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22화 (122/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22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나무토막이 더 크게 흔들렸다.

눈을 더 가늘게 뜨고, 활을 쥔 손에 힘을 더 단단히 주었다. 손가락에 난 잔털에서도 바람이 느껴졌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그리고 지금!

“쉬잇!”

바람을 가르며 활이 날아갔다. 그리고…….

“틱!”

흔들리는 나무토막의 끄트머리에 맞으며 화살은 위로 튕겨 올랐다.

“아깝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인스트가 나보다 더 아까워하며 소리쳤다. 나는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한숨이 나왔다.

‘아직 멀었네.’

다시 한번 쏴보려고 화살을 찾았지만, 화살통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20발의 화살을 이미 다 쏜 것이었다.

고개를 다시 들어 나무토막을 보자,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면 조금 전에 빗맞았던 것이나 다른 화살이 스쳐 간 흔적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무토막은 너무나 멀쩡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 하루 이틀 만에 되지 않는게 정상이니까.”

“연습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요.”

“내가 말한 하루 이틀이 진짜 하루 이틀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그래도요.”

인스트의 말에도 나는 툴툴거렸다. 움직이는 과녁을 맞힌다며, 나뭇가지에 밧줄로 매단 나무토막을 흔들어 놓고 그것을 맞추기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째였다.

적어도 재능이 있으면, 좀 빨리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흥!

나는 도무지 맞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 나무토막을 노려보았다.

“좀 더 해보면 되겠지.”

“그 ‘좀 더’가 오늘이 될겁니다.”

“오늘?”

인스트는 내 말에 힐끗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별게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해가 떠 있을 뿐이었다. 거의 우리의 정수리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오늘 안에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곧 점심이야.”

“하지만 오늘에는 오후도 있죠.”

“오후? 오후엔 훈련을 안 하잖아.”

“오늘부터는 합니다.”

인스트는 내 말에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제가 오늘부로 연애를 중단하게 되었거든요.”

인스트의 눈썹이 아까보다 더 치켜 올라갔다. 저러다가는 아예 눈썹이 정수리에 가서 붙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연애를 안 하니, 시간이 남아돌거든요. 그래서 오후에도 연습할 겁니다.”

나는 활시위를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내 인내심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어김없이 빗나간 화살을 보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

.

.

“대체 어떻게 하면 저 빌어먹을 나무토막을 맞출 수 있는 거죠?”

나는 씩씩거리며 인스트에게 물었다.

자신만만하게 오늘 안으로 맞추고 말겠다고 말했지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지금까지 아직이었다.

“말투가 거칠어진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인가?”

“기분 탓입니다.”

“아닌 것 같은데?”

“아무렇게나 생각하세요. 제가 궁금한 건 대체 어떻게 하면 저 나무토막을 맞출 수 있냐 하는 거예요.”

나는 화살을 주우러 터벅터벅 걸어가며 말했다. 인스트는 그런 내 옆을 함께 걸어주었다.

“왜 네가 못 맞춘다고 생각해?”

“그걸 몰라서 물어본 건데요?”

“일단 네 기본 테크닉은 훌륭해. 가만히 있는 과녁은 거의 십중팔구는 맞추니까. 그런데 움직이는 것은 못 맞춘다? 그럼 보통은 둘 중의 하나야.”

나는 인스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연히 그다음 말을 재촉하는 눈빛이었다.

“너무 빨리 손을 놓았거나, 너무 느리게 손을 놓았거나.”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옳은 말이기도 했다.

“마음이 급한 건 알겠는데, 좀 더 끝까지 봐.”

인스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

나는 내 손에 쥔 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인스트의 말대로 나는 조급했다. 빨리 저 나무토막을 맞추고 싶었고, 빨리 내 능력을 높이고 싶었다.

“끝까지 본다…….”

나는 다시 자리에 섰다. 그리고 활을 겨누고, 인스트가 한 말을 되뇌었다.

조금 전에도 나는 이 자리에 서서, 이렇게 활을 겨누고, 분명히 나무토막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쪽, 왼쪽.’

그런데 끝까지 보지 않았나? 나는 분명히 끝까지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른쪽, 왼쪽.’

그런데 끝까지라는 건 어디까지 인 거지? 내가 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활을 놓는 순간? 아니면, 놓고 나서까지?

‘오른쪽, 왼쪽.’

아니다. 놓고 나서는 이미 끝난 뒤이니, 아무 소용없었다. 그럼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거지?

‘오른쪽, 왼쪽.’

지금인가? 아닌가?

물음표와 혼란이 머릿속을 온통 떠다녔다.

“레나티스. 이러다간 나무토막이 서버리겠어. 그러면 의미가 없다고.”

