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나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마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녀는 불안과 초조함, 그리고 분노가 한데 뒤섞인 표정이었다.
또한 그녀는 어떤 책 한 권을 소중하게 껴안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이번에 새로 나온 제논 일대기 9권이었다. 나는 마리의 얼굴과 제논 일대기를 번갈아보다가 큰 혼란을 느꼈다.
마리가 찾아온 타이밍도 타이밍이지만, 그전에 여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가 더 의문이다. 우연히 이 카페에 있다가 우리를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뒤를 쫒아온건지.
내가 혼란을 겪고 있는 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마리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정확히 세실리가 앉아있는 쪽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세실리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푸른색 눈동자 속에는 강한 의심이 담겨있었다.
"...아이작."
스산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마리. 나는 그녀의 부름에 어어? 하면서 마리와 마주했다.
뒤이어 그녀는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입은 웃는 있는 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얼굴이 빨갛네?"
"... ..."
나는 마리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 했다. 아니,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방금 전까지 하마터면 세실리와 사고를 칠 뻔했으니까. 만약 마리가 도중에 난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진행되었을 확률이 높다. 이걸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마리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궁리하는 게 우선이다.
"그..."
"세실리가 또 장난친거지?"
내가 우물쭈물거리며 대답하기 망설이고 있을 때 마리가 훅- 치고 들어왔다. 아까도 말했지만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은 웃고 있지 않으니 왠지 모르게 섬뜩해졌다.
마치 바람을 피다가 애인에게 딱 걸린 것 같은 기분이랄까. 추궁하는 듯한 마리의 말투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그렇지?"
"... ..."
이제는 내가 아닌 뒤의 세실리를 보면서 확인을 구하는 마리. 동시에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렸으며 푸른색 눈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이상 대답을 피했다간은 사단이 날 것 같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거짓말이 아니라 마리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는 약간 안도하는 듯하더니 올렸던 입꼬리를 일자로 그렸다. 뒤이어 세실리에게 고정시켰던 시선을 다시 나에게 옮기며 서늘하게 말했다.
"...잠깐 세실리랑 둘이서 얘기해도 될까?"
"... ..."
나는 마리의 질문을 듣고 뒤의 세실리를 바라봤다. 나는 상관없지만 그녀가 허락해줄지 의문이었다.
세실리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빙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락의 의미였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허락을 한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동안 세실리는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만나야겠네. 나는 마리랑 얘기하다가 갈테니까 먼저 들어가."
"...알겠어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둘 사이에 끼여봤자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꼴밖에 나지 않을 뿐더러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하물며 현재 마리가 갖고 있는 '오해'도 막상 오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사실상 이게 제일 큰 문제라 마리는 내가 뭐라고 말하던지 쉽게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에 나는 아쉽다는 얼굴의 세실리를 바라보다가 마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꼬리를 올리며 빙긋 웃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무시무시한 표정이었던 것 같은데.
"이상한 얘기는 안 할 거지?"
"글쎄?"
불안감에 그리 물으니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한 걸 보면 화가 단단히 났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물론 현재 그녀는 나에게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좋게 변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마리를 지나치며 문 밖으로 나섰다. 마리는 지나가도 나를 보지 않고 세실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음? 손님? 주문하신 건..."
"아. 제가 계산하고 갈게요.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한테 주면 돼요."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에 종업원과 마주쳐서 계산을 하고 나왔다. 종업원이 순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나 애써 무시했다.
이윽고 숨 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서 빠져나오고 뒤를 돌아봤다. 이미 방 안으로 들어갔는지 마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짜 이상한 말은 하지 않겠지?'
이런 상황은 전생에서도 겪지 않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게 최선인 건 확실하다. 저 상황에 끼어들었다가 이도저도 안 될 뿐더러 자칫하다가 기껏 이루었던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곧 있으면 선택을 해야할 날이 올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세실리가 내 비밀을 눈치챈 순간부터 나를 향한 시선이 180도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정말로 그때 세실리가 언급했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그리고 만약 사고를 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후우..."
나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며 뒷목을 매만졌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시험 공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늘 세실리가 나에게 했던 말이 계속해서 아른거릴 것 같아 글은 쓰지 못할 것 같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지금으로서는 그리 빌 수밖에 없었다.
*****
"주문하신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 ..."
아이작이 떠나가고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좁은 방 내부.
