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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119화 (119/169)

피폐물을 힐링물로 만드는 방법 119

“먼저 타고 계셨네요.”

인스트는 마차에 올라타선, 이미 앉아 있던 테오도르에게 인사를 겸해서 말했다.

레나티스와의 아침 훈련이 끝나고 바로 달려온 인스트가 자리에 앉자 미적지근한 땀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테오도르는 아무 말 없이 마차의 창문을 열었다. 시간이 빠듯한 탓에 바로 달려오라고 말한 것이 자신이었으니, 인스트를 탓할 수는 없었다.

마침 마차가 출발하자 바람을 타고 바깥 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나티스는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과정으로 넘어갔습니다. 아직 맞히지는 못하지만, 그건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거겠죠. 동체 시력도 좋고, 운동감각도 탁월하니 곧 나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별로 걱정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걱정해야 하나?”

테오도르는 뭘 그런 걸 묻냐는 듯이 물끄러미 인스트를 바라보았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레나티스는 확실히 재능이 있으니까요.”

“내가 그 애가 재능이 있어서 걱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테오도르가 다시 묻자, 인스트는 살짝 당황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했다. 레나티스가 궁술에 확실한 재능이 있으니, 곧 잘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서 테오도르가 걱정하지 않는다고.

‘그게 아닌가?’

테오도르는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물을 사람이 아니었다. 인스트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아닙니까?”

인스트는 그냥 솔직하게 테오도르에게 묻기로 했다. 애초에 자신은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사람을 지키고, 기사도를 지키고, 자신을 지킨다.

인스트는 이 단순한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난 그 애가 아무런 재능이 없어도 걱정하지 않았을 거야.”

“어떻게요?”

“믿으니까.”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재능이 없는데, 해내리라는 것을 어떻게 믿는다는 말인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군.”

“네.”

“네가 등을 맡긴 동료가 있어. 사실, 실력은 그다지 뛰어난 친구는 아니야. 전장의 한복판이라면, 넌 그 동료를 믿겠어? 믿지 않겠어?”

“애초에 실력이 부족한 동료에게 제 등을 맡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상 이미 맡겼어.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어?”

테오도르의 질문에 인스트는 잠시 생각했다.

“믿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과 비슷해.”

“레나티스에게 등을 맡기셨다는 겁니까?”

“아니. 내 인생을 맡겼지.”

테오도르의 대답에 인스트는 도로 혼란해졌다. 예전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사람이긴 했지만, 요즘은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스트는 지금 그의 호위 기사로 동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마차가 달리고 있는 목적지도 왜 가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꼭 여기에 가야 하는 겁니까?”

“응.”

인스트의 불만 어린 목소리를 전혀 괘념치 않는 듯, 테오도르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창문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두 번째 문제 제기에 비로소 테오도르는 창밖의 풍경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인스트는 쳐다보았다.

“나는 예전에 인간이란 죽기 위해서 태어난다고 생각했어. ”

인스트는 테오도르의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의 테오도르는 그랬다. 그는 삶에 의지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해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버거워 보였다.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사는데도, 테오도르는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인스트가 과연 자신이 이 사람을 호위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를 고민할 정도였다.

암살자에 의해서 죽을 뻔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자신의 안전에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이 사람을 과연 지켜서 무엇을 하는가 싶은 자괴감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보랏빛 눈동자는 그 이전과 색깔과 모양은 같았지만, 분명히 달랐다.

반짝이는 생기와 의지가 보였다. 죽어가는 눈이 아니라, 살아있는 눈이었다.

“하지만 그 애가 그러더군.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고,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고. 태어난 생명은 모두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고.”

인스트는 눈치 없이 ‘그 애’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테오도르의 인생을 변화시킨 ‘그 애’가 누구인지 그는 뻔히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믿어. 그리고 나는 내가 태어난 가치가 ‘이것’에 있다고 믿어.”

굳건한 신념. 확고한 믿음.

인스트는 테오도르의 눈에서 그것이 보였다.

* * *

꽤 화려한 응접실이었다.

카르오 저택의 휘황찬란한 응접실에 비하자면 모자랐지만, 그래도 아르보 백작 가의 응접실은 백작 가 치고는 화려한 응접실이었다.

“여기까지 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너무 늦게 찾아뵌 것이 아닌가 싶어 송구합니다.”

아르보 백작과 테오도르는 서로 존재와 이름을 들어보았지만, 대면은 처음 하는 사람들답게 예의를 차렸다.

