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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5화 (26/763)

< 25화 >

후기를 읽어주세요!

*****

레오나가 내 멱살을 붙잡고 질질 끌고 가도 아무런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을 걸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고, 힘으로 벗어나려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붙잡아 섣불리 반항하지 못 하도록 제지했다.

결국에는 옷이 뜯겨져나갈 것 같아 반쯤 포기하고 그녀가 발걸음을 옮기는 대로 따라갔다. 운이 좋은 건지 몰라도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뚝-

마침내 인적이 드문 건물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레오나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내 멱살을 붙잡았던 손의 악력도 서서히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가 내 멱살을 놓아주자 두어걸음 물러가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얼마나 강한 힘이었는지 목 부근이 전부 쭈글쭈글해졌다.

"...야."

한참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을 때 레오나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강의 때마다 들었던 딱딱한 어조가 아닌, 위협이 한가득 담겨있다. 그에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다 말고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뻣뻣해진 고개를 억지로 들어올리니 맹수 같은 금색 눈동자와 정확히 마주하게 되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푸른 눈동자였는데 지금은 나와 같은 금안이다.

레오나는 내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하자마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봤지?"

"... ..."

"아니었으면 네가 그런 행동도 하지 않았을 거야. 솔직히 말해. 봤지?"

부정할 이유가 있겠나. 원래부터 확인을 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다. 그러나 레오나에게서 풍기는 압박감이 장난 아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겨우겨우 대답을 꺼냈다. 하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봐, 봤어. 네 머리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거..."

"... ..."

"...그거 귀야?"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레오나는 내가 조심스러운 물음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거렸다. 그리고 말 대신 행동으로 화답했다.

쫑긋-

레오나의 고동색 머리에서 세모꼴의 귀가 쫑긋하며 솟아났다. 누가 봐도 사람이 아니라 동물의 귀였다.

내 예상대로 레오나는 인간이 아니라 수인이다.

'그럼 바지를 입은 이유도 꼬리를 감추기 위해서인가?'

나름 그럴 듯한 가설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레오나는 머리 위에 솟아났던 귀를 도로 감추더니 시니컬하게 말했다.

"이제 궁금한 건 풀렸냐? 왜, 꼬리까지 보여줘?"

"어... 아니. 괜찮아."

역시나 익숙해지지 않는 말투다. 내가 알던 레오나는 무뚝뚝하고 감정 변화가 거의 없는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불량 학생 즉, 일진 같다.

말투가 좀 험악하게 바뀌었다고 인상까지 180도 달라져버리니 괴리감마저 들었다.

"후우..."

레오나는 머릿속이 복잡한 듯, 머리를 거칠게 헤집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레오나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잠자코 기다려줬다.

그녀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으니 정체를 숨겼을텐데 내가 그 비밀을 알아버렸다. 그녀에게는 상황이 꼬일대로 꼬인 것이겠지.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모른 척 하고 넘어가는건데 호기심이 동하여 일을 저질렀다.

"어떻게 하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는 건 너무 위험하고... 협박이라도 해야 하나? 진짜 미치겠네..."

"... ..."

레오나의 중얼거림이 내 귀에 속속 들어왔다. 전부 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아서 더 무섭다.

이러다가 내 신변에 큰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어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저기..."

"뭐? 무슨 할 말이라도 있냐?"

내가 부르자마자 레오나가 시니컬한 표정과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순간 흠칫거렸다가 하고픈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정체 말 안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나라면 그 말을 쉽게 믿겠냐?"

"어... 모르지? 나는 네가 무슨 사정을 갖고 있는지 모르니까."

거짓말을 일체 섞지 않은 솔직담백한 대답.

레오나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하! 하며 헛바람을 토하더니 짓씹듯이 말했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 ..."

괜히 말했구나. 나는 단순한 위협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듯한 기분에 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라면 최대한 침착을 유지했을터인데 왜인지 몰라도 지금은 정상적인 사고가 힘들다. 레오나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감 때문인걸까.

"후우... 아냐. 됐어. 아무튼 간에 내가 수인이라는 건 절대 발설하지 마. 알겠냐?"

