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7화 (8/763)

< 7화 >

"오올~ 너 머리 좀 잘 돌아간다?"

"시끄러."

칭찬을 해줘도 전혀 기쁘지가 않다. 칭찬도 칭찬 같아야지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말하니까 놀리는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는 교수의 가산점보다 아까 전 내게 쏟아졌던 무수한 시선들이 신경쓰였다. 리나와 세실리는 호기심이었으나 몇몇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앞으로 전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뒤이어 박수 소리가 점차 잦아들자 비루스 교수는 느긋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작 학생의 대답처럼 지식은 곧 힘이 될 수 있는 무기나 다름없어요. 사람에게 있어서 힘이란 결코 뗄래야 뗼 수 없는 관계죠. 또한..."

발표 때와 달리 지루하게 이어지는 그의 강의 시간. 그래도 나는 물론 모든 학생들은 교수의 강의에 집중했다.

전생의 대학교 수업처럼 지루하기만 했지, 쓸모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판타지 소설에나 있을법한 아카데미에 다닌다는 걸 실감시켜줬다.

그렇게 교수의 장황한 설명이 약 30분 동안 이어졌을 때 즈음, 모두의 집중을 이끌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서 잠깐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제논 일대기라는 책을 읽어보신 학생 있습니까?"

"...응?"

왜 갑자기 내 책이 왜 언급되는 거야. 내가 속으로 당황하는 동안 교수는 아차하며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말했군요. 여기서 제논 일대기를 한 번이라도 읽지 않은 학생 있습니까?"

나는 교수가 그 질문을 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논 일대기가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50명 중 한 두 명 정도는 관심이 없지 않을까.

그러나 그 예상이 모두 내 오판이라는 듯, 손을 드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진짜로?'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마냥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상이라고한들 여기는 아직 중세 시대에 가깝다. 여가 시간에 즐길만한 문화가 매우 적을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는 물론, 텔레비전까지 발명되지 않았으니 여가 생활에 즐길 수 있는 건 극히 한정돼 있다. 거다가 귀족들은 본인의 교양을 위해서 책을 읽을테니 제논 일대기를 자연스레 접했을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시대를 정말 잘 타고났다고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럼 이야기가 쉬워지겠군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논 일대기는 1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작품이죠. 전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만한 능력을 갖고 있을까?"

그거 전생에서 널리고 널린 거예요. 판타지가 거기서 거기지 뭐. 양념만 잘 버무려주면 독자들은 비슷한 이야기여도 재미있다고 해줬다.

"또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으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확신하건데, 제논 일대기의 저자는 범인으로써는 상상조차 못할 경험을 겪었을 겁니다."

...집에서 책을 많이 읽었을 뿐이다. 그래도 교수의 말이 아주 틀리지만은 않은 게, 나는 '환생자'다.

다른 세상에서 색다른 경험을 겪었을 뿐더러 상상조차 못할 문물을 쉽게 접했다.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이겠지.

더군다나 다른 사람이 창조한 이야기, 그러니까 만화나 소설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 쯤이야 아주 쉽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표현력과 가독성입니다.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생생하게 재생되는 기분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이러한 문장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심하고, 또 연구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렇게 칭찬만 하시면 내가 다 부끄러운데요. 나는 쓴웃음을 지을 뻔했다.

당장 내가 쓴 책을 보고 저러는데 반지의 제왕이나 셜록 홈즈를 본다면 기절초풍하지 않을까.

톨킨이나 코난 도일이 이곳에 환생했다면 어떤 파장을 일으켰을지 궁금하다.

아. 톨킨은 본인의 직접 창작한 세계관이 현실로 변했으니 당황할 것 같다.

"제논 일대기 같이 불후의 명작을 쓰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제논 일대기의 저자가 이미 길을 닦아놨으니 그 길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단,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만한 지식과 경험은 필수겠지요."

