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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50화 (150/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50

“엄마, 이것 봐. 반짝반짝하고 예쁘지?”

안젤라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를 향해서 달려갔고,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금화 2개를 자랑했다.

“안젤라! 이거 어디서 났니?”

금화의 위력은 굉장했다. 힘없이 누워있던 환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소리를 치게 할 만큼.

“마녀님이 받으라고 해서 받았는데…….”

깜짝 놀란 안젤라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엄마가 너무 깜짝 놀라자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는지 목소리가 금세 기어서 들어갔다.

“제 일행이 안젤라에게 준거예요. 정확하게는 값은 치른 거죠.”

“마녀님의 일행분이요? 무슨 값을 치렀다는 건가요?”

“금화 1개는 안젤라가 저에게 예쁜 기념품을 준 값이고, 다른 1개는 제가 오늘 여기서 자고 갈 생각이라서 숙박비를 치른 거예요. 아, 참! 안젤라에게만 허락을 받고 집주인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네요.

제가 오늘 여기서 좀 자고 가도 될까요?”

생각보다 분배는 수월했다.

숙소는 빨간 지붕 집에서, 당장 먹을 식사는 어떤 아저씨가, 저녁은 어떤 아줌마가, 또 내일 떠나기 전에 이른 아침은 또 다른 아줌마가, 산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식량은 또 다른 두 집에서 나눠서 준비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넓은 염소우리를 가진 촌장네가 우리 말들을 돌봐주기로 했고, 빨래나 발루텍스 산의 지도 같은 자잘한 물품을 구해줄 사람까지 지정하자,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일이 돌아갔다.

여기서 거의 모든 이라고 한 이유는, 끝까지 날 배척하고 무서워한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녀를 집에 들이다니 천벌을 받을 거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부은 할머니를 비롯하여 말이다.

아, 그 할머니가 떠드는 동안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던 테오도르의 눈빛이 점점 살벌해졌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테오도르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마을 사람들이 성화를 내는 할머니를 강제로 집에 모셔다드리고 나서야 그의 눈빛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그들을 제외하고는 일의 경중에 따라서 인스트가 돈을 나눠줬는데, 당연히 그 값은 매우 후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은 것은 중복해서 돈을 받은 안젤라였다.

빨간 지붕 집의 방이 두 개라는 소리에, 나는 얼른 인스트와 테오도르가 그 집의 각방을 쓰라고 말했다.

괜찮다면, 나는 안젤라의 집에서 묵고 싶다고 말하면서.

물론, 테오도르의 반응은 괜찮지 않았다.

보는 눈이 있어서인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당장 그 발언을 철회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도 안젤라와 약속한 게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내일이면 마을을 떠나야 하는데, 적어도 안젤라 엄마의 병을 고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나는 애절하게 눈을 부릅뜨고, 곁눈질을 해서 이 작은 애를 보라며, 도와주고 싶지 않냐며, 제발 돈이 남아도는 그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이 애에게 주라는 눈빛을 발사했다.

결국 테오도르는 똥 씹은 표정으로 인스트의 이름을 불렀고, 인스트는 재밌어죽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참고 있다는 표정으로 안젤라에게 금화를 한 닢 더 주었다.

“여기서……요?”

내 말을 들은 안젤라의 엄마는 당황했다.

갑자기 마녀가 자기 집에 나타난 것만으로 놀랄 일인데, 자고 간다니 더욱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집이 좁을 텐데요. 먹을 것도 변변치 않고……. 제 몸 상태가 금화의 값을 할 만큼 제가 마녀님을 대접해드릴 수가 없어요.”

아? 당황한 게 그런 이유였나?

“괜찮아요. 전 안젤라의 방에서 잘 거고, 식사는 다른 집에서 준비해주기로 했으니까요. 아! 안젤라와 아주머니가 드실 것도 같이 준비해달라고 했으니, 나중에 가지고 올 거예요.”

나중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금방 오지 싶었다.

내가 배가 엄청 고프다고 했고, 테오도르는 최대한 빨리 준비 가능한 사람에게 일감을 주겠다고 했으니까.

“저희 먹을 것까지요? 가, 감사합니다.”

안젤라의 어머니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사양하는 말 대신, 감사의 인사를 했을 뿐이었다.

이미 짐작했던 바였다. 가난은 염치를 빼앗았다. 배고픔 앞에서 겸손은 사치였다. 나는 누구보다도 그걸 잘 알았다.

거기다가 자신은 몰라도, 어린 안젤라가 굶는 걸 보는 것은 더욱 힘들었을 테니까.

