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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29화 (129/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29

방안을 가득 메운 것은 가쁜 숨소리와 억누른 비음, 그리고 피다 만 밤꽃의 냄새였다.

“하아……. 하아…….”

테오도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불을 쥐어뜯었다. 비죽이 자란 날카로운 손톱에 이불은 속절없이 찢어졌다.

사실 이불은 이미 그 형상을 잃었다. 이불이라기보다는 이미 누더기에 가까웠다.

그리고 본래의 용도를 잃은 것은 이불만이 아니었다.

침대의 네 귀퉁이에 드리워져 있던 캐노피도, 푹신하던 베개도, 테오도르가 입고 있는 셔츠와 바지까지.

단아하고 정갈했던 테오도르의 방에 드리워져 있던 천들은 모두 그의 손톱에 찢겨 나가 본래의 그 이름을 잃었다.

모두 그저 쓸모를 잃은 쓰레기일 뿐이었다.

“테오도르…….”

아니, 모든 천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테오도르의 이름을 부른 레나티스가 입은 옷은 멀쩡했다.

테오도르는 레나티스에게는 감히 그 날카로운 손톱을 들이대지 못했다. 그래서 레나티스의 옷은 유일하게 온전한 제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 이름이 불리자, 테오도르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니, 이름에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테오도르의 머릿속은 그저 부글부글 끓는 중이었다. 표출할 길이 없는 광기가 그의 핏속을 내달리는 중이었다.

그는 지금 제 이름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발음되는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테오도르가 반응한 것은, 레나티스의 목소리였다.

천천히 테오도르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애처로운 얼굴을 확인하자, 저절로 목이 말랐다.

저도 모르게 입술이 바싹 말라서,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붉어요.”

그렇게 말하며 레나티스는 테오도르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달큼한 냄새도 함께 테오도르를 향해서 성큼 다가왔다.

테오도르의 다급함을 이해하는 레나티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녀는 곧장 테오도르의 입술에 제 입을 맞췄다.

주춤거리는 테오도르의 입술을 연 것도, 날카로운 송곳니를 피해서 그의 입안으로 제 혀를 밀어 넣은 것도, 모두 레나티스였다.

그녀의 축축한 혀는 바싹 마른 테오도르의 입안 곳곳을 적셨다.

그의 마른 입천장을 훑고, 시든 선인장같이 힘을 잃었던 테오도르의 혀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아래의 말랑한 부분까지, 레나티스의 혀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모래바람이 이는 사막 같은 테오도르의 점막에 레나티스는 물의 요정이라도 된 것처럼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싹 말라 있던 그곳이 축축한 숨결을 내뱉고, 시들어 있던 테오도르의 혀가 살아나 레나티스의 혀와 얽히고, 그녀가 준 타액을 마른 목구멍으로 꿀꺽 삼켰다.

미친 듯이 끓어오르던 머릿속이 잠시 그 온도를 낮췄다. 빠르게 내달리던 핏속의 광증이 조금 느릿해졌다.

‘조금 더…….’

하지만 아직 멀었다. 아직 한참이나 부족했다.

지금 테오도르가 얻은 것은 뜨거운 사막에 내린 변덕스러운 소나기에 불과했다.

그에게는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가 필요했다.

‘조금만 더…….’

테오도르는 조금 더 제 혀를 레나티스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두꺼운 혀로 말캉한 레나티스의 혀를 찾아내 휘어 감자, 혀뿌리의 아래에 고여 있던 다디단 타액이 테오도르를 적셨다.

“아……!”

레나티스가 내뱉은 가쁜 호흡을 꼴깍 삼켰다.

“흐읏……!”

새어 나온 달콤한 신음을 꿀떡 삼켰다.

“자, 잠시만요.”

애달픈 목소리도 꿀꺽 삼켜 버렸다.

테오도르는 게걸스럽게 레나티스를 탐했다.

“테오도르 님!”

부풀어 오른 욕정이 레나티스를 풀썩 쓰러뜨려 버리자, 마침내 그녀는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테오도르는 다시 반응했다. 거칠게 맞추고 있던 입술을 떼어냈다.

테오도르는 제 아래에 있는 레나티스를 확인했다.

누구의 타액인지 모를 것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은 가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몇 번째 키스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입을 맞췄지만, 아직도 레나티스는 키스 중에 숨을 조절하지 못했다.

당연히 테오도르는 레나티스의 그런 점도 사랑스러웠다.

테오도르가 레나티스를 보는 동안, 레나티스 역시 그를 보고 있었다.

“자주색이에요.”

테오도르의 눈동자 색을 확인한 레나티스가 말했다.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몰랐다. 테오도르의 눈동자를 확인하고, 붉은색에 가까우면 키스를, 보라색에 가까우면 행동을 멈췄다.

