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화 >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본론부터 말하겠다. 나는 작가였다. 유명하진 않았지만 매니아층이 두터웠던 판타지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
물론 환생한 지금은 아니지만.
어째서 내가 느닷없이 환생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었으나 죽음의 기억은 명확했다.
여느 때처럼 소설을 집필하고 있을 즈음, 느닷없이 심장 쪽이 욱신거리더니 이내 숨을 못 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마 심장마비가 아닐까 싶다. 독립하여 혼자 살았던 탓에 누가 도와줄 수도 없었겠지.
뭐, 그렇다고 아쉽거나 그러진 않았다.
애초에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가족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나 혼자 남게 됐다. 어찌 보면 고독사라고 할 수 있겠지.
그나마 걸리는 점이 있다면 진행하던 작품을 미처 끝내지 못 했다는 걸까. 내 죽음은 알려지겠지만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
그래서 환생했다는 걸 자각하자마자 무료함도 달랠 겸,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새로운 작품을 쓸 생각이었다.
여기가 흔히 '판타지'라 일컫는 세상이라는 걸 자각하기 전까지는.
"...어쩌겠어."
그냥 접고 살아야지.
다행히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세상 속에서, 나는 귀족으로 태어났다.
비록 한적한 시골밖에 없는 영지지만 있는 건 다 있는데다가 평민으로 태어난 것보다는 수 백배 낫다.
평민은 말이 평민이지, 귀족에게 감히 대들 수 없는 하층민이니까.
또한 가문을 이을 장남이 아니라 막내로 태어나 괜한 권력 싸움이 휘말릴 일도 없어 느긋한 현생을 보내는 중이다.
"음..."
그리고 다시 돌아와 현재, 시간이 훌쩍 지나 16살이 됐을 때다.
나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두터운 책을 읽고 있었다.
독서는 전생에서도 취미 중 하나였던지라 여기서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문제는...
"씨부레. 이게 무슨 말이야."
책이 하나같이 죄다 문학집이다. 그냥 시인들이 시를 갖다 박은 시집이라고 해야할까.
인기라는 로맨스 소설조차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력과 가독성이 난해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쓸데없는 단어들로 가득 찬 수능 영어 문제 같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외국인조차 못 푼다는 전설의 영어 수능.
"염병할. 이러니까 귀족들만 읽는거지."
나는 책을 대충 집어던지며 성질을 부렸다. 문장을 하나 하나 읽을 때마다 문제 풀이를 해야 하니 머리가 아프다.
그냥 머릿속에 똭! 하고 상상이 될 수 있도록 적으면 얼마나 좋아. 더 웃긴 건 독서가 귀족들 사이에서 기본 교양이라는 거다.
어떤 형식이냐면...
-이 작품 읽어보셨나요?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래저래 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백작 님은요?"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100분 토론을 한다.
부모님에게 물어보니 교양이 얼마나 깊은지 시험하는 방식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참.
무엇보다 귀족들은 자기 주장이 강해서 의견이 안 맞으면 싸움도 종종 발생한다고 들었다.
그걸 듣고 속으로 지랄도 풍년이다라며 신나게 까내렸지.
'이 사람들에게는 내 전생이 판타지겠지?'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는 몬스터도 있고, 엘프나 드워프, 수인, 그리고 마족 등등. 다양한 종족이 존재한다.
종족 특징도 내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존재했다.
엘프는 자연친화적이라던지, 드워프는 손재주가 좋다던지, 수인은 동물의 특징을 닮았다던지.
다만 '마족'은 약간 독특했는데,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저주받은 자'들이라며 배척받고 멸시당하는 편이다.
마족은 아득한 과거, 이 세상을 파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악마'들의 후예다.
이것만 본다면 시덥잖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마족 고유의 종족 특성 때문이다.
악마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본인의 '욕망'을 이기지 못 하면 완전히 '악마'가 되버린다.
악마가 된다면 그저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파괴하는 몬스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종족 특징 때문에 마족과 연관이 깊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으며, 마족들도 본인들의 운명을 저주해 '인간'으로 살아가길 소망하고 있다.
대신이라고 해야할지 악마로 변하지 않아도 본연의 힘이 막강해 자기들만의 나라를 세워 주변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흠..."
뭔가 재미있는 작품이 떠오를 것 같은데.
이 세상에는 신도 존재하고, 신의 힘을 빌려쓰는 성직자도 있다. 그러니 서로 대비되는 마족과 성직자를 적당히 연결시킨다면 어떨까.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다.
'원래 비극이야말로 사람의 뇌리에 깊게 박히는 법이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성직자와 마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넣으면 꽤 큰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화려하게 뒷통수를 치는 거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된다던가, 아니면 몸을 버리면서까지 상대를 막는다던가.
