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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24화 (124/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24

“제가 무슨 일로 왔는지는 이미 아시겠지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테오도르가 다짜고짜 한 말에 니제르는 어디서 꼭두새벽부터 인사도 없이 건방지게 구느냐며 화를 낼 법도 했으나, 그저 물끄러미 테오도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계집애 일이라면, 어지간히 눈이 뒤집히는 모양이군.’

테오도르가 무슨 일로 왔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어젯밤, 별채에 누군가의 습격이 있었다는 보고를 저택의 주인인 니제르는 당연히 실시간으로 받았다.

돌로 깨진 창문도, 깨진 창문으로 들어왔다는 화살도, 이미 니제르의 손안에 있음은 물론이었다.

니제르가 이른 새벽부터 집무실에 나와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솔직히, 하녀가 습격당한 것 따위는 별것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장소였다.

카르오 저택이었다. 그리고 별채의 가장 좋은 방이었다.

보통 은퇴한 전 대공 부부가 쓰거나, 차기 대공이 될 후계자가 결혼 후, 신혼집으로 쓰이는 별채이자 방이었다.

혹은, 아주 귀한 손님이 머무를 때 내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이 습격당했다. 그리고 범인은 잡지 못했다.

카르오 저택의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이었고, 당연히 모든 사병을 소집해야 하는 일이었고, 카르오 대공인 니제르가 새벽부터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범인을 찾는 중이다.”

“찾는 중이요?”

테오도르가 니제르의 말꼬리를 잡으며, 그의 앞에 섰다.

“찾아야 하는 게 맞습니까?”

그리고 지그시 니제르를 바라보며, 그의 책상에 양손을 넓게 짚었다.

“태도가 불손하구나.”

마침내 니제르가 테오도르의 태도를 짚었다.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카르오 대공님. 용의자에게는 태도가 불손해질 수밖에 없어서요.”

“내가 그랬다는 거냐?”

“네.”

“내가 왜?”

“제가 결혼식에 깽판이라도 칠까 봐 그런 것 아닙니까?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 애와 사랑의 도피라도 할까 봐요. 그래서 그 싹을 잘라버리려고 하셨겠지요.”

“그러다가 네가 광증이 도져서 결혼식이 깽판이 나면 어쩌려고?”

“저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그 애에게 똑같은 분홍 머리카락을 가진 언니가 있다는 걸 대공께서도 아실 텐데요.”

날카롭게 자신을 노려보며 말하는 테오도르를 보며, 니제르는 식상하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잡아떼지 않았다.

물론, 레나티스에게 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허망하게 죽어버린 벨에게 두 딸이 있다는 것은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고, 잘 자라난 것도 모두 확인하고 있었다.

얌전해 보여 테오도르의 치료제로 점찍어 놓았던 언니 쪽이 어느 날 갑자기 야반도주한 것은 의외이긴 했지만, 동생 쪽이 제 발로 저택에 왔으니 별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동생이 스페어가 된 것이 아니라, 언니가 스페어가 된 작은 헤프닝에 불과했다.

그리고 니제르는 당연히 스페어의 동태를 계속 살폈다. 얼마 전에 그 스페어가 별채에 다녀간 것 역시도 알고 있었다.

“그래. 그 언니의 그 동생일 테니, 혹여 제 언니처럼 사랑의 야반도주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해서 좀 지켜보기는 했지. 하지만 사랑의 도피는커녕, 싸움이나 하고 있어서 안심했다.”

니제르는 순순히 웃으며 수긍했다. 아스텔라의 존재를 안다는 것도, 테오도르와 레나티스에게 감시를 붙였다는 것도.

아무래도 모든 것을 버리고 남자와 함께 달아난 제 언니와는 달리 동생 쪽은 탐욕스러운 듯했다.

테오도르가 저를 두고 결혼한다고 화를 낸 것을 보면 말이다.

감히 평민이 귀족과 결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감히 주제도 모르고 제가 카르오의 안주인이 되리라 생각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참으로 멍청한 계집애였다.

“너희 둘이 알아서 싸우고 있는데, 내가 굳이 나설 게 뭐가 있겠느냐?”

만약, 그 계집애가 테오도르의 결혼에 훼방을 놓을 기미라도 보인다면, 손을 쓸 생각이기는 했다.

혹은, 제가 훼방을 놓지 않더라도 방해물이 된다면, 역시나 니제르는 손 쓸 생각이었다.

아직 스페어가 남아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니제르는 그러지 않았다. 그 계집애가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덕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창문 파편의 모양으로 봐서, 외부 침입인 것은 확실하다고 하더군. 어젯밤 별채의 고용인 중에서 그 시간에 야외에 있었던 자는 없었으니, 애먼 내부인을 고민할 필요는 없을 거다.”

“…….”

“그리고 야간 순찰조가 수상한 낌새도,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한 것을 봐선, 범인은 시정잡배가 아니라 삼엄한 경비를 뚫고 침입하는데 능숙한 자가 분명해.”

테오도르는 여전히 의심이 가득 찬 눈으로 니제르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지금까지 자신이 알아낸 바를 공유했다.

“그런 암살자를 길러낼 수 있는 가문이거나, 카르오 저택에 침입이 가능한 암살자를 고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가문의 소행이겠지.”

“그런 가문에서 레나티스를 왜 노린단 말입니까?”