주문한 커피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도 두 여자는 서로만 바라본 채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종업원은 숨이 멎을 듯한 분위기 속에 서둘러 자리를 피신했다.
뒤이어 종업원이 자리를 비우고 황량한 침묵만이 감돌게 되어도 두 여자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은 없었다. 차이점이라면 마리는 잔뜩 굳어있는 얼굴이었고 세실리는 여유가 있다는 걸까.
세실리는 맞은편에서 사나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마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메리카노가 시야에 잡혔다.
마리가 아니고 아이작이었다면 이 커피를 더 맛있게 마셨을텐데. 그 생각이 들자 기분이 살짝 나빠졌으나 구태여 티내지 않았다.
달그락-
세실리는 아메리카노간 든 커피잔을 들어 입에 가까이 대었다. 행동 하나 하나에 기품이 묻어나와 시선을 이끌었다.
그러나 마리는 그런 세실리의 모습이 고깝게 느껴졌다. 방금 전 아이작의 붉어진 얼굴 때문이만이 아니었다.
'분명히 바지가...'
세실리가 아이작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바지 중앙은 눈에 띄게 부풀어 있었으며 자세 또한 엉거주춤했다. 가문에서 철저하게 성교육을 받았던 마리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남자들은 본능에 충실해서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편이다. 하물며 세실리처럼 아름답고 농염한 외모를 가진 여자가 유혹한다면?
몸은 언제나 솔직한 법이라고, 아무리 철벽을 쳐도 남자는 본능을 이길 수 없다. 어째서 남자가 슬픈 동물이라고 하는지 여기서 기인한다.
그러니 아이작에게서 남자의 본능이 튀어나왔다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으득-
그 생각을 들자마자 마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았다. 모임 당시 세실리가 팔짱을 껴도 얼굴만 붉힐 뿐,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던 아이작이다.
그만큼 아이작은 자신의 본능을 잘 억제하는 편이며 혈기왕성한 나이답지 않게 점잖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아니면 숙맥이라 할 수도 있고.
헌데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남자의 본능이 튀어나왔다는 의미는 즉슨, 세실리가 정도를 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거기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공간은 방음이 철저하다. 여기서 뭘 하던지간에 바깥에서는 전혀 안쪽 상황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마리는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얼추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 ..."
한편 세실리는 아메리카노를 음미하면서 마리의 표정을 관찰했다. 마리는 사나움을 넘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물론 세실리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단지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털을 곤두세우고 하악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달까. 솔직히 조금 귀여웠다.
달그락-
이에 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임 당시에도 예감했으나 오늘로서 확신이 들었다.
눈 앞의 소녀, 마리는 아이작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고. 풋풋한 나이에 어울리는 마음이었으며 애정이다.
"뭐라도 말 좀 하지 그러니? 할 말이 있어서 아이작을 내보낸 거 아냐?"
방 내부를 가득 메웠던 고요함을 모두 물리게 만드는 세실리의 매력적인 음성. 그녀는 두 손으로 턱을 괴며 마리에게 물었다.
붉은빛 눈동자에는 여유가 한가득 담겨있었으며 입매 또한 호선을 그려져 자신이 위에 있다는 것을 어필했다.
마리 또한 어릴 떄부터 사교회를 다니면서 세실리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이에 그녀는 눈 밑을 꿈틀거렸다가 싸늘하게 말했다.
"...세실리."
"응."
"솔직하게 말해. 여기서 아이작이랑 뭐 했어?"
위의 질문을 아이작에게 묻는다면 얼버무릴 게 분명하니 세실리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단 둘이 있는 지금이 적기이기도하고.
그동안 세실리는 마리의 질문을 듣고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만의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글쎄? 남자랑 여자랑 좁은 방에서, 그것도 방음이 되는 곳에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안하지만 난 장난칠 생각없어."
의외로 마리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이미 그정도는 알고 왔다는 뉘앙스가 물씬 풍겼다.
그에 세실리는 한 쪽 눈을 치켜뜨며 살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가 이내 피식거렸다. 몇몇 사람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면 도리어 이성적으로 변한다던데 마리도 그쪽 부류인 듯싶었다.
이어서 그녀는 자세를 똑바로 잡으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장난스러운 미소가 아닌, 한 나라의 공주답게 품위가 깃든 모습이었다.
"마리."
"말해."
"너는 아이작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니?"