"...말하면?"

"네 사지를 찢어버릴거야."

레오나가 아까 전처럼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정말로 그럴 것 같아 무서웠으나 한 가지 의문은 여전했다.

어째서 레오나는 본인의 정체를 감추면서까지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걸까? 이것까지 묻는다면 그녀가 또 신경질을 부리겠지만 질문할 가치는 충분하다.

나는 사정없이 떨리는 가슴을 최대한 진정시킨 뒤, 용기를 내어 레오나에게 질문을 꺼냈다.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돼?"

"넌 이 상황에서도 묻고 싶은 게 있어?"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니까."

"에휴. 묘족도 아니고 호기심이 왜 그리 많은건지. 그래. 선심 썼다. 물어봐."

레오나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팔짱을 끼자 교복 너머로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는 시선이 애써 엄한 곳으로 향하는 걸 최대한 막으며 입을 열었다.

"왜 굳이 정체를 숨기면서까지 아카데미에 입학한 거야?"

"내가 거기까지 대답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음... 알겠어. 지금까지 그 딱딱한 태도는 다 연기지?"

"그래야 수인이라고 의심받지 않을 테니까. 너희 인간은 우리 수인을 호전적이고 야만적인 종족이라 생각하고 있잖아? 그걸 이용한 거지."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에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수인을 야만인 내지 원시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더 나아가 수인을 노예로 생각하는 인간도 꽤 많다.

또한 수인은 평소 호전적인 성질머리로 인해 사납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이 때문에 레오나처럼 이성적이고 딱딱한 성격을 가진 수인은 절대 없을거라 판단하는 중이다. 이건 레오나가 잘 이용한 게 맞다.

"앞으로도 쭉 그럴거야?"

"당연하지. 정체를 들키지 않고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하는 일이야."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

수인은 다른 종족보다 '본능'이 특히나 강한 종족이다. 내면의 악과 치열하게 싸우는 마족과 달리 수인은 본능을 억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못 한다는 표현이 어울리겠지.

아무튼 수인에게 본능은 뗄래야 뗄 수 없다. 레오나가 아무리 절제력이 뛰어나다고한들 천부적인 본능은 억누를 수 없다.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도발하자마자 귀가 퐁! 하고 튀어나온 걸 보면 알 수 있다.

레오나도 그 부분은 유념하고 있었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전과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참는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여기 입학하지도 않았어."

"많이 힘들 텐데."

"물론 힘들... 아니, 야.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줄래? 내가 언제까지 대답해줘야 하냐?"

아쉽다.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그런 내 아쉬움이 표정에 다 드러났는지 레오나가 미간을 와락 좁혔다.

"뭐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죽고싶냐?"

"미안."

"후우... 어쨋든. 내가 수인이라는 거 아무데한테도 말하지 마. 알겠냐?"

"알았어. 아, 그리고 하나 더."

"또 뭐가 묻고 싶은데?"

이제는 아예 질린다는 표정으로 신경질을 부린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하고픈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좀 전에 식당에서 내가 했던 말 모두 들었어?"

"그래. 다 들었다. 그건 또 왜?"

"네 생각이 궁금해서."

"하?"

내 질문에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레오나. 표정에 이 새끼 뭐지? 라는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넌 수인이잖아. 당연히 인간을 좋게 볼리가 없지. 그래서 궁금해졌어. 내 이야기를 듣고 수인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싶었거든."

"너는 진짜... 하. 묘족보다 더한 놈이네, 이거. 인간은 원래 다 이래?"

"내가 좀 호기심이 많아. 특히 이종족한테는."

"참나..."

결국 레오나는 끝을 모르는 내 호기심에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포기했다는 기색이다. 그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최대한 표정을 관리했다.

이윽고 레오나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 또한 그녀의 입이 열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줬다. 그사이 마음을 다스렸는지 금색으로 빛나던 그녀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꾹 다물려 있던 레오나의 입술이 열리며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알려줄건데?"

"네?"