“아마 그 계집애를 노린 게 아니라, 널 노린 거겠지. 그 하녀의 방과 네 방은 연결되어 있고, 실질적으로 연결된 방 3개가 모두 네가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하녀의 방 창문이 깨졌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아이를 노린 것으로 생각하다니, 니제르는 속으로 아직 테오도르가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제 여자가 다칠 뻔해 분노로 눈이 멀었던가.

“분명 카르오의 후계자를 노린 가문의 소행일 것이다.”

니제르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카르오 가문을 노리고 후계자인 테오도르를 노렸다는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짐작 가는 바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이전에도 이런 일은 몇 번이나 있었다.

고용인을 포섭하여 테오도르의 음식에 약을 탄다거나, 별채에 침입하여 테오도르를 공격한다거나 하는 일.

본채보다 상대적으로 경비가 느슨하고, 단단히 호위에 둘러싸인 니제르에 비하여 테오도르의 호위가 적다 보니 적들은 차선책으로 테오도르를 노렸다.

그리고 바로 그게 니제르가 노린 일이기도 했다.

적들이 자신을 포기하고 후계자인 테오도르를 공격하게 하는 일.

그래서 니제르는 일부러 별채의 경비에 약간의 틈이 생기게 했고, 호위의 수도 항상 조절해왔다.

테오도르는 소중한 카르오 가문의 후계자였지만, 그것보다 소중한 것은 카르오 대공인 니제르였다.

그런 대외적인 이유뿐만이 아니라, 니제르에게는 아들보다 본인이 훨씬 중요했다.

테오도르는 니제르의 마지막 방패였다.

“어느 가문 말씀이십니까?”

“그거야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니제르의 말에 테오도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범인이 분명 니제르라고 생각했던 그의 생각이 흔들리는 듯했다.

“짐작 가는 곳이라도 없습니까?”

“짐작 가는 가문이야 있지. 다만, 너무 많아서 문제지.”

니제르의 말에 테오도르의 인상이 더욱 찌푸려졌다.

“하지만 지금 내 예감으로 가장 유력한 곳은…….”

얼른 말을 하지 않고 니제르가 뜸을 들이자, 테오도르는 초조한 듯했지만, 침착하게 기다렸다.

“황실이야.”

뜻밖에 대답이었다. 적어도 테오도르에게는 그랬다.

“황실이 왜 카르오 가문을 노린단 말입니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니제르의 대답은 간결했다.

“초대 카르오의 강력한 지원이 아니었더라면, 변경백으로 평생을 야만족들과 투덕거리며 살았을 것이라는 것을 잊은 게지. 그 은혜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황권에 위협이 될 만큼 강력한 카르오 가문의 힘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거야. 선대께서는 평화주의자라 그런 황제의 투정을 받아주었지만, 내가 카르오 대공이 된 이상은 어림없지.”

니제르는 눈앞에 황제가 있는 양, 콧방귀를 끼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그런 니제르를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사실은 테오도르도 동의했다.

개국공신이라는 이름으로 카르오 가문이 제국 내에서 누린 부귀영화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황실을 적대시하는 니제르를 보면,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자신이 다른 가문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해서 짐작 가는 가문이 너무 많다는 말로 얼버무리는 니제르를 보면 더욱 그랬다.

니제르가 독점 무역권을 따내기 위해서 간교한 술책으로 독점권 경매에서 배제당한 세르빌 가문, 황후를 너무 많이 배출해냈다는 이유로 견제당해 3자매가 모두 이민족과 혼인해야 했던 틸리우 가문, 그가 원한 그림을 넘기지 않은 보복으로 서류에 트집을 잡아 2년째 갤러리 공사가 멈춘 발레리 가문.

테오도르가 아는 사건만 올해 들어 3개였다.

이기적인 니제르는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냈다.

그가 말한 대로 카르오 가문에 이를 갈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아마 네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카르오 가문이 더욱 번성하기 전에 싹으로 자르려는 속셈이었겠지.”

“화살이나 돌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없었습니까?”

“돌은 별채 연못에 있던 정원석 중에 하나로 보이고, 화살은 시중에 흔하게 유통되는 물건이라 단서는 찾기 힘들 거다. 그런 걸로 꼬리를 잡히는 어수룩한 자가 아니야.”

“그럼 이렇게 손 놓고 있으라는 겁니까?”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테오도르가 책상을 쾅 쳤다.

“당연히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 시도한 자는 두 번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레나티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약혼식도, 결혼식도 없던 일이 될 겁니다. 지켜야 할 것이 없다면, 제가 왜 희생을 자처하겠습니까?”

테오도르의 말을 들으며, 니제르는 그가 자신에 대한 의심을 완벽하게 지운 것이 아님을 알았다.

“별채에 경비를 늘리도록 하지. 네 결혼식이 무사히 치러질 때까지 말이다.”

“지난번 정도로는 안 됩니다. 최소한 그 두 배는 되어야 합니다. 대공의 말에 따르면 이번 암살자는 프로이니까요.”

테오도르는 지난번 파블로 영애의 사주로 레나티스에게 나쁜 짓을 하려던 자가 잡힌 뒤, 일시적으로 별채의 경비가 강화되었던 때보다 더 많은 경비를 요구했다.

그의 요구대로 하자면, 지금 수도에서 동원할 수 있는 카르오 가문 사병의 1/3이 별채 경비에 소요될 터였다.

“그렇게 해주마.”

하지만 니제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도 카르오의 후계자인 네 안위가 중요하지.”

물론 그것은 중요했다.

니제르,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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