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45
“탔군.”
빵을 본 테오도르의 감상이었다.
“수프가…… 왜 이렇게 멀건 거지?”
냄비를 국자로 한번 휘저으며, 인스트가 말했다.
“에퉤퉤퉤! 인간아, 말린 사과가 짜다!”
그리고 스기엔은 입에 넣었던 말린 사과를 뱉어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나는 조용히 사과를 건넸다.
“저는 그냥, 불침번을 서면서 딱히 별일도 없고, 아침에 여러분들이 일어나면 따뜻하고 맛있는 아침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준비했는데…….”
의도는 분명 그랬다. 어젯밤에 스기엔은 기운이 없어 보였고, 슬라임에게 충고를 들어버린, 그것도 연애 충고를 들어버린 인스트도 풀이 죽어 보였다.
그래서 둘 다 기운 나게 해주고 싶어서,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리 솜씨가 썩 훌륭하지는 않았지.”
이전에 내가 만든 요리, 일명 스볶이를 먹은 경험이 있는 테오도르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썩 훌륭하지 않다는 평도 매우 후한 평이었다.
“이건 그냥 훌륭하지 않다는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요.”
수프가 아니라 그냥 색깔이 좀 탁한 물에 가까운 액체를 국자에서 냄비로 주르륵 떨어뜨리며 인스트가 말했다.
“어제 인스트 님이 알려주신 대로 했는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생각해도 되지도 않은 변명을 해보았다,
“내가 알려준 건 도저히 틀릴 수가 없는 조리법 아니었나? 물을 끓이고, 가루를 넣고, 말린 육포와 버섯을 넣는 게 끝인데?”
“네. 그렇게 했어요.”
“그럼 그냥 따뜻한 국물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되겠군. 추운 아침에는 국물 요리가 제격이지.”
인스트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테오도르가 그를 대신해서 냉큼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좀 감동했다. 저 꼴이 된 요리를 보고도 내 편을 들어주다니.
“뭐, 그렇네요. 이렇게 추운 아침에는 따뜻하기만 해도 감사할 일이니까요.”
다행히 인스트는 테오도르의 말에 넘어갔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그릇에 수프를 덜어서 나눠주었고, 가장 먼저 맛을 보았다.
“…….”
그리고 묽은 수프를 후후 불어 후루룩 마시자마자, 곧바로 입을 벌렸다. 당연히 인스트의 입에 있던 수프는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인스트 님?”
나는 깜짝 놀라서 인스트를 바라보았고, 순간 그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진 것이 분명히 보였다.
여, 영혼아? 그렇게 가버리면 안 될 텐데?
“부, 분명히 그냥 물 넣고 끓이기만 했다며?”
다행히 초점이 돌아온 인스트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추궁했다.
“네, 맞아요.”
“근데, 왜…… 이런 맛이 나지?”
인스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기 그릇을 쳐다보았다.
“제가 봐도 좀 묽은 것 같아서, 소금을 좀 쳤어요.”
“소금만?”
“감칠맛이 없는 것 같아서, 설탕도 조금 넣었어요.”
감미료가 없을 때는 설탕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그게 다야?”
“건더기가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저기에 먹을 수 있는 풀이 있기에 조금 뜯어 넣었고요.”
“…….”
“아! 제가 말린 고구마를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도 넣었어요.”
“그게 어디가 내가 가르쳐준 대로 끓이기만 한 거지?”
“어…… 기본 베이스는 인스트 님이 알려주신 대로인데요? 그리고 튀기거나 볶지는 않았고, 끓인 거니까…….”
인스트는 내 대답에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테오도르는 조용히 조금 전에 받았던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럼, 이 말린 사과에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건데?”
이제 자기가 따질 차례라는 듯, 스기엔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슨 짓이라니!”
그리고 나는 억울했다.
“스기엔이 좀 힘들어 보이기에, 기운 나라고 사과에 설탕을 더 뿌려준 것뿐이야! 단 것 좋아하잖아!”
라고 말하며, 나는 자신 있게 설탕을 내밀었다.
“소금이네.”
“네?”
인스트의 말에 나는 당황하며 다시 내가 든 설탕을 쳐다보았다. 분명 흰 설탕…… 인줄 알았는데, 설탕 특유의 반짝임이 없었다.
“어? 어어? 으응?”
“아까 수프에 소금을 넣고, 설탕을 넣었다더니, 쓰고 나서 헷갈렸나 봐.”
인스트는 작은 한숨과 함께 내 손에서 설탕을, 아니 소금을 빼내어선 그것을 몇 없는 조미료 통속으로 넣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만을 움켜쥔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네 재능은 아무래도 궁술에 올인되어 있는 것 같으니, 되도록 다른 분야에는 손대지 않는 게 낫겠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인스트는 점잖게 충고했다.
