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49
“어딜 갔었어?”
내가 다가가서 대화가 가능할 거리가 되자마자 테오도르가 물었다.
“어…… 뭐…… 여기저기요.”
지금 안젤라에 관해서 말하자면 길어질 것 같아, 일단은 대충 얼버무렸다.
“테오도르 님은 뭐하셨어요?”
안젤라의 집에 내가 머문 시간이 꽤 오래였다. 그동안에 테오도르는 뭘 했나 싶어서 물었다.
그리고 갑자기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은 이유가 뭔지도 궁금했다.
“뭐, 이것저것.”
아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테오도르는 내가 어디에 갔었는지 소상히 자신에게 말하지 않아서 삐진 것인지, 어깨를 한번 으쓱이더니 저렇게만 대답했다.
“이것저것 뭘 하셨는데요?”
하지만 테오도르와 달리 나는 뻔뻔했다. 슬쩍 넘어가 준 그와 달리 나는 얼굴을 들이대며 다시 물었다.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하며 테오도르는 훌쩍 바위 위로 올라갔다.
가뜩이나 평균 키보다 훨씬 큰 테오도르였는데, 거기에 올라가자 더욱 우뚝 솟아올라 보였다.
그리고 그 효과로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이 그에게 주목했다.
마을 사람들끼리 수군거리던 말소리가 뚝 멈추고, 모두가 고개를 들어 테오도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그것이 익숙한 듯, 당당한 자세로 좌중을 한번 쓱 훑어보았다.
크흐~ 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이라니! 내 남친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멋있었다.
“우리는 발루텍스 산으로 가는 모험가이다.”
웬 모험가? 언제부터 우리가 모험가였나 싶어서 인스트를 쳐다보았다.
“별로 소문날 일이 없는 외진 곳이긴 하지만, 혹시나 카르오 대공이 여기 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안 되니까.”
인스트가 내 귓가에 작게 속삭여 주었다.
맞다. 인스트와 나는 몰라도, 카르오 대공인 테오도르는 비밀리에 나온 거였지? 신분을 밝힐 수가 없겠구나.
“이 마을에선 마녀의 저주라는 걸 믿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내 일행 중 한 명은 마녀의 증표라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지. 그래서 너희들이 우리 일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촌장에게 들었다.”
갑자기 저렇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고?
그의 한 마디에 사람들이 일제히 안 보는 척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꼈다.
우호적으로 보이게 살짝 웃어줄까 생각했지만, 이미 내가 마녀라는 사람들에게 그마저도 위협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관뒀다.
“우리 일행은 발루텍스 산으로 가는 길이고, 이 마을이 발루텍스 산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 마을이라는 것은 너희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즉, 우리는 이 마을에서 오늘 하루를 묵어야 하고, 마지막 만찬을 즐겨야 하며, 필요한 물품과 식량을 보충해야 한다는 말이다.”
테오도르는 간결하게 우리의 목적을 말했다. 나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목적이었다.
날 마녀 취급하는 사람들을 보는 테오도르의 표정이나 눈빛이 화가 나 보였는데, 설마 마을 사람들에게 보복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나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테오도르의 말을 계속 경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테오도르의 입에서 너무 과격한 말이 나오면, 얼른 말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일행이 오늘 묵고 갈 수 있는 집을 제공하는 자에게는 후사하겠다. 또한, 필요한 물품과 음식을 제공하는 자에게 역시 후사하도록 하지.”
내가 나설 자리는 없었다. 테오도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는 달리 매우 훈훈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나와 테오도르의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테오도르의 뜻밖의 제안에 당황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이 마을은 한눈에 봐도 가난한 마을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보다 더 외지고 산골인데다가, 낡은 옷차림만 봐도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사라는 말에 혹하긴 하지만, 마녀에게 집을 내어주고 음식과 물건을 줘도 과연 뒤탈이 없을 것인지가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듯했다.
흠……. 테오도르의 생각이 그렇다면야, 내가 호응을 해줘야겠지?
“저기…….”
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딱 멎었다. 마녀의 발언권은 아주 강력한 듯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주목도가 남다르니 이 상황에서는 좋은 거라고 쳐야겠다.
“제가 이미 필요한 물품을 마을 사람에게 좀 받았는데요. 이것도 혹시 정산 가능할까요?”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아까 안젤라에게서 받았던 도토리 팔찌와 조약돌 2개를 꺼냈다.
