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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46화 (47/763)

< 46화 >

레오르트는 잘 나가다가 생뚱맞게 내가 아닌 내 아버지, 호크를 제논 일대기의 저자로 지목했다. 목적지가 코앞인데 핸들을 급격히 꺾어버려 엉뚱한 지점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이에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면서 앞을 쳐다봤다. 레오르트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우리 남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앉아있는 리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차를 우아하게 마시는 중이다.

방금 전까지 극도로 긴장했던 탓에 입이 열리진 않았지만, 마음 속에는 의문이 긴장을 뚫고 올라왔다. 대신 가슴의 두근거림과 주먹 쥔 손에 흥건히 배인 땀은 여전했다.

어째서 레오르트는 나를 놔두고 우리 아버지, 호크를 제논 일대기 저자로 단정지을 것일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으나 니콜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니콜은 레오르트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잠깐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바닥을 뚫을 정도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믿어주실 겁니까?"

"아니라고 한다면 자네 가문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어. 납세를 했다는 건 수익이 있다는 의미고, 그 수익을 어디서 얻었는지, 또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윗선에 보고해야하는 게 귀족의 의무지. 참고로 이건 협박이 아니라 법이 그렇게 지정돼 있는 거라네. 오직 내 아바마마만이 법을 제정할 수 있지."

레오르트가 언급한 아바마마라함은 분명 제국의 최고 권위자인 황제를 지칭한 것일터. 황제를 입에 담는 걸 보면 아예 작정한 것으로 보였다.

니콜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했는지 안 그래도 굳어있던 얼굴이 더욱 딱딱해졌다.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주먹에도 힘이 바짝 들어간 게 보였다.

"너무 그런 표정 지을 필요는 없네. 아무튼 간에 자네의 아버지가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는 건 확실한가보군."

"...어째서 그런 확신을 갖게 된 겁니까?"

"... ..."

나는 니콜의 질문을 듣고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한 곳으로 틀어졌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진짜 작가인 내가 있는데도 주제를 이어나가는 걸 보면 레오트르가 착각한 지금을 기회라고 판단한 듯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내 마음은 시시각각 불편해졌다. 마치 아버지를 방패로 내세운 것 같지 않은가.

아버지는 나를 위해 헌신을 해준 사람인데 방패막이로 취급하는 건 내가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보다 못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꽈악-

입을 열어 말을 꺼내기 직전, 니콜이 말없이 내 손을 덥썩 붙잡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는 듯이 힘을 꽉 주었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무언의 압박에 당황한 것도 잠시, 니콜을 표정을 보자마자 말을 하려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니콜의 표정은 진중했다.

비록 아버지를 팔아넘기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했지만 그녀에게도 따로 생각이 있는 것 같았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다 이유가 있지."

그동안 레오르트는 니콜의 질문에 전보다 입꼬리를 더욱 말아올리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은연 중에 카리스마가 흘러나와 집중을 이끌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납세라는 건 매우 복잡한 것일세. 특히 우리 미네르바 제국은 세금과 관련된 부분은 매우 깐깐한 편이라 더욱 복잡하지. 하지만 복잡한만큼 확실한 효과가 나타나. 우리 미네르바 제국의 자본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은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네."

"... ..."

"허나 그마저도 완벽하지는 않다네. 지금 이순간에도 탈세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을 걸세. 특히 마이샬 경이 사용한 방법은 탈세로 악용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어. 마음만 먹었다면 세금마저 내지 않고 완벽하게 정체를 숨겼을 수도 있었겠지. 다행히 기사 시절부터 이어져 온 굳은 심지 덕분에 그러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레오르트는 우리 아버지가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는 걸 확신한 모양이다. 이걸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도통 갈피를 잡기기 힘들었다.

그사이 나와 니콜이 레오르트에게 시선을 두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차나 마시고 있던 리나가 찻잔을 내려놓더니 특유의 부드러운 음색으로 말을 꺼냈다.

"처음에는 마이샬 경이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는 걸 믿기 힘들었죠. 하지만 그의 공적과 경험을 고려하자면 딱딱 들어맞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공적이요?"

드디어 내 입이 열렸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 몰랐으나 나의 아버지는 한때 드높은 위상을 지녔던 기사다.

그것도 인간측 괴물들만 득실거리는 네이비 기사단의 단장이었으며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공적을 쌓았다.

이 공적이 얼마나 무시무시하냐면 본래 남작이 아닌 백작의 작위를 받았어야 정상이었다고. 평민이 귀족의 신분을 받는 것조차 놀라울 일인데 하물며 백작이었으니 아버지의 공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흐응..."

리나는 내 질문을 듣고 미묘한 비음을 흘리더니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뒤이어 빙긋 웃더니 상냥함만이 느껴지는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아이작은 제논 일대기 속에서 제논이 어떤 공적을 쌓았는지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죠."

모를리가 있겠나. 제논 일대기의 주인공, 제논은 실로 입이 떡 벌어질만큼의 위업을 쌓았다.

