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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44화 (144/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44

“내가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슬라임이 소리쳤다.

“내가 언제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 없을 테니까, 포기하라고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었잖아.”

인간이 소리쳤다.

“내가 먹겠다고 하면 그런 건 없다고 해놓고선, 레나티스가 먹고 싶다고 하니 당장 구해오라고 했잖아!”

슬라임이 소리쳤고,

“당연하지. 너와 레나티스가 같아?”

인간이 맞받아쳤다.

“뭐가 다른데!”

슬라임이 버럭 했고,

“내가 굳이, 어디가 다른지 언급을 해줘야 하나? 눈 코 입이 있다는 것 빼면 전부 다른 것 같은데?”

인간은 빈정거렸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건방진 슬라임 같으니라고.”

그리고 슬라임과 인간이 동시에 말했다.

“하아…….”

중간에 끼인 또 다른 인간은 한숨을 쉬었다.

둘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무래도 물과 기름처럼 스기엔과 테오도르는 상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굳이 나누자면, 누가 봐도 스기엔이 액체에 가까워 보이니까 스기엔이 물이고, 테오도르가 기름일 듯했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일 테지만.

“힘내.”

내 고난을 다 안다는 듯, 또 다른 끼인 인간이었던 인스트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순간, 한참 스기엔과 티격태격하던 테오도르가 이쪽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인간! 이번에는 무시인가!”

스기엔이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나의 귀여운 슬라임 친구는 자존심이 아주 셌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했다.

“진정해, 스기엔. 그리고 좋게 생각해봐. 인스트가 달고 맛있는 과일을 구하면, 당연히 나는 너와 나눠 먹을 거야. 그럼 결론적으로는 너도 과일을 먹게 되는 거지.”

“저기, 그러니까, 그걸 왜 내가 구해야 하는 거지?”

중간에 살짝 인스트가 끼어들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을 듣는 생명체는 없었다.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그걸 왜 이 슬라임이랑 나눠 먹는 거지?”

스기엔은 진지하게 있지도 않은 과일을 먹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고, 테오도르는 그런 스기엔에게 다시 딴지를 걸려 했다.

“아이, 참! 우리는 지금 같이 발루텍스 산으로 가는 같은 팀이잖아요.”

“같은 팀인데, 왜 그걸 구하는 건 내가 되느냐고.”

“그러니까 맛있는 것이 생기면 다 같이 나눠 먹어야죠!”

인스트는 좀 더 항의하려 했지만, 나는 그것보다 원래 하려던 말을 마저 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기엔이 좋아하는 과일을 나눠줄 생각이 매우 확고하다는 뜻을 담아서 말했다.

“…….”

“…….”

스기엔과 테오도르는 여전히 뭔가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더 항의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레나티스가 그러길 원하는 것 같으니, 그런 것으로 하지.”

테오도르는 마침내 긍정의 말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지.”

스기엔 또한 그랬다.

“도대체가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왜 없냐고…….”

그리고 인스트는 조그맣게 푸념의 말을 내뱉었다.

“원래 인간들이란 남의 말을 듣지 않아. 제 할 말만 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아주 놀랍게도, 드디어! 마침내! 인스트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은 귀가 없는 스기엔이었다.

“거기다가 저 건방진 인간은 눈에 뭐가 쓰인 것처럼 레나티스 이야기만 들으니까 더 심하지.”

“아, 그건 그렇지. 커플들은 원래 자기들만 신경 쓰는 경향이 있지.”

“아주 재수 없어.”

한 사람과 한 몬스터는 서로의 말에 공감해주며 우정을 쌓고 있었다.

드디어 화합된 한 팀의 모습을 보이는 두 생명체를 보며 나는 분명 뿌듯해야 했지만, 그러기엔 내용이 너무 반갑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너는 사귀는 슬라임은 없어?”

“있을 것 같아?”

인스트는 뒤늦게 물어본다는 듯한 말투로 스기엔에게 물었고, 스기엔은 무슨 헛소리냐는 듯이 대답했다.

“아니. 까칠한 것을 보니 없겠군.”

“인간, 너는?”

“나도 아직.”

“그것참 안됐군. 머지않아 좋은 암컷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슬라임에게 덕담을 들은 인스트의 표정은 미묘했다. 아니면, 스기엔이 한 덕담 자체가 미묘했던가.

“스기엔도 곧 좋은 암컷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나는 할 말을 잃은 인스트를 대신해서 얼른 스기엔에게 덕담을 건넸다. 그 말을 들은 스기엔의 표정은 인스트만큼이나 미묘했다.

“언제?”

“응?”

“그 좋은 암컷이라는 것을 언제 만날 수 있는데?”

“어…….”

불쑥 날아온 질문에 이번에는 내가 할 말이 없어졌다. 으레 하는 덕담인지라 스기엔이 되물어 올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면, 그 좋은 암컷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데?”

