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33화 (133/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33

“테, 아니, 대공님?”

식당 입구 쪽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테오도르를 보고 캑캑거리며 그를 불렀다.

처음에는 분명 ‘테오도르 님’이라고 습관처럼 부르려다가, 얼른 ‘대공님’으로 바뀌는 것이 들렸다.

아직 다들 테오도르가 카르오 대공인 것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테, 대…… 테? 대…….”

그리고 나 역시 그랬다.

테오도르라고 부르려다가, 대공님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가, 또 갑자기 그렇게 호칭을 바꾸면 이상할 것 같고, 그래도 역시 대공님이 맞는 것 같고…….

나는 테오도르가 내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올 때까지 호칭을 정하지 못했다.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러는 사이, 테오도르는 어느새 내 옆에서 있었다. 살짝 찌푸린 얼굴을 하고.

“밥 먹으러 여기 있는데요.”

나는 식당의 훌륭한 목적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내 말은 왜 네가 여기서 밥을 먹고 있냐는 거야.”

“식당에서 밥을 안 먹으면, 어디서 먹죠?”

“내 옆에서 먹어야지.”

“큭!”

“헉!”

“푸훗!”

테오도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테오도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일이면, 아니 당장 내가 이 식당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커질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가자.”

그러거나 말거나, 테오도르는 내 손을 붙잡아 당겼다. 그 기세에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자, 모두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 앉아서 계속 밥을 먹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 배가 고팠다.

“알겠습니다.”

아직 덜 먹은 빵을 손에 쥐고, 나는 테오도르를 따라서 기다리고 있던 마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본채였다.

그리고 그게 내가 별채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였다.

* * *

예상대로 오드리도, 리타 부인도, 인스트도 거처를 본채로 옮겼다. 그리고 예상과는 다르게 나도 본채에 머물게 되었다.

예전 대공비가 쓰던 방에 내가 있기를 테오도르는 원했지만, 나는 ‘그건 좀…….’이라며, 눈을 피해버렸다.

테오도르는 ‘내가 생각이 짧았군. 널 공격했던 사람의 방을 쓰는 것은 괴롭겠지.’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남의 눈이 신경 쓰여서였다.

내가 본채로 건너온 그 순간부터, 정확하게는 테오도르의 손을 잡고 본채의 현관으로 들어선 그 순간부터, 시선이 쏠렸다.

참고로 그 시선은 매우 부담스러운 시선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시선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이제는 뒤뜰이 아니라 사병들의 훈련장에서 인스트와 훈련을 할 때나, 본채 주방에서 테오도르의 차 준비를 할 때나, 지금처럼 집무실에서 차 시중을 들 때도.

“왜?”

“네?”

“얼굴에 뭔가 근심이 가득한데?”

테오도르의 말에 나는 눈을 살짝 굴렸다. 티가 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티가 난 모양이었다.

“말해 봐. 무슨 문제라도 있어?”

테오도르는 이제 아예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내게 물었다.

“아, 아뇨. 아무 문제 없어요.”

하지만 나는 테오도르에게 따라붙는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고민 상담 대신, 고개를 내저었을 뿐이었다.

테오도르는 카르오 대공이 된 뒤로 아주 바빴다. 티타임마저 온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서류를 들여다봐야 하는 그였다.

그런 테오도르에게 내 고민까지 떠안길 수는 없었다.

“아직도 매우 바쁘시죠?”

“아직 믿을만한 부관이 없는 상태라서, 내가 모든 것을 일일이 직접 확인하다 보니 좀 그래. 거기다가 나도 아직은 서툴고. 곧 익숙해지겠지.”

“어깨도 다 안 나았는데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닌가요?”

“종이 한 장도 못 들 정도로 다치지는 않았어.”

테오도르는 서류를 팔랑이며 말했다.

언뜻 서류의 글씨들이 보였지만, 단어 자체가 너무 어려워 나는 무슨 서류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차를 더 드릴까요?”

“응, 그래.”

테오도르는 다시 서류를 쳐다보며 대답했고, 나는 그의 찻잔에 차를 더 따랐다. 서류에 눈은 그대로 둔 채, 손만 뻗어서 테오도르는 차를 마셨다.

“맛있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테오도르가 말했다.

“네가 차를 끓이는 데에 재능이 있다고 한 건 그냥 했던 말이 아니었어. 네가 끓인 차는 뭐랄까……. 따뜻한 맛이 나.”

테오도르의 말에 나는 눈을 끔벅였다.

“차는 보통 따뜻하게 마시니까, 당연히 따뜻한 맛이 나지 않을까요?”

더운 한여름에는 가끔 아이스티 같은 것을 내오기도 했지만, 보통은 따뜻한 차를 내왔었다.