“안 하는 게 나은 게 아니라, 절대 하지 마. 금지야, 금지!”
그리고 스기엔은 아주 버럭 화를 내며, 몸까지 팽 돌려버렸다.
“아…….”
나는 마지막 희망으로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테오도르만은 내 편이겠지? 뭔가 희망에 찬 메시지나, 격려해주겠지?
“괜찮아. 요리사가 있으니까.”
별일 아니라는 듯이 테오도르는 말했다. 거기다가 해결법까지 제시했다.
그 말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 요리는 요리사에게 맡기고, 절대로 하지 말라는.
내 요리는 사랑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 * *
“배고프다…….”
스기엔이 중얼거린 소리에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스기엔이 배가 고픈 이유는 내가 남아 있는 식량을 몽땅 털어 넣은 수프를 망쳤기 때문이었다.
아침은 내가 손대지 않은 빵과 차로 때우고, 점심은 거르고 최대한 빨리 마을에 도착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나은 계획이었고, 지금 그러는 중이었다.
“…….”
나는 달리는 말에 집중하느라 스기엔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척을 했다.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되었을까? 커다란 저택에서 풍족하게 잘 살았는데, 인간 따위가 제발 도와달라며, 자기랑 같이 가달라며, 사정하는 통에 따라나섰는데, 이따위 좁은 헝겊 나부랭이에 날 가둬놓지를 않나, 버르장머리 없는 수컷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지를 않나, 이제는 숫제 굶기기까지…… 하아…….”
스기엔의 끝없는 한탄을 끝없이 못 들은 척을 하던 때였다.
“워, 워!”
앞쪽에서 말을 진정시키는 인스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테오도르의 말이 점점 느려지는 것이 보였다.
“워~ 워! 엘리자베스, 착하지? 이제 천천히 가자.”
나는 고삐를 당기며, 엘리자베스에게 말을 건넸다.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고삐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엘리자베스는 속도를 조금씩 늦췄다.
“마을이 보이네요.”
인스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앞에 테오도르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마을에 다 온 모양이었다.
“들었어, 스기엔? 마을이 보인대. 마을에 가면 먹을 걸 사줄게.”
“싱싱한 과일로 내놔!”
“그래, 그래. 알았어.”
내 대답에 내내 눈을 흘기고 있던 스기엔은 그제야 눈에 힘을 풀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가방 문을 닫아도 얌전히 있었다.
마을이 가까워져 오자, 좁은 산길이 평탄하게 바뀌며 조금 넓어졌다.
엘리자베스를 재촉해 테오도르와 비스듬하게 서자 그제야 조그만 마을이 보였다.
“여기가 발루텍스로 가는 길의 마지막 마을입니다.”
테오도르에게 보고하는 인스트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행이네요.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렇지. 점심도 거르고 달렸으니. 배고프지 않아?”
테오도르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그래? 그럼 숙소를 찾아서 먼저 씻고…….”
“아니요! 식사 먼저요! 배고파요!”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 풉!”
그러자 바람빠진 웃음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테오도르가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웃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뭐야? 놀린 거였어?
“들었지, 인스트? 식사가 제일 먼저야.”
고개를 든 테오도르가 웃는 얼굴은 내게 향한 채, 인스트에게 말했다.
어째 조금 얄미운데?
날 놀린 테오도르에게 뭐라고 한마디를 하려는 참이었다.
“으아아악!”
앞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인스트, 무슨 일이지?”
비명을 들은 테오도르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나 역시 무슨 일인지 궁금해져서 엘리자베스를 앞으로 두어 걸음 전진시켰다.
“넘어진…… 모양인데요?”
인스트가 대답하긴 했지만, 뭔가 명확한 말투는 아니었다.
“바닥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연극이라도 하듯이 굉장한 리액션으로 넘어진 걸 봐선, 무슨 지병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모르니 좀 돌아서 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네요.”
슬쩍 고개를 뒤로 뺀 채, 인스트는 테오도르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건 너무 야박하지 않아요? 사람이 넘어졌는데.”
인스트의 말에 토를 달며, 테오도르의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다가 그의 말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산에서 나무라도 하고 온 것인지 바닥에는 마른 이파리가 아직 붙어 있는 굵은 나뭇가지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일어나지도, 흩어진 나무들을 주울 생각도 없어 보이는 걸 봐선, 정말 호되게 넘어진 모양인데 가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닐까?
“저기, 괜찮으…….”
“으아아아악!”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가 말을 건 순간, 남자의 입에서는 아까보다 더 심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