가장 큰 예로 동료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포악한 드래곤을 토벌했다던가, 악마의 위협에서 나라를 구해줬다던가, 소실된 것으로 생각했던 교단의 성유물을 탈환했다던가 등등.

업적 하나 하나가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여서 제논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어서 리나는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버지가 쌓았던 공적을 하나 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마이샬 경은 그것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진 않았어. 30년 전인가? 새끼를 잃어버려 흉폭해졌던 드래곤이 수도를 습격했던 적이 있었어."

"아. 그거 혹시..."

최근에 발간된 역사서적에서 본 적이 있다. 정확한 명칭은 '아스카날 사건'이며 제국 수도를 습격했던 드래곤의 명칭이 아스카날이었기에 그렇게 명명한 것이다.

이 세상은 판타지인만큼 드래곤도 있는데, 그냥 단순한 몬스터에 불과하다. 폴리모프를 한다던가, 마법에 능통하다던가, 레어에 금은보화를 쌓아놓는다던가 하는 '종족'은 절대 아니다.

그냥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 도마뱀이다.

어쨌거나 아스카날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다름아닌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불법밀수를 하던 인간들이 해츨링을 발견하여 잔혹하게 죽인 후, 그대로 해체하다가 어미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당연히 어미는 격노하여 가장 가까웠던 인간들의 나라, 미네르바 제국을 습격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불법밀수를 저지르던 인간들은 미네르바 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였다는 점.

미네르바 제국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미쳐버린 드래곤이 습격했으니 그야말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저도 알고 있어요. 그때는 군대가 허둥지둥 나서서 토벌했다고..."

"기록에는 그렇게 적혀있지. 하지만 군대는 백성들을 대피시키기 급급했고 실질적으로 토벌한 사람은 네 아버지, 마이샬 경이었어. 공교롭게도 휴가를 위해 잠시 수도에 있었거든."

"...드래곤을 토벌했다고요?"

"응."

나는 믿지 못할 리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세상은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있는데, 당연하지만 드래곤을 토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이러한 칭호가 있을만큼 드래곤은 토벌하기 위해 '군단'에 해당하는 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력이 있다고한들 그 누구도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지 가늠할 수 없다.

헌데 아버지는 군대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혼자서 토벌했다고한다. 내가 제논 일대기에 적어놓았던 제논의 위업과 놀라울만치 똑같았다.

"...그건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리나님."

니콜도 전혀 듣지 못 했던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리나는 그녀의 의심섞인 질문에 살짝 슬픈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요. 아스카날 사건 당시 마이샬의 경을 돕던 친우가 있었는데 드래곤의 브레스에 그만..."

"... ..."

리나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자 니콜의 표정도 약간이나마 풀어졌다. 나보다 아버지를 더 잘 알고 있는 누나이니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나도 아버지가 아스카날 사건을 꺼리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아무리 강해도 결국 사람이니 그 업적을 떠올릴 때마다 브레스에 산화된 본인의 친구가 생각날 것이다.

비극적인 사정이 알려지자 우리들 사이에는 침묵이 가라앉았다. 다행히 그 침묵은 리나가 서둘러 입을 엶으로서 사라졌다.

"제논 일대기에도 제논이 동료의 도움을 받아 드래곤을 토벌한 것도 그 일이 생각나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본인은 비극적이었지만 적어도 제논은 잃어버리는 동료가 없기를 빌면서."

"...그럼 다른 것도?"

"네. 악마화를 한 마족을 처치한 건 물론이고 국경을 침입한 수인과 엘프들을 여러 번 몰아냈어요. 그리고 '붉은 사자'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한 건 마이샬 경이 네이비 기사단에 입단했을 때부터였고요."

위인의 영웅담을 듣는 느낌이다. 그게 내 아버지라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면서도 쉬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럴게 내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가정에 헌신하고 가족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드래곤을 토벌했다니, 붉은 사자라니 하면서 명성이 높았다는 걸 믿기 어려웠다.

내가 약간의 혼란을 느끼고 있던 와중에 리나가 말을 멈추고 옆의 레오르트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레오르트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마이샬 경이 근무하기 전까지 국경지대는 하루가 멀다하고 부족 생활을 하던 수인들과의 전투로 전사자가 속출하던 곳이었네. 더구나 수인들도 네이비 기사단급 전력이 아닌 이상 막는 것조차 힘들었지. 하지만 마이샬 경이 오고나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네."

"달라졌다는 말씀은..."

"마이샬 경이 국경지대에 살던 수인 대부분을 처치했다네. 위기를 느낀 수인들도 세력을 합쳐 총공세에 나섰지만 오히려 그게 악수가 되었지. 만약 마이샬 경이 아니었더라면 국경이 아니라 영토를 빼앗겼을 수도 있었다네. 그만큼 수인들이 어마어마하게 강했거든."

그야말로 '영웅'이라 부르는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업적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수인들이 시시때때로 국경을 넘보는 이유는 아마 국경너머의 환경 때문일 것이다.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수인 입장에서는 빼앗는 게 더욱 편할테니까.