그러니까 내가 끓인 차는 거의 다 따뜻한 맛이 나는 게 맞았다. 따뜻한 게 맛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테오도르는 무언가 설명하려다가, 그게 어려운 듯 말을 잠시 멈추고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전에 복잡한 서류를 보던 표정보다, 지금의 표정이 더 복잡해 보였다.

“네가 주는 차는, 마시는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노력한 흔적이 느껴져.”

물론 나는 그렇게 하긴 했다. 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주제에 테오도르의 차 담당이 되었으니,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다.

리타 부인이 알려준 것을 숙지하려고 애썼고, 최대한 테오도르에게 맞춰서 차를 준비하긴 했다.

하지만 테오도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은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서 이 차를 준비했구나.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걸 알고 있구나. 피곤한 것을 알고 있구나. 그런 게 느껴지거든.”

그렇게 말하며 테오도르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은 내가 피곤해 보여서 이걸 준비한 거겠지?”

“일이 너무 많으시니까요.”

오늘은 날씨가 쌀쌀했고, 테오도르는 피곤해 보였다.

이 날씨와 저 컨디션의 콤보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아 꿀을 조금 더한 레몬 생강차를 준비했다.

“어쩌면, 내 한정일 수도 있지만, 넌 차에 재능이 있어.”

테오도르의 칭찬에 기뻤다. 이전에도 내가 차를 잘 끓인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냥 인스트에게 어깃장을 놓기 위해서 그러는 걸로만 알았는데!

“그러니까, 레나티스.”

사뭇 진지하게 테오도르의 말투가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테오도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다음에 이어질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네가 활을 그만두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네 재능은 활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네?”

의외의 말이었다. 이번에 확실하게 내 활이 테오도르에게 도움이 되었기에 더욱 그랬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번에 저, 잘하지 않았나요?”

“맞아. 잘했어. 아주 엄청난 전력이었지. 그래서 하는 말이야.”

테오도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잘했으니까 그만두라니?

“누군가를 쏘기엔, 넌 너무 착해.”

그가 꺼낸 말에 살짝 입술이 벌어지고 말았다.

“오르디에게 들었어. 네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혹시 네 화살에 맞은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

“없다는 말에 다리가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다행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는 것도 들었지.”

사실이었다. 나는 근육통으로 삐걱거리는 몸으로 오르디를 찾아다녔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적어도 내 화살에 맞아 죽은 사람은 전 카르오 대공 하나뿐이었다.

“넌 궁술에 재능이 있어. 계속 배운다면, 아주 훌륭한 궁수가 되겠지. 제법 유명한.”

테오도르가 손을 뻗어왔다. 그리고 크고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감싸듯이 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이번과 같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러니 지금 멈추는 게 나으리라고 생각해.”

그의 말에 깨달았다. 내가 테오도르에게 맞춘 차를 내오기 위해서 그를 살폈듯, 테오도르도 항상 나를 보고 있었다.

“아뇨.”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계속 배우겠어요. 이번과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제가 테오도르 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는 다시 활을 잡을 거예요.”

“레나티스.”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듯이 테오도르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다정한 음성에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사람을 쏜다는 것은 아직 두려워요. 내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은 더욱 무섭고요. 하지만.”

나는 테오도르에게 잡혀있던 손을 조금 움직여,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테오도르 님을 잃는 것은 더욱 두려워요.”

그것이 내 진심이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내가 힘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테오도르가 목숨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이번에 제가 테오도르 님의 목숨을 구해드린 것, 알고 계시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테오도르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물론, 알지. 나의 은인.”

테오도르는 내 장난을 받아주며,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몸짓에 나는 아주 대놓고 웃고 말았다.

이제 이 이야기는 끝난 것 같아 손을 놓으려는데, 테오도르가 잡아 빼려는 내 손을 다시 붙잡았다.

“이대로 있고 싶은데.”

“네?”

“손은 이대로 잡고 있고 싶다고.”

이게 무슨 말이람?

“물론, 나도 다른 것도 하고 싶어.”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지금 당장 키스하고 싶고, 널 저 소파에 눕히고 싶어. 유서 깊은 대공 가의 집무실에서 이런저런 짓을 하는 것도 퍽 흥미로울 것 같거든.”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런저런 짓이 무슨 짓인지는 아주 조금 궁금했지만,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러다 이내, 밖에서 누가 들을세라 뒤를 돌아 문쪽을 쳐다보았다.

아주 다행히 무슨 일이냐며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경비병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바쁘니까, 손만으로 만족할게.”

“제발요.”

나는 테오도르에게 내 손을 쥐여주며 말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내 손을 잡았고, 다시 눈을 돌려 서류를 쳐다보았다.

나도 본채의 서재에서 가지고 온 괴담집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손으로는 각자의 할 일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서로를 잡았다.

테오도르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