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25
‘누굴까?’
니제르는 생각에 잠겼다.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별채를 습격한 범인은 여전히 잡지 못한 채였다. 아니,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몸이 얼마나 가벼운 놈인지 정원에서 발자국 하나 찾아내지 못했고, 침입한 흔적도 찾지 못하여 침입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암살자가 아닐지도 모르겠군.’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흔적을 감출 수 있는 유능한 자가 정작 목표를 죽이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니제르는 어쩌면 그가 암살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그자는 그저 잠입에 뛰어난 자로, 다른 임무를 맡았는지도 몰랐다.
‘양동작전인가? 그날 본채에 침입의 흔적이나 없어진 것이 없는지 다시 체크를 해봐야겠어.’
이미 수색은 한번 끝낸 뒤였지만, 니제르는 다시 한번 더욱 꼼꼼하게 살피기로 했다.
‘아니면, 워낙에 뛰어난 자라 마지막 순간에 그곳에 자는 것이 테오도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나? 덩치도 훨씬 작은데다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머리카락 색이니, 마지막 순간에 활을 틀었나?’
니제르의 생각은 이제 퍽 인도주의적인 암살자라는 허무맹랑한 곳까지 뻗어나갔다. 그만큼 침입자에 대한 단서가 없었다.
“이제 며칠 뒤면 약혼식이니, 그때까지 방비를 철저히 하면 되겠지.”
니제르는 들고 있던 별채 수색에 대한 보고서를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
약혼식이 무사히 끝나더라도, 아직 결혼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니제르는 일단 눈앞의 고비를 넘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은 빠르게 약혼식을 올린 다음,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제국의 유력 가문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왕국과 공국에도 초대장을 보낼 작정이었다.
테오도르의 성대한 결혼식을 통해서 알려야 했다. 아직 카르오 가문이 건재하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을.
감히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는 황실파 놈들에게 니제르는 그 사실을 단단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카르오 대공님.”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그의 비서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별채 쪽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침입자의 흔적이라도 찾았나?”
“아뇨. 다른 기별입니다. 테오도르 님의 신상에 변화가 있는 모양입니다.”
신상의 변화. 비서관이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 무엇인지 니제르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테오도르에게 광증이 나타난 것이다.
“그럴 때가 되긴 했지.”
이제까지 테오도르의 광증에 대해서 꼬박꼬박 보고를 받았던 니제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정한 주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테오도르의 광증은 대략 4~6주 정도 사이에 일어나고 있었다.
“오히려 잘 됐군. 적어도 약혼식 현장에서 깜짝쇼가 일어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만약 약혼식장에서 테오도르가 광증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계획을 세워두고 있던 니제르였지만, 돌발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다.
“테오도르는 어떻게 하고 있지? 그 하녀는?”
“일단 별채의 오르디와 리타 부인이 2층 복도의 사병과 하인들을 모두 물렸고, 테오도르 님께서는 방에 계십니다. 그 하녀도 같이요.”
“그럼 광증은 곧 끝나겠군.”
니제르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서류에 눈을 두었다.
* * *
“하아……. 하아……. 하아…….”
습한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붉은 눈은 기묘한 표정으로 레나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 위로 삐죽 드러난 이는 이가 아니라 이빨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보자면 붉은 눈 또한 그랬다. 본능과 욕망으로 얼룩진 붉은 눈은 사람의 눈보다는 짐승의 것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테오도르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기묘한 표정도 설명할 수 있었다.
짐승의 본능을 인간의 이성으로 잔뜩 억누르고 있는.
“테오도르.”
레나티스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붉은 눈을 빛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테오도르의 앞에 다다르자, 레나티스는 조용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테오도르의 뺨을 감쌌다.
부드러운 테오도르의 머리카락이 눈치 없이 레나티스의 손등을 간질이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의 눈빛과 같이 자신을 노려보는 붉은 눈을 레나티스는 피하지 않았다.
찬찬히 그 눈을 들여다보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코와 코가 맞닿을 것 같은 순간에 얼굴을 살짝 비튼 레나티스는 그대로 테오도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의 입술이 흠칫하고 떨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눈을 감은 채, 레나티스는 테오도르의 입술 틈 사이로 혀를 비집어 넣었다. 아직 단단히 다물어진 치아의 벽이 금세 레나티스를 가로막았다.
레나티스는 혀로 그것을 더듬어 나갔다.
단단한 치열과 날카로워 찔릴 것만 같은 그의 송곳니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잇몸을 스치듯 지나쳤다.
테오도르의 입이 벌어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가 레나티스의 손목을 붙들고 그녀를 덮치듯 깔아뭉갰다.