"교수님.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비루스가 설명을 이어나가던 도중에 누군가 팔을 번쩍 들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고동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이었다. 앞자리에 앉아서 그런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가던지 간에 질문을 싫어하는 교수는 없다고, 비루스 교수는 화색을 띄며 그녀에게 물었다.

"물론이지요. 이름이?"

"레오나라고 합니다."

"그래요. 레오나 학생. 질문이 뭐죠?"

레오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에서 온갖 시선들이 쏟아졌다. 이어서 또박또박하면서 무뚝뚝한 목소리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교수님의 설명처럼 제논 일대기는 소설을 넘어 문화계에 한 획을 긋다 못해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전무후무한 인기를 끌고 있고요."

"그렇죠."

"하지만 몇몇 평론가들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계급을 막론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맞지만, 교양을 쌓기에는 부족하다고. 교수님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대충 알 것 같다. 제논 일대기가 대박을 치자 대부분 호평을 쏟아냈지만 소수는 비난했다.

그 내용은 이러한데, 교양을 쌓기에는 부적절해도 한참 부적절하다고 말이다. 나는 그걸 보고 코웃음쳤다.

'꼬우면 자기들도 나처럼 쉽게 쓰던가.'

전에도 언급했지만 이 세계의 소설은 수능 영어 문제급이다. 태어나서 한 번 들을까 말까 한 단어들이 한 책에 전부 몰려있으니 스토리는 커녕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교수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지 레오나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학생의 질문처럼 제논 일대기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무엇을 말이죠?"

"비평을 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소설 작가라는 겁니다. 그것도 제논 일대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 평민이 아닌 귀족들에게'만' 인지도가 가장 높았던 작가들이죠. 그중 한 명은 메그너 교수라고, 저 말고도 여러분에게 지식을 전수할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유독 '만'을 강조한 교수다. 비루스 교수는 레오나에게서 시선을 떼더니 칠판 앞을 왔다 갔다거리며 느긋한 음성으로 설명해줬다.

"어째서 평민이 아닌 귀족들에게만 인지도가 높았냐면, 이전까지의 소설은 대부분 귀족들밖에 못 읽었기 때문입니다. 평민에게는 어려운 단어가 많아서 거의 해독하는 수준이었거든요. 이러니 가독성은 떨어지고, 나중에 가면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한 방향으로 꼬여버리죠."

"... ..."

"하지만 제논 일대기는 평민조차 쉽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문장과 표현력을 구비했습니다. 제논 일대기는 교양을 쌓을 수 없다?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본디 교양이라는 건 응당 학문과 지식을 얻어야만 터득할 수 있는 것."

여기저기 서성거리던 교수의 발걸음을 딱 멈췄다. 그리고 마침내 레오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자, 그럼 레오나 학생. 제가 반대로 질문을 하겠어요."

"네. 교수님."

"레오나 학생은 제논 일대기를 몇 권까지 읽으셨나요?"

"최근에 나온 것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마리 왈.

"와씨. 나도 최근에 나온 건 못 읽었는데. 쟤는 어떻게 읽었데?"

"방법이 있었겠지."

우리가 떠들던 말던 레오나의 대답을 들은 교수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제논 일대기를 읽은 후에 마족을 어떻게 생각하시죠?"

"... ..."

레오나는 대답하지 않고 세실리가 앉아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세실리는 본인이 언급될 줄은 몰랐는지 살짝 움찔거렸으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잠시 후, 세실리와 몇 초간 마주하던 레오나는 납득이 갔는지 무뚝뚝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질문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아뇨. 정말 예리한 질문이었어요. 레오나 학생에게 가산점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예상치 못한 가산점에도 레오나는 고저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로봇 같다고 생각할만하다.

"아무튼 특정 지식을 완전히 자기 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지식이 무엇을 알려주는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제논 일대기는 그 점이 극도로 진보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이야. 아무 생각없이 취미로 쓴 소설을 저렇게 포장해주시네.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그동안 교수는 마침 잘 됐다 싶었는지 중간중간 제논 일대기를 언급하며 강의를 이어나갔다. 학생들도 전보다 흥미가 돋은 얼굴로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아마 마지막 순간에도 절대 오만해지지 말라는..."