하물며 태생적으로 전투라면 열광하는 수인의 특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 제국은 인적, 물적 자원을 크게 아낄 수 있었어. 국경에 투자하던 군비가 실로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지. 마이샬 경이 제국의 경제력을 크게 올렸다해도 과언이 아닐세. 내가 마이샬 경을 제논 일대기의 저자라 확신한 이유도 이때문이고. 범인으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산전수전을 헤쳐왔으니 제논 일대기에 녹여낼 수 있던 거겠지. "

"...그렇군요. 네이비 기사단이 있어야 막을 수 있다고 했으니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니콜은 말을 흐리더니 레오르트를 빤히 응싱하다가 고개를 슬쩍 돌려 리나를 쳐다봤다. 레오르트도 그렇고 리나도 그렇고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

황실에서 포커페이스를 배우는 교육이라도 받기라도 하는 걸까.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니콜도 생각을 읽는 건 포기했는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아버지를 어떻게 할 셈이죠?"

"이제 부정하지 않는군."

"이미 전부 들킨 마당에 부정하면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을테니까요."

니콜의 시원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레오르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이어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내밀어 깍지를 끼더니 턱을 받쳤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예상 외의 대답을 꺼냈다.

"자네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네. 우리 황실은 마이샬 경과 더불어 자네들을 터치할 생각은 전혀 없어. 지금 이 자리를 가진 것도 확인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걸 저희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결국 참다 못한 니콜이 언성을 높히며 씩씩거렸다. 나 또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장난하냐는 표정으로 레오르트를 노려봤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몰아넣고서는 건드릴 생각이 없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병신이라 할 수 있다. 정말로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면 아예 이 자리에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레오르트는 우리의 격한 반응을 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진정하라는 의미였기에 니콜도 표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자네들이 민감하게 반응할만도 해. 하지만 이 말만큼은 진실이야. 만약 우리 쪽에서 압박을 가하다가 마이샬 경이 연재를 중단한다면? 그것도 우리가 압박했기 때문이라며 출판사에 알린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지 상상이 되나?"

"... ..."

"당연히 여러 방면으로 심각해질 거라네. 현재 제논 일대기가 세상에 끼치는 영향력은 무시무시하니까. 아무리 욕심이 많아도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 무엇보다 나와 리나도 제논 일대기에 열광하는 독자 중 한 명이라네. 방금도 말했지만 자네들과 이 자리를 가진 이유도 단순히 확인을 위한 것이지."

저걸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 다른 사람이었다면 납득했을텐데 자그마치 정치와 깊은 연관이 있는 황족이다.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나 키우고 있는지도 모르니 덥썩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

나와 니콜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자 곁에서 지켜보던 리나가 행동에 나섰다. 그녀는 니콜이 아니라 정확히 나를 바라보더니 가슴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작. 황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마이샬 경과 네 가문, 그리고 네 가족에게는 결단코 피해가 가는 일이 없을거라고. 오히려 정체가 드러나는 걸 막아줄 수 있어."

"...그러면 두 분께 무슨 메리트가 있는거죠?"

"제논 일대기의 다음권이 더 빨리 나오겠지. 그것 뿐이야."

정말로 그것 뿐일까. 나는 빙긋 웃으며 답한 리나를 미심쩍게 쳐다봤다.

저 미소가 가짜라는 건 여태까지 많이 보았기에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에 내가 머뭇거리며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알겠습니다."

"...누나?"

"부디, 그 약속을 지켜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니콜이 엄숙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으로 그들을 받아들였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내가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을 쯤, 니콜의 대답을 들은 레오르트가 만족에 찬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맙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마이샬 경을 건드릴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알아주게나. 제논 일대기의 저자이기 전에 마이샬 경은 우리 황실에서도 함부로 다룰만한 인물이 아니거든."

"과찬이십니다."

"절대 과찬이 아닐세. 마이샬 경은 그럴만한 인물이니까."

얼마나 대단한 업적이었으면 황태자인 레오르트의 입에서 저런 말을 나오게 할 수 있는걸까. 어쨋거나 다행히 한시름 놓은 것 같다.

아버지를 방패로 삼는 건 여러모로 찝찝했지만 아버지도 이해해줄 거라고 위안을 삼는 게 좋을 듯했다. 당연하지만 숙소에 돌아가자마자 편지를 쓸 계획이다.

'뭐라고 써야하지? 우선은...'

내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편지에 무슨 내용을 적어야할지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어느새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레오르트와 니콜과 달리, 앞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에 고개를 들어올리니 리나가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묘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중이었다.

나는 장인이 한땀한땀 공들여 만든 듯한 그녀의 미모에 잠깐 넋이 나갈 뻔했지만 다행히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았다.

"... ..."

그녀는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슬쩍 아래로 내렸다. 도대체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시선이 내 오른손에 향하고 있다는 건 얼추 알 수 있었다.

뒤이어 리나는 아래로 내렸던 시선을 다시 올리더니 내 얼굴과 마주했다. 내가 그런 그녀의 이상 행동에 의문을 가질 쯤이었다.

리나는 나와 시선을 교환하자마자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더니...

[잘 부탁해.]

소리없이 입모양으로 의미심장한 인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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