두 사람은 그렇게 테오도르의 광증을 조절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모금의 피로 테오도르의 광증을 치료한 레나티스였지만, 그 후에 키스나 잠자리를 가지는 것으로는 훨씬 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나 키스만으로는 더욱 그랬다.

아마도 피가 타액보다 좀 더 효과적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테오도르와 그 행위들을 하며 몇 번이나 그의 눈동자 색을 체크해온 레나티스는 테오도르의 눈동자가 단박에 보라색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점점 물들듯이 돌아온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테오도르의 광증을 키스로, 정확하게는 타액만으로 조절해보기로 시도한 것이었다.

정말로 이것이 가능할지는 도박에 가까웠다. 실험해볼 시간도 없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들은 검술을 배운 적은 있으나 실전은 겪어본 적 없는 귀족 도련님과 이제야 겨우 움직이는 물체를 맞출 수 있는 궁수가 그나마 실력 있는 기사에게 의지해 카르오 대공의 침실까지 돌파해야 했다.

그리고 분명히 훌륭한 호위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카르오 대공을 처치하기까지 해야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실험이 성공적이었다.

이대로만 유지한다면, 그들은 귀족 도련님 대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든든한 아군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래.”

테오도르는 대답했다. 하지만 레나티스의 위에서 몸을 비키지는 않았다.

“걱정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으니까.”

불안한 듯 눈을 굴리는 레나티스를 보며 테오도르는 그녀를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다시 찬찬히 레나티스의 얼굴을 훑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물빛 눈동자를, 동그랗고 귀여운 코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입술을.

만지고 싶었다. 입술을 대고 싶었다. 마치 짐승처럼 제 침을 흠뻑 묻혀서 표식을 하고 싶었다.

다시 천천히 피가 끓었다. 다시 목구멍이 마르고 있었다. 테오도르 안의 욕망이 갈 곳을 잃고, 고통이 되어 그의 살점을 긁어댔다.

“레나티스.”

하지만 마치 자신도 함께 아픈 것처럼 글썽이는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 여인을 위해서 이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테오도르는 손을 들어 천천히 공중에서 레나티스의 얼굴선을 그려냈다. 피부는 닿지 않았지만, 제 마음은 그녀에게 닿기를 바랐다.

“사랑해.”

테오도르는 천천히 레나티스의 곁에서 물러났다.

지금의 물러남이 미래의 다가감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테오도르는 알았다.

감히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미래를 위해서라면, 레나티스와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녀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테오도르는 기꺼이 이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다.

* * *

야밤에 이루어진 카르오 저택 습격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니제르의 침실에서 대치 중인 이들의 귀에 먼 함성이 들렸다.

카르오 가문 사람의 것인지, 엘부르 가문 사람의 것인지, 혹은 다른 어떤 이의 함성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것이 자기 편이 내지른 승리의 함성이기를 바라며, 각자 눈앞의 상대방을 주시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네 계획이었군.”

니제르는 이를 갈았다.

테오도르의 광증을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떻게 제 눈을 피해서 저 가문들과 결탁한 것인지는 몰라도, 무슨 수로 그럴듯하게 침입자를 꾸며낸 것인지는 몰라도,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 테오도르라는 것은 명백했다.

“네 뜻대로 될 것 같으냐?”

그리고 니제르는 테오도르의 계획을 비웃었다.

제 앞에 있는 것은 카르오 가문의 사병 중에서도 최정예였다. 카르오 대공의 직속 호위 기사들이니 당연했다.

아무리 테오도르가 지금 인간을 넘어서는 괴력을 지닌 광증상태라고 하더라도 6명이나 되는 기사를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다.

테오도르의 옆에서 저 하녀가 제법 그럴듯하게 활시위를 겨누고 있긴 했지만, 그녀가 활 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 지 채 몇 개월 되지 않았다는 것을 니제르는 알고 있었다.

지금 복도에서 다른 이들이 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인스트는 제법 훌륭한 기사이긴 했지만, 혼자의 힘으로 계속 밀려드는 사병들을 계속 막을 수는 없을 터였다.

외부 습격을 꾸며 별채로 카르오의 사병을 배치해 병력을 분산시키고, 엘부르와 다른 가문들을 그럴듯한 말로 꼬여낸 것까지는 제법 훌륭했지만,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편으로 감히 자신을 치러 온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햇병아리 궁수와 체력이 다해갈 기사,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짐승. 서커스가 따로 없었다.

“감히 네놈들 따위에게 내가 무릎 꿇을 것 같으냐?”

니제르는 제 아들이 꾸려낸 서커스단을 마음껏 비웃었다.

“아니.”

테오도르는 조용히 니제르의 말을 부정했다.

“당신 무릎 따위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건, 당신 목이야.”

테오도르는 싸늘한 자주색의 눈동자로 니제르를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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