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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46화 (146/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46

“저기,”

“으악!”

“아니,”

“우와악!”

“넘어진,”

“으아악!”

“…….”

“…….”

“괜찮,”

“끄아악!”

내가 한마디 붙일 때마다, 남자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내가 입을 다물면, 그도 입을 다물었다.

비록 눈으로는 계속 비명을 질러대고 있을지언정 말이다.

…… 뭐지? 넘어지면서 뇌라도 다친 건가?

“뭔지 모르겠지만, 제가 말을 걸면 안 될 것 같죠?”

나는 아주 작게, 남자에게 들리지 않도록 거의 속삭이는 목소리로 테오도르에게 자문했다. 그러자 그도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테오도르 님이 한 번 말을 걸어 보시겠어요?”

“이봐.”

그리고 나를 대신해서 넘어진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테오도르가 말을 걸자 남자는 주춤하긴 했지만,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소리를 다 질렀으면, 이만 길에서 비키지.”

저기요? 제가 말을 걸라는 것은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만?

거기다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비명만 지르는 사람에게 비키라고 하면, 순순히 비킬 수 있을 리가 없었…….

“으, 으읏.”

……이게 되네?

남자는 테오도르의 말을 듣고,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도와주려는 내 말에는 비명만 지르더니, 당장 비키라는 테오도르의 말에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그의 명령에 따르고 있었다.

역시나 카르오 대공의 카리스마는 이런 산골 오지에서도 통하는 건가?

하지만 자칫하면, 카르오 대공이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는 평판이 따를지도 몰랐다.

잘은 모르지만, 언니가 테오도르에게는 평판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제 남친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니에요.’라는 뜻을 담뿍 담아서 남자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발사했다.

“으아악!”

아니, 저기요! 이번에는 말 안 시켰잖아요! 그냥 웃었을 뿐인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비명을 지르는 남자 때문에는 나는 너무나 억울했다.

그 남자가 외치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마녀다!”

남자에게 뭐라고 하려고 벌렸던 입은,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단어 때문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분홍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를 마녀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작은 마을은 그 속설을 알지도 못하는 마을이었고, 처음으로 마을을 벗어나 일한 카르오 대공 가의 비타하우스 사람들은 그것을 한낱 미신 정도로 취급했었다.

뒤에서 수군거리긴 했지만, 그냥 뒷담화용 소재일 뿐이었다.

저 남자와 같은 반응은 처음이었다.

“아니, 저기, 나는…….”

당황스러워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무서워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저런 공포와 혐오가 뒤섞인 시선도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워서 옆에 있는 테오도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한 여자가 보였다.

커튼 뒤로 몸을 숨기고,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의 얼굴에는 당황과 공포가 동시에 어렸다.

- 차륵!

매정하리만큼 빠른 손길로, 여자는 자신의 앞에 있던 커튼을 잡아챘다.

그리고 커튼이 찢어질까 봐 걱정될 만큼 빠르고 강한 손길로 커튼을 쳐버렸다.

이제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내 시선을 피해서 꼭꼭 숨어버렸다.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자, 이번에는 안에 있는 것이 누군지 보지도 못했는데 빠르게 창문이 닫혔다.

-탁!

-차르륵!

-쾅!

연이은 도미노처럼, 마을의 창문이 닫히고, 커튼이 쳐지고, 열린 문이 닫혔다.

“아무래도, 조금…… 문제가 생긴 거 같죠?”

돌아가는 상황을 다 지켜본 인스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것 같군.”

테오도르는 담담히 말했다.

무슨 늑대 무리에게 둘러싸였다가 도망가는 것처럼, 넘어졌던 남자가 네발로 기다가 우리에게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재빨리 일어서서 달아나는 꼴을 보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조금의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

.

.

“살려주십시오.”

처음 보는 수염이 허옇고, 머리도 허연, 누가 봐도 한참이나 연장자이신 노인이 날 보자마자 목숨을 구걸하는 걸 보는 건, 참으로 오묘한 기분이었다.

