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30
“감히……. 건방지게…….”
자신의 목을 원한다는 테오도르의 말에 니제르는 불끈 주먹을 쥐고 파르르 떨었다.
“뭐 하느냐? 저 폭도 무리를 당장 없애지 않고!”
상태가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상대가 카르오의 후계자임을 알아보고 선뜻 나서지 못했던 호위 기사들이 니제르의 호통에 그제야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처음에 니제르를 잠에서 깨웠던 기사를 제외한 다섯 명이 천천히 간격을 벌리며 테오도르의 주위를 넓게 둘러쌌다.
레나티스는 연신 그들을 힐끗거리며, 조준을 옮겼다. 그리고 느슨하게 서 있던 테오도르는 살짝 자세를 낮추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빨리 처치해라!”
긴장감이 흐르는 대치 상태를 깨뜨린 것은 제삼자나 다름없는 니제르였다.
“하아아압!!”
니제르의 말에 용감한, 혹은 포상에 눈이 먼 기사 하나가 크게 기합을 지르며 테오도르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레나티스가 얼른 활을 그쪽으로 돌렸지만, 쏘지는 않았다.
테오도르의 손이 이미 기사의 팔을 붙잡으려고 뻗은 상태였고, 그의 다른 팔이 이미 기사의 목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우우웅!”
대신, 레나티스의 화살이 쏘아진 곳은 테오도르가 기사의 목에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을 박아넣는 동안, 양손이 못쓰게 된 것을 노리고 그의 등 뒤를 노리던 다른 기사의 팔이었다.
“끄어어…… 어…….”
“으악!”
신음과 같은 비명과 커다란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그리고 동시에 두 개의 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해라! 상대는 협공에 능하다!”
다급해진 호위 기사가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기사들은 더욱 단단히 검을 쥐었다.
겉으로 봐도 위압감을 주는 테오도르는 당연히 경계하고 있었지만, 분명 하녀라고 들은 여자가 저렇게 재빨리 대응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단번에 움직이는 기사를 맞출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몰랐다.
“뭐 하는 짓이야? 저따위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에게? 그러고도 카르오 대공 가의 기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
다급해진 니제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폭주하는 에멘스도 쓰러뜨린 카르오의 기사들이 제 형의 반도 미치지 못하는 테오도르를 단번에 제압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하지만 혼자였던 에멘스와는 달리 테오도르에게는 그를 엄호해주는 레나티스가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대공의 호령에 그를 지키느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호위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애초에 저들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대공을 지킬 수 없었다.
기사들은 그가 나서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간격을 벌려 그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동시에 안심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선임 기사인 그라면, 눈앞에 있는 괴물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크흣!”
호위 기사는 별다른 기합도 없이 테오도르에게 달려들었다.
아까처럼 그의 팔을 잡으려던 테오도르는 그가 기묘하게 팔목을 비틀어 자신의 손을 피하고, 팔을 뻗느라 빈 복부를 향해서 검을 찔러넣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다.
다행히 검에 찔리지는 않았지만, 급하게 몸을 비튼 탓에 옆구리가 뻐근했다.
하지만 그것을 느낄 틈도 없이, 기사가 허공을 가른 검을 회수해 다시 자신에게 휘두르는 것을 보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읏!”
“큭!”
기사의 검은 다시 허공을 갈랐다. 조금 전에 테오도르의 목이 있었던 그곳을.
기묘한 검술 격투였다. 한 사람은 검이 없긴 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기사들은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에 검을 피했고, 종이 한 장 차이로 날카로운 손톱을 피했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을 공격했고, 또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그야말로 팽팽한 접전이었다.
그리고 그 접전이 깨어진 것은, 역시나 찰나의 순간이었고, 종이 한 장 차이의 빈틈이었다.
“읏!”
빈틈을 발견한 기사가 검을 찔러넣었다. 어김없이 테오도르가 그것을 피하려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기사가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테오도르의 움직임은 인간의 그것을 초월했고, 그의 힘 역시 그랬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테오도르와 몸을 부딪친 곳은 얼얼했고, 검을 쥔 손목은 무리해서 뒤트느라 시큰거렸다.
그에 비해서 테오도르는 자신의 검이 스친 생채기 정도만 있을 뿐, 조금도 지치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과연 괴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꾀를 내었다. 자신이 테오도르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힘들다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그를 꾀어내기로.
테오도르가 몸을 피하려는 공간은 애초에 그가 만들어 놓은 공간이었다. 자신의 검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기사는 자신의 주특기대로 손목을 비틀어 불가능할 것 같은 각도로 검을 찔러 넣었다.