인스트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다가 나무토막을 향해서 던졌다.

“딱!”

그가 던진 돌은 아주 정확히 나무토막을 맞췄다. 나무토막을 노려보지도 않았고, 타이밍을 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하는 거지?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인스트를 바라보았다.

“나 말고, 과녁을 봐야지.”

인스트의 말에 나는 다시 나무토막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오른쪽, 왼쪽.

‘좀 더 끝까지 봐.’

머릿속에서 인스트의 조언이 두둥실 떠올랐다.

오른쪽.

끝까지 본다. 끝까지.

왼쪽.

어디가 끝인데?

마치 내 물음에 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무토막이 방향을 바꿨다.

오른쪽.

‘지금!’

나는 나무토막이 오른쪽의 끝을 찍고,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순간, 손을 놓았다.

“쉬익!”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날았다. 그리고…….

“퍼억!”

화살이 나무토막을 꿰뚫다 못해서, 아주 완벽히 쪼개어져 버렸다.

반으로 나뉘어버린 나무토막은 묶인 밧줄에서 스르륵 빠져나와 아래로 떨어져 나와 버렸다.

이제 나뭇가지에 묶인 것은 휑뎅그렁하게 허공을 묶은 밧줄뿐이었다. 그걸 보고 내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왜인지 사형수의 밧줄이었다.

목이 매달기 전인지, 뒤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우와…….”

옆에 있던 인스트가 눈을 끔벅이며, 나와 같은 광경을 쳐다보았다.

“타고난 힘에 적절한 무기, 꾸준한 노력과 훌륭한 스승이 더해지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가?”

인스트의 중얼거림에 어쩔 수 없이 내 입꼬리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으와아아아!”

“아, 깜짝이야.”

인스트가 놀라서 중얼거리는 소리는 못 들은 척하고, 나는 기쁨의 폴짝폴짝 댄스를 췄다.

드디어…… 해냈다!

* * *

“힘들다…….”

방으로 가려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힘들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전에 오전에만 훈련할 때, 인스트는 내가 오전만 하니까 보통보다 더 하드 코스로 굴리겠다고 엄포를 놨었다.

그리고 실제로 오전에 몇 시간만 하는데도 처음에는 온몸이 근육통에 시달릴 만큼 힘들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곧 오전 훈련은 내 일상이 되었다. 다음날 근육통에 삐걱거릴 일도 없어졌고.

그런데 종일 훈련하게 되자, 이 간사한 적응의 동물은 내가 언제 적응했었냐는 듯이 반항하기 시작했다.

“이것도 곧 적응이 되겠지?”

너무 활시위를 많이 당겨서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움직이는 물체를 맞추게 되자, 인스트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다른 것들도 시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쪼그려 앉아서 활을 쏜다거나, 나무에 매달려서 쏜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웃기게도, 나는 그것들을 착실하게 클리어해 나겠다.

이러다 나중에는 서커스단에서 제2의 인생을 맞이하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 가만, 서커스단? 그거 재밌겠는데?

어쨌든, 훈련이 고된 것은 좋았다.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고, 힘들어서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예를 들면.

‘테오도르…….’

오늘도 테오도르의 방 앞에서 발이 멈추고야 말았다.

내 방은 복도의 가장 안쪽 방이었고, 내 방을 가기 위해서는 테오도르의 방을 지나쳐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이렇게 멈췄고, 테오도르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영영 열리지 않을 것처럼.

“…….”

물끄러미 방문을 바라보다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내 방이었다. 계단을 올라올 때보다 더 무거워진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때였다.

테오도르의 방문이 열렸다. 뜻밖에 상황에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문을 연 사람은 리타 부인이었다. 그녀는 테오도르가 다 마신 찻잔을 내오는 중이었다. 원래의 내 일을 지금은 리타 부인이 하고 있었다.

“어머, 레나티스?”

리타 부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리타 부인.”

나는 그녀에게 인사했지만, 눈은 그녀의 어깨너머를 향해 있었다.

아직 닫히지 않은 문 틈으로, 테오도르가 보였다. 그날, 말다툼 이후 처음 보는 테오도르였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서 한 손에는 달력을 든 그가 슬쩍, 고개를 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지그시 테오도르의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보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테오도르가 보고 싶었다.

이렇게 멀리서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핑 돌 만큼.

그때였다. 테오도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움직인 테오도르의 입술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탁. 문이 닫혔다.

“수고하렴.”

리타 부인이 빈 찻주전자와 찻잔이 든 왜건을 끌고 나를 지나쳐갔다.

텅 빈 복도에 나만 남아 있었다. 아련한 백단향과 함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