참고로 난 전생에서 독자들에게 사탄대학 교수라고 불렸던 사람이다. 흔히 유열러라고 부르기도 하지.
"오. 괜찮네."
수능 영어 문제 같은 책만 읽다보니 간단하게 읽을만한 책이 필요하다.
허나 지금 이 시대에 그런 책이 나오는 걸 빌 바에야 차라리 내가 직접 적고 말지.
할 것도 없겠다,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쪽으로 향했다.
'에이씨. 이거 한 번 잘못 쓰면 다시 써야하잖아.'
시대가 시대인지라 연필은 커녕 제대로 된 볼펜조차 발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잉크와 펜촉으로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다행히 종이는 꽤나 잘 발달돼 있다.
이윽고 나는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 도입부를 어떻게 적어내릴지 고심했다.
언어도 문제없다. 머릿속에 한국말을 입력하면 자동적으로 이 세상의 언어로 통역될 뿐더러 문법 자체도 한국어와 똑같다.
"우선은 배경은 간단하게..."
판타지 세상 속에서 판타지 소설을 쓰려니 기분이 무언가 묘했다.
어디까지나 심심해서 취미로 쓰는데다가 잘 되면 잘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된다는 마인드다.
굳이 작가로 먹고 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집안 재력이 풍족하니까.
"좋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펜촉을 놀렸다.
여기가 판타지 세상이어도 환생한 나에게는 평범한 판타지 소설을 쓰는 느낌이었다.
'이거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겠지.'
여차하면 가족들에게 보여줘서 출판해도 될지 말지 정하면 그만이라 걱정은 없었다.
"아. 혹시 모르니 설정은 그렇다 쳐도 이 모든 이야기가 허구라는 걸 넣어야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판타지니까. 음음.
*******
'마족'은 악마의 후예다. 이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며 그들에게 내려진 저주다.
악마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뿔, 피처럼 새빨간 적안과 불길함이 감도는 검은 마나까지.
하나 하나 악마와 비슷한데다가 이성을 잃게 되면 진짜 악마가 되어버리니 사람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다.
이로인해 그들이 국가를 세워도 다른 나라는 인정해주지 않았으며, 말도 안 되는 힘만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처리했을 거라 치를 떤다.
마족들도 이런 비참한 차별에도 묵묵히 받아들였지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허나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틈만 나면 악마화를 한 마족들이 피해를 끼쳐 이들의 소망은 요원한 일이었다.
한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소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뤄낸 작가. 대체 누구인가?
-앞으로 영원히 회자될 영웅의 서사시. 하지만 그 속에는 비극과 슬픔이 담겨있다.
-머릿속에서 바로 상상이 될만큼의 표현력과 가독성. 신분을 막론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제논 일대기.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발간된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문학 소설인줄 알았다가 어느 한 귀족이 밤낮을 지새워 읽었다는 소문이 발생한 이후부터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과거, 세상을 파멸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대악마와 그 악마를 부활시키려는 집단, 그리고 그걸 저지하는 영웅의 이야기다.
겉으로는 평범한 영웅의 서사시로 보였지만 '마족'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마족의 슬픈 숙명과 외로움을 대변해주는 책.
-반 인간 반 악마로 어느 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외롭게 살아가는 마족들의 소망을 표현했다.
-수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 '사크란'의 최후. 그는 악마가 아닌 인간으로써 몸을 바쳤다.
특히 한 마족의 희생 파트 이후로 신문에는 온통 그 이야기밖에 없었다. 얼마나 감명 깊었는지 평소 감정 변화가 없던 사람들조차 이 부분을 읽고 흐느껴 울었다고 할 정도.
무엇보다 평소 마족을 혐오하던 사람들마저 슬픔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족을 향한 부당하고도 차별적인 대우. 정말 옳은 일인가?
-그들은 악마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자들. 우리가 그들을 악마로 만들었다.
더 놀라운 건 마족을 향한 시선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
본래 마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악마로 취급했으나 제논 일대기가 발간되고나서 180도 달라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서 인간이길 갈망하는 안타까운 종족들로.
악마가 아닌 태어나서부터 비참한 운명을 짊어지게 된 존재들로 말이다.
이 믿지 못할 변화에 마족들의 나라, '헬리움'에서도 제논 일대기에 대한 감평을 꺼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사람은 마족의 슬픈 숙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는 자다.
-욕망을 이겨내면서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야말로 '진심'이라는 글귀. 이 글귀 하나가 모든 마족들에게 절제를 가르쳐줬다.
세상에 '마왕'이라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헬리움의 왕도 책을 쓴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했다.
이처럼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수많은 사람의 애를 태우는 작가는 현재...
"이.... 이게 머선 일이고."
신문을 읽으며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아직 완결하려면 좀 남았는데...?"
이걸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