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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54화 (154/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54

“아니, 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짐을 챙겨나오며 나는 테오도르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무슨 말?”

“포상금을 주는 게 제 뜻이라고 했던 거요. 그리고 잘 쉬었냐는 질문의 대답은 왜 저한테 떠넘기신 거죠?”

“그야 나한테는 네가 편안하게 쉬었는지가 제일 중요하니까.”

그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테오도르는 대답했다.

“그럼, 제가 불편했다고 했으면 어떻게 하시려고 했어요?”

“굳이 듣고 싶어?”

어딘지 모르게 싸한 질문이었다. 굳이 그렇게 방을 열어봐야겠냐고 묻는 푸른 수염처럼.

“…… 마을을 불태웠을 건 아니죠?”

“글쎄…….”

살짝 망설이는 것 같은 테오도르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진짜 마을을 불태워버릴 생각을 했던 건 아니겠지? 나는 분명히 이제 힐링물로 전환했다고 생각했는데? 아, 아니다. 어쩌면 이 소설의 장르는 모험물로 전환한 걸 수도 있겠다. …… 그거 너무 마이너 아닌가?

뭐, 어때? 이건 소설 속 세계일 뿐이지, 진짜 소설도 아닌데.

“말이 저기 오네요.”

인스트의 말대로 마을 주민 두 명이 어제 우리가 맡겨놓은 말을 데려오고 있었다.

어째 쟤들도 오랜만에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고, 산에서 아무 풀이나 뜯어 먹다가 사람이 입 앞에 먹이를 대령해주는 호사를 누려서인지 하룻밤 사이에 신수가 훤해진 듯했다.

“아침도 든든히 먹이고, 빗질까지 싹 해놓았습니다.”

남자의 눈이 존경으로 반짝였다.

“수고했소.”

그에 반해 인스트는 카리스마 있게 고개를 한번 까딱이곤, 말 고삐를 넘겨받았다.

그가 말 위에 얹어진 짐을 확인하는 사이, 잠시 마을을 둘러보자 저쪽에서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갈까?”

“아, 네!”

혹시 안젤라도 거기 있나 싶어서 보는 동안, 테오도르와 인스트는 벌써 말에 올라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빗질을 해서 반질반질해 보이는 엘리자베스도 빨리 타라는 듯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재빨리 스기엔이 안에 든 가방을 엘리자베스의 목에 걸고, 말에 올랐다.

출발하기 전에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는데,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레나티스 언니!”

작은 그림자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안젤라였다.

“안젤라?”

나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눈짓을 테오도르와 인스트에게 보내곤, 얼른 말에서 내렸다.

“이거, 이거 놓고 갔어요.”

안젤라는 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소리쳤다. 그 작은 손에는 토끼 인형이 들려 있었다.

놓고 간 거 아닌데……. 일부러 안 챙긴 건데…….

“여기, 하아, 하아……. 토순이요.”

안젤라는 숨을 헐떡거리며 다시 한번 내게 토끼 인형을 내밀었다.

“어, 그게…….”

이걸 어떻게 좋게 거절해야 하나 싶어서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안 받겠다고 하면 안젤라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 같고, 받자니 나한테는 필요 없는 물건인데다가 이름을 붙일 만큼 안젤라에게는 소중한 물건인 것 같았다.

“내가 토순이랑 이야기해봤는데,”

“언제요?”

“어…… 그때 잠깐 만났을 때? 아무튼 이야기해봤는데, 토순이는 안젤라가 너무 좋아서 헤어지기 싫대.”

“토순이가 말을 해요?”

“가끔 할걸?”

“토순이는 입이 없는데…….”

안젤라는 물끄러미 자기 토끼인형을 내려다보았다. 나 역시 그 시선을 따라서 토순이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인형에 눈과 코는 달려 있지만, 입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마, 마음으로 대화했지.”

나는 다급하게 둘러댔다. 텔레파시에는 입이 필요 없을 테니까. 사실은 나도 해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요?”

……애들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서 끈질길까?

“마녀의 방법이 있어. 원래 마녀는 다 할 수 있어.”

나는 이 논란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가장 허술한 답변을 했다.

“그렇군요! 역시 마녀는 굉장해!”

……이게 되네.

“응. 그래서 대화 해봤는데, 토순이는 안젤라가 너무너무 좋아서 헤어지기 싫대.”

“그래요?”

안젤라는 슬픈 눈으로 토순이를 바라보았다.

“안젤라는 어때? 토순이랑 헤어지고 싶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안젤라에게 했다.

“아뇨. 저도 토순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안젤라가 대답했다.

“엄마가 또 토순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토순이는 하나뿐이니까요. 다시 만든 토순이는 이 토순이가 아니에요.”

아이는 새삼스럽게 자기 토끼의 유일무이함을 깨달은 듯, 눈물을 글썽이며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 토순이도 그렇게 생각하더라고. 분명 나도 토순이에게 잘해주겠지만, 그래도 나는 안젤라가 아니잖아.”

나는 인형을 쥔 안젤라의 손을 그대로 접어 제품에 토끼 인형을 안게 했다.

“그래서 토순이는 안젤라에게 돌려주려고 해.”

“그래도 돼요? 마녀에게 소원을 빌면 대가를 줘야 한다고 책에 쓰여 있었는데요.”

“괜찮아. 다른 걸 받았잖아.”