“아…….”

그다음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좋은 암컷 슬라임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몬스터가 없는 세계관에서, 유일한 몬스터인 스기엔의 짝은 존재하지 않았다.

“…….”

정말 대답을 원하는 듯,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스기엔의 얼굴에서 이내 실망감이 비쳤다.

“멍청한 인간.”

스기엔은 조용히 저 말을 내뱉고는 휙 몸을 돌렸다.

동그란 귀여운 뒤통수가 지금 이 순간만은 어쩐지 슬퍼 보였다.

* * *

‘별이…… 예쁘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노숙이었다.

귓가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렸고,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에서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밤하늘에는 보석처럼 별이 박혀 있었다.

중간에 피워둔 모닥불과 모포 덕분에 그렇게 춥지는 않았지만, 내놓은 얼굴의 코만은 시렸다.

눈을 감아도 별이 보일 정도가 되면, 나도 인스트처럼 머리끝까지 모포를 덮어야 할지도 몰랐다.

“잠이 오지 않아?”

부드러운 목소리가 모닥불 쪽에서 들렸다. 불침번을 서고 있는 테오도르였다.

“나중에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얼른 자.”

잠투정하는 어린아이를 재우려는 것처럼 나긋나긋한 말솜씨였다.

일단 슬라임인 스기엔을 제외하고, 인간 3명이 3시간씩 불침번을 서기로 했고, 나는 3번째 순서로 새벽 담당이었다.

그러니 테오도르의 말처럼 일찍 일어나야 했다.

참고로 테오도르가 1번이었고, 인스트가 2번, 그리고 내가 3번이었다.

순서가 이렇게 된 이유는 첫날에 2번이었던 테오도르가 나를 깨우지 않고 자기가 온전히 6시간을 불침번을 서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레나티스가 너무 예쁘게 곤히 자고 있어서.’

인스트는 한숨을 내쉬었고, 3시간밖에 자지 못한 테오도르가 걱정되어 나는 온종일 안절부절못해야 했다.

결국, 인스트는 불침번 순서를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테오도르가 칼같이 자신을 깨우고, 본인이 칼같이 나를 깨울 수 있도록.

“별이 예뻐서요.”

내 말에 테오도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손바닥만 한 밤하늘의 별을 본 테오도르는 곧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내 눈에는…….”

“하지 마세요.”

어쩐지 테오도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것만 같아서, 나는 기겁하며 단숨에 그의 말을 잘랐다.

“왜?”

“무슨 말씀 하고 싶으신 건지 이미 알 것 같거든요.”

지금의 분위기상 테오도르가 할 말은 ‘내 눈에는 네가 더 예뻐.’ 혹은, ‘내 눈에는 별을 바라보는 네가 더 아름다워.’ 같은 말일 것이 분명했다.

사실은 난 그 말을 할 것을 알고 있지만, 테오도르의 입에서 듣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나처럼 아직 잠들지 않았을 인스트나 스기엔이 저 말을 듣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눈치는 있었다.

“그래도 직접 듣는 게 좋지 않아?”

“의미가 통했으니, 괜찮아요.”

테오도르는 뭔가 미심쩍은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다행히 말을 이어서 하지는 않았다.

휘유~.

한숨을 내쉬자, 자연스럽게 고개가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모포 아래의 내 배가 볼록해진 것이 보였다.

물론, 갑자기 내가 임신을 하거나, 배에만 살이 찐 것은 아니었다.

날이 춥다며, 스기엔이 내 배 위에서 잠이 든 탓이었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요?”

적어도 스기엔은 자는 것 같아, 목소리를 낮춰서 테오도르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지?”

“개도, 고양이도, 새도, 하다못해 하이에나나 사자도 모두 있는데, 사람은 오직 저 하나뿐이라면, 아무도 없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낮에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온종일 생각해보았지만,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스기엔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 나는, 스스로 한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혼자라는 것은, 나와 말이 통하는 생명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요?”

나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이 반짝이는 별을 보고 함께 대화를 나눌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거의 공포에 가까울 듯했다.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듯, 나는 잡을 수 없는 별을 잡으려 모포 속에서 손을 꺼냈다.

밤하늘을 향해서 욕심껏 한 움큼 움켜쥐었지만,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허무, 공허, 외로움.

내가 잡은 것은, 혹은 잡지 못한 것은 그런 것들이리라.

“레나티스.”

그리고 그런 내 손을 테오도르가 잡았다.

“네가 있는 한,”

테오도르의 얼굴에 가리어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있는 한,”

서늘한 밤공기에 테오도르가 한 단어, 한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하얀 입김이 그의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네가 외롭게 혼자 있을 일은 없을 거야.”

마주 잡은 손이 영원하기를, 보이지 않는 별에게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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