“그 마녀님이라는 호칭 말인데요. 썩 편하지는 않아서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시겠어요? 제 이름은 레나티스예요. 안젤라도 알았지?”

“그렇게 해도 돼요?”

안젤라는 허락을 구하듯, 제 엄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도 그래도 되는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촌장님한테 대충 사정을 듣긴 했는데요.”

나는 내 할 말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녀를 향해서 다가가며 애가 듣는 데서 이야기해도 될까 싶어서 안젤라를 힐끗 쳐다보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쳐서 기쁘다는 듯 생긋 웃었다.

“안젤라, 가서 레나티스 님 드릴 물 좀 가지고 올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대충 짐작했는지, 안젤라의 엄마는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네, 엄마!”

안젤라는 씩씩하게 대답하며 쪼르르 부엌으로 나갔다. 그동안 나는 내가 읽었던 괴담 책에서 보았던 ‘아네시아’를 떠올렸다.

가난으로 아이가 죽자, 그 책임을 도와주지 않았던 마을 사람에게 물었던 과부 아네시아의 상황과 안젤라 엄마의 상황은 닮아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쓰러진 쪽이 아이가 아니라 본인이라는 점일까?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는 점도.

“혹시 의사는 만나보셨어요?”

내 질문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어요.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걸요.”

그녀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모두 이해했다. 내가 이미 배고픔과 가난을 겪어보았기에.

“그나마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도와주었지만, 그 사람들 형편도 빤한데 계속 손을 벌릴 수가 있나요? 거기다가 자기들 먹고 살기도 바쁜 겨울에…….”

깊은 산골의 작은 마을. 딱히 부자는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마을이었다.

뿌리 깊은 마녀에 대한 공포보다 지독한 가난이 더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아픈 엄마와 어린아이가 가엾기는 하지만, 제 자식이 입에 들어갈 것까지 빼어다가 남의 집 아이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마을 사람들이 착해서 지금까지라도 도와준 듯했다.

“항상 아이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셨죠?”

나는 빼빼 마른 그녀의 팔과 홀쭉하게 들어간 뺨을 보며 말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셨죠?”

그에 비해 안젤라는 그렇게 작지도, 그렇게 마르지도 않은, 그저 보통 체격의 아이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당황한 눈동자와 되물음. 그게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러는 사람을 저도 한 명 알거든요.”

아주 옛날에, 아스텔라 언니가 내게 하던 말들이었다.

내가 배가 고파서 칭얼거리면, 숨겨둔 감자를 내밀었다. 그리고 자기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배고픔에 허겁지겁 감자를 먹는 동안, 따뜻하게 바라보던 언니도 배가 고프리라는 걸, 어린 나는 미처 몰랐었다.

“솔직히 저는 의사도, 마녀도 아니라서요. 아주머니께서 무슨 병에 걸리신 건지, 어떻게 하면 낫는 건지 모르겠어요.”

내 말에 안젤라의 어머니 눈이 연거푸 깜박였다.

내가 자기 병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 혼란스러운지, 내가 마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당황스러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촌장님께 의사를 좀 불러 달라고 말해두었어요. 일주일쯤 걸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하면 낫는지는 그분께 물어보세요. 당연히 제 맘대로 벌인 일이니, 돈은 이미 촌장님께 드렸고요.”

“네? 아…….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너무 놀랐던지 눈만 깜박이고 있던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건지 겨우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여기 물요!”

마침 타이밍이 좋게도, 찰랑거리는 물을 쏟지 않게 아주 조심조심하며 안젤라가 방으로 들어왔다.

“고마워.”

나는 재빨리 안젤라가 든 컵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주 목이 말랐다는 듯이 꿀꺽꿀꺽 마셨다.

“안젤라, 엄마에게도 물 한잔 떠드릴까?”

“네!”

빈 컵을 받은 아이는 다시 쪼르르 밖으로 나갔다.

“딱히 갚지는 않으셔도 되는데요. 약속 하나만 해주실래요?”

나는 안젤라가 보이지 않자, 그녀와 나만의 대화를 이어갔다.

“너무 아이에게 양보만 하지 마세요. 나중에 사실을 다 알게 되면, 아이는 정말 고맙기도 하지만, 너무 미안하기도 하거든요.”

“아…….”

“함께 나눠 먹으면, 아이는 더 기쁠 거예요.”

“그, 그런가요?”

그런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그녀는 중얼거렸다.

“엄마! 여기 물이요!”

때마침 안젤라가 활짝 웃으면서 들어왔다. 제 엄마에게 줄 물을 제 마음만큼이나 가득 채운 컵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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