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41
“안돼.”
테오도르는 세상에서 제일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저는 시골 출신인걸요? 산에서 나무도 하고, 나무 열매도 따곤 했어요. 산짐승이나 벌레 같은 걸 보는 것도 익숙해요.”
“시골과 깊은 산 속은 이야기가 달라. 거기다가 발루텍스는 악룡이 산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험준한 산이야. 나무 열매나 따는 동네 뒷산이랑은 달라.”
“그래서 인스트 님과 같이 가겠다고 했잖아요. 검술 실력도 출중하고, 야영 경험도 많은 인스트 님과 함께 가면 문제 없을 거예요.”
그리고 나는 세상 단호한 테오도르를 저녁 내내 설득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무리 인스트라고 해도 늑대 무리가 덤비거나, 곰이라도 나타나면 도리가 없어.”
“하지만 활 실력이 더 늘었으니 괜찮을 거예요. 비거리도 더 늘어났고, 정확도도 더 늘었어요. 어지간한 산짐승쯤은 맞출 수 있을걸요?”
“네 활 실력은 믿어. 하지만 화살 하나로 곰을 잡을 수는 없어.”
“꼭 곰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죠. 애초에 곰이 그렇게 자주 마주치는 짐승은 아니잖아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곰 말고, 승냥이 떼나 사자나 흑표범 같은 것이 나타날 수도 있지. 그중에서 어느 것이 제일 위험하냐는 질문을 한다면, 전부 위험하다고 말하겠어.”
테오도르는 이상할 정도로 완강했다. 내가 떠나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 역시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산짐승이 그렇게 걱정되신다면, 인스트 말고 발루텍스 산에 익숙한 사냥꾼 같은 사람을 그 근처에서 구할게요. 아!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현지인이라면 산의 지리도 잘 알 테고요.”
“지리를 알아봤자, 산기슭 정도겠지. 발루텍스는 제국의 북쪽 끝에 위치한데다가, 고도가 높아서 온도가 매우 낮아. 심지어 산세가 험하기까지 하지. 마을도 몇 없는 데다가, 사는 사람은 더 적어.”
“…….”
무슨 말을 해도 테오도르는 설득되지 않았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반박을 하는 테오도르와는 달리 나는 말재주가 없었다.
“거기다가 네가 없는 사이에 내가 광증이라도 도지면 어쩌지?”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테오도르 님의 광증 주기는 어느정도 파악했으니까 그 안에 다녀오도록 할게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제가 피도 미리 뽑아놓고 가려고요.”
“신선한 피가 아니라서 소용이 없다면?”
“어…….”
“혹시 네가 미리 뽑아둔 피를 잃어버리거나, 깨트리거나, 마르기라도 하면?”
“…….”
또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자, 오히려 이제껏 단호했던 테오도르의 표정이 조금 부드럽게 풀렸다.
“레나티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마치 이제 자신이 나를 설득할 차례라는 듯이.
“네가 스기엔을 얼마나 귀여워하는지는 알겠어. 하지만 이대로도 괜찮지 않아?”
“이대로라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스기엔의 정체가 뭔지 굳이 알지 않아도 되지 않냐는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건 지금 이대로의 스기엔이잖아. 귀엽고 통통한 슬라임인 스기엔. 그 애의 과거나 본래 정체가 뭐든지 간에, 지금 이대로 귀여운 스기엔과 함께 즐겁게 지내면 되잖아.”
“그건…… 안 돼요.”
나는 테오도르의 제안에 고개를 돌려, 그와 그의 제안을 동시에 외면했다.
“왜? 스기엔이 정말 악룡이라면, 그가 싫어질 것 같아서? 아니면, 무서워질 것 같아?”
“그런 건 아니에요! 본래 정체가 진짜 고위 마족이거나, 악룡이라고 해도 스기엔은 스기엔이니까,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제가 스기엔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할 리는 없어요.”
내 대답을 들은 테오도르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의미를 담은 미소였다.
“그러면 상관없지 않아? 이대로 사는 것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스기엔도 이제껏 이 저택 안에서 잘 살아왔잖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도 이 저택 안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았지만, 스기엔을 처음 봤어. 그러니까 이대로 산다고 해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테오도르는 달콤하게 속삭이며,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의 목소리도, 그의 손짓도,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세이렌의 그것처럼 느꼈다. 어느새 나는 테오도르의 목소리에, 눈짓에, 그리고 손짓에 홀려 있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자, 테오도르는 싱긋이 웃었다.