“물론이지.”
테오도르는 내 손바닥에 있는 이 하찮고 귀여운 물건을 보고 살짝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젤라! 어딨어? 이리 와봐!”
테오도르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사람들 무리 속 어딘가에 있을 안젤라의 이름을 불렀다.
“자, 잠시만요. 저기, 잠시만요. 마녀님이 저를 불러가지고요.”
저 멀리에서 안젤라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저 부르셨어요?”
아무래도 키가 작은데다가 멀리 있어서, 앞에서 일어난 상황을 잘 모르는 듯했다.
한 손에는 토끼 인형을 든 채, 안젤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저기 저분이 너에게 주실 것이 있대.”
안젤라는 내 말에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저 사람이 자기한테 뭘 주겠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인스트?”
“네.”
테오도르의 부름에 인스트는 바로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우리의 여행자금이 필요 이상으로 두둑하게 들어있는 주머니였다.
“자, 여깄다.”
인스트는 그 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안젤라에게 내밀었다.
“와! 반짝반짝하고 예쁘다!”
안젤라는 그저 예쁜 돈을 받아서 기쁜 듯 소리쳤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상식적인 금전 감각을 지닌 나였다.
산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로 만든 팔찌랑 좀 동그랗게 색이 예쁠 뿐인 조약돌인데, 금화요? 100만 루나요?
이건 진짜 좀 오버 아닌가?
“세상에! 저거 금화 아니야?”
“지금 안젤라한테 100만 루나를 준거야?”
“고작 도토리랑 돌멩이 가지고?”
“아니, 그럼 집이나 음식에는 대체 얼마나 준다는 거야?”
그리고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금화를 눈앞에서 보자 흥분했던지 이제껏 조금씩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던 것보다 훨씬 큰 음성들이었다.
“저, 저희 집으로 오시지요. 마을에서는 비교적 새로 지은 집이라 지내시기 편안하실 겁니다.”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비교적 젊은 남성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자 살짝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네 집은 어디지?”
“저쪽에 보이는 붉은 지붕의 집입니다.”
테오도르의 질문에 남자는 뒤를 돌아 손가락으로 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교적 새집이라고 말은 했지만, 다른 집들과 매한가지로 작고 낡아 보이는 집이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인스트?”
하지만 테오도르는 그 집도 흡족하다는 듯이 흔쾌히 승낙했다.
“네.”
테오도르의 승낙에 인스트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손을 들어 집을 제공하겠다고 한 남자에게 손짓하자, 그는 재빨리 앞으로 나왔다.
“지금 당장 가서 청소해놓도록. 방이 차다면 불도 때놓고.”
주머니에서 금화 한 닢을 꺼내 내밀며 인스트가 말했다. 금화를 본 남자는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키곤, 살짝 떨리는 손으로 금화를 받았다.
“물론입니다!”
금화를 손에 꼭 쥔 채, 남자는 힘차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오도르는 고개를 돌려 이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자, 그럼 이제 식사와 물품 보급이 남았군.”
내가 베푸는 은총을 부디 거절하지 말라는 듯이, 매우 부드럽고 자상한 음성으로 테오도르가 말했다.
“저희 아내가 음식을 끝내주게 잘합니다!”
“아니, 자네 부인이 무슨 음식을 잘해? 제가 요리를 더 잘합니다!”
“마녀님! 저희 집에서 주무세요!”
“필요하신 물품이 뭡니까? 말만 하시지요!”
“말? 그래! 말은 저희 집에 맡기시지요! 편안하게 말 님을 모시겠습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고, 자신들이 가진 것을 어필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외면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로 날 재워주고, 음식과 필요한 것을 제공하겠노라며 경쟁하고 있었다.
“우리 약간, 사기단 같지 않아요? 막 서로 짜고, 사람들을 속이는?”
“이렇게 돈 뿌리는 사기단이 어딨어?”
인스트는 금화 2개 정도는 없어져봤자 티도 나지 않는 주머니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긴, 사기단은 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갈취하는 거지. 거기다가 서로 짰다기보다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내가 끼어든 거였다.
그럼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하지?
나는 고개를 들어 내키는 대로 사람들을 짚으며, 뭘 잘하는지를 물어보고 그들에게 임무를 주는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선택, 아니 간택을 받은 사람들은 좋아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럼, 사이비 교주인가?”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