마리는 그 질문을 듣고 눈쌀을 찌푸렸다. 그녀가 무슨 의도로 저런 질문을 한 건지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동안 세실리의 의도를 파악하던 마리는 일단 대답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작에 대한 건 자신있다.
"최소한 너보다는 많이 알고 있지. 이건 장담할 수 있어."
"그럼 아이작의 비밀도?"
"...뭐?"
마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녀도 아이작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 사이가 지금보다 가까워진다면 그 비밀을 말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세실리가 저런 말을 꺼내니 마리로서는 놀람을 넘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온 몸의 피가 싸늘히 식는 기분이다.
정말로 그녀는 아이작을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런 거라면 아이작은 자신보다 세실리와 더 가까운 관계인 걸까. 부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세실리는 마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승기를 잡았다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이작과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야. 심지어 내가 약점을 잡은 것도 아니고 아이작이 스스로 알려줬지. 반면에 너는? 그렇지 않잖아?"
"... ..."
"네가 아이작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그렇게 티를 내니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거겠지."
마리는 조곤조곤한 세실리의 말에 아무런 반박조차 하지 못 했다. 모두 다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이작이 자신보다 세실리와 더 가깝다는 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더 가깝다는 사실만큼 절망적인 것도 없다.
세실리는 마리에게서 아무런 말조차 돌아오지 않자 너무 과했나 싶어 그녀의 표정을 살펴봤다. 눈동자는 정처없이 떨리고 몸이 빳빳하게 굳어있는 모습이었다.
너무나 애처롭고 불쌍해보이는지라 세실리로서는 약간 딱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분위기도 풀어줄 겸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그것 뿐?"
"응?"
"그것 뿐이라고 물었어."
어느새 침착을 되찾은 마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세실리에게 물었다. 세실리로서는 절로 의문이 들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마리의 설명으로 세실리의 얼굴에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라... 그래. 좋지. 자기 입으로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의미니까."
"... ..."
"하지만 나는 아이작이 그깟 비밀을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비밀을 공유해야 형성되는 신뢰라면 개나 줘버리라고 해. 그건 거래지, 진심이 아니야."
이번에는 세실리의 표정이 굳을 차례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마리는 아이작이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심지어 짐작조차 못 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리는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아닌, '아이작' 그 자체에게 호감을 품고 애정을 느끼는 중이다. 그것만큼 '진심'이 있을까.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다.
당장 세실리 본인도 아이작에게 호감이 있을지언정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아이작이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아니었더라면 방금처럼 대놓고 유혹하지도 않았겠지.
마리는 세실리의 표정이 굳은 걸 보고 확신을 가졌다. 아이작의 비밀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짓궂은 장난만 칠 뿐이었던 세실리가 아이작의 본능을 강제로 꺼내게 만들 정도면...
'...설마?'
'증기 기관차'의 삽화도 그렇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아이작의 취미도 그렇고. '마족'인 세실리가 아이작을 유혹한 것도 그렇고.
머릿속에서 퍼즐이 딱딱 들어맞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겨우 이런 것들로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 못 한다. 무엇보다...
'어쩌라는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인가. 아이작의 비밀이 정말로 그런 거라도 상관없다. 애시당초 그딴 거엔 연연하지 않았다.
매사에 가식없이 솔직하게 대해주는 그의 태도가 좋을 뿐이고, 배려가 깊은 그의 상냥함에 애정을 느낄 뿐이다. 마리에게는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아이작이라는 사람만 필요할 뿐이다.
"만약 그런 걸로 사람을 좋아하는 거라면, 나는 무조건 반대할거야. 그건 단지 그 사람의 비밀을 좋아하는 거지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거든."
"... ..."
"할 말 없으면 난 이만 가볼게. 당장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나도 바쁜 몸이라서. 그럼-"
마리는 그 말만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 제논 일대기 9권을 챙기고 문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 전에 카푸치노를 한 입 마시는 건 잊지 않았다.
이윽고 방 안에 홀로 남게 된 세실리는 한참동안 멍한 얼굴이었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커피잔에 담겨있는 아메리카노에 자신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추어졌다.
마리가 남겼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았다고 해야할까.
남들이었다면 큰 충격으로 다가올 말이겠지만...
"...고마워라."
오히려 세실리는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잘 알았어."
잘은 모르지만, 정말 위험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무서운 미소였다.
그녀는 그 미소를 유지한 채 커피에 비춰진 자신을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