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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37화 (137/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37

이게…… 무슨 소리야?

당황했다. 그것도 매우.

하지만 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안의 목소리는 계속 되었다.

“어쭈?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네 친구한테 이르기라도 할 거야? 너 괴롭힌다고, 혼내주라고, 네 창녀 같은 친구에게 이르기라도 할 거냐고.”

“그만해!”

“그만하긴 뭘 그만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클레어가 빽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 주제에 얼굴 좀 반반하고, 몸매 좀 빵빵하다고 순진하고 착한 테오도르 님을 꼬셔서 뭘 어떻게 해보려는 모양이던데, 꿈 깨라고 전해.”

“레나티스는 그런 애가 아냐!”

“아니면?”

“레나티스는 정말로 순수하게 테오도르 님을 사랑하고 있는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이번에도 목숨을 걸고, 테오도르 님을 도운 거지.”

“웃기고 있네. 카르오 대공님이 분명히 시꺼먼 제 속을 알아차리고, 저택에서 쫓아낼 테니까 그쪽에 찰싹 붙은 거겠지. 실제로 카르오 대공님을 쏜 것도 그 계집애라며?”

“그건…….”

“감히 하녀 주제에 모시던 주인님을 해쳐? 그런 배은망덕한 년은 모가지를 부러뜨려야 하는 건데.”

목소리가 하는 말은 내가 예상했던 최악의 경우를 총망라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의 최후도 아주 최악이었다.

“그만해! 레나티스는 네가 말하는 그런 애가 아니야! 정말 착하고, 용감하고, 멋진 애란 말이야!”

잠시 할 말을 잃었던 클레어가 다시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솔직히 저 목소리가 들려준 날것의 반응은 꽤 충격적이었지만, 또 내가 없는 곳에서 이렇게 내 편을 들어주는 클레어의 우정은 감동적이었다.

내가 더 잘할게, 클레어! 우리 우정 영원하자!

그래. 친구가 곤경에 처했는데,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지! 심지어 나 때문에 곤경에 처한 건데!

나는 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할 말이 있으면, 본인에게 직접 하지 그래?”

“!!”

“!!”

“!!”

“레나티스!”

방 안에 있던 시선이 몽땅 내게 쏠리는 것이 보였다. 목소리는 하나였지만, 사람은 셋이나 되었다.

빨간 머리, 노란 머리, 그리고 갈색 머리의 똑같은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 세 명이 클레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의 사이로 나를 발견한 클레어는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왜 죄 없는 내 친구를 괴롭히는 거야?”

안으로 척척 걸어 들어가, 클레어가 말한 대로 착하고 용감하고 멋있는 사람인 척하며 클레어의 앞을 막아섰다.

“죄 없는 네 친구? 네가 죄가 있는 건 아나 보지?”

“…….”

목소리의 주인공은 노란 머리였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 어디서 눈을 그렇게 떠?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카르오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1.”

“뭐?”

“하녀2, 하녀3. 아니야? 별로 중요한 인물도 아닌 것 같은데?”

내친김에 검지를 뻗어 하나하나 손가락질을 하며, 역할을 붙여주었다. 참고로 순서는 알파벳순이나 키순이 아닌, 무작위였다.

“소설로 치자면, 한 1~2회 정도 출현해서 여자 주인공을 괜한 시비로 괴롭히다가 참교육 당해서 깨갱하는, 그 정도의 비중 없는 엑스트라인 것 같은데?”

“이게 지금 장난하나!”

아, 하나를 빼먹었다. ‘손버릇이 나쁜’이라는 걸. 이런 캐릭터들은 대게 손버릇이 나빴다.

벌써 내 뺨을 노리고 손을 치켜든 저 여자의 손이 그 증거였다.

‘느리네.’

자기 생각에는 카르오 저택의 불주먹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느려 터진 물주먹이었다.

턱.

여자의 손이 공중에서 그대로 멈췄다. 내가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하! 일하기 싫어서 호위 기사랑 노닥거린다더니, 꼴에 뭣 좀 배웠나 봐?”

노란 머리는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 손에서 자기 손목을 빼내려고 했다.

“?”

하지만 내가 놔주지 않았다.

“??”

그녀는 확 손을 잡아당겼지만, 여전히 그녀의 손목은 내게 잡혀 있는 채였다.

성인 남자도 거뜬히 이기는 내 힘인데, 보통의 여성인 그녀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왜, 왜 그래?”

점점 노란 머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그녀의 팔이 움찔거릴 뿐, 내게서 벗어나지 못하자 옆에 있던 갈색 머리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이 계집애가…… 악!!”

어디서 욕이야?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자 아팠던지 그녀가 소리를 꽥 질렀다.

아까는 문밖이었는 데다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어서 욕을 참고 넘겼지만, 면전에 대고 내 욕을 하는데 굳이 내가 참을 필요가 없었다.

“야! 안 놔?”

