르 풀렸다. 뒤이어 그녀도 두 팔을 들어 나를 조심히 껴안아줬다.
"...응."
소심한 그녀의 대답이 이어지고, 우리 둘은 한참동안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
두 남녀가 은하수가 펼쳐진 밤하늘 아래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체온을 나누고 있을 쯤이었다.
너무 늦은 밤이라 주위에 지나가는 행인이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건 아니다.
"... ..."
그리고 한 쌍의 붉은 눈동자가 애정 행각을 펼치는 중인 연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어둠 속에 가려져 있어 모습은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붉은 눈동자만큼은 선명하게 빛났다. 그때문인지 더욱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복잡한 눈빛으로 연인의 달콤한 분위기를 지켜보던 사람은 이윽고 눈매를 반으로 좁혔다.
매우 불쾌하다는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왔으며,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나설 듯한 분위기다.
"...아냐."
하지만 곧내 눈을 완전히 감아 충동을 억제했다. 뒤이어 붉은 눈동자의 주인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적어도 지금은 아냐.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