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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23화 (24/763)

< 23화 >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세실리는 장난기가 많으면서 얄궂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할 때까지만 해도 예의바른 공주님의 표본이었으나 말을 놓은 이후부터는 줄곧 장난을 잘 쳤다.

"솔직히 말해도 돼. 나도 내가 예쁜 건 알고 있으니까. 아까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 이유도 그때문이지?"

"...아니라니까요."

"그럼 얼굴은 왜 빨개졌어?"

인류학 강의가 끝나고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식당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세실리의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반드시 내 입으로 대답을 듣기 위해 작정했는지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부추겼다.

나는 그녀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얼굴을 빨갛게 익어가는 걸 생생히 느끼면서도 최대한 부정했다. 괜히 긍정했다간 어떤 장난이 이어질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실리는 내가 끝까지 부정하자 도리어 본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는 누나라고 잘도 불렀으면서 지금은 왜 대답을 안 하는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그때랑 지금이랑 다르니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내 말마따나 주위에서 숙덕거리는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띄였다. 과민반응이 아니라 살짝 둘러보기만 해도 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정확히 우리 쪽을 향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나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세실리 때문이다. 그녀의 외모가 튀는 것도 있지만 세실리는 헬리움의 공주다. 입학식 때부터 화제의 인물이었으니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웬 듣도보도 못한 남학생과 친근하게 지낸다? 별의 별소문이 아카데미 내에 퍼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입학식 때부터 약 3주가 지난데다가 문학생은 무학과 달리 수가 별로 없으니 이미 퍼질대로 퍼졌을 것이다.

'아직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나도 귀가 있는지라 현재 내 평판이 어떤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교수들에게는 요주의 인물이고 같은 학생들에게는 재수없는 빨간머리. 전부 다 식당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다.

당장은 세실리와 리나 때문에 주시하고 있는 듯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른다. 헤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은 정서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청소년들인데다가 콧대 높은 귀족가 자제들이 많다. 멀리 가지 않아도 잭슨이라는 놈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중이다.

"...정말이네."

세실리도 내 말을 듣고나서야 분위기를 파악한 모양이다. 살짝 찌푸린 얼굴을 보아하니 별로 탐탁치 않는 듯했다. 그래도 세실리가 주위를 살펴봄으로써 수근거림은 잦아들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세실리에게 권유했다.

"불편하시다면 제가 따로 떨어질게요."

"아냐. 이정도는 문제없어. 헬리움에서도 줄곧 있던 일이거든."

"헬리움은 왕을 제외하면 귀족이 없지 않아요?"

"꼭 귀족이 아니더라도 왕을 견제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세실리가 빙긋 웃으며 두루뭉실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내가 알아서 안 되는 부분인 듯했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이에 내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녀가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캐묻지 않아서 고맙다는 의미에 가까웠으나 잠시 후, 미소가 더욱 짙어지며 장난기가 듬뿍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아차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까 전의 대답은? 언제 해줄거야?"

"... ..."

"계속 입 꾹 닫아버리면 이상한 짓 할 거다?"

결국 내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뒤덮으며 포기했다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네. 엄청 예쁩니다.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 세실리 씨가 제일 예뻐요."

"세실리 누나라고 불러야지?"

"...세실리 누나."

"후후. 고마워. 엎드려 절 받는 기분이지만 아이작한테 들으니 새롭네."

"후우..."

이제는 아예 얼굴이 터질 것 같다. 나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열을 어떻게든 밖으로 빼기 위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에도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실리는 소녀처럼 꺄르르 웃으며 내 귀를 간지럽혔다. 나를 놀리는 게 저렇게도 재미있는 걸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미안해. 반응이 워낙 재미있어서 관둘 수가 없네."

"...제 반응이 재미있다고요?"

"응."

"그럼 제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면 재미없겠네요?"

"한 번 해봐."

"...죄송합니다."

역시 나에게 주도권 따위는 없었다. 세실리는 내가 꼬리를 내리자 미약한 웃음을 흘리고는 전과 달리 부드럽게 말했다.

"아이작."

"네."

"아이작은 마족에 대해 궁금한 점은 없어?"

"그건 왜요?"

내가 반대로 되묻자 세실리는 인류한 시간에 있었던 일을 입에 담았다.

"아까 전에 엘프의 인구가 적은 이유에 대해 물었잖아. 그럼 마족은 안 궁금한 건가 싶어서."

"아뇨. 궁금한 건 엄청 많죠."

"근데 왜 안 묻는거야?"

세실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가 안 된다는 뉘앙스로 묻는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마주하다가 조용히 답했다.

"제가 실수할까봐요."

"실수할까봐?"

"네."

자그마치 수 백년 넘게 종족 가리지 않고 핍박받았던 마족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실리에게는 마족과 관련된 질문을 하기가 약간 조심스러웠다. 괜스레 아픈 부분을 건드리게 되면 나도 그렇고 세실리도 어색해질 게 뻔하다.