“으윽!”
피가 뚝뚝 흘렀다. 그가 노리고 있었던 테오도르의 어깨에서.
“…….”
하지만 그는 자신이 드디어 괴물을 해치웠다고 즐거워할 수 없었다. 그 괴물이 자신의 목을 쥐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제야 기사는 깨달았다.
자신이 괴물을 잡기 위해서 함정을 팠듯, 괴물 역시 자신을 잡기 위해서 함정을 팠다는 것을.
“쓸모없는 것들!”
결정 나버린 승부의 결과에 모두가 얼어붙어 있던 그때였다. 니제르는 제 앞에서 굳어있는 기사의 손에서 검을 빼앗으며 앞으로 나섰다.
당연히 목표는 제 앞에 선, 저 괴물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테오도르가 바로 대응하려다 멈칫했다. 한쪽 팔은 조금 전 공격에 다쳐 움직일 수 없었다. 남은 것은 기사의 목을 쥔 이 손뿐이었다.
지금 목을 쥔 손을 놓으면, 당연히 기사는 반격할 것이다.
그렇다고 일단 이자를 죽인다면, 그 사이에 니제르의 검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 틀림없었다.
“이야압!”
테오도르의 망설임을 귀신같이 눈치챈 기사가 테오도르의 어깨에 파고들어 있던 검을 힘주어 앞으로 그어냈다.
“크흣!”
어깨에 머물러 있던 통증이 화마처럼 테오도르의 온몸으로 뻗어나갔다. 테오도르는 반사적으로 손에 힘을 줘서 기사의 숨통을 조였다.
단박에 기사의 손에서는 힘이 빠져나가고, 그가 쥔 검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죽어라, 이 괴물!”
하지만 다른 검이 테오도르를 향하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모양은 어설프기 그지없었지만, 흉흉한 악의와 증오를 듬뿍 담은 검이었다.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테오도르는 이를 악물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입 안에 상처를 내 쇠 맛이 느껴졌다.
테오도르는 목이 졸려 얼굴이 검붉게 변한 기사의 몸을 옆으로 휘둘러 니제르의 검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단련하는 기사의 근육질 몸은 제아무리 테오도르라고 해도 종이 인형처럼 손쉽게 휘두를 수는 없었다.
‘늦었……!’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니제르의 검이 테오도르의 목에 닿기 직전의 순간, 테오도르의 귓가에 가벼운 바람 소리가 들렸다.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쌩하고 분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
바람 소리가 멈춘 순간, 테오도르의 목을 노리던 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증오와 악의는 그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으…… 어어…… 엌…….”
그 대신, 니제르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카르오 대공님!”
“대공님!”
자신을 부르는 기사들의 호명에 대답이라도 하듯, 니제르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자신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는 듯, 그의 손이 자신의 목으로 올라갔다.
단단하고, 기다란 무언가가 니제르의 손에 만져졌다.
그의 손에 의해서 그것이 살짝 휘청이자,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니제르를 꿰뚫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아직 채 파악하지 못한 채, 니제르의 휘둥그레 뜬 눈이 방 안을 오갔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당당한 자세로 활을 든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분홍 머리카락의 하녀에서 니제르의 시선이 멈췄다.
화살이 없었다. 그녀는 빈 활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제야 니제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달았다. 화살에 맞은 것이다.
저 하녀가 쏜 화살이 자신의 목을 관통했다.
“레나티스.”
그래. 그 이름이었다.
“크러……. 크, 크헉!”
니제르는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하녀에게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채 단어가 되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대신이라도 하듯, 미칠듯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허…… 어…… 크어…….”
감히 더 버틸 수 없었다. 밀려드는 고통에 니제르는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소리치기를 포기하고, 대신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새로운 고통이 밀려들었다.
“허…… 어…… 어억…… 억!!”
숨이 가빠왔다.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건들지 않으려던 목으로 다시 손이 가고야 말았다. 손이 화살을 건드려도, 상처를 건드려도 어쩔 수 없었다.
숨이 막히는 고통은 상처보다 더했다.
“끄에…… 엑…… 끄…… 어억…….”
니제르는 지금 자신의 피에 익사하고 있었다.
아직 검을 쥔 기사 누구도 감히 카르오 대공의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가장 눈치 빠른 자가 재빨리 검을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그 의도를 알아차린 다른 이들도 차례로 검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니제르가 본 것은, 한 번도 제 성에 찬 적이 없는 모자란 아들이 자신을 죽인 여자애를 껴안는 광경이었다.
마치 악룡을 무찌른 전설 속의 용사와 성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