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4화 (25/763)

< 24화 >

내가 답을 꺼내자마자 레오나의 머리 위에 또다시 무언가가 퐁- 하고 튀어나왔다. 한 번이라면 모를까 두 번이나 보게 되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레오나는 인간이 아니라 이종족이라고. 다른 부분도 아니고 머리 위에 솟아오른 걸 보면 수인일 가능성이 크다.

'수인도 아카데미에 입학하던가?'

강의 때 들었겠지만 인간과 수인의 사이는 최악이다. 예로부터 사이가 껄그러웠던 엘프와 드워프보다도 더 좋지 않다. 이로 인해 수인이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렇다면 주말동안 번화가에서 가끔 봤던 수인은 뭐냐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학생이 아니라 경비원으로 고용된 입장이다. 수인은 선천적으로 뛰어난 오감 덕분에 경비원으로써의 능력이 출중하다.

무엇보다 사이가 최악인데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에서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수인들의 국가는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 개발도상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래서 갖은 시선을 꿋꿋이 버텨내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녀도 나름 이유가 있을 테니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걸테고. 그보다는 세실리의 의문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인간이 멍청하니까 세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네."

"아이작이 하는 말은 가끔 이해가 힘든 경우가 있어."

세실리는 그리 말하며 식기를 잠시 내려놓더니 미묘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빨려들어갈 듯한 붉은 시선에 나 또한 식사를 잠시 멈추었다.

이후로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손으로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줄래? 저번처럼 빙빙 꼬아서 할 필요는 없어."

"딱히 거창한 이유는 아니에요. 인류학 강의에서 교수님이 설명하던 것과 비슷한 요지의 말이라서."

"그래도 궁금해. 빨리 말해줘."

재촉하는 세실리 어깨 너머의 레오나를 힐긋거렸다. 그녀의 머리 위에 솟아났던 귀는 어느새 가라앉은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시선은 여전히 나를 직시하는 중이다.

나는 이 거리에서도 들리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애써 무시하며 설명을 꺼냈다.

"세실리 님도 알다시피 인간은 뛰어난 습득력을 제외한다면 잘난 게 하나도 없어요. 수명은 물론이고, 육체 능력과 마법, 그리고 지혜와 손재주까지 다른 종족에게 밀리죠. 심지어 마나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에요. 수명은 짧은데 태생적인 장점이 하나도 없는 종족. 대충 감이 잡히지 않아요?"

"모르겠는데?"

"배움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예 0에서부터 시작한 시절에서는? 배운 것도, 배울 수 있는 것도 없을 텐데 어떻게 하면 지금까지 살아있는 걸까요?"

"어? 그러네?"

세실리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녀도 내 말을 듣고 의문을 품은 모습이다.

전생에서는 인간밖에 없어서 동족끼리 경쟁이 가능했지만, 이 세상은 다르다. 당장 인간보다 태생적은 능력이 월등한 종족이 주변에 널려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이 경쟁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이 똑똑했다면 경쟁하지 않고 요리조리 숨어다니거나 머리를 숙여 노예로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멍청한 건지 아니면 무모한 건지 몰라도 다른 종족과 경쟁하기를 선택했다. 아마 이종족이 보기에는 저 새끼 왜 저러지? 라며 어리둥절하지 않았을까. 당장 나 같아도 웬 원숭이 한 마리가 나와 경쟁한다면 코웃음칠 것이다.

"당연하지만 초기에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배운 게 하나도 없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포기하지 않고 다른 종족의 장점을 모방하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지식'이라는 게 쌓였지만 여전히 부족했죠. 결국 모방은 모방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

세실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실제로 인간은 15억이 넘는 인구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중 이 종족과 대항할 수 있는 실력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인간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한들 불세출의 천재가 아닌 이상 태생적인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엘프 전사가 인간으로 치자면 기사단장급 무력을 갖춘 것부터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번식 능력이 여타 종족보다 뛰어난 이유도 이때문이라 생각해요. 초기에는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해야 그나마 생존이 가능할테니 무작정 수를 늘린거죠. 이종족이 보기에는 정말 단순무식하고 쓸데없는 발악이라 생각했을 거예요. 수인은 신체 능력이라도 좋지, 인간은 그것도 아니잖아요?"

"음... 그러고 보니 수인도 번식 능력이 좋지 않아? 종족 전쟁 당시 수인들이 인간에게 학살당했다지만 그 전에도 있었을 거 아니야?"

"그때는 인간의 습득력이 진가를 발휘해요. 역사적으도 '문명'을 최초로 건립한 건 엘프였지만, 그다음으로 문명을 이룩한 건 '인간'이에요. 엘프에게서 배운 지식과 능력을 토대로 문명을 세우고, 뿔뿔이 흩어졌던 동족을 모아 힘을 비축했죠. 부족 생활을 하는 종족과 문명과 사회를 만든 종족. 벌써 차이가 나지 않아요?"

"그렇구나. 수인은 겨우 300년 전에 본인들의 나라를 건국했었지?"

전에도 언급했듯이 수인은 고작 300년 전에 국가를 세웠다. 듣자 하니 종족 전쟁 당시 수많은 동족들이 인간에게 학살당하자 위기감을 느껴 세웠다고.