용기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내 기준으로는 일종의 배려다. 적어도 상대방의 상처는 후벼파지 않아야 원만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이때문에 세실리처럼 짖굳은 장난을 치지 않고 가만히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 아이작은 배려가 넘치는 아이였지."

세실리도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해줬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녀는 선심썼다는 투로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거나 물어봐도 돼."

"정말이에요?"

"응.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이작이니까. 악의도 전혀 없을거고."

"그렇다면야..."

나는 말을 흐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에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바깥에 나가서 먹고 오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빈 그릇을 하나 집어들며 세실리에게 질문했다. 평소에도 궁금했던 부분인지라 살짝 기대가 되었다.

"그 뿔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거예요?"

"응? 뿔?"

"네."

세실리는 내 질문을 듣고 관자놀이에서부터 위로 솟아난 뿔을 만지작거렸다. 뿔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붉은빛을 강하게 띄었다.

검은 마나와 더불어 뿔은 마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마족의 뿔은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별의 별 괴상한 소문만 무성했다.

가령 마족의 뿔에는 마나가 집결되어있다던지, 아니면 단순히 악마의 상징이라던지 등등. 이로인해 제논 일대기에서도 뿔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적지 못 했다.

"으음..."

세실리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건지 빈 그릇에다가 음식을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대답을 해줄 때까지 기다리면서 음식을 하나하나 담아올렸다.

이윽고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아았을 때 즈음, 내 맞은편에 앉게 된 세실리가 대답을 해줬다.

"생리 주기를 알려준달까?"

"...예?"

툭-

음식을 찍었던 포크를 놓칠만큼 당황스러운 대답이다. 순간적으로나마 진담인지 장난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내 심정과 달리 세실리는 평온한 얼굴 그대로였다.

이를통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어도 세실리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마족은 악마의 후예야. 그리고 악마는 말그대로 '욕망'의 결정체지. 이때문에 우리 마족은 특정 주기마다 자신의 욕망을 컨트롤하기 힘든 시기가 있어. 이 현상을 '악주기(惡週期)'라고 칭하지만 남자들만 그렇게 말하고 여자들은 그냥 생리로 치는 편이야. 얄궂게도 월경이랑 시기가 겹치거든."

"... ..."

생리 주기라고 할만하다. 그덕분에 정지되었던 머리도 차차 진정되어 사고가 가능해졌다. 그대신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헛기침을 통해 머릿속에 든 상념이 전부 떨쳐버리고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그럼 어떻게 참아요? 저는 인간 남자라 모르지만 여자들은 생리 때마다 배가 찢어질 듯이 아프다는데."

"보통은 명상을 통해 진정시키는 편이야. 그리고 최근에는 약도 발명되서 큰 문제는 없어."

"만약에 악주기 때 누가 건드리면요? 악마가 되는 거예요?"

"아니. 고작 악주기 때문에 악마가 되지는 않아. 마족이 악마가 되는 경우는 대부분 끔찍한 비극을 겪었을 때야. 사랑하는 연인을 눈 앞에서 잃거나, 아니면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거나."

세실리는 잘게 썬 고기를 포크로 집은 뒤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뭐, 네 말대로 악마 못지 않게 난폭해지기는 해. 특히 여자들이 그러는 편이지."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에요."

"그래? 아까 들어보니까 인간은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한다며? 너무 힘들겠다. 마족은 6개월에 한 번이거든."

장수하는 종족은 생리 주기가 긴 편인걸까. 엘프도 그렇고 마족도 그렇고 생리 주기가 어마어마 길었다. 아니면 인간과 수인이 비정상적으로 짧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점점 불어나는 호기심에 서둘러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식사보다는 마족이 어떤 종족인지 더 중요했다.

"그러면 뿔이 자라면 자랄 수록 주기가 다가온다는 걸 의미하는 거예요?"

"아니. 뿔은 자라지 않고 이 빨간 부분이 뿔 전체를 뒤덮는거지."

세실리는 덧칠된 것처럼 붉게 물든 뿔의 윗부분을 툭- 툭- 건드렸다. 현재 약 4분의 1정도가 붉은색으로 덮혀있는 상태다.

'뿔이 전부 붉게 물든 상태면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괜히 건드렸다가 어떤 참상이 벌어질지 모른다. 나는 입 안에 든 음식을 우물거리다가 연이어 물었다.

"뿔이 잘려나가면 어떻게 돼요?"

"금방 원상복구 돼. 그리고 잘려나가도 아무런 감각도 없어."

"뿔 자체에 감각이 없는 건가요?"

"응."

"그럼 실례지만 한 번 만져봐도 돼요?"

"...에? 뿌, 뿔을 만진다고?"

내 질문에 세실리의 반응이 썩 이상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버버하더니 뺨에 미미한 홍조가 이는 것이 아닌가. 부끄럽다는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나는 새삼스러운 그녀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민감한 주제라는 걸 뒤늦게 눈치챘다. 저리 부끄러워할 정도면 분명 범상치 않는 의미가 담겨있을 터.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 미안. 마족에게 뿔을 만진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애정 행위거든. 네가 악마가 되어도 널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야."