“레나티스.”
살짝 고개를 꺾은 테오도르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세이렌의 목소리는 홀려버릴 만큼 유혹적이었지만, 절대 홀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였다.
“죄송해요.”
테오도르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기 직전,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자 테오도르의 얼굴에서 단숨에 달콤함이 사라졌다.
공중에서 우뚝 멈춰버린 그의 얼굴은 어떤 표정도 짓지 못한 채, 굳어버리고 말았다.
“아직…….”
나는 거짓말이 힘들어서 거기까지만 말했다. 그렇게만 말해도 테오도르가 알아차리길 바랐다.
“…….”
테오도르는 그저 아무 말이 없었다. 표정이 없는 그의 얼굴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알아차린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래…….”
내 뺨 근처에 있던 테오도르의 손이 툭,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는 씁쓸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알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테오도르가 알아차렸다는 것을.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가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지만, 2주 넘게 월경한다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그런데도 테오도르가 당장 의사를 부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다 알면서도, 테오도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표정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을 뿐이었다.
“그게 네 뜻이군.”
“네?”
“정말 발루텍스 산으로 가려는 것은 맞아?”
이제껏 발루텍스 산으로 보내달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게 맞냐고 테오도르가 묻자, 나는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깜박였다.
“말은 그렇게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는 것은 아닌지 묻는 거야.”
“제가 어디로 간다는 거예요?”
“어디든.”
내뱉은 단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무심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테오도르의 눈빛은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온 것처럼 상처투성이였다.
“내게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제야 깨달았다. 테오도르가 이렇게 완강하게 발루텍스 산으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를.
물론, 내가 다칠까 봐 걱정된다는 것은 테오도르의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위험한 카르오 대공을 처치하는 일에는 나를 전력으로 썼던 테오도르였다. 심지어 나에게 의지하기까지 한 그였다.
테오도르가 나를 가지 못 하게 한 진짜 이유는, 내가 그를 떠나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테오도르를 다치게 한 가시덤불을 심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 그럼 왜 날 피하지?”
“그건…….”
“그것도 아니라고 할 건가? 날 피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테오도르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상처와 핏물로.
“테오도르 님을 피하는 게 아니에요!”
더는 그가 상처받게 둘 수 없었다. 나는 테오도르의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오히려 제가 발루텍스 산으로 가려는 건, 테오도르 님의 가까이에 가기 위해서예요.”
“그게 무슨 소리지?”
테오도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스기엔은 특별한 존재예요. 이 세계의 유일한 슬라임이고, 하나밖에 없는 몬스터죠.”
“일단 알려진 바로는 그렇긴 하겠지.”
이 세계가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라는 것을 아는 나와는 달리 오히려 테오도르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듯했다.
드래곤따위는 없다고 말하던 낮과는 달리 말이다.
“그리고 카르오 가문은 광증의 저주를 받았죠. 그 광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굳이 제가 테오도르 님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당연히 그건 설명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왜 갑자기 내 광증에 대해서 말을 꺼낸건 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야겠어.”
“이 세계에서 유일한 슬라임이, 이 세계에서 유일한 저주받은 가문에서 살고 있어요. 저는 이게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도 우연은 믿지 않는 주의지만, 카르오 가문이 저런 몬스터와 관련이 있다는 건 믿기 어렵군.”
“하지만 초대 카르오 대공과 엔기스, 그리고 스기엔이 뭔가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시죠?”
“…….”
테오도르는 말이 없었다. 긍정해버린다면, 내가 떠나버릴 것이라고 아직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저도, 하고 싶어요.”
손을 뻗어 테오도르의 입술에 내 손가락을 가져다 대였다.
이 입술이 내게 주는 감각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닿고 싶었고, 하고 싶었다.
“테오도르 님과 키스하고 싶고, 더 가까이 닿고 싶고, 함께 자고 싶어요.”
돌려 말하지 않았다. 감추지도 않았다. 그것이 테오도르를 상처받게 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나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어요.”
테오도르가 내 손을 잡으려는 순간, 나는 손을 피했다. 허공에서 멈춰버린 것은 테오도르의 손만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도 당황스럽다는 듯이 허공에 우뚝 멈추어 서버렸다.
“아이가 생기면 어쩌죠?”
“……뭐?”
테오도르의 보라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에서 알았다. 테오도르는 이제껏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