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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23화 (123/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23

튈트리 보석상은 제국에서 가장 큰 보석상은 아니었지만, 가장 깐깐한 보석상이었다.

일정 품질 이하의 물건을 절대 들이지 않았고, 세공도 일류 세공사가 아니면 절대로 맡기지 않았다.

최고 품질의 보석을 최고 가격으로 판매한다.

바로 그것이 튈트리 보석상의 신조였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바로 그 최고 품질의 보석들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아르보 영애의 취향은 아십니까?”

오르디는 보석을 보고 있는 테오도르를 향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오르디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살짝 오르디의 머리가 아파져 왔다.

“그럼 보석에 대해서는 좀 아십니까?”

“광물 형성과정 정도는 알아.”

물론, 오르디가 말한 보석에 대한 것은 그 보석이 어떤 과정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아느냐는 것이 아니었다.

보석의 의미나 사용처에 따른 색깔이나, 귀금속으로의 활용에 대해서 아느냐는 말이었다.

다시 질문해봤자, 테오도르가 당연하다는 듯이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을 알기에 오르디는 재질문하지 않았다.

“이건 어때?”

테오도르가 손가락으로 파란색 보석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무슨 보석인지 아십니까?”

“모르지.”

“테오도르 님께서 고르신 보석은 사파이어입니다. 푸른 사파이어는 물론 예쁘긴 하지만, 약혼 예물로는 그리 적당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다이아몬드를 고르죠. 그리고 테오도르 님이 고르신 세공은 젊은 여성들이 하기에는 너무…… 고전적입니다.”

“그래?”

단순하고도, 뻔뻔스러운 대답에 오르디는 다시 머리가 아파져 왔다.

아무리 허울뿐인 약혼식이라고 할지라도 적당한 구색 정도는 맞춰야 하는데, 테오도르는 아무런 의욕도, 관심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테오도르는 오르디의 한마디에 벌써 사파이어를 포기하고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오르디는 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남 일처럼 서 있는 인스트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그럼, 저건 어때?”

테오도르는 팔짱을 낀 채, 고갯짓으로 대충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 다이아몬드 말입니까?”

테오도르가 다이아몬드를 골랐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오르디는 개중에서 가장 약혼반지에 어울릴법한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맞아.”

“네. 이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네요.”

오르디는 고개를 들어 점원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점원은 생긋 웃으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케이스에서 꺼냈다.

그저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알아서 척척 행동하는 걸 봐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지 않은 척했지만, 계속 주시하며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머, 참 예쁜 반지네요.”

테오도르와 오르디가 점원이 꺼내준 반지를 좀 더 자세히 보려는 순간, 아니 정확하게는 테오도르는 별 관심이 없고, 오르디가 반지를 자세히 보려는 순간이었다.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불쑥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목소리처럼 우아한 중년의 여인이 살짝 미소를 띤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 크기의 다이아몬드는 찾기 힘들죠.”

여유 있는 미소에서는 연륜이 느껴졌지만, 그녀의 금발은 젊은 시절 그대로 화사해서 세월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도 바로 이런 다이아몬드를 찾고 있었거든요. 저에게 양보해주시면 안 될까요, 젊은 신사분?”

테오도르를 바라보는 여자의 초록색 눈동자에서는 은근한 교태가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 반지가 좀 필요해서요.”

“하지만 꼭 이 반지여야 하시지는 않잖아요? 보석이 꼭 필요한 건 여자들이죠.”

“제가 눈이 좀 높아서 말입니다. 이 정도 보석이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군요.”

이제까지 대충 아무거나 고른 주제에 테오도르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제 성격상 제가 고른 것을 남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군요.”

“어머, 빼앗다뇨? 이건 협상이죠. 사실, 아까부터 보석을 고르시는 걸 보고 있었답니다. 처음 연애를 하시는 건지, 선물을 고르시는 게 서툰 것 같더라고요.”

“전 선물을 고르는 것도 아니고, 제 연애 상대에게 선물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 더 신중하게 고르셔야겠네요. 마음이 없는데, 마음이 있는 것처럼 위장해야 하는 선물이니까요.”

여자는 다 안다는 듯이 싱긋 웃었다.

은근히 약을 올리는 것 같은 여자의 말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테오도르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이 다이아몬드를 제게 양보해주신다면, 제가 신사분의 선물을 대신 골라드릴게요. 저는 보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여자에 대해서도 잘 안답니다. 적어도, 신사분보다는 제가 잘 알 것이 확실해요.”

“…….”

테오도르는 가만히 여자를 쳐다보았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자신이 받아들일 법한 제안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테오도르의 입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여자는 빙긋 웃었다.