“아……!”
일순간 시야가 뒤바뀐 레나티스의 입에서는 신음과 같은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두터운 카펫 덕에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지만, 부딪힌 뒤통수가 조금 얼얼했다. 하지만 레나티스의 신경은 그곳보다 더한 곳에 몰려 있었다.
바로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는 묵직한 무게와 아프도록 붙잡힌 손목이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욱 타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붉은 눈이었다.
마치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는 그 눈을 레나티스는 이번에도 피하지 않았다.
“테오도르.”
오히려 부드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을 따름이었다.
지금 테오도르가 먹은 레나티스의 체액은 그야말로 한 방울도 되지 않을 터였다.
테오도르의 입술을 적신 타액 약간과 그의 이에 묻어난 타액 조금뿐이었다.
며칠이나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사막의 여행자가 딱 한 방울의 물로 제 혀를 적신다면, 과연 그것으로 갈증 해소가 될까?
아니었다. 오히려 감질나서 더욱 미칠 듯이 물을 원하게 될 터였다. 제 입술을, 제 혀를, 그리고 제 목구멍을 적실 구원을 더욱 바라게 될 터였다.
“레나티스…….”
테오도르는 제 눈앞에 있는 자신의 구원을 쳐다보았다. 그는 저 붉은 입술 안에 자신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감로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흰 살결을 뚫고 들어가면, 그 안에 다디단 체액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치마를 들치고 비밀스러운 곳을 찾아 제 것을 들이밀면, 이 갈증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본능대로 자신이 움직이기만 한다면, 이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네. 저 여기 있어요.”
달콤한 속삭임. 나른한 유혹.
그저 대답한 것뿐일 목소리가 테오도르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사실, 광증이 아니더라도 늘 그랬다.
그저 제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그저 웃었을 뿐인데, 그저 숨만 쉬었을 뿐인데, 레나티스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테오도르는 어떤 요부의 유혹보다도 더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향기가, 그녀의 손짓이, 그녀의 호흡이, 모두 테오도르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흐……읏…….”
하지만 성급하게 다가갔다는 그녀가 다칠 수 있음을 알았다.
좀 더 참아야 했고, 좀 더 억눌러야 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조금 더…….”
돌처럼 굳어버린 테오도르 대신, 레나티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적어도 레나티스는 지금 사람이었으니까.
레나티스는 한 손으로 테오도르의 뒤통수를 감싸 쥐고, 천천히 당겼다. 테오도르는 길이 든 순한 짐승처럼 순순히 그녀의 힘에 복종했다.
입술이 닿았다. 그리고 이내 혀가 닿았다. 수줍게 내민 작은 혀를 테오도르는 더 참지 못하고 단숨에 휘감았다.
“흐읏!”
아래에서 터져 나온 신음이 테오도르를 더욱 부추겼다.
귓구멍을 간질이는 그 목소리가 다시 듣고 싶어, 테오도르는 작은 혀를 더욱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맸다.
움찔거리는 작은 입술이 느껴졌다. 제 혀 안에서 바르작거리는 작고 귀여운 혀도 느껴졌다.
잡힌 손목에 한껏 힘이 들어가는 것도, 자신에게 짓눌려 있는 탄탄한 허벅지가 버둥거리는 것도, 모두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 테오도르에게는 치명적인 자극이었다.
“자, 잠시만…….”
귀여운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테오도르는 레나티스의 저항도 소유하고 싶어서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다.
가능하다면 사랑스러운 분홍색 머리카락도, 뽀얗고 매끄러운 살결도, 말캉한 입술도, 작고 귀여운 코도, 자신을 바라보는 물빛 눈동자도, 모두 삼켜버리고 싶었다.
레나티스가 아무 데도 갈 수 없도록, 꿀꺽 삼켜서 제 배 속에 넣어버리고 싶은 것이 테오도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잠시만요, 테오도르 님.”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레나티스가 아파할까 봐서였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제 가슴을 밀어대는 작은 손에, 테오도르는 입술을 떼어냈다.
바닥에 흐트러진 분홍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물빛 눈이 보였다. 그리고 가쁜 호흡을 하는 입술이 보였다.
테오도르의 아랫배에 다시금 힘이 들어갔다. 멈출 수 없는 욕망이 다시 테오도르를 지배하려 하고 있었다.
“…….”
그런 테오도르를 멈추게 한 것은, 그의 시야에 들어온 작은 손이었다.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이고, 연습으로 활시위에 긁히고, 화살촉에 긁혀 생채기가 가득한, 레나티스의 손이 테오도르를 짐승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