‘과연, 소문대로 굉장한 미남자인데? 과연, 하늘은 공평하지 못한 모양이야. 카르오 대공 가라는 배경에 저런 조각 같은 외모를 가졌다니. 그야말로 다 가졌잖아?’

아르보 백작은 속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과거 테오도르에 대한 소문은 매우 흉측했다.

엄청난 추남인데다가, 차마 언급하기도 힘든 장애가 있어서 사교모임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문이었다.

카르오 대공 가도 분명 그 소문을 들었을 터인데, 나서서 그 소문을 바로잡지 않았기에 거의 그것은 기정사실처럼 퍼졌었다.

하지만 테오도르의 성인식 날. 베일에 싸여있던 카르오 대공 가의 후계자가 나타난 순간, 그 소문은 곧바로 자취를 감췄다.

그야말로 장인이 평생에 걸쳐서 만들어낸 역작과 같은 조각상이 살아 숨 쉬며 걸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모든 가문에서 탐낼만한 완벽한 배경이었고, 제국의 모든 미혼의 아가씨들이 홀린 완벽한 외모였다. 당연히 그 경쟁은 치열했다.

카르오 대공 가는 그 속내를 아는 듯, 쉽게 차기 대공비를 정하지 않았다.

최근 파블로 가문에서 마침내 그 행운을 거머쥐는 듯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행운의 주인공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니, 소문이 있긴 했다. 카르오 가문에 크게 밉보이는 행동을 하여 가문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주 최근에는 카르오 대공비의 은밀한 사인과도 관련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진실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대중은 그다지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우리 이젤다가 아주 횡재했군.’

아르보 백작은 제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제 딸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쁘장하긴 했지만, 그다지 엄청난 외모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음악이나 미술 같은 것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점을 굳이 내세우자면, 조용하고 얌전하다는 정도인 이젤다가 미래의 카르오 대공비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횡재나 다름없었다.

횡재를 한 것은 이젤다만이 아니었다.

카르오 대공 가가 어떤 가문인가? 개국공신으로 제국의 가장 오래된 전통 있는 가문이며, 막강한 권력과 최고의 부를 가진 가문이 아니던가? 그런 카르오 대공 가과 사돈이라니!

아르보 백작 가의 영광이자, 아르보 백작 본인에게도 크나큰 횡재였다.

“물론, 이젤다 영애께서도 귀족 영애이시니, 귀족 가에서 결혼이 개인의 것이 아님은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평생 함께 할 사이가 될 텐데, 약혼식에서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은 도리가 아닌 듯하여 이렇게 부랴부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입에 버터라도 칠한 듯, 매끄럽게 말하는 테오도르를 보자 아르보 백작은 더욱 감탄하게 되었다.

충분히 거드름을 피우고, 오만해도 될 위치에 있으면서도 저렇게 겸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라니!

뼈대 있는 집안의 교육은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아마 저 테오도르와 이젤다가 결혼하여 낳은 아이도 저렇게 자랄 테지.

“혹시 결례되지 않는다면, 아르보 백작님. 제가 이젤다 영애와 둘이서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을는지요?”

“둘이서요?”

아르보 백작은 테오도르의 말에 슬쩍 옆을 쳐다보았다.

소심한데다가 낯을 가리는 이젤다를 테오도르와 단둘이 둔다면, 과연 입이라도 뗄는지 걱정이었다.

테오도르에게 첫인사를 한 후, 이젤다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테오도르와 대화는커녕 자기 앞에 놓인 찻잔의 차도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한 모양이군요. 이젤다 영애처럼 정숙하신 여인께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몸으로 저와 단둘이 한 공간에 계실 것이 불편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

“아, 그, 그것이…….”

물론, 지금도 이젤다는 바쁘게 눈을 굴릴 뿐, 대답은 아르보 백작에게 미루고 있었다.

“저는 그저 앞으로 결혼생활 때문에 조금 의견을 교류했으면 하는 마음에 드린 제의였습니다. 아무래도 부부 사이에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결혼’, ‘부부’. 두 단어가 아르보 백작의 머리를 강하게 울렸다.

눈앞의 횡재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었다. 이전에 횡재를 코앞에 두고 놓친 파블로 가문이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러죠. 제가 눈치가 없었군요. 부부 사이라면 마땅히 의논할 일이 있을 텐데요.”

아르보 백작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이젤다에게 격려의 눈빛을 보내주곤 그는 응접실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응접실에서 마주한 것은, 휑뎅그렁한 빈 의자와 울고 있는 자신의 딸이었다.

“이, 이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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