“여자분은 어떤 스타일이신가요? 화려한? 청초한? 아니면, 귀여운?”

“그냥 보통의 얌전한 백작 영애입니다.”

“머리카락은 무슨 색인가요? 피부는 어떻죠? 눈 색깔은 어떻고요?”

여자의 질문 공세에 테오도르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아르보 영애가 어땠는지 기억이 흐릿했다.

“얌전한 여성분이라면 이건 어떤가요?”

여자는 크림색의 진주가 박힌 반지를 가리켰다. 진주알이 커다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반지는 가느다랗게 세공한 것이었다.

“글쎄요.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인지라 좀 과한 것 같은데?”

“어머, 정말 까다로운 분이셨네?”

여자는 테오도르의 거절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웃으며 다시 보석 케이스로 눈을 돌렸다.

“그럼, 이 화이트 오팔은 어떠세요? 색이 아주 신비하고 예쁘게 나왔네요. 거기다가 청순을 뜻하기도 한답니다. 얌전한 귀족 아가씨에게 딱 이예요.”

테오도르는 그녀가 고른 오팔 반지를 보았다. 그 정도라면 적당할 듯했다.

“괜찮군요.”

테오도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점원이 재빨리 화이트 오팔 반지를 꺼내어 그의 앞에 놓았다.

“사랑과 로맨스를 상징하는 보석이죠.”

설명이 부족했다는 듯, 옆에서 여자가 덧붙였다.

그 말에 테오도르는 이젤다가 아닌 다른 여자를 불현듯 떠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테오도르의 뇌가 깊숙한 곳에 있던 기억을 마구잡이로 끄집어냈다.

화사하게 웃던 미소, 뽀얗고 하얀 피부, 말랑한 입술의 촉감, 은은하게 풍기던 달콤한 냄새, 그리고 그것과 함께 섞여서 나던 달큼한 땀 내음, 작고 귀여운 신음, 제 이름을 부르던 촉촉한 목소리, 그리고…….

“이걸로 하지.”

테오도르는 하염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끊어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 * *

어두운 밤이었다.

달은 초승달이었고, 별빛마저 구름에 가려져 하늘에 빛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하나둘, 별채를 밝히던 불도 꺼졌다.

경비를 서는 문의 횃불과 순찰하는 경비병이 손에 든 등만이 귀신불처럼 별채의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와장창!

밤의 고요함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테오도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곧장 문을 향해서 달려갔다.

복도로 이어진 문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수리한 옆방으로 이어진 커넥팅 도어였다.

“레나티스!”

테오도르는 문을 열며 고함쳤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방을 가로질렀다. 아직 문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테, 테오도르 님.”

겁에 질린 것 같은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테오도르는 하나 남은 문마저도 열어젖혔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엉망이 된 방의 광경이 똑똑히 테오도르의 눈앞에 펼쳐졌다.

깨진 창문의 파편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그 옆에는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깨진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와 찢어진 흰 커튼이 바람에 너풀거렸다.

바람에 솟아오른 커튼이 아래로 스르륵 내려오는 순간, 그 너머에 있던 창백한 안색의 레나티스가 비로소 테오도르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주변에는 흰 커튼의 잔상처럼, 혹은 눈송이 같은 흰 무언가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발을 조심하세요!”

테오도르가 성급하게 레나티스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그녀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맨발의 테오도르가 깨진 창문의 파편에 발이라도 다칠까 봐 한 이야기였다.

‘넌 이 상황에서도…….’

테오도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렇게 창백한 안색을 하고 있으면서도, 레나티스는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녀의 만류대로 깨진 창문 조각들이 있는 곳을 빙 돌아, 레나티스가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그제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함박눈처럼 흰 것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깃털과 솜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배게 속에서 얌전히 있어야 하는.

그것이 왜 밖으로 나와 있는지 역시, 금세 테오도르의 눈에 들어왔다.

편안히 누울 수 있도록 보드랍고, 판판해야 하는 침대와 어울리지는 않는 기다란 화살이 삐죽 솟아 있었다.

화살이 베개에 박히며 찢어져, 그곳에서 나온 몇 개의 솜털이 공중에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괜찮아?”

테오도르는 눈으로 레나티스의 몸을 훑으며 말했다. 언뜻 보아도 상처나 피는 보이지 않았다.

“네, 네. 괜찮아요.”

여전히 창백한 안색으로 레나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테오도르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다행이야.”

한숨과 같은 말을 내뱉으며, 테오도르는 레나티스를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스한 체온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그리고 그것은 레나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채의 불이 하나둘 켜지고,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올 때까지,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마치 닿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오래,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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