도중에 나조차도 몰랐던 이야기의 의미를 교수가 스스로 꾸며내기도 했다. 정작 작가 본인은 아무 의미없이 적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너무 똑똑한 사람은 쉬운 함정을 오히려 더 복잡하게 해석한다는데 딱 그 모양이다.

그래서 중간부터는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한 표정으로 강의를 들었다. 옆을 힐긋거리니 마리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듣는 중이다.

"음...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끝나가는군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교수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끝이 다가옴을 알렸다.

나는 몰라도 학생들에게는 꽤 재미있었는지 탄식하는 소리가 조금씩 들렀다. 그렇게도 재밌는가.

비루스 교수는 탄식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말고도 시간은 많으니까요."

"교수님 말고 다른 교수님은 무엇을 가르쳐주나요?"

"역사, 신학, 마법, 의술, 행정, 정치, 철학, 생물 등등. 각 교수마다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쳐 줄 겁니다. 또한 이 시간이 끝나면 여러분들께 시간표를 발부할 예정입니다."

"혹시 전부 다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건가요?"

어느 한 학생이 불안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확실히 저걸 하나 하나 들으려면 머리가 아플 것이다. 비효율의 극치를 달린다고 해야 하나.

하나 비루스 교수는 그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여러분이 원하는 강의만 들으셔도 상관없어요. 단, 유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일정 이상의 점수가 필요할 겁니다."

"그럼 관심 없는 전공은 출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립니까?"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교수들도 본인의 강의에 관심있는 학생에게만 집중할테니까요. 대신 아까 말했듯이 일정 이상의 점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강의를 들어 출석 점수라도 따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아까 설명한 것처럼 2학년까지는 공통된 수업을 듣지만, 일정 이상의 점수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관심없는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확실히 이것만 본다면 전생의 대학교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내가 따로 수강 신청을 하지 않아도 전공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게 차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나름대로 익숙한 시스템이라 만족스러웠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학생 여러분."

강의 시간이 모두 끝남과 동시에 비루스가 허리를 숙이며 신사답게 인사했다. 당연하게도 인상깊은 강의였는지라 학생들은 박수로 응대해줬다.

이윽고 비루스가 강의실 밖으로 나가고, 조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와 학생들에게 종이를 배부해줬다. 조금 전 교수가 언급한 시간표인 듯했다.

"미친. 이게 뭐야."

그리고 나는 시간표를 확인하자마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수업은 상관없는데 전공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얼마나 많으면 같은 전공을 찾으려 해도 전부 다 다른 전공이다. 마리도 혀를 쯧 차며 곤란하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많기만 하네. 여기서 특정 점수만 확보하면 된다는 거지? 넌 무슨 전공을 들을거야?"

"...일단 다 들어보고. 너무 많아서 나도 모르겠다. 일단 역사랑 신학, 그리고 생물 정도는 고려하고 있어."

마리의 질문에 대충 답하며 시간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가 말한 세 가지 과목은 솔직히 자신있었다. 책을 통해 얻은 풍부한 지식이 내 머릿속에 저장돼 있었으니까.

당연히 관심없는 전공은 한 번만 듣고 이후로는 무시할테지만 걱정되는 게 딱 하나 존재했다.

'점수는 상관없는데 여기에도 조별 과제가 있으려나? 그럼 귀찮아지는데.'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아이작 씨?"

"응?"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이에 나는 시간표에서 시선을 떼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역사와 신학, 그리고 생물을 고려하고 계신다고요?"

태양처럼 화사한 미모를 내뿜는 리나가 빙긋 웃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색 눈빛에는 강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또한 그녀의 옆에는 세실리가 서 있었는데, 리나보다는 아니지만 비슷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옘병.'

저주할테다. 교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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