맹수의 제왕이 된 느낌이기도 했고, 역병의 마귀가 된 느낌과도 비슷했다.

“딱히 죽이려는 것은 아니다만?”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뭐라고 말도 못 한 나와는 달리, 테오도르는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노인의 말에 대답했다.

아, 정확하게는 그냥 노인이 아니라 이 마을의 촌장이었다.

조금 전, 인스트는 말에서 내려 황급히 닫혔던 몇 개의 문을 두드려보았다.

하지만 분명한 인기척이 느껴지는 집에서도, 나와 눈까지 마주쳐서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한 집에서도, 아무런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아주 예전에 발루텍스 산으로 훈련을 와본 인스트의 기억에 의지해서 우리는 촌장의 집을 찾아왔다.

적어도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이니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하지만 이 마을의 대표 역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살려달라는 말만 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대화를 할 수 있나?

“목숨을 건지고 싶거든, 고개를 들어.”

……이것도 되네.

테오도르의 말에, 아니 명령에 이장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비로소 나는 흰머리와 흰 수염 말고 그의 인상착의를 설명할 다른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딱히 누구에게 설명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앉아.”

테오도르는 서슴없이 촌장의 집으로 들어가 낡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집주인이 손님에게 자리를 권하는 것처럼, 집주인인 촌장에게 자기 앞자리를 권했다.

촌장은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면서 테오도르의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갔다.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 앉는 순간까지도 그는 내 눈치를 보았다.

솔직히, 할아버지뻘인, 좀 더 과장을 보태자면, 내 증조할아버지도 충분히 가능할 연세인 촌장이 저렇게 내 눈치를 보는 것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저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테오도르의 곁으로 가려는 인스트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끈 다음 말했다.

“뭐? 밖에서?”

인스트는 뜻밖이라는 듯 되물었다. 밖에 뭐라도 있냐는 듯이.

하지만 밖에 뭐가 있다기보다는, 안에 뭐가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마을의 사람들은 전부 자기 집 안으로 도망친 뒤라 길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마을 구경이라도 해.”

다행히 눈치 빠른 인스트는 내가 뭘 불편해하는지 빠르게 알아차렸다.

뿐만이라 내가 불편한 자리를 피하려는 것을 마을 구경이라는 그럴듯한 구실도 붙여주었다.

힐끗 이쪽을 쳐다보는 테오도르에게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곤, 나는 문밖으로 나왔다. 내가 없는 편이 대화가 더 편할 것 같았다.

“좀 화난 것 같지?”

몇 걸음을 걸어 나오다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아는 테오도르는 저렇게 고압적인 사람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막말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좀 화가 나서 저런 것 같았다.

그러니 차라리 내가 없는 편이 대화가 더 수월할 것 같아 자리를 피한 것도 있었다.

촌장이 자꾸 저런 태도를 보이면, 테오도르가 더 까칠하게 될 테고, 그러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

“노숙이야 하면 되지만, 식량은 꼭 구해야 하는데.”

발루텍스 산은 코앞이었지만, 산에서 얼마나 있어야 할지는 우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마지막 마을인 이곳에서 적어도 며칠 먹을 식량 정도는 구해야 했다.

“저기…….”

스산한 마을 길을 걸을 바에는 차라리 다시 마을 밖을 나가서 스기엔도 가방에서 꺼내주고, 함께 쓸데없는 수다나 떨까 싶어서 발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응?”

고개를 돌리자 목소리만큼이나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아이도 나를 마녀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씁쓸해졌다. 사실, 마녀로 생각하는 건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무슨 사악한 범죄자라도 되는 것처럼 피하는 게 기분 나빴을 뿐이었다.

“언니가 진짜 마녀예요?”

순진하고도 용감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하려고 눈에는 잔뜩 겁을 매달고 있으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서 있구나 싶었다.

“아니, 나는…….”

내가 아니라는 대답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마녀님!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순식간에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아니, 얘…… 나 그런 사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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