나는 주머니에서 이전에 받았던 도토리 팔찌와 조약돌 두 개를 꺼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들도 내게는 그리 쓸모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안젤라의 귀여운 선물로 생각하고, 당분간은 저택에 돌아가면 한 번씩 꺼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토리가 썩어버리고, 조약돌을 실수로 잃어버린다면, 나는 별 미련 없이 더는 그것들을 찾지 않게 되리라.

하지만 그것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 작은 꼬마가 울먹이며 소원을 빌던 목소리와 제 엄마의 손을 꼭 잡던 작은 손과 수프가 정말 맛있다며 해맑게 웃던 미소와 나를 향해 달려오던 짧은 다리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잘 있어, 안젤라.”

그리고 나를 배웅하기 위해서 밖에서 기다렸던 만큼, 겨울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던 아이의 작은 몸도.

“…….”

아이는 눈물을 참느라 입을 열 수 없는 듯,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도 귀여워, 나는 말에 올라타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던지, 나를 기다려주고 있던 테오도르와 인스트의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자, 갈까?”

이제야말로 출발할 때라는 듯, 테오도르가 서둘렀다. 산에는 해가 빨리 진다고 하니, 서두르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우리의 출발은 또 지연되고야 말았다.

“분홍 마녀님, 만세!”

“축복을 내려주신 마녀님께 신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발루텍스에서 내려오시면 부디 또 들러주시길 바랍니다!”

“또 맛있는 식사를 해드릴게요!”

“분홍 머리 마녀님, 너무 예뻐요!”

“또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세요!”

우리가 마을 입구에 다다르기도 전에, 뒤쪽에서 터져 나온 중구난방의 외침들 때문이었다.

대체 저게 뭐람?

나는 깜짝 놀라서 말을 멈췄고, 휙!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소리치고 있는 분홍색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시야를 가렸다가, 이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소리치고 있었다.

“다음에 또 오세요! 환영입니다!”

“꺅! 분홍 머리 마녀님 너무 예뻐요! 귀여워!”

“마녀님의 앞길에 꽃길이 가득하시기를!”

“축복에 감사드립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전혀 통일되지 않은 말들이 누군가의 지시나 짠 것이 아니라, 진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래요?”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보면 비명을 지르고, 눈을 피하고, 문을 걸어 잠그기에 바빴던 사람들이 지금은 나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었다.

“네가 저주받은 존재가 아니라,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테오도르는 이렇게 될 것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슬쩍 그의 입꼬리에 매달린 미소가 말하고 있었다.

이건 우연히 이렇게 된 것도, 테오도르가 그저 예상만 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되도록 만든 것이었다.

“이러려고 그런 거였군요?”

“뭐가?”

어쩜 저렇게 시치미를 뚝 떼지? 자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이 되묻는 테오도르에게 저절로 눈이 흘겨졌다.

하지만 흘겨보는 내 눈에서 발사되는 눈빛은 그저 애정만 가득하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일부러 마을에 돈을 뿌리고, 오늘 아침에는 저한테 평가하라고 해서 그 명목으로 돈을 더 뿌렸잖아요. 마치 제가 저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준 것처럼요.”

테오도르는 별 말없이 피식 웃었다.

그저 여전히 손을 흔들며 나의 재방문을 환영한다는 사람들을 한 번 더 힐끗 본 다음 천천히 말을 출발시켰을 따름이었다.

“전 괜찮은데…….”

테오도르를 따라서 천천히 말을 몰며 나는 중얼거렸다.

“내가 괜찮지 않아서.”

테오도르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애정은 커다랬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네가 가르쳐준 방법이기도 해.”

“제가요? 제가 언제요?”

“예전에 네가 그랬잖아. 돈이 좋다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언제 했지? 내가 할 법한 이야기라서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 그때 드레스 사준다고 하셨을 때!”

“그래. 아주 당당하게 드레스가 아니라 현금이 좋다고 했지.”

사실은 전혀 당당하지 않았고, 내 돈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아주 필사적이었는데, 테오도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었나?

“그때 깨달았지. ‘사람에게는 돈이 소중하구나’라고.”

“그건 누구나 그런 것 아닌가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니었거든. 딱히 돈이 소중하다거나,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어. 그냥 공기 같은 거였지. 있는 게 당연한.”

아……. 네…….

“방금 재수 없다고 생각했지?”

그렇다고 대답하면 안 되겠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테오도르는 다 안다는 듯이 피식 웃어버렸다.

“넌 얼굴에 티가 너무 나, 레나티스.”

“……살짝요.”

바람결에 테오도르의 웃음이 실려 왔다.

“그래도 제 평판 하나 올리기 위해서 너무 많은 돈을 쓴 것 아닌가요?”

대충 계산해봐도 저 마을에서 하룻밤 묵기 위해서 우리가 쓴 돈은 이천만 루나가 넘었다.

내가 안젤라 엄마에게 의사를 불러달라고 촌장에서 따로 준 돈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난 제국의 대공이야. 민생을 살필 의무가 있는 사람이지. 저 마을은 수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제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황실에 귀속된 발루텍스 산어귀에 있다 보니 돌봐줄 영주도 없어. 발견하지 못했다면 몰라도 저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본 이상, 내가 나서야 했어.”

테오도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 존재가 내가 나설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제공해주었고, 저들을 도울 가장 효과적인 방법 또한 예전에 가르쳐 주었지. 거기다가 착한 일에 보상이 따라온다는 훌륭한 교훈까지 저들에게 알려줄 수 있었지.”

뺨에 닿는 아침 공기는 서늘했고, 겨울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나를 바라보는 테오도르의 눈빛만은 따스하기 그지없었다.

“네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네 덕분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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