"안 알려줄 거라고. 설마 내가 대답해줄 줄 알았냐?"

내가 당황하는 동안 레오나가 씨익 웃더니 나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가까이 다가오니 그녀의 키가 꽤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짝 올려다봐야할 정도니 175cm는 넘지 않을까.

아무튼, 레오나는 내 앞에 당당히 서더니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내 볼을 꽉 누르며 입술을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우부우? 무어하느은..."

"그나저나 우리 빨간 고양이는 궁금한 게 왜 이리 많을까나?"

내 머리카락 색이 빨간색이라 빨간 고양이라고 칭한 걸까. 하지만 지금은 내 입술을 붙잡은 레오나의 손길을 뿌리치는 게 우선이다.

물론 내가 아등바등거려도 꿈쩍조차 하지 않았다. 수인의 기본적인 육체 능력은 전 종족을 통틀어 뛰어난 편인데 그런 레오나의 힘을 이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리가 아니지, 불가능하다.

내가 저항하는 동안 레오나는 씨익 웃는 낯짝을 유지하며 재차 경고를 날렸다.

"다시 경고하는데, 내가 수인이라는 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네 혀를 뽑아버릴거야. 사지를 찢어버리는 건 나도 곤란하니까 봐줄게. 알겠냐?"

"뉘예..."

거기서 거기잖아. 하지만 무서워서 긍정할 수밖에 없다.

레오나는 내가 긍정하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볼을 놔주었다. 잠깐 잡고 있었는데 뺨이 얼얼하다.

"부디 네 입이 무겁길 바랄게. 그전에..."

스윽-

내가 얼얼한 뺨을 문지르는 동안 레오나가 고개를 쭈욱 내밀더이 내 목덜이에 가까이 대었다. 그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그녀가 내 손목을 붙잡음으로써 무산되었다.

"킁. 킁킁. 킁."

그 후로 레오나는 내 목덜미에 코를 박으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미묘한 감각에 얼굴이 붉어짐을 느끼며 황급히 빠져나가려 시도했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레오나의 머리를 밀어내는 것 뿐.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아 결국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뭐긴 뭐야. 네 냄새를 기억하려는거지. 그런데 퀴퀴한 책 냄새가 진동을 하네."

레오나는 한참 동안 내 체취를 기억하려는 듯,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얼굴을 떼어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붙잡았던 내 손목도 놓아주었다. 나는 그녀가 손목을 놓아주자 서둘러 확인했다.

손목을 살펴보니 새빨간 멍이 짙게 새겨져있다. 나는 아프다는 인상을 쓰며 손목을 어루만지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물었다.

"내 냄새 기억해서 뭐 하려고?"

"네가 쓸데없는 짓을 하나 안 하나 중간중간 살펴보려고. 내가 널 어떻게 믿어?"

"... ..."

"이제 볼 일은 끝났지? 난 이제 간다."

레오나는 내 머리를 툭- 툭- 치고는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손목을 어루만지면서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레오나의 이름을 외쳤다.

"레오나!"

"아, 진짜... 왜?"

그녀는 내가 부르자마자 머리를 벅벅 헤집더니 등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얼굴을 보니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괜히 불렀나 싶어 약간 후회했지만 마지막으로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내어 그녀에게 전달했다.

"너도 제논 일대기를 읽어?"

"뭐? 제논 일대기?"

"응."

"하."

내 질문을 들은 레오나가 헛바람을 내뱉었다. 그리고 손을 휘적거리더니 귀찮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 그런 거. 난 제논인가 뭔가 하는 거는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신경 꺼."

"...알았어."

"그럼 난 간다. 이제 네가 뭘 묻던 간에 다 씹어버릴테니 묻지 마. 알았냐?"

레오나는 그 말만 남기고 점점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붉게 멍이 든 손목을 붙잡은 채 망연히 바라보다가 문득 의아한 부분을 떠올렸다.

"...재미없다고? 읽긴 읽는다는 건가?"

내가 그리 중얼거렸을 때였다.

퐁-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몰라도 레오나의 머리 위로 한 쌍의 귀가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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