“응. 안 놔.”

“놓으라고!”

“노흐라고호~”

“이게?”

“히게에~”

나는 그녀의 말투를 한껏 비웃으며 따라 해주었다.

그녀의 얼굴이 더 붉어지고, 옆에 있던 클레어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들린 걸 봐선 내가 제법 잘 따라 한 모양이었다.

“사과하면, 놔줄게.”

“사과?”

“응. 사과.”

“사과는 무슨 사…… 악!”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 그녀의 기세에 나는 조금 느슨하게 쥐었던 손목을 다시 꽉 쥐었다.

모르긴 해도, 내일 그녀의 손목에는 멍이 시퍼렇게 들게 뻔했다.

이제 사태를 좀 파악한 건지, 옆에 있던 빨간 머리와 갈색 머리는 안절부절못하며 노란 머리의 눈치와 내 눈치를 동시에 살피기 시작했다.

“사람 뒷담화를 하다가 들켰으면, 사과해야지.”

나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

무슨 말을 하려던 노란 머리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는 몰라도 사과는 아닌 모양이었다.

또 헛소리했다가는 내가 다시 손에 힘을 줄 것을 알아차리고 입을 다문 것을 보면.

“하기 싫어?”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도 나불거리던 그녀의 입이 조개처럼 꽉 다물어졌다. 빤히 눈을 쳐다보기만 할 뿐, 사과할 기색은 없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지.

“하아…….”

나는 참으로 귀찮고, 피곤하다는 내색을 팍팍 내어 보이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을 스윽, 내밀었다.

제 코앞에 내 얼굴이 들이밀어 지자, 깜짝 놀라서 움찔하는 것이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을 통해서 느껴졌다.

“너도 목구멍 뚫리고 싶어?”

나는 무표정으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대번에 커지며, 잡힌 손목을 파닥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저 가만히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고요하게 그녀의 눈을 노려봐 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미, 미안해!”

그리고 채 3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입에서 사과가 튀어나왔다. 그제야 내 입가에 빙긋이 미소가 떠올랐다.

탁하고 손을 놓자, 어찌나 제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던 건지, 노란 머리는 바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뒤로 넘어져 버렸다.

“로윈!”

노란 머리의 이름이 로윈이었나 보다. 그녀가 넘어지자 갈색 머리가 깜짝 놀라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넘어진 로윈은 가만히 서 있었음에도 흡사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너…….”

역시 사람은 배은망덕했다. 조금 전에 미안하다며 사과해놓고는, 지금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씨근거리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부디 그녀가 또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할 텐데.

“지금은 테오도르 님의 총애를 받는다고 이렇게 기세등등하지만, 이게 오래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녀가 내뱉은 말은 조금 모호했다. 분명 악담이긴 한데, 욕은 아니었고, 뒷담화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허위사실에 가깝긴 했다.

나는 딱히 기세등등하지도 않았고, 그녀를 위협한 것은 순수한 내 힘이었다.

“테오도르 님이 아무리 널 예뻐한다고 해도, 넌 평민이고, 하녀야. 죽었다가 깨어나도, 귀족인 테오도르 님과 하녀 나부랭이인 너는 맺어질 수 없다고!”

이건 사실이었다. 제국법령에 근거한 진실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사과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네가 아무리 지금 그렇게 잘난 척을 해봤자, 카르오 저택의 안주인은 못 돼. 우리가 너 같은 촌뜨기 하녀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떠받들 일을 없다고!”

아마도 그녀들이 날 싫어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저것인 듯했다.

귀족도 뭣도 아닌,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나도 꿈꾸지 않는 미래를 왜 자기들이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손목 부러질래, 목구멍 뚫릴래?”

나는 그들의 악담을 수용하는 대신, 조용히 그녀들을 협박했다.

“……!!”

“……!!”

“……!!”

내 말에 세 명의 하녀들은 기겁하더니, 이내 후다닥 문을 열고 사라졌다. 참…… 엑스트라다운 퇴장이었다.

“미안해, 클레어. 본채로 온 첫날부터 나 때문에 곤욕을 당했네.”

“아니야, 아니야! 레나티스가 이렇게 구해줬잖아. 역시 레나티스가 최고 멋있어!”

많이 당황했을 법한데도, 클레어는 고개를 흔들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자 주책맞게도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갱년기인가? 요즘 왜 이렇게 눈물이 헤프지?

“아, 선물이 있어!”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먼저 내밀었다.

“응? 이게 뭐야?”

“말했잖아, 선물이라고.”

“다음 달이 내 생일인 것 어떻게 알았어?”

아니, 그건 몰랐는데…….

“느, 느낌상 넌 겨울에 태어난 아이 같았어.”

그냥 아는 걸로 하자.

클레어는 호기심 반, 기대 반이 섞인 표정으로 선물을 풀었다.

“와아! 리본이네! 고마워, 레나티스!”

클레어는 리본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를 보며 나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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