"오... 로맨틱하네요."

"그, 그래? 로맨틱하다라... 마족이 아닌 인간에게는 처음 듣네."

세실리가 쑥쓰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평소 나에게 장난을 치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던지라 새롭게 다가왔다.

'덕분에 하나 넣을 수 있게 됐네.'

제논 일대기에서 애틋한 러브 라인을 타고 있는 진과 릴리의 이야기에 뼈와 살을 붙일 수 있는 정보였다.

진은 릴리만을 위한 기사이니 그가 한 쪽 무릎을 꿇어 예의를 차릴 때 릴리가 그의 뿔을 쓰다듬어주는 것이다. 그 뒤에 진이 화들짝 놀라며 릴리를 올려다보는 거고. 이 세상에 마족과 성직자 간의 사랑만큼 슬픈 이야기도 없을거다.

물론 최후반부에서는 어김없이 진을 최종보스로 등장시킬 예정이다. 어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뿌려놓은 복선과 떡밥이 너무 많은 탓에 결말을 바꾸기가 힘들다. 정 힘들다면 외전을 하나 내놓을 계획이다.

나는 분위기가 어색하게 흘러가기 직전, 입 안에 든 음식물을 모두 목구멍 너머로 넘기면서 세실리에게 말했다.

"세실리 누나는 인간에 대해서 궁금한 점은 없어요?"

"으, 응? 인간에 대해 궁금한 점?"

"네. 저만 묻기는 좀 그래서요. 누나도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인간이라..."

다행히 어찌어찌 어색한 분위기는 물린 듯하다. 나는 세실리가 입을 열 때까지 얌전하게 음식을 입에 넣었다. 세실리도 생각을 정리하는 건지 식사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익숙한 사람의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시선을 옮기니 딱딱한 인상의 미녀, 레오나가 멀찍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평소에는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레오나는 다른 여학생과 달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과 달리 인상이 워낙 딱딱하고 날카로운지라 멀리서 보면 남학생처럼 보였다.

'쟤는 친구가 없나? 왜 저렇게 멀리 앉아있지?'

식당에 학생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는 레오나는 유독 멀찍히 떨어져 앉았다. 오히려 그녀의 주위에 아무도 없는 탓에 더욱 눈에 띄였다.

내가 턱을 괴며 우물거리고 있을 때,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지 자리에 앉은 레오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쫑긋-

뜬금없이 머리 부분에 무언가가 쫑긋하며 솟아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아쉽게도 내 시력이 그닥 좋지 못한 탓에 정확한 판별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 위에 무언가가 솟아났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

레오나도 본인의 머리 위에 뭔가 솟아났다는 걸 깨달았는지 다급히 손을 얹었다. 딱딱했던 인상은 온데간데도 없이 사라지고 당혹감만 남은 표정이 사뭇 볼만했다.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가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비볐다. 눈을 비비고 다시 레오나 쪽을 쳐다보니 그녀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 평소대로 무표정으로 식사를 하는 중이다.

내가 레오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동안이었다. 그사이 세실리가 생각을 정리했는지 내 이름을 불렀다.

"아이작?"

"...아. 네네. 누나."

"잠깐 멍 때리고 있었나 보네. 질문할 거 생각났는데 해도 되지?"

"네. 질문해도 돼요."

내 허락하자 세실리는 정말 궁금하다는 어조로 질문했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중심이 될 수 있던 이유요?"

"응. 강의에서도 들었지만 너의 의견이 궁금해서 그래."

"음..."

대답하기 꽤나 복잡한 질문이다. 인간밖에 없던 지구에서도 인간은 섣불리 단정지을 수 없는 종족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을 판단하는 것도 결국 같은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객관적인 설명이 가능했다.

그래도 이거는 확실하다. 인간은 더없이 선해질 수도 있으나 더없이 악랄해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성선설과 성악설이 치열하게 치고받았던 걸 생각하면 된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구에서의 기준이고, 이 세상은 조금 다른 시야로 보아야 옳다.

나는 버릇대로 펜혹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다가 세실리를 힐긋 바라봤다. 세실리는 내 대답이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겠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중이다.

이에 펜혹을 문지르던 엄지 손가락을 뚝- 멈춘 후 조용히 말했다.

"미리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생각이니 주의깊게 들을 필요는 없어요. 저보다 세상 경험 많은 교수님들이 많으니까요."

"괜찮아. 말해도 돼."

"네. 그..."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세실리의 뒷편을 쳐다봤다. 혼자 식사하고 있던 레오나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다.

설마 이 거리에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건가 싶었으나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닌데다가 거리도 매우 멀었다. 이에 나는 개의치 않으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인간이 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너무 멍청하고, 무모하며, 어리석기 때문이에요."

쫑긋-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레오나의 머리에서 이상한 것들이 다시 한 번 불쑥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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