그러나 뿌리부터 탄탄했던 인간과 달리 급하게 세운 감이 없지 않아 있어 지금도 많이 불안불안했다. 수인 내부에서도 다양한 민족이 있는데다 야만적인 풍토가 유지되는 중이다.

"네. 어쨌거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죽기에는 멍청해요. 처음부터 똑똑했다면 옛날 옛적에 포기했을 걸요? 주변에 자기보다 잘난 놈들이 천지인데 절망하고 낙담했겠죠."

"역설적이네. 오히려 멍청해서 빨리 죽는 게 아니고?"

"아뇨. 다시 말하지만 멍청하고 무모한데다 어리석으니 장점이 거의 없는데도 경쟁을 택한 거예요."

"근성이라는 거구나?"

세실리가 정확히 요점을 짚었다. 비록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인간이 현재까지 살아남고, 세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포기를 모르는 '근성'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은 부분을 꾸역꾸역 파고들어 가능하게 만든 종족도 인간이고, 3000년 전 악마와의 전쟁 당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끝까지 대항하던 종족도 인간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인간의 근성만큼은 일종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현재 세계의 주도권을 쥘 수 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 더 존재한다.

"그것도 맞지만 인간은 하나가 되는 결집력이 다른 종족보다 훨씬 강해요. 평소에는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쁘지만 위기가 찾아오면 하나가 되어 물리치는 거죠."

"종족 전쟁이랑 악마 전쟁처럼?"

"바로 그거에요. 포기를 모르는 근성과 위기의 순간 하나가 되는 결집력. 이 두 가지의 특징이 하나로 맞물려 인간이 주도권을 꽉 쥐게 된 거죠."

여기서 더 무서운 건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인간은 스스로 부족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전생의 기억이 있기에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걱정되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나는 포크로 음식을 쿡- 쿡- 찌르며 입을 열었다.

"물론 그게 꼭 장점이 되는 건 아니에요. 수인 대학살처럼 끔찍한 죄악으로 작용될 수도 있죠. 더 무서운 점은 앞으로도 그런 사건이 언젠가 재발할 겁니다.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해?"

"멀리 가지 않아도 당장 몇 천년 전에 마족들이 학살당했잖아요? 누나는 그 학살의 주도자가 누구라고 생각해요?"

"... ..."

내 질문에 세실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비록 그녀에게는 직설적이겠지만 이만큼 좋은 예시는 없다.

"아무튼 간에 이해는 되셨나요?"

"...응. 덕분에. 인간은 참 복잡한 존재구나. 조금 더 공부해야겠어."

"인간에 대해 아는 건 좋지만 나쁜 부분은 배우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마족 학살과 수인 학살 사건을 보다시피 인간은 악마보다 더한 짓거리를 저지르는 경우가 빈번하거든요."

"충고 고마워. 그래도 아직까지 내 주변에는 착한 사람들밖에 없어서 다행히야."

세실리가 개운하다는 듯이 말하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의 미소에 따라 웃었다가 뒷편의 레오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식사를 하는 것도 잊은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보아하니 정말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전부 들은 듯했다.

"어디 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식사는 다 하셨어요?"

"아니. 네 이야기 듣는다고 못 먹었어. 아이작은 이다음에 듣는 수업 있어?"

"전 없어요. 세실리 누나는요?"

"나는 수학 하나 있어."

"수학 엄청 어렵지 않아요?"

"별로? 나는 쉽던데?"

세실리가 모르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식사 자체는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식당에서 세실리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끔 모진 장난을 치기도 했으나 주변에 보는 사람도 딱히 없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레오나는 조금 신경 쓰였다. 특유의 무뚝뚝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내가 다 부담스러울 지경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먼저 일어날게."

"네."

"아이작은?"

"전 좀 더 먹다가 갈게요. 먼저 가보세요."

"알겠어. 다음에 봐~"

식사가 끝나자 세실리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나 또한 손을 흔들어주면서 그녀를 살갑게 배웅해졌다.

그리하여 세실리까지 떠나자 원래부터 사람이 없었던 식당에는 나, 그리고 멀찍히 앉아있는 레오나만이 남게되었다.

"... ..."

나는 레오나를 빤히 쳐다봤고, 레오나도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중이었다.

이에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재미있는 방법이 떠올라 행동에 나섰다. 가장 먼저 주먹 쥔 손을 양쪽 관자놀이에 붙인 뒤, 꽉 말아쥐었던 손을 활짝 폈다.

레오나의 머리 위에 퐁- 하고 튀어나왔던 귀를 표현한 것이다.

"...!"

효과는 굉장했다. 내가 행동으로 표현하자마자 레오나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면서 몸을 빳빳하게 굳힌 것이 아닌가.

퐁-

덤으로 컨트롤할 수 없게 된 레오나의 귀가 튀어나왔다. 이후로 다급히 수습하려는 듯했지만 이미 다 들킨 마당에 의미가 없다.

벌떡-

내가 속으로 키득거리고 있을 즈음, 레오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에 따로 이야기라도 나눌 심산인가 싶어서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텁-

"어?"

"너 잠깐만 따라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내 멱살을 붙잡고 질질 끌고가기 전까지는. 아예 인지조차 하지 못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눈을 깜빡거렸다가 멱살을 붙잡은 레오나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시, 식기 정리해야하는...!"

"크르릉...!"

"... ..."

내가 대꾸하자마자